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38)
EP.438 랑(郞)(1)
모든 방침을 결정한 나는 시간 끌 필요 없이 곧장 움직였다.
유요를 제외한 강동 호족들과도 한 번씩 만남을 가지고, 휘하 장수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도적과 산월족 잔당을 처리하는 임무를 맡겼다.
…근데 사실 토벌이라 할 것도 없었다.
“으헉! 항복! 항복하겠소! 목숨만 살려주시오!”
산 깊숙한 곳에 있는 본거지가 발각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항복했기 때문이지.
흔히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이미 자기 동료가 우리와 맞서다 어찌 됐는지 전부 알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에이, 이번에도 안 싸우네.”
“후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싸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제일 먼저 튀어 나갔던 여포와 그녀를 보좌하기 위해 출진했던 장료는 각자 다른 감상평을 내뱉었다.
본래 역사의 손권은 강동에 머무르는 반란 세력을 처리하고 항복한 사람들을 강동 개발에 투입했다던가.
안 그래도 부족한 게 인구였으니 나는 그 정책을 본받아 항복한 인원들을 전부 노동 작업에 투입했다.
물론 피도 눈물도 없는 노예 상인이 됐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죄수인 포로들을 죄의 경중에 따라 노역으로 써먹을 뿐이다.
지금까지 내게 항복하지 않고 산속에 숨어서 버티는 놈들은 백이면 백 무언가 찔리는 게 있다는 소리니까.
때를 기다리며 호시탐탐 내 뒤통수를 후려칠 준비만 하던 산월족도 있었고, 문제를 하도 일으켜서 진작 추살령(追殺令)이 떨어진 범죄자 무리도 있었다.
법대로 하자면 신병을 확보한 즉시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게 원칙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나.
새로운 노예는 언제든 환영한다는 방침에 따라 죄수들은 너무나도 즐거운 노역 라이프를 시작하게 된 거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잖아. 안 그래?
우리가 죄수들을 관리할 행정 역량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들을 얼씨구나 하며 공짜 노동력으로 써먹었다.
본래 역사의 손권이 어째서 그렇게 노예 확보에 열을 올렸는지 알 것 같긴 해.
노예들을 관리할 역량만 있다면 강동 개발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
이쯤 되면 지금 노예를 관리하는 인물이 누구일지 궁금할 수 있다.
평소에는 군사 업무를 책임지며 지금은 감옥에서 착융을 고문하고 있을 사마의?
아니면 내가 강동을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전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주던 제갈량?
둘 다 아니었다.
나로서도 정말 의외의 인물이 노예 감독을 맡았지.
방통 사원(龐統 士元).
커다란 모자를 쓰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는 소심한 꼬꼬마 책사가 지금도 강동 전역에서 들어오는 노예를 감독하고 있었다.
처음에 이것과 관련된 제안을 들었을 때 얼마나 얼떨떨했던지.
‘…정말 괜찮겠나?’
‘네.’
내 질문을 받은 사마의는 무엇을 떠올렸는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더라고요.’
‘…….’
다른 사람에게 빈말 따윈 하지 않고 묵직하게 팩트만 꽂는 사마의가 그렇게 말했으니 나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방통에게 노예 관리를 맡겼다.
노예들은 감옥에서 무서운 짓을 일삼던 사마의가 자기를 관리할까 두려움에 떨었으나, 세상 소심해 보이는 방통이 노예 감독을 맡았다 하니 그녀를 만만히 보면서 제 마음대로 하려는 낌새를 보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때를 기다리다가 문제가 생기면 개입할 생각이었지.
사마의가 방통을 추천한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꼬꼬마 군사께서는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모습을 보였다.
‘이, 이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명령을 거역하신다면 어쩔 수 없어요…!’
‘으아악!!’
‘저도 여러분도 서로 피곤해진다고요…!’
‘그, 그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주제에 할 짓은 전부 다 하고 있더라고.
더욱 놀라운 점은 방통이 감정을 연기하고 있다는 게 아니란 것이다.
정말 무섭지만, 그래도 일이라면서 피를 보던 모습.
방통은 비록 겁이 많지만 뒤에서 벌벌 떨기만 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겁은 많지만 겁쟁이가 아니라니.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한 모습 아닌가.
보통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노예들은 방통의 모순적인 행동을 확인하곤 겁을 한껏 먹은 채 설설 기기 시작했다.
…만약 삼국지 연의처럼 역사가 흘러갔다면 방통이 적벽대전에서 조조한테 어떻게 연환계를 성공시켰을지 알 것 같았다.
저렇게 소심하고 사소한 것에도 벌벌 떠는 인물이 사실은 자기를 엿먹이기 위해 계책을 짜냈다고?
나라도 믿기 힘들겠네.
‘어, 어떤가요? 저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
나는 필사적으로 자기 어필을 하는 방통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힘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라. 책임자를 바꿔줄 테니.’
‘네…!’
