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40)
EP.440 랑(郞)(3)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휘청거리던 주유는 다시 뒤로 물러나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죽, 죽어버릴…. 으에에엑….”
“…어휴.”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으면서도 의식을 용케 붙잡고 있는 주유의 모습.
그를 바라보던 나는 당연히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절박하기는 절박한 모양이네.
그렇다면 나는 이에 어찌 대응해야 할까.
사실 내가 머리를 굴려봤을 때 단 하나의 결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먼저 덮치거나, 아니면 덮쳐지거나.
아마도 둘 중 하나겠지.
내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흐으응….”
지금 저쪽에서 얼굴을 붉힌 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암호랑이가 있지 않나.
만약 내가 주유의 간청을 무시한다면 ‘이럴 수가! 주군께서도 용기가 필요했습니까!’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나한테 확 달려들 것이다.
그 다음에 일어날 상황은 뭐….
대충 예상이 간다.
주유에게 그랬던 것처럼 술을 강제로 먹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으로 나를 자극하려 들 것이다.
여성이 남성을 성적으로 자극하는 방법이야 수없이 많지.
또 남성이란 성별은 종족 번식에 충실한지라 그런 자극에 너무나도 약한 슬픈 생물이었다.
상식적으로 제 친구의 사랑을 위해 3P까지 불사하는 여인이 있겠냐 싶겠다만, 오래전부터 손책을 지켜봤던 나는 저 여인이 정말 저지르고도 남을 위인이란 걸 깨달았다.
애초에 손책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심상치 않았단 말이야.
겉으로 보이는 태도와 말투는 정중한데, 가끔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이를 바라보는 눈빛을 내비칠 때면 나도 모르게 등골이 싸늘해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손책이 그런 눈빛을 보였더라?
‘그대에게 수춘을 맡기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을 지켜내겠습니다.’
그래.
언젠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손책에게 관직을 내렸던 그때부터 그런 행동을 보였을 것이다.
제 부끄러운 과거를 허물로 삼지 않고 든든하게 뒷배가 되어주며 자신을 믿어주는 이성이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때만 노리던 맹수에게 호시탐탐 노리던 사냥감을 낚아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
봐라.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매력적으로 웃어 보이는 손책의 모습을 보고 어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겠는가.
겉모습만 보면 술에 취해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취객이었지만, 나는 저게 손책이 연기한 모습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잠시 고민을 이어나가던 나는 결국 주유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잡아먹을 거냐. 아니면 잡혀먹힐 거냐.
이런 선택지가 떨어지면 나는 잡아먹는 쪽을 선택해서 말이야.
조금 저속한 표현이긴 하지만, 자신보다 뛰어난 여성을 이불 위에서 깔아뭉개는 기분은 꽤 자극적인 것이었다.
나는 필사적인 의지로 정신을 붙잡고 있는 주유 근처에 쭈그려 앉았다.
“주유, 내 말 들리나?”
“으우우…. 네…. 들립니다….”
이야. 술에 상당히 취한 상태인데도 대화가 통하네.
역시 미주랑은 미주랑이란 건가?
상태가 이렇다면 술에서 깬 이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기억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나도 딱히 거리낄 건 없지.
나는 주유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다시 한번 물어보겠다. 신중하게 대답하도록.”
“…….”
“그대는 정말, 지금 이 자리에서 나와 맺어지고 싶은가?”
내 질문을 받은 주유는 잠깐 침묵한 다음 또렷하게 대답했다.
“…예. 부탁드립니다.”
조금 전까지 술에 취한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차분한 모습.
“그런가.”
나는 주유의 대답을 듣고 담담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대답까지 들었는데 물러날 수는 없겠지.”
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던 주유의 허리춤에 팔을 감쌌다.
옷 위로 대충 살펴봤을 때도 느껴졌지만 정말 날씬한 몸매다.
이런 몸으로 산월족들을 베어 넘기고 손책을 백 수플렉스로 내다 꽂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지경.
“아….”
나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주유에게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다만, 그대가 조금 전 손책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를 땅바닥에 내다 꽂지 않을 거라 믿는다.”
아마 주유는 힘보다 기교로 밀어붙이는 스타일 아닐까.
