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45)
EP.445 교주(1)
내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 지 몇 분.
여포는 장각이 언급했던 대로 내게 금방 돌아왔다.
나는 무언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포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 뭐 하다가 왔어?”
“응? 아…. 별거 아니야.”
여포는 별거 아니라 대답하면서도 정확히 무얼 하고 왔는지 설명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여포의 바람과 달리 나는 그녀가 대충 무엇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
“왜, 왜 그래?”
그도 그럴 것이 여포가 든 방천화극에서 미처 닦아내지 못한 핏물이 보였으니까 말이다.
내 눈길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눈치챈 여포가 화들짝 놀라면서 어버버거리기 시작했다.
“어…. 어?! 이게 도대체 뭐지?!”
“…….”
“…사실 무기 색깔이 조금 심심해 보여서 칠을 조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으부부부──!”
나는 이상한 거짓말을 하는 여포의 볼따구를 마구 집어 당겼다.
“솔직하게 말해. 뭐 하고 왔어?”
“마, 망 모태─!(말 못해─!)”
평소 웬만하면 내게 굽혀주던 여포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내 추궁에도 계속 입을 다물었다.
여포가 이러는 경우는 딱 하나지.
자기 기준에서 내게 해가 될 것 같다고 판단한 행동은 멀리 달아나서라도 도저히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천하무쌍이 내게서 등을 돌리고 도망친다니….
이걸 자랑스러워 해야 하나?
“정말 말 안 할 거야?”
“즐대으 앙애!(절대로 안 해!)”
하여튼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이곳에서는 말할 수 없단 여포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기에 난 찹쌀떡처럼 늘어나던 볼따구를 툭 놓았다.
그래. 여포가 지금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다닐 인물은 아니니까.
이건 내가 싫어하는 짓을 여포가 할 리 없다는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여포는 내가 자신을 고의적으로 무시한다는 게 느껴져도 막 엄청나게 난리를 피우진 않을 거다.
단지 서여가 그랬던 것처럼 우뚝 멈춰선 다음 고장 난 수도꼭지마냥 눈물을 팡팡 흘려대겠지.
…솔직히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릿하게 저리는 광경이었던지라 실천에 옮긴 적은 없었다.
아무리 몰래카메라식 장난이라도 정도를 넘으면 좀 곤란하지 않겠나.
여포의 말랑말랑한 볼따구를 놓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알겠어. 그래도 나중엔 꼭 말해주는 거다?”
“으, 응….”
내가 자상한 어투로 타이르자 여포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를 따르는 인원들이 나 몰래 어떠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보라색 머리카락을 지닌 꼬꼬마 군사만 하더라도 옛날에 첩자들을 잡아서 인체의 신비전을 찍었다고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근데 사마의, 어디서 고문이라도 한 적 있어? 왜 이렇게 능숙해?’
그리 멀지 않은 과거.
나는 감옥에서 착융 일당을 너무나 능숙하게 고문하는 사마의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응? 제가 보고를 안 했나요?’
사마의는 내 질문을 받고 나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지.
‘지금도 낙양에 갇혀있을 첩자 대부분이 제 얼굴을 알고 있을걸요.’
‘…….’
‘제가 직접 움직이면서 첩자들을 잡아넣고 정보를 끄집어냈는데 익숙하지 않은 게 이상한 거죠.’
어째 첩자들이 감옥에 잡혀들어갔다 하면 정보를 술술 불더라니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때 조금 꼬꼬마 군사의 심연을 본 것 같았다.
물론 독자적으로 움직이다가 대형사고를 치지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었으나 나는 내 휘하 인재들의 능력과 인품을 믿었다.
모든 것을 내 통제 아래 두는 건 너무 빅 브라더 같아서 내게 안 맞기도 하고, 애초에 그럴 능력 자체가 안 된다.
휘하 인재들의 뛰어난 능력을 내 능력으로 착각하면 안 되지.
지도자가 나랏일에 열정적인 건 좋다.
근데 그 지도자가 너무 무능해서 손대는 족족 모든 걸 말아먹는다면?
그런 상황이면 뭐….
너는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란 말이 나오겠지.
그래도 한때는 평범한 군인이었던 과거가 있어서 삽질이나 진지 보수 같은 건 충분히 거들어 줄 수 있는데….
‘…주인님.’
서여가 내 손을 꼭 붙잡은 채 놓아주질 않았고,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여포는 아예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기세로 외쳤다.
…아니 뭐, 잡일이란 게 원래 그렇지만 가끔 실수해서 엎어지거나 다칠 순 있지.
나도 그런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주인님. 다칩니다.’
‘누가 도와달라 말하기라도 했어?! 그딴 눈치 없는 새끼는 내가…!’
하지만 근처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과해.
나는 삽을 보고 옛날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손에 한 번 쥐었을 뿐이라고.
‘아이고, 알았으니까 진정해.’
그때 병사들을 노려보는 여포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던지라 난 여포를 밀면서 자릴 벗어날 수밖에 없었지.
난 이처럼 세력의 방침만 정해주고 가만히 서 있어야 제 역할을 수행하는 토템 비스름한 무언가였다.
