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44)
EP.444 도인(4)
우길과 헤어진 이후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곁에 붙어 다니던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난 한 차례 주변을 둘러본 다음 서여에게 물었다.
“서여.”
“네.”
“여포 어디 갔어?”
“…….”
내 질문을 받은 서여는 나와 똑같이 주변을 이리저리 확인한 다음 고개를 갸웃거렸다.
“……?”
“…….”
자기도 모른다는 표정이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감각을 지닌 서여가 다른 사람을 놓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싶지만, 애초에 서여는 그 뛰어난 감각을 전부 나를 관찰하는 데 쓰고 있었다.
즉 다른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관심 없다는 뜻이지.
…진짜 기계도 아니고 제 임무에만 충실하구나.
상황을 파악한 나는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여포가 말도 없이 사라질 애가 아닌데….”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설마 나를 따라오다가 길을 잃은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애도 낳은 엄마가 그런 어린아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지?
그래.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속으로 여포를 필사적으로 변호할 무렵, 그런 나를 지켜보던 장각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여(呂)장군은 잠시 해야 할 일이 생겼다면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해야 할 일?”
“예.”
내가 되묻자 장각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돌아올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더군요.”
“으음…. 그렇다면 상관없지만.”
아마 내 호위대가 근처에 있으니 여포도 마음을 놓고 자리를 비운 것일 터.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일로 혼자 움직인 걸까?
나는 풀리지 않은 의문을 품은 채 자리에서 여포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도시 외곽.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조금만 더 걸어나가면 울창한 숲이 반겨주는 외딴곳에서 한 소녀가 제 무기에 묻은 피를 대충 털어냈다.
여포 봉선.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홀로 대적할 수 없다는 압도적인 무의 소유자.
그 소녀는 자리에 쭈그려 앉은 채 눈앞에서 피를 토해내던 신원 불명의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는 질리지도 않냐? 대체 어디서 튀어 나오는 거야?”
“끄르르륵…!”
“아 참, 내가 가슴을 찔렀구나.”
원래는 적당히 후려쳐서 꼼짝도 못하게 할 계획이었는데….
자신이 눈앞의 남성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깨달은 여포가 난감하단 표정을 지었다.
힘 조절 하나 못하고 끙끙거리던 어린 시절은 진작 지나갔지만, 정릉과 관련된 일에선 자신도 모르게 손속이 거칠어진다는 건 여전했다.
하지만 여포로서도 이 문제점만큼은 도저히 고쳐지질 않았다.
안 그래도 충동적인 성격을 열심히 억누르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그런 자신의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겠다 설치는 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거나 다름없었다.
“휴우…. 이걸 또 어떻게 설명한담.”
“…!”
그리 말한 여포가 머리를 긁적이며 한눈을 판 사이 가슴을 찔린 남성은 재빠르게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남성이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부적.
사용 용도를 알 수 없는 부적을 꺼내 든 남성은 곧장 다른 행동을 이어서 하려 했으나….
콰직─!
“끄흡─?!”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이를 눈치채고 있던 여포가 방천화극으로 남성의 손을 꿰뚫는 게 빨랐다.
여포는 자신이 손과 함께 꿰뚫은 부적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왜, 또 이상한 요술이라도 부리게?”
“…….”
“하여튼 너희도 웃겨.”
걸핏하면 하늘의 뜻이라느니 순리라느니 지껄이는 주제에 정작 자기들도 현실을 비틀어놓는 이상한 요술을 사용한다.
뭐, 한때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했던 인물이 말하기를 요술도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고 하지만 말이야.
여포는 서서히 숨이 멎어가는 남성을 바라보다가 툭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놈들은 어디서 이렇게 나타나는 거지.”
짧으면 몇 달에 한 번, 길면 몇 년에 한 번씩 등장하는 신원 미상의 인물.
만날 때마다 복장도 다르고 싸움 방식도 다른 걸 보니 이들이 어떠한 세력이라기보단 개인이 독단적으로 벌이는 일이란 게 타당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극단적인 사상을 지닌 문제아가 한 명씩 있는 법이랍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자기가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알고 대장군을 노릴 사람이 계속 나타날 거란 이야기죠.
일이 없을 때면 하루 종일 하늘만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던 갈색 머리의 군사는 그렇게 말했다.
───후우…. 땅이 넓고 사람도 많으니 처리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한때 대현량사라 불렸던 인물이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피곤해 보였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여포는 자신이 몸 쓰는 직업이란 걸 참 다행으로 생각했다.