진짜 무서울 정도로 잡기 기술에 능숙하더라.
그 정도 실력이라면 지금 자신의 허리를 붙잡은 허약한 남성쯤이야 땅에 가볍게 꽂아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 허약한 남성은 단번에 두개골이 깨지겠지.
애초에 그런 공격을 맞고도 멀쩡하게 일어난 손책이 이상한 거야.
“제, 제가 어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내 장난스러운 말을 들은 주유가 안 그래도 새빨간 얼굴을 더욱 붉히면서 대답했다.
난 주유의 반응에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네, 네….”
내 미소를 본 주유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얘도 설마 나한테 콩깍지 꼈나?
만약 그렇다면 조금 당혹스러운데.
“흐흥.”
근처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손책은 마치 때가 됐다는 듯 의미 모를 콧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
달이 저물고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새벽.
“…핫!”
아직 사람들이 기지개를 피며 일어나기 이른 시각에 한 여인이 눈을 번쩍 떴다.
“으윽…. 머, 머리가….”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킨 여인은 머리를 울리는 고통에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인의 외모가 퇴색되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마주치면 백이면 백 모두가 고개를 돌릴 아름다운 외모.
제 뒷머리를 목덜미 부근에서 잘라내고 한쪽 옆머리를 땋아내린 단정한 머리 모양.
그 미색으로 하여금 미주랑(美周郞)이라 불리는 여인이 얼굴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어제 도대체 무슨 일이…?!”
그리 말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여인은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숨을 삼켰다.
“으으으….”
그나마 겉옷은 걸치고 있었지만 사실상 알몸과 다를 바 없는 행색으로 의식을 잃은 손책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
“그, 그만…. 그만해….”
또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쓰러져있는 대장군의 호위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잠꼬대를 하는 천하무쌍 여포까지.
이 상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주변에 마치 시체처럼 널려있는 여인들을 확인한 주유는 제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그리고 천하에서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인물이라 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영특한 여인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주구운─! 저를 안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부끄러운 짓을 한 자신의 과거를 말이다.
“아, 아아….”
여인은 제 과거를 떠올리고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여인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알겠습니까?! 저, 저 진짜로 맨땅에 머리 박고 죽을 거예요──!!’
“그만….”
‘으끄윽…. 진짜…. 죽을….’
“그만하라고…!”
주인의 간절한 중얼거림에도 뛰어난 두뇌는 차라리 잊고 싶은 과거를 계속해서 기억해냈다.
‘…아픈가?’
‘흐, 흣…. 저, 저는 괜찮으니 부디 원하시는 대로옷…?!’
그리고 너무나도 부끄러운 기억 속에서 자신이 꼴사납게 자지러지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여인은 결국 참지 못했다.
“으그극…!”
이미 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실하게 알았다.
아마도 자신이 바라고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 터.
이는 아직도 후들거리는 자신의 다리와 허벅지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무언가만 고려해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이어지기를 원한 건 아니다!
자신이 원한 건 조금 더 애틋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었는데!
제 고백을 거절하면 죽어버릴 거라는 둥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어지간히 괴롭혔는지 금방이라도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여인은 전장에서 적들을 격살하던 뛰어난 의지로 이를 악문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손책에게 가까이 다가간 여인은 서늘한 눈초리로 그녀를 훑어봤다.
그리고 여인은 알 수 있었다.
“감히 부끄러운 역할을 나한테 다 떠넘기고, 본인은 원하는 것만 쟁취하셨다…?”
현재 손책의 상태를 확인했을 때 어제 자신과 똑같은 일을 당했으리란 건 확실한 상황.
자신이 그런 여인들 중에서 가장 먼저 깨어난 것은, 적어도 잠자리에서 가장 강하다는 뜻일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제 이빨을 까드득 간 주유가 손책의 다리를 붙잡으며 외쳤다.
“이 원수 같은 년아──!!”
“으, 으응…?”
“죽어──!!”
콰앙─!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손책은 제 친우를 이용해 먹은 대가로 벽에 내다 꽂혔다.
“이게 무슨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재빠르게 방안을 확인한 대장군은 눈앞에서 일어난 레슬링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