으음…. 토템이 아니라 애착 인형이라 부르는 게 맞나?
가끔 나한테 이유 없이 달라붙고 흐물흐물해지는 걸 떠올리면 이게 맞는 것 같네.
“여포도 왔으니 이제 움직이자.”
“예.”
“알겠습니다.”
내가 휴식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자 관우와 손책은 다시 소규모 호위병들을 지휘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팔이 의사도 거의 다 잡아넣은 것 같으니 이제 남은 건 남쪽에서 올라올 누군가를 맞이하는 것뿐인가.
“…….”
나를 따르던 장각은 서서히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상태였다.
…왠지 살짝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조만간 큰일이라도 일어날 징조를 느낀 걸까?
하지만 현재 우리 세력에게 큰일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과연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
그 이후 시끌벅적한 강동의 일상을 며칠이나 즐겼을까.
“야! 한 번만 붙자니까!”
“히야아악! 호랑이가 죄 없는 고양이를 물어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활발한 모습을 보이는 두 명에게 내가 고개를 주억거릴 무렵 유비가 찾아와 보고를 올렸다.
“대장군. 남쪽에서 사절들이 선물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남쪽에서?”
나는 남쪽에 누가 있는지를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교주(交州)…. 아니 교지(交阯) 방향에서 올라온 사절인가?”
지역 이름 참 헷갈리네.
다른 곳은 다 주(州)인데 자기 혼자 지(阯)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유비는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받아주었다.
“예. 본인을 사흠(士廞)이라 칭하더군요.”
“사흠(士廞)?”
사흠…. 사흠이라….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근처에 있던 제갈량이 작은 목소리로 슬그머니 전달했다.
“교지자사 사섭의 혈육이옵니다.”
“아, 그랬지.”
제갈량의 설명을 들은 나는 머리 위에 있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아마 사섭의 장남이었을 터.
으음…. 그렇다면 내게 고개를 숙이기 위해 찾아왔으려나?
본래 역사의 사섭이 손권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떠올리던 나는 유비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이 왔군. 잘 맞이해주도록.”
“명에 따르겠습니다.”
내 명령을 받은 유비는 공손하게 인사를 올린 다음 모습을 감췄다.
기다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신(臣) 사흠! 한나라의 국서이자 대장군이신 명예로운 분께 문안 인사 올리옵니다!”
“어…. 그래.”
생각보다 훨씬 바짝 엎드리네.
이런 유교를 중시하는 국가에서 인사 예절은 아침 인사, 점심 인사, 저녁 인사가 따로 나누어져 있을 정도로 매우 복잡한 편인데, 사흠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자세로 내게 인사를 올렸다.
“…흐흠.”
평소 나에 대한 예절만큼은 늘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갈량이 백우선으로 입가를 가린 채 만족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제갈량의 저런 모습만 봐도 사흠이 평소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걸핏하면 황궁에 드나드는 나도 저리 완벽하게는 못 지키는데 말이야.
사흠의 태도를 본 나는 사섭이 어떤 의도로 내게 자신의 맏아들을 보냈는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 사흠이라면 교지자사의 말을 전달하러 왔겠지. 내용이 뭔가?”
“예! 저희는 예나 지금이나 한나라의 신하이며, 폐하를 위해 이 한몸 아끼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사/섭으로 만들지 말아 달라는 뜻이네.
아니지. 목을 자르면 ㅅ/ㅏ섭인가?
나라에 반기를 든 역적은 사지가 찢기는 경우도 흔했으니 ㅅ/ㅏ/ㅅ/ㅓ/ㅂ이 될 수도 있었다.
뭐, 사섭으로선 내게 엎드리는 것 말고 별다른 방도가 없긴 했다.
익주, 형주, 양주.
교주와 이어지는 세 지역을 내가 싹 다 점령해버렸으니 바로 코앞까지 죽음이 다가온 기분일 터.
한 곳을 막는 것만 해도 벅찬데 세 곳에서 군대가 동시에 몰려온다면 사섭은 그대로 덩치 차이에 짓눌려 납작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내게 항복한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사섭 같은 경우는 못 봤다.
익주목 유탄이랑 양주자사 유요는 각각 남만과 산월에게 두들겨 맞다가 내 뒤에 숨기 위해 항복한 경우고, 예주자사 공주처럼 내가 굳이 찾아가서 무력시위를 해야 항복한 경우도 많았다.
즉 이렇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와 항복한 적은 처음이란 이야기지.
비슷한 세력을 뽑으라면 기껏해야 조조가 있는데 이건 좀 특수한 경우인지라….
“…흠.”
“무, 무언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사섭이란 인물의 정치력에 감탄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 수고를 덜어줬으니 조금은 편의를 봐줘도 될 터.
“먼길을 왔을 테니 오늘은 편히 쉬도록.”
나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사흠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나누도록 하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교주까지 먹었으면 슬슬 교역 루트를 생각해봐야 하나.
…지금은 교주가 아니라 교지였지.
조만간 폐하께 간언을 올려 이름을 바꿔버리든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