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48)
EP.448 교주(4)
“대장군, 저들은 어찌 대우하시겠습니까?”
“아. 저들 말인가.”
사섭이 보낸 사씨 일가와의 만남이 끝난 후 근처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유비가 내게 물었다.
이제 내가 대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저들이 무슨 일을 겪을까 결정되겠지.
내 주변엔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으니 내가 언급한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컸다.
여러 불이익을 받으면서 음습하게 괴롭힘당하는 사씨 일가라….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병사를 붙여 사씨 일가를 감시하되 평범하게 대우해주도록.”
“명에 따르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유비가 몸을 낮추면서 공손하게 대답했다.
사씨 일가가 내게 불만 가득한 눈초리를 보내면서 여러 의미로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면 나도 그에 걸맞은 태도를 보였겠지.
하지만 저들은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아주 잘 파악하고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사실상 내게 항복한 인물들이나 다름없는데 너무 박하게 대우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 아니겠나.
“저기…. 정릉?”
“응?”
내가 사씨 일가와 관련해서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시야 바깥의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뭐, 나를 정릉이라 부르는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지만 말이야.
내가 고개를 돌리자 여포는 살짝 꼼지락거리면서 우물쭈물하는 태도로 말했다.
“그…. 물어볼 게 있는데.”
“말해봐.”
내 재촉 아닌 재촉에 여포가 곧장 말을 이었다.
“서, 설마 저기 아래 교주까지 직접 내려갈 계획이야?”
“……?”
그 질문을 들은 나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닌데, 무슨 의도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 거지?
근데 여포도 교주와 교지를 헷갈리는구나.
솔직히 그럴 만하긴 해.
내가 여포의 실수에 수긍하면서도 다른 쪽으론 의아한 기색을 드러내자 여포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려댔다.
“그…. 우리가 낙양에서 벗어난 지 너무 오래됐다고 해야 하나…?”
“…….”
“몇 달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슬슬 돌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구나.”
계속 우물쭈물하면서도 말을 잇는 여포의 모습에 난 모든 속마음을 파악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여화 얼굴 보고 싶다고?”
“…응.”
지금도 낙양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제 쪼꼬미를 보고 싶단 여포의 말에 난 피식 웃어 보였다.
하긴 우리 딸들 얼굴을 못 본 지도 오래됐지.
‘아부아!’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방긋방긋 웃으면서 날 환영하던 아이들.
아직 옹알이조차 제대로 못하는 그 모습은 부모의 입가를 느슨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난 고개를 돌려 근처에 있던 또 다른 인물에게 물었다.
“서여는 어때. 우리 서희 보고 싶어?”
“저는….”
내 질문을 받은 서여는 무어라 대답하려다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설마 부끄러움 타는 건가.
이런 건 보통 애정 표현이 드문 무뚝뚝한 아버지가 보일 모습 아니니?
“…….”
과거 서희가 내게 보이던 모습을 잠깐 떠올린 나는 뭔가 역할이 뒤바뀌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기 자식에게 애정을 대놓고 표출하는 아버지와 이상할 정도로 무뚝뚝한 어머니라….
…그런 가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뭐.
조금 전 유비와 함께 모습을 감춘 관우도 겉으로 티만 안 낼 뿐이지 속으로는 분명 끙끙 앓고 있을 터.
그리고 내 예상대로라면 복숭아 자매의 막내도 내 아이를 낳았을 테지.
지금 별동대를 이끌고 있는 조조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보고를 받아보니까 강동을 쭉 순회하면서 도적과 산월족을 마주치는 족족 개박살 내고 있다던데.
아마 지금 조조는 적벽대전 때의 즐겜 상태가 아니라 관도대전 때의 빡겜 상태가 아닐까.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더욱더 큰 저력을 발휘하는 조씨 가문의 특징.
그 특징이 제 자식을 보기 위한 모성애로도 나타난다는 게 참 의외였다.
상황 판단을 끝마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확실히 시간이 오래 지나긴 했네.”
“그렇다면…?”
“그래.”
난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은 여포에게 대답했다.
“돌아가자. 교지는 나중에 기회가 됐을 때 찾아가지 뭐.”
“진짜지?! 무르기 없기다!”
내가 그리 대답하기 무섭게 안절부절못하던 여포는 눈을 반짝였다.
너무 흥분하는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막상 낙양에 있을 딸들을 떠올리면 그리 이상한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교지로 향해 이 지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번 살펴보고, 말로만 듣던 해상 교역로를 쭉 점검해보며 로마와 비단 거래가 가능할까 고심해볼 계획이었지만….
뭐, 척 봐도 단기간에 끝날 계획은 아니지 않나.
아무리 배를 타며 움직인다고 한들 저기 지구 반대편에 있을 유럽과 교역을 한다는 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왕복 한 번 하는데 족히 몇 달은 걸릴걸?