방통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내 행동이 좋다는 듯 헤헤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도시와 도시 사이의 길을 확보한 다음에는 노동력을 확보하고, 백성들을 대량으로 이주시키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기를 며칠.
“아…. 귀찮아.”
나는 갑자기 격렬하게 일을 하기 싫어졌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오늘 나는 휴식이 필요하단 뜻이지.”
“…….”
근처에서 죽간을 살펴보던 사마의는 내 뻔뻔한 말에 침묵을 지켰다.
지금 눈빛이 상당히 매섭구만.
눈에서 레이저라도 쏠 기세야.
하지만 이에 굴복할 내가 아니다.
내가 그래도 이 세력 주인인데 쉬고 싶을 땐 쉬어야지!
나는 일만 하다가 죽고 싶지 않아!
평소였다면 사마의의 눈빛을 슬그머니 피했을 나는 꼬꼬마 책사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이렇게 보여도 내가 눈싸움에서 진 적이 없지.
“…으읏.”
그런 내 예상이 맞다는 듯 한동안 내 눈빛을 마주한 사마의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런 사마의를 바라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며칠 동안 열심히 일했잖아. 오늘은 쉬어도 되지?”
“아, 진짜….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면 어쩌자는….”
무어라 중얼거리던 사마의는 짐짓 토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마음대로 하세요. 오늘은 어디서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을게요.”
아싸.
사마의가 내게 늘 툴툴거리긴 해도 부탁하는 건 다 들어준다니까?
아주 착해.
나는 새침데기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사마의를 바라보다가 씩 웃어 보였다.
“그러면 난 쉬러 가본다. 너희도 오늘은 쉬든가 해.”
“네. 알겠으니까 빨리 가세요.”
사마의는 이제 귀찮다는 표정을 짓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흐음…. 오늘은 마음 놓고 낮잠이나 자야겠네요….”
역시 자기 관리에 철저한 인물답게 쉴 수 있는 때를 놓치지 않는구나.
제갈량이 다른 건 몰라도 사마의의 저런 면모만큼은 본받아야 할 텐데 말이야.
나는 고개를 돌려 근처에 있는 부관을 불렀다.
“손권.”
“네! 부르셨습니까!”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모든 인물에게 알리도록.”
“맡겨주세요!!”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던 손권은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느낌표가 더욱 붙는 것 같은 느낌으로 대답했다.
“이 손중모!! 해가 하늘 한가운데 뜨기 전에 주군의 명령을 완수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어마어마한 기세로 달려나가며 흙먼지를 이리저리 휘날리는 손권의 모습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엄청난 기합은 도대체 언제 빠지는 거지.
손권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은 확실히 아버지인 손견이나 언니인 손책을 닮긴 했다.
──────────
고생했다는 의미로 모든 무장에게 깜짝 휴일을 내린 나는 방에서 멍하니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휴식을 취한다는 게 별건가.
직장인은 일을 안 하고 있을 땐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즐거운 생물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조금 슬픈 기분이 들긴 하네.
근데 어쩌겠는가. 이게 사실이거늘.
“…….”
나는 정말 오래간만에 서여를 품 안에 안고 볼따구를 마음 가는 대로 만지작거렸다.
요근래 이럴 수 있는 기회가 잘 없긴 했지.
내가 낙양에 있을 때는 아기가 당연하다는 듯이 내 품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니, 정말 당연한 게 맞구나.
아무래도 육아 활동이 있으니까 부부끼리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지.
사람은 성장하면서 갓난아기 때의 기억을 잃어버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뭐냐.
기분이란 게 있잖아. 기분이.
조금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싶으면 부모를 지그시 바라보는 아기의 눈길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기를 혼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한 일 아닌가.
아기는 부모가 한눈을 팔고 있으면 참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승을 뜨려고 하거든.
갑자기 자기 혼자 몸을 뒤집더니 다시 이를 되돌리지 못하고 끙끙거리면서 숨을 못 쉰다던가, 어떤 물건이 신기하다면서 아부부 거리다 그걸 꿀꺽 삼키려 든다던가….
내가 그래도 온갖 전장을 진전하면서 담력이 커졌다고 자부하는데, 아기의 돌발 행동은 그런 내 담력조차 팍 쪼그라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뭐, 지금은 낙양에 있을 초선이 열심히 일해주고 있을 테니 걱정을 덜어도….
쾅─!
“주군 계십니까!”
“…응?”
서여의 볼따구로 장난치던 나는 묘하게 들뜬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쉬신다고 하시기에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술병을 손에 든 채로 환하게 웃는 손책.
“주, 주군. 염치 불고하고 실례하겠습니다.”
부끄러운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며 소심하게 모습을 드러낸 주유.
“…아. 그렇군.”
상황을 파악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린 다음 입을 열었다.
“그래. 약속을 한 이상 지켜야겠지. 상을 가져올 테니 기다리도록.”
“예!”
“…네.”
내 말을 들은 손책과 주유는 각자의 성격이 극명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단 술은 많이 마시지 않게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