“야. 죽었냐?”
“…….”
“흐음….”
푹!
남성이 정말 죽었는지 방천화극으로 몸을 꿰뚫어 본 여포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에는 별일 없네.”
지금까지 처리했던 몇몇 놈은 목숨을 잃는 것과 동시에 웬 해괴한 요술을 부려대며 자신을 해하려 했다.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사람 한 명이 자신을 바쳐서 여포를 해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진작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겠지.
───으음…. 등 뒤에 이상한 것을 달고 오셨네요?
───어, 뭐야. 너도 보여?
애초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세력 내부에 존재했고 말이다.
대현량사 장각은 여포 근처에서 그녀를 조용히 노려보는 혼령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어렵지 않게 지울 수 있겠군요.
───…지운다고?
여포는 장각에게 물었다.
───그 뭐냐, 이것들 영혼 같은 거 아니야? 지우면 어떻게 되는데?
───저도 저 요술을 써본 적이 없어서 모른답니다.
여포의 질문을 들은 장각이 웃는 표정 그대로 대답했다.
───그래도 하늘이 어련히 데려가지 않겠어요?
───…….
산뜻한 얼굴로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뱉는 장각의 모습에 여포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본 장각이 유쾌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후후, 사실 지운다는 건 농담이고 혼령을 이승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는 쐐기를 제거하는 것뿐이랍니다.
───…그래?
───네. 아마도.
거기선 확신을 해야 하지 않냐.
여포는 살짝 신경 쓰였지만 장각이 의식을 치러주면 이상한 것이 사라지는 건 확실해서 대충 넘어갔다.
───그어어…!
───무슨 짐승 새끼 울음소리가 나네.
애초에 하늘의 이치라면서 정릉을 해하려던 놈들이 어떻게 되든 자기 알 바가 아니었으니까.
“야. 이거 불태우고 남은 건 대충 숲에다 버려.”
“알겠습니다!”
자신을 따라온 병사들에게 뒤처리를 맡긴 여포는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겼다.
서여 그 여자는 정릉을 지킨답시고 근처에서 떨어지질 않으니까.
“에휴.”
뭐 어쩌겠나.
지금도 도전하는 족족 겨우 버티는 게 고작인데.
같이 호위하는 것까지는 담담히 넘어가더라도 자신을 밀어내려는 낌새가 보이면 눈빛이 확 달라지는 모습은 여전히 적응되질 않았다.
“약한 게 죄지.”
여포는 한숨을 푹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어이를 상실할 말이었지만 어쩌겠는가.
강함이란 건 늘 상대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던 여포가 어깨에 걸치던 방천화극을 땅으로 늘어트리며 말했다.
“이제 쥐새끼처럼 숨어서 지켜보는 건 그만하고 나와.”
“오호. 알고 있었나?”
여포가 그리 말하는 것과 동시에 허공에서 소녀 한 명이 튀어나왔다.
푸른색 눈동자를 지닌 소녀는 여포의 핏빛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물었다.
“분명 보이지 않았을 텐데 어찌 눈치챈 것이지?”
“그렇게 대놓고 바라보는데 내가 모르겠냐.”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 여포가 방천화극을 소녀에게 겨눴다.
“너도 시대의 흐름 어쩌고 하는 정신 나간 년이면 빨리 덤벼. 나 시간 없으니까.”
“푸흐흐. 역천자만 아니었다면 이리저리 방황하다 외롭게 죽어나갔을 년이 말버릇하고는.”
“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소녀의 모습에 여포가 얼굴을 찌푸렸지만, 소녀는 그런 여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제 할 말을 이어나갔다.
“됐다. 내가 처리하려던 놈을 가로챈 년이 누군지 궁금했을 뿐이니.”
“…….”
“너는 그저 네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면 된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어느샌가 바람으로 변한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모습을 감췄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목도한 여포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저런 이상한 새끼들은 어떻게 죽여야 하지?”
자리에서 재빠르게 이동한다거나 헛것을 보게 하는 놈들은 많이 봤는데 아예 자연 현상으로 변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
지금까지 봤던 이상한 연놈들 중에서도 몇 발자국 더 나아간 인물이라 해야 할까.
“으음…. 어떻게든 되겠지.”
다른 평범한 백성처럼 신선 나으리를 봤다고 벌벌 떨기에는 여포가 겪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