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31)
EP.431 강동 평정(5)
“참 답답하게 구네! 딱 한 번만 붙어보자니까? 살살 해줄게!”
“히이익! 주군, 살려주시는 겁니다! 저 여자가 절 어떻게든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엄백호는 손책이 들이댈 때마다 겁을 왕창 먹으면서 내게 달라붙었다.
난 마치 자그마한 소동물이 달라붙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그…. 뭐냐.
나와 거리감이 상당히 없네?
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백호와 치고받던 사이인데 말이다.
“이 악적! 제 언니를 그만 괴롭히시죠!”
그때 엄백호를 졸졸 따라다니던 엄여가 용기 있게 외쳤다.
제 언니에게 갈 영양분까지 모조리 흡수하여 성숙한 몸매를 자랑하는 여성.
“그렇게 누군가와 싸우고 싶다면 제가 상대해 드리겠…. 꽥!”
“엄여─!”
그 여성은 제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손책에게 한 대 얻어맞고 맥없이 쓰러졌다.
“…뭐야, 이것도 못 피했어?”
정작 엄여에게 한 방 먹인 당사자조차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
“…….”
나는 머리에 커다란 혹을 매단 채 풀썩 쓰러진 엄여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엄백호가 쓰러진 엄여를 붙잡은 채 외쳤다.
“어, 엄여! 정신 차리는 겁니다! 여기서 죽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야. 저런 걸로 죽을 리가 없잖아.”
손책의 해명에 엄백호는 곧장 대답했다.
“맨손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인물이 그런 말을 해봤자 믿음이 안 가는 겁니다!”
“…어. 그래.”
손책은 엄백호 자매의 얼빠진 모습에 투지가 전부 사라졌는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엄여가 비록 추하게 쓰러지긴 했다만 적어도 제 언니를 지킨단 목적 자체는 달성했네.
본래 역사에서 손책에게 목이 달아났던 두 인물이 손책의 전의를 떨어트린 광경은 꽤 인상 깊었다.
“저런 인물이 어떻게 산월족을 이끈 거지….”
엄백호와 알 수 없는 실랑이를 끝낸 손책은 제 머리를 멋쩍게 긁적이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죄송합니다. 제 행동 때문에 잠깐 곤란해지셨군요.”
“아니, 괜찮다.”
마치 눈앞에서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왠지 모르게 평온한 표정으로 잠든 엄여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 하얀 고양이라….”
“주, 주군?”
내가 엄백호의 말을 곱씹고 있단 걸 깨달은 모양인지 손책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자그마한 소녀를 고양이 취급하며 데리고 다니는 내 모습을 떠올린 걸까.
…경비대에게 잡혀가도 할 말이 없는 모습이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내가 그렇고 그런 의도로 하얀 고양이를 언급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엄백호의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색깔을 보면 흰색 고양이가 아니라 얼룩 고양이가 맞는 것 같은데.”
“…….”
뭐지.
날 어째서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냐.
내 말 맞잖아.
그저 오류를 정정해줬을 뿐인 내게 이상한 눈길을 보내는 인물은 손책뿐만이 아니었다.
“주인님….”
“…천하에 빨간색 고양이도 있던가?”
서여는 손책과 똑같이 내게 애매한 눈길을 보냈고, 여포는 아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양이 종류를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저기…. 주군?”
“무슨 일이지?”
손책을 살짝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조만간 저희와 친목을 다지겠다는 약속, 잊지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
“저는 몰라도 주유 걔는 확실히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내게 담담하게 읊은 손책이 내게 예의를 보이며 천천히 물러날 기색을 보였다.
“주군께서 불러주실 날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손책은 소패왕이란 이명이 어울리는 몸짓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뭐,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엄여가 일어날 기미를 안 보이는 것입니다! 찬물이라도 뿌려야 하는 겁니까?!”
“고양이…. 고양이….”
근데 근처 상황이 왜 이러지.
“정릉! 이것 봐라!”
“응? 뭔데?”
“…야옹?”
…아니, 진짜 왜 이러냐고.
내가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머리를 짚을 무렵 사마의가 병사를 대동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사마의는 주변 상황을 판단하자마자 살짝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방금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설명하면 또 어마어마한 눈초리를 받겠지.
그를 직감한 나는 사마의에게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설명하자면 조금 길어.”
“아…. 예. 그러시겠죠.”
눈치챘구나.
이러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내가 이를 어찌할지 고민할 무렵 사마의가 한숨을 푹 내뱉었다.
“이번에는 일이 더 급하니 그냥 넘어갈게요.”
