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34)
EP.434 강동 호족(3)
내 예상대로 조조가 내게 찾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장군! 지금 성문 바깥에서 표기장군이 찾아왔다는 소식입니다!”
“그래?”
마치 내가 편지를 쓸 걸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 단 며칠 만에 찾아온 모습.
나는 그를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근데 왜 도시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고 대기하는 거지? 다른 특이사항이라도 있나?”
“예!”
내 물음을 들은 전령이 힘차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현재 표기장군의 곁에서 대장군과 만남을 청하는 인물이 있다고 합니다!”
“흐음….”
난 잠깐 상황을 곰곰이 판단했다.
이 어수선한 시기에 조조 곁에서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이라….
대충 누군지 예상이 가는데.
나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분을 알 수 없는 건 아닐 테고, 그렇다면 양주자사 유요인가?”
“예!”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눈앞에 놓인 서류를 정리하고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가서 공손히 모셔오도록.”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나는 전령이 재빠르게 모습을 감추는 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유요.
유요라….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유요도 분명 북방과 다른 강동의 기후를 버티지 못하고 병을 앓다 사망한 인물일 텐데.
그것 말고 다른 특이한 점은 딱 하나다.
바로 그 태사자를 휘하로 둔 군주라는 것.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멋있어 보이는 이름을 지닌 그 장수 덕분에 유요는 삼국지 게임에서 의외로 강하다.
엄백호나 왕랑 같은 세력과 비교하면 천사지.
문제는 조만간 손책이 눈에 불을 켜고 쳐들어온단 거지만.
하지만 게임에서의 플레이어와 다르게 본래 역사의 유요는 태사자를 그리 중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태사자는 다른 사람한테 인물평을 듣지 못한 인물이었거든.
혼자서 황건적의 포위를 뚫은 것 덕분에 아예 무명소졸은 아니었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명사들의 친목 네트워크가 윙윙 돌아가야 한자리를 얻을 수 있는 시대 아닌가?
그런 시대에서 인맥 하나 없던 태사자는 다른 호화로운 배경을 갖춘 인재들에게 밀려 유요에게 중용 받지 못했다.
아니, 호화로운 배경까지 갈 필요도 없지.
태사자는 그저 늙은 부모를 모시고 살았을 뿐인 효자였으니까.
그냥 어디 이름 좀 있는 호족의 핏줄만 돼도 태사자보단 명성이 높았을 거다.
뭐…. 그렇던 태사자도 자신과 일대일로 치고받은 손책에게 등용되면서 드디어 중용 받기 시작했다.
늘 손책 곁에서 종군하며 강동을 평정하는 데 힘을 보태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지.
문제는 이 인물도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거지만.
태사자도 아마 마흔 근처에서 죽었을걸.
이런 걸 볼 때마다 오나라 요절 징크스가 심각하긴 해.
뛰어나다 싶은 인재 대부분이 50살을 못 넘긴다니까?
아마 한나라가 수백 년 동안 강동 지역을 제대로 평정하지 못한 데엔 이런 요소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다른 곳 신경 쓰는 것만 해도 벅차 죽겠는데 무슨 재주로 사람이 픽픽 죽어나가는 강동까지 평정하겠느냔 뜻이지.
즉 강동을 완전히 한나라 영토로 만들기 위해선 단순히 뛰어나기만 한 인재여서는 안 됐다.
강동의 기후에 적응하고 바이러스 항체까지 완벽히 다운로드 받은 오나라 전용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지금 그런 인재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세력이 내게 찾아왔다.
나는 멀뚱멀뚱 날 바라보고 있는 두 소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서여, 여포. 따라와.”
“…예.”
“알았어.”
이제 말로만 듣던 양주자사의 얼굴을 직접 보러 가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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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읽어본 독자에게 오의 사성이란 말을 들어봤느냐 물어보면 몇몇 이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또 몇몇 이는 그게 뭐냐는 듯 궁금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오의 사성이 뭐냐 물으면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오(吳)의 사성(四星).
그러니까 양주 오군(吳郡) 오현(吳縣) 지역에 머무르는 이름 높은 네 개의 호족 가문이란 뜻이지.
그래서 그 오의 사성에 속하는 호족 가문이 무엇이냐.
바로 장(張), 주(朱), 육(陸), 고(顧) 네 성씨의 집안이다.
후대에는 이 네 가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던데 그 내용이 뭐였더라?
대충 어디 집안은 학문에 강하고 또 어디 집안은 무예에 강하다는 그런 식의 평가였을 텐데….
아마 콧대 높은 중앙 귀족은 시골 촌놈들이 서로 띄워 주기 바쁘다며 단순히 비웃기만 하겠지.
