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49)
EP.449 복귀(1)
나는 강동을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잊어버린 건 없는지 점검했다.
“어디 보자….”
유요를 구심점으로 뭉친 강동 호족들에게 앞으로 처신 잘하라며 경고도 줬고, 제 우두머리인 엄백호를 따라서 내게 항복한 산월족들은 다른 한나라 백성들과 똑같이 강동 개발 작업에 투입했다.
강동은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있는 다른 지역과 다르게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단 말이지.
일단 강동 지방에 드넓게 펼쳐진 울창한 숲들을 베어버리고 그 자리에 터전을 마련하는 게 첫 번째 목표.
자연을 개척하고 터전을 마련했으면 도시와 도시 사이를 편히 왕복할 수 있게 도로를 만들고, 훗날 수확할 농작물을 북방으로 수월하게 운반하기 위해 대운하 건설까지 해야 한다.
말 그대로 나라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개발 사업이라 볼 수 있을 터.
지금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충분한 시간을 들이고 천천히 작업하는 것이다.
물론 자금과 인력도 중요하겠지.
두 가지 중 어느 것이라도 부족하면 개발에 큰 차질을 겪을 수밖에 없으니까.
근데 우리 세력은 지금 그 두 가지 요소가 차고 넘치는 상황이라서 말이야.
여기서 개발을 더욱 빨리하겠답시고 괜한 욕심을 부리는 순간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죽어나갈 거다.
튼튼하고 정교한 기계도 무리하게 가동하면 결국 고장 나는 법인데 그보다 훨씬 연약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실제로 진시황의 폭정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대규모 토목 사업으로 백성들을 엄청나게 갈아 넣은 일이다.
북방 이민족들을 막겠답시고 만리장성을 무리하게 축조하다 죽어나간 백성들을 구덩이에 대충 던져넣었다던가, 지금 자신이 거주하는 궁궐로는 부족하다면서 더욱 크고 화려한 건축물을 지으려 했다던가….
지도자가 백성을 백성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짐승 비슷한 무언가로 바라보았으니 진나라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업적이 무색하게 3대도 가지 못하고 멸망했다.
그때 진나라가 재산이 부족해서, 또 인재가 없어서 멸망한 게 아니란 것.
그냥 사람을 무작정 몰아붙이며 가혹하게 대우하니까 폭삭 주저앉은 거지.
나라고 해서 이런 일을 겪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 강동 개발은 내가 노인이 되고 나서야 끝이 날걸.
이 세계가 괴력난신이 실존하는 세상이라곤 하나 허공에서 완성된 건물이 뿅 튀어나온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하긴, 그런 능력이 있을 정도의 세계라면 여포는 어느 무쌍 게임마냥 무기 끝에서 에네르기파를 날렸을 터.
아니 진짜로.
필살기를 쓰면 방천화극 끝에서 에네르기파가 나갔다니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아무튼 괜히 조급하게 움직여봤자 좋은 일 하나 없단 뜻이었다.
강동과 교주의 문제를 전부 해결했으니 이제 정말 까먹은 일은 없을 터.
“아, 여기 계셨네요.”
“응?”
그리 생각한 내가 고개를 주억거릴 무렵 저 멀리서 익숙한 외모의 꼬꼬마 군사가 등장했다.
고개를 돌린 나는 사마의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냥 왠지 모를 느낌이 들었거든요.”
본래 역사에서도 눈치가 뛰어나던 꼬꼬마 군사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제가 특별 관리하고 있는 죄수가 누군지 기억나세요?”
“특별 관리라니?”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마의가 직접 내게 찾아와 이름이 기억나느냐고 언급할 정도의 죄수라….
“…아하.”
혹시 착융 말하는 걸까?
솔직하게 말해서 잊고 있었다.
여러 가지 큰 개발 계획을 앞두고 도적 한 명까지 일일이 기억하기엔 내 머리가 똑똑하지 않아서 말이야.
내 반응을 본 사마의는 난감하다는 기색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제가 그럴 줄 알았죠. 꼭 걱정하는 사람만 손해를 본다니까요?”
걱정…. 걱정이라.
사마의의 혼잣말을 들은 나는 그 걱정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간파하고 픽 웃어 보였다.
“나 걱정해준 거야?”
“…….”
내가 장난스럽게 묻자 사마의는 잠깐 버퍼링이라도 걸린 듯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난 그냥 쿡 찔러본 건데 제대로 반응하네.
사마의는 얼굴을 토마토처럼 붉힌 채 대답했다.
“아, 아닌데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목소리를 덜덜 떨면서 말하면 설득력 없단다.