내가 말을 얼버무렸다는 걸 단번에 눈치챘으나 담담히 넘어가 주는 모습.
사마의는 자신이 대동한 병사에게 입을 열었다.
“데려오세요.”
“예.”
명령을 받은 병사는 절도있는 움직임으로 착융을 끌고 왔다.
“…….”
얼굴이 아까보다 조금 더 핼쑥해졌네.
그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주군.”
“어, 제갈량 아니야?”
얘가 왜 사마의와 같이 나오지.
제갈량은 평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신출귀몰하는 인물이었기에 나조차 이 소녀가 어디서 뭘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판타지 같은 세상에서 삼국지 연의 제갈량의 모습이 더해지니 행보 하나하나가 엄청 신비로워.
어렸을 때부터 이래야 나중 가서 동남풍도 부르고 석병팔진도 만들고 그러는 건가.
제갈량은 내 앞에 멀뚱히 서 있는 착융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인 따위가 어찌 한나라의 대장군 앞에서도 꼿꼿이 서 있는 거죠?”
“그게 무슨 소리….”
빠악─!
“커헉!”
와, 저건 좀 아프겠다.
제갈량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착융을 끌고 나온 병사는 오금을 엄청 세게 걷어찼다.
오금을 걷어차인 착융은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었고, 곧이어 나를 굴욕스럽게 올려다보는 모습이 되었다.
이를 본 제갈량이 백우선으로 입가를 가리면서 중얼거렸다.
“으음…. 나쁘지 않지만 뭔가 부족합니다.”
“저 여자는 또 뭔…!”
착융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제갈량은 병사에게 이어서 말했다.
“조금 더 좋은 자세가 있을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예. 제게 맡겨주십시오.”
척하면 척이라는 듯 착융의 오금을 걷어찬 병사가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땅에 내려찍었다.
“끄아악!”
온갖 고문으로 힘이 전부 빠진 착융은 병사의 손길에 저항하지 못하고 머리를 찍으며 비명을 질렀다.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허리를 숙이니 마치 절을 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가 됐네.
…저거 이마에서 피 흐르는데 괜찮은 거 맞지?
제갈량은 자리에서 벌레처럼 움찔거리는 착융의 모습을 보고 만족스럽게 말했다.
“네. 좋아요. 당신은 그런 모습이 어울린답니다.”
“으극…. 끅….”
자존심을 박살 내도 아주 제대로 박살 내는구만.
이미 챙길 자존심이 남아있을까 의문이 들긴 하는데….
제갈량은 근처에 있던 사마의에게 말을 걸었다.
“한낱 죄수가 주군을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니, 당신도 아직 멀었군요.”
“…뭐래.”
보랏빛 부채를 든 사마의가 제갈량의 도발에 팔짱을 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당신이 안 나섰어도 제가 알아서 할 계획이었거든요? 어디 껴야 하는 지는 구분하시죠?”
“그렇다면 조금만 더 빨리 움직이지 그러셨습니까.”
어째 서로 한마디를 지려 하지 않네.
“저, 저기….”
“응?”
내가 그 살벌한 말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무렵 방통이 내게 다가왔다.
“제, 제가 따로 착융을 따르던 도적들에게서 정보를 캐냈는데요….”
“그래?”
언제 그런 일을 다 했대.
보니까 사마의는 착융만 집중적으로 조진 것 같았고, 제갈량은 조금 전 설명했다시피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방통은 내게 죽간을 내밀면서 말했다.
“여, 여기 모든 도적들의 증언을 정리했으니 착융이 하는 자백과 대조해보시면 될 거예요….”
“이야. 고맙다.”
이러면 내가 할 일이 줄어들지.
난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내 앞에 있는 꼬꼬마 책사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에헤헤….”
그때 한 가지 의문이 든 나는 방통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이런 증언은 어떻게 얻은 거야?”
“…….”
“도적들이 순순히 입을 열던가?”
내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에 방통은 슬쩍 내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그,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
나는 제 거대한 모자를 푹 눌러쓰면서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방통을 바라보았다.
…방통, 거짓말을 굉장히 티 나게 하는구나.
난 조금 전 감옥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던 걸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꼬꼬마 책사도 엄청나게 소심해 보이는데 의외로 할 짓은 전부 다 한단 말이지.
남만 정벌 때도 올돌골을 따르던 병사를 엄청나게 태워죽이지 않았는가.
하여튼 잘한 건 잘한 거였으니 난 방통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고생했다. 나중에 서적이나 한 권 사줄게.”
“저, 정말요?! 감사합니닸?!!”
혀 깨물었네.
나는 이 덤벙대는 소녀가 누군가에게서 정보를 얻어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