중간중간 우리 교역품도 끝내준다며 보고 가라는 천축국(天竺國, 인도)과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중개 무역으로 이득을 챙기려는 안식국(安息國, 파르티아)을 생각하면 더 오래 걸려도 이상할 건 없지.
또 귀상국(貴霜國, 쿠샨 왕조)이라는 나라도 있는데 걔네는 조금 전 언급한 두 나라 사이에 끼어 있어서 보기가 좀 힘들었다.
위쪽 초원 지대는 흉노족이 코 파면서 오늘도 약탈할 거 없나 기다리는 상황이었으니, 귀상국 사람들은 중국과 교역을 하기 위해선 결국 빌어먹을 산맥을 엄청나게 타야 했다.
그 빌어먹을 산맥이란 게 뭔지 감이 안 온다고?
히말라야 산맥이라고 하면 감이 오나?
그래.
그 에베레스트가 있는 산맥 말이야.
인간 병기가 넘쳐나는 몽골 제국조차 이 더럽고 빌어먹을 산맥을 넘지 못해서 인도는 내버려두고 다른 놈들만 쥐어팼다.
몽골이 인도에게 아예 싸움을 안 걸은 건 아닌데, 공격 루트가 워낙 제한되다 보니 여러 번 패배만 하고 끝났던 걸로 기억하거든.
이 시기 인도를 공격하려면 육로로는 답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예시지.
정말 인도를 점령하고 싶다면 남쪽으로 배를 타고 넘어가서 상륙전을 벌이는 게 그나마 가능성 있을걸.
…지금 가진 땅도 주체하지 못하고 행정 공백이 생기는 한나라가 그럴 이유는 없겠지만 말이야.
그냥 이유 없이 인도가 싫은 게 아니라면 교역만 하면서 이득을 챙기는 것이 서로에게 좋았다.
자, 그러면 이제 남은 건 사섭을 감시하는 인원으로 누굴 파견하느냐겠지.
본래 역사의 사섭은 현대 기준으로도 무척 긴 수명을 살다 간 인물이다.
사섭이 정확히 몇 살에 세상을 떴는지는 기억이 안 나.
그저 90세 근처라는 것만 기억나는데….
교지군은 기후 자체가 달라서 한나라 사람에게 쥐약인 풍토병이 많이 돌 텐데 말이야.
그런 곳에서 90세 언저리까지 산 걸 보면 사섭이 건강 관리를 무척 철저하게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세계의 사섭은 60대 초반이었으니 적어도 30년은 버티리라 보는 게 타당할 터.
그러면 그 기간 동안 사섭 곁에서 그를 감시하고 겸사겸사 교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할만한 인물이 누가 있을까?
…그냥 여러 번 바꿔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30년이 누구 개집 이름도 아니고, 10년이면 바뀐다는 강산이 3번이나 변할 시간이다.
평범한 한나라 사람은 그 전에 병이 걸려 골골대다 죽어버릴걸.
낯선 기후에서도 잘 적응하여 90살까지 산 사섭이 특이한 거지.
으음…. 거리가 멀어서 중앙의 권력이 잘 닿지 않는 게 이래서 피곤하단 거구나.
한 주(州)를 잘 다스리며 권력에 취하지 않고 별다른 사고를 일으키지 않을 만한 인물이 흔했으면 한나라가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겠지.
지금은 시기적절하게 사섭이란 인물이 앉아있다곤 하나, 사섭도 평생 살 수 있는 불사신은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무릎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잠시 고민하던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어째서 가후에게 과거 제도를 맡기며 새로운 인재들을 뽑으려 했겠는가.
이게 다 이런 때를 위해서였다.
지금은 제도를 정비하느라 정신이 없다지만 늦어도 몇 년 뒤에는 첫 번째 시험이 열릴 터.
사섭의 수명은 아직 넉넉하게 남았으니 시간이 흐른다면 결국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였다.
고개를 돌려 바깥 날씨를 확인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벌써 가을인가?’
내가 강동을 점령하기 위해 낙양에서 출진하고 몇 달이나 지났을까.
어떻게 보면 오래 걸렸다 말할 수 있겠지만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했을 때 이게 오히려 무척 빨리 해결한 것이다.
본래 역사의 오나라가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해결했던 강동의 문제점을 1년도 되지 않아 바로잡은 거니까.
물론 강동 지방을 완전히 안정시키고 개발하기 위해선 더욱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겉으로 드러난 커다란 문제는 전부 해결했다 볼 수 있었다.
“결정했으면 빨리 돌아가자! 나 기다리기 싫어!”
“알았어.”
여포의 재촉을 받은 나는 낙양에 있을 수많은 사람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