내가 이래서 괴롭히는 걸 멈출 수 없다니까.
나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여튼 솔직하지 못하네.”
“아니라니까요?!”
그래. 네 말이 맞단다.
내 훈훈한 눈빛에 몸을 부들부들 떨던 사마의는 급히 주변 병사들에게 외쳤다.
“으그극…! 뭐 해요! 빨리 끌고 오세요!”
“예, 옙!”
사마의가 외치자 그녀를 따르던 부관은 재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꼬꼬마 군사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화풀이하면 못 써.”
“이게 누구 때문인데요!”
그야 내가 장난칠 때마다 톡톡 튀는 반응을 보여주는 꼬꼬마 군사 때문이지.
물론 이렇게 말하는 순간 사마의가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째려볼 테니 난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사마의를 따르던 부관이 모습을 감추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덜컹─!
미리 준비라도 해뒀는지 감옥 쪽에서 마차 한 대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척 봐도 죄수가 갇힐 법한 마차를 확인한 나는 의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건 뭐야?”
“뭐긴요.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죠.”
설마 착융을 말하는 걸까.
창살 안쪽을 바라본 나는 이제 인간 취급조차 못 받는 도적 한 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르렁….”
마차 안에 대자로 뻗은 채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는 착융의 모습.
얼씨구.
조만간 자기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잠들어있네.
이놈도 신경줄이 참 굵다?
내가 착융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감탄할 무렵 근처에 있는 꼬꼬마 군사가 말했다.
“대충 일이 돌아가는 걸 보니 조만간 강동을 떠나겠다 싶어서 며칠 동안 안 재웠어요.”
“…?”
우리가 곧 강동을 떠난다는 것과 잠을 안 재우는 고문이 무슨 상관일까.
내 의문을 눈치챈 사마의는 살짝 냉소적으로 웃어 보였다.
“저희가 도시를 떠날 때 꽥꽥 울어대면 시끄럽잖아요?”
“…….”
“솔직히 더 괴롭히면 이놈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적당히 다른 고문으로 타협했어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사람을 고문하길래 정신이 이상해진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쓰는 거냐.
착융이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것에 한눈팔려 미처 눈치채지 못했으나, 지금 자세히 보니 착융 몸 곳곳에 새로운 흉터가 생긴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기존에 있던 흉터와 감옥에서 생긴 새로운 흉터를 구별할 수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야 흉터 곳곳에 피딱지가 내려앉아 있는 걸 보고도 모르는 게 이상한 거지.
착융의 온몸은 말 그대로 상처투성이였는데, 그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보기만 해도 내 몸이 절로 아릿해졌다.
이놈도 몸이 참 튼튼하네.
나였다면 이 흉터가 절반 정도 새겨지기도 전에 개복치처럼 돌연사하지 않았을까.
…보통 게임에서는 대장군이라 하면 최종 보스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말이야.
포스는 위풍당당한데 사실 한 대만 맞아도 죽는 연약한 보스라니 꽤 웃기네.
서여와 여포가 평소에 날 열심히 감싸고 도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살짝 육체적 노동을 할라치면 말 그대로 바람처럼 날아와 날 붙들던 여인들.
‘그냥 걷는 모습부터가 상당히 불안한데 무슨 몸 쓰는 활동을 해?’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가 안 가?’
여포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내 모습에 담담히 설명했다.
‘혼자 비틀거리면서 걷다가 갑자기 넘어질 것 같단 말이야.’
‘…….’
내가 걷다가 자기 혼자 자빠질 것 같다는 여포의 대답은 내 호위 무장들이 날 쿠크다스 근처쯤의 연약한 무언가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걱정이 조금 과한 것 같기도 하고.
그때 사마의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저기요?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그냥 쓸데없는 생각.”
“흥, 그러면 평소와 똑같네요.”
…아무래도 내가 자신을 놀린 것 때문에 단단히 삐진 모양.
사마의의 마음을 알 수 없었던 과거라면 고평릉 1스택이 쌓였다며 두려워했겠지만 지금 나는 이 상황을 어찌 타개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난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사마의를 부드럽게 안아 올렸다.
“내가 미안하다. 조만간 맛있는 거라도 같이 먹으러 갈까?”
“…….”
내 말을 들은 사마의는 얼굴을 붉힌 상태로 고개를 새침하게 돌리면서 대답했다.
“그러니까 어린애 취급은 그만두시라고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다만.
너 벌써 기분 좋아진 거 다 안다.
“그래. 알고 있어.”
“…모르시는 것 같은데.”
세상 까칠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화가 너무나 손쉽게 풀어지는 꼬꼬마 군사의 모습에 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