근데 나는 저 네 가문에서 어떤 인물들이 나오는지 대강 알고 있었기에 얕볼 수 없었다.
…애초에 출신지로 사람을 차별하는 게 옳은 일이 아니지만 말이야.
이건 참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주제라니까.
하여튼 삼국지를 열심히 읽어봤다면 저 네 가문 중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성씨가 하나 있을 것이다.
그래.
바로 육(陸)씨.
말해 뭣하겠는가.
저 가문에서 나온 책사가 바로 그 유명한 육손(陸遜)이었다.
오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오던 유비를 이릉에서 뜨겁게 맞이해준 그 육손 맞다.
아마 촉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또 고구마를 먹을걸.
“…….”
근데 그 육씨 가문은 지금 강동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옛날에 황명을 보내서 중앙으로 빼돌렸거든.
그 뭐냐.
이젠 언급하기도 지치는 동탁이 옛날에 장안 일대를 깡그리 불태우지 않았는가.
나는 잿더미만 남은 장안을 수복하는 과정 중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방 호족들을 초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육씨 가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단순히 제갈씨 가문만 보고 이런 짓을 벌인 게 아니란 것.
비록 오의 사성이다 뭐다 하지만 사례주에 머무르는 호족에 비하면 끗발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
한나라의 수도가 있는 사례주는 정말 이름 높은 양반들만 떡하니 엉덩이를 깔고 앉을 수 있거든.
그렇기에 육씨 가문은 장안으로 와서 수복 작업을 도와달라는 폐하의 제안에 거의 날아오다시피 달려왔다.
지방 귀족에서 중앙 귀족으로 올라설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으니까.
…물론 그 폐하의 제안 뒤에 내 입김이 들어갔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장안에 정착한 육씨 가문은 지금 장안 일대에서 복구 작업에 힘쓰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내가 언급한 육손은 삼국지 후반에 등장하는 인물이라 나이가 어려도 너무 어려.
따로 찾아보니까 제갈량보다도 2살 더 어리더라고.
그러면 지금은 13살이네.
우리 세력이 현재 엄청나게 절박한 상황도 아니었으니, 육손은 멀리서 잠자코 지켜보며 성인식을 치를 때까지 기다릴 계획이었다.
‘…저기요. 혹시 어린아이 좋아하세요?’
‘응? 귀여우니까 당연히 좋아하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휴우, 됐어요.’
내가 멀리서 육손을 지켜본다는 걸 눈치챈 사마의가 이상한 질문을 던졌지만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는 말썽도 자주 부리고 떼도 많이 쓰며 꿀밤도 자주 마려운 심연의 생물이지만 그 심연의 생물이 성장해서 된 것이 우리니까.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원래 다 커가면서 배우는 법이다.
‘이런 걸 보면 어린아이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도 대충 이해가 가네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만 좀 엿들어요!’
자기가 다 들리게 말해놓고선.
하여튼 사마의도 어쩔 수 없는 꼬꼬마였다.
“아, 여기 있었구나.”
“…응?”
내가 이제 막 손님맞이 준비를 시작했을 무렵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익숙한 인물이 등장했다.
엉덩이 부근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
누가 봐도 눈에 확 띄는 은색 눈동자.
냉정하고 이지적인 외모를 지녔지만 누구보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자주 짓는 여인이 내게 사뿐사뿐 걸어왔다.
“후후. 내가 이 얼굴을 1년가량 보지 않고 버틴 적이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군.”
“…조조?”
또 무슨 닭살 돋는 소리를 하는 거지.
지금 네 뒤쪽에 있는 남자가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는 건 알고 있냐.
잠시 속으로 딴지를 걸던 나는 조조가 원래 이런 인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조조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랬지.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면서 내게 자석처럼 들러붙던 과거를 떠올리면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그때 내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던 조조가 말했다.
“뭐 하고 있나?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를 꼭 껴안아주지 않고.”
그렇게 따지면 나도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온 건데.
물론 이리 대답하면 조조는 자신이 껴안아주길 바란 거냐면서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겠지.
잠깐 고민하던 나는 조조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중에 해주지. 지금은 보는 눈이 있지 않나.”
“부끄러움 타기는.”
내 대답을 들은 조조가 픽 웃으면서 팔을 내렸다.
“물론 그대의 그런 귀여운 면모도 좋다 생각한다.”
“…….”
콩깍지가 지워지질 않네.
적어도 부부 관계가 소원해질 일은 없겠구만.
나는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남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혹스러운 경험을 안겨줘서 미안하군. 그대가 유요인가?”
“…그렇습니다. 대장군.”
양주자사 유요는 내 부름에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하는 행동을 보면 유표처럼 나와 척질 생각은 없나 보네.
당연히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