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47)
EP.447 교주(3)
백마지맹을 어기고 왕이 될 것이냐는 물음.
그런 내용이 적힌 서신을 받은 사섭은 내게 정말 의외의 대처를 보였다.
훗날 자신의 뒤를 이을 수 있는 혈육들을 내게 전부 볼모로 보낸 것.
즉,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교주에서 사씨 왕조를 건설할 일은 없을 것이란 걸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이것도 통이 크다면 크다고 해야겠군.”
사신 일행에 사섭의 차남인 사지(士祗), 셋째 아들인 사휘(士徽)와 형제인 사일(士壹) 등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는 걸 파악한 내가 툭 중얼거렸다.
사섭 이 양반,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능력 하난 끝내준다.
자신을 공격하는 것보다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걸 잘 표현해낸다고 해야 할까.
어째서 땅 욕심 하난 끝내주던 본래 역사의 손권이 사섭에게 손을 못 대고 침만 뚝뚝 흘리며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는지 알겠다.
아마도 사섭은 자신이 죽은 다음의 미래를 예상한 것이 분명할 터.
열심히 관계 개선을 시도한다면 적어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걸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세상을 뜬 이후에는?
자신이 죽고 그 후계로 제 가문의 일원이 교주를 다스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나라 조정에서는 정식적으로 인정받지 않은 인물이 땅을 차지한 격이라 당연히 이를 토벌하려 들 것이고, 죄목은 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역모죄다.
그리고 역모를 일으킨 가문은 기본이 삼족 몰살이지.
자신의 형제와 자녀는 물론 다른 사(士)씨 가문 구성원까지 이승에서 퇴출당할걸.
사섭 입장에서는 한나라 군대를 무찌르고 독립 국가를 세울 자신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완전히 숙이는 것 외엔 별다른 방도가 없긴 했다.
애초에 행동하는 걸 봤을 때 한 국가의 왕이 아니라 한 주(州)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거에 만족하는 인물 같기도 하고….
문제는 사섭이 보낸 사씨 일가들을 어떻게 처우하느냐인데, 적당한 관직 하나 쥐여주고 뿔뿔이 흩어지게 하면 되겠지.
사섭이 보낸 볼모라고 해서 정말 아무런 일도 안 할 줄 알았냐?
어림도 없지.
지금 나도 못하는 불로소득을 누리려는 건 내 배가 아파서라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
나는 내 앞에서 절을 올리며 눈치를 살피는 사씨 일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것이 그대들의 뜻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질문을 하기 무섭게 사섭의 친동생인 사일(士壹)은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제 자녀들을 대신해서 자신의 동생을 대표로 선정한 모양.
“한나라에 대한 저희의 충성심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입니다.”
사일은 사섭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내 앞에서 긴장해 덜덜 떠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사일 이 양반도 내가 좀 찾아보니까 한때 정권을 잡았던 동탁에게 대놓고 대들었다는 기록이 있더라.
이에 화가 난 동탁이 사일을 잡아 죽이려 하니까 고향으로 아주 잽싸게 달아났다는 내용은 상당히 감명 깊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온화하고 차분하나 필요하다 싶을 땐 고민 없이 움직이는 인물이겠지.
“음….”
나는 사일의 대답을 듣고 잠깐 침묵을 지켰다.
“…….”
그렇게 사씨 일가 처지에서 식은땀이 흐를 법한 묘한 분위기가 얼마나 흘렀을까.
고의로 침묵을 지켰던 나는 다른 인물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휘(士徽)라고 했나.”
“…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지?”
난 상당히 젊어 보이는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사휘(士徽).
본래 역사에서 사섭의 뒤를 이어 교주의 지도자로 올라선 인물이자, 제 권리를 빼앗아 가던 손권에게 반란을 일으킨 군주.
실제로 교주에 있던 사씨 일가는 사휘의 행동에 찬동하여 대규모로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목숨만큼은 살려준다는 거짓말에 홀라당 넘어가 얌전히 항복한다는 게 우습지만 말이야.
기세를 타서 반란을 일으킨 건 좋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길 수가 없다고 판단한 걸까.
아예 처음부터 분노 조절을 조금만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손권이 사섭에게 받아먹은 것이 워낙 많다 보니 교주를 꿀꺽 삼키더라도 사씨 일가는 어디 한적한 곳에 내버려뒀을 가능성이 컸다.
손권에게 볼모로 보내졌던 첫째 아들 사흠은 사씨 일가가 목이 날아가는 사이 평민으로 강등되는 선에서 끝났다고 하니.
하여튼, 난 본래 역사를 어렴풋이 기억했기에 사휘를 딱 집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사씨 일가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은 사휘밖에 없었으니까.
“…….”
내가 자신을 딱 집어 질문을 던지자 사휘는 잠깐 침묵을 지켰다.
중무장을 걸쳤음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자리에 우뚝 서서 정면을 응시하는 호위병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사씨 일가를 바라보는 서여와 평소처럼 지루한 기색으로 이 상황이 언제 끝나나 기다리는 여포까지.
누가 봐도 사씨 일가에게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였지만 어쩌겠어.
쓸데없이 얕보여 불필요한 사건을 만드는 것보단 살짝 겁을 주는 게 훨씬 낫다.
사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눈치 없는 인물이 아니었다.
“…제 숙부가 언급한 것처럼, 한나라를 향한 저희의 충심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가.”
훗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지금은 서열 정리가 확실하게 된 것 같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미래 계획을 고민했다.
──────────
‘…내 속마음을 전부 꿰뚫어 보았단 말인가.’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양주로 향한 사휘는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지금 천하에서 가장 권위가 드높은 인물을 고르라면 대부분이 누굴 고를까?
누군가는 낙양에 있을 황제를 지목하겠지만, 조금 머리가 돌아간다 싶은 인원은 전부 알고 있었다.
대장군(大將軍).
병주라는 변방에서 태어났으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 큰 권력을 손에 쥔 인물.
만약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황제를 폐위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판단됐다.
대장군을 잠깐이나마 직접 지켜봤던 사휘는 알 수 있었다.
대장군이 한(漢)이라는 나라에서 등을 돌리더라도 기꺼이 그를 따를 인재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그가 직접 지휘한 전투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던가.’
이는 본인의 능력일까.
아니면 목숨을 바쳐 그를 따르는 휘하 장수들의 능력일까.
그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전투에서 대장군의 패배라 부를 만한 전적이 없었던 건 사실이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지?
대장군이 사휘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던졌던 질문.
누가 보면 단순히 질문만 던진 게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사휘는 그가 어떠한 의도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눈치챘다.
───아버지! 저희를 정녕 사지로 보내시려는 것입니까!
───…….
제 혈육을 대장군에게 보낸다는 사섭의 결정에 누구보다 반발했던 인물이 바로 사휘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대장군의 경고가 있었다 하나, 아버지의 식솔을 전부 볼모로 보내신다니요?
사섭의 장남과 차남이 아버지를 닮아 온화한 성격을 지녔을 때, 어찌 된 일인지 홀로 난폭하고 급진적인 성격을 지닌 셋째 아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명령을 철회해주십시오!
───…아들아.
그런 아들의 외침에 침묵을 지키던 사섭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정말 왕이라도 된 것 같더냐.
전대 교지자사였던 주부(朱符)가 본래 역사보다 일찍 사망하고, 그 뒤를 이은 사섭이 땅을 다스리기를 몇 년.
이 지역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사섭은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래 봤자 교지라는 지역에 한정될 뿐이었다.
이미 대장군은 주(州) 하나를 차지했다고 해서 대적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란 걸 증명해주는 사례가 있지 않나.
───한때 강하팔준이라 불렸던 유경승(劉景升, 유표의 성과 자)이 어떻게 되었는지 잊었나?
───…….
───이것이 너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기주와 더불어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형주.
그 형주를 차지하고 오만함에 빠져 황제처럼 행동했던 유표가 어찌 됐는가.
본인은 광증에 빠져 죄 없는 사람들을 베어 넘기다 휘하 장수에게 목숨을 잃었고, 그의 식솔들은 연좌제로 끌려나가 죄다 목이 잘리거나 노비가 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자신의 가문에 찾아오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나?
사섭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믿음이 안 간다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아라.
자신의 설득에도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셋째 아들의 눈초리에 사섭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째서 이러한 선택을 내렸는지 너도 알게 될 것이다.
사휘는 사섭의 조언에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작 아버지께서도 대장군을 직접 보신 적이 없지 않습니까?
───하하.
사섭은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이 늙은 아비가 다른 건 몰라도 삶의 경험은 많이 쌓아서 말이다.
───…….
───너는 숙부와 형제를 따라서 이 한나라가 어떠한지 직접 살펴보고 오거라.
그리고 지금, 제 아버지가 어째서 그러한 선택을 내렸는지 사휘는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