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60)
EP.460 격변(4)
모든 준비를 끝마친 나는 서둘러 황궁으로 향한 다음 폐하께 표문을 올렸다.
───북방에 커다란 우환거리가 등장했으니, 제가 서둘러서 이를 해결하겠습니다.
단 한 줄로 간단하게 적힌 표문의 내용.
예절이 엄청나게 깐깐한 한나라에서 표문을 이리 올리는 것은 충분히 지탄받을 행동이었지만, 폐하께서는 그런 걸로 사람을 꾸짖을 분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나에 한정해서 말이야.
아마 다른 평범한 사람이 이런 짓을 한다면 너와 내가 친구냐면서 제대로 조져버리겠지.
“…우환거리라.”
내 표문을 받고 이를 읽어내린 폐하께서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입을 여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출진해야 하는 것이냐?”
“예.”
“그대의 아이를 낳은 어머니로서 부탁해도?”
“…….”
그래.
지금 폐하께서는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초보 엄마다.
원래대로라면 하루가 멀다 하고 폐하께 찾아가 사랑을 재확인하고 육아를 돕는 게 아버지의 도리겠지.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출진해야만 합니다.”
폐하의 질문을 받은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가정을 외세로부터 지키는 건 제 역할 아니겠습니까?”
“…프훗.”
황제는 내 대답을 듣곤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대는 그런 인물이었지.”
“…….”
“알았다. 대장군은 북쪽으로 출진하여 이 나라와 가정의 안녕을 지켜주도록.”
“명에 따르겠습니다.”
내가 그리 대답하며 고개를 숙여 보이자 황제는 뒤늦게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북쪽 이민족에게서 사신이 찾아왔더구나.”
“…그렇습니까?”
“그렇다. 짐에게 전쟁과 복속 둘 중 하나를 고르라더군.”
이것도 몽골답다면 참 몽골답구만.
몽골 제국은 본래 역사에서도 결코 기습 전쟁을 걸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되면 온갖 수단을 전부 동원하는 놈들이지만 선전포고 자체는 의외로 꼬박꼬박 하더라고.
…이걸 신사적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네.
뭐, 말도 없이 먼저 때렸다가 역으로 처맞고 비겁하다 울부짖는 놈보단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하여튼 몽골 제국은 전쟁에 앞서 지금처럼 사신을 보내 도발이나 다름없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이 제안을 받은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거절하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지.
그런 다음에는 자세히 말할 필요가 있나?
몽골 제국이 모든 걸 와장창 박살 내며 황제나 술탄조차 도망치기 바쁜 지옥도가 열리는 거다.
황제 폐하께서는 제 품에 있는 아이를 소중하게 보듬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며칠 안에 대답하겠다 하고 그를 돌려보냈으니, 이에 대한 결정은 대장군 그대가 북쪽으로 올라가서 내리거라.”
“…예.”
그를 들은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만약 황제가 거절의 뜻을 내비치며 몽골 사신을 돌려보냈다면 내가 하북에 도달하기도 전 몽골 군대가 움직였을 거다.
일평생을 말 위에서 살아오며 유일한 약점인 조직력조차 해결된 대규모 기병 군대.
우리도 기병이 없는 건 아닌데,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모든 병사가 기병인 유목 국가에 비하면 아무래도 숫자가 부족하지?
규모가 작은 전장이라면 기병만 이끌면서 재빠르게 올라가도 상관없겠지만, 문제는 저 위에 머무르는 이민족의 숫자가 십만을 넘어간다는 거다.
수천 명끼리 뒤얽히는 건 고작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끼리 맞붙을 텐데 그 정도 전장에서 정주민 국가가 이기려면 필연적으로 보병이 있어야 한단 뜻이지.
그리고 내가 보병을 이끌고 어기적어기적 올라가는 동안 유주와 기주는 초토화 당할 터.
본래 역사에서 몽골 제국의 침입을 받았던 수많은 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이 짓밟힌 채 폐허와 잿더미만 남을 거다.
몽골 제국의 행군 속도는 말 그대로 다른 세상에서 노는 수준이니까.
아마 폐하께서도 그 점을 염려하여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고 사신을 돌려보냈을 것이다.
…근데 몽골 제국의 지도자도 이런 두루뭉술한 대답이 시간을 끌기 위한 기만책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를 알고 있음에도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유목민은 어디 한 군데에 정착하지 않는 특징 때문에 성을 공략하는 공성전에 대해서 엄청 약한 모습을 보인다.
성을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인 병사도 많을 텐데 그 성을 또 점령하라고?
아마 머리 위에 물음표만 띄우면서 바보 같은 표정만 짓지 않을까.
칭기즈 칸이 이끌던 몽골 제국은 그런 단점마저도 극복했지만 그래도 야전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건 사실이지.
그렇기에 몽골 입장에서도 수십만 규모에 달하는 적군이 전부 성에 틀어박혀서 버티는 것보단, 자기들이 제일 자신 있는 대규모 회전으로 꽝 붙은 다음 정복 활동을 이어나가는 게 훨씬 편할 것이다.
현대식으로 조금 속되게 표현하자면 미드에서 한타 하자며 도발하는 거라 봐야 되나?
뭐, 그 도발에 응하지 않으면 한국인이 아니지.
…근데 난 지금 중국인이네.
살짝 실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군대를 소집한 다음 북쪽을 향해 진군했다.
농민들을 아무렇게나 징집한 오합지졸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전장을 거친 한나라의 최정예 군대.
그 숫자는 물경 20만에 이르렀다.
──────────
지금 나를 따르는 20만의 군대.
사실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정예 병사를 싹싹 긁어모은다면 30만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나라는 난세의 여파로 지방 곳곳이 혼란한 상태라 이들 모두를 끌어올 수 없었다.
땅이 워낙 넓어서 치안 유지로도 병사가 어마어마하게 빠져나가고 있어.
그렇다고 치안을 유지하는 병사들까지 빼놓으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기껏 일궈놓은 게 전부 날아갈 상황인지라 이들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는 게 옳았다.
또 마초에게 측면을 지키라며 몇몇 부대를 붙여주었기에 병사 숫자는 더 줄어들었지.
사실 30만을 넘긴다 쳐도 본래 역사의 몽골이 상대한 나라의 병사 숫자와 비교하면 손색이 있었다.
일단 금나라는 처음부터 40만의 군세를 내보냈고, 저기 중동도 정복 군주 무함마드 2세가 직접 양성한 40만 군세가 국가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근데 왜 둘 다 40만이지?
뭐, 금나라는 이후에도 수십만 규모의 병사를 계속 내보냈으니 사실상 80만 언저리라 보는 게 맞겠네.
또 근처에 있었던 서하도 꼴에 정주민 국가라고 그 조그만 땅에서 15만이나 동원했는데, 나는 중국 대부분을 차지해놓고도 30만인 거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농민들까지 병사로 징집해서 써먹는다면 군대 규모가 족히 두 배는 늘어날 거다.
하지만 그렇게 숫자만 불려봤자 화살받이밖에 더 되겠냐.
아니, 화살받이라도 하면 다행이겠다.
숫자만 늘린 징집병은 금방 사분오열된 채 흩어지며 아군 사기를 깎아 먹고 진형만 망가트릴 가능성이 컸다.
아무리 잘 단련된 정예병이라 하더라도 근처에서 아군이 공포에 질린 채 죽어나가는데 아무런 영향이 없을까?
다른 나라라면 모를까 몽골 제국은 그렇게 일어난 혼란을 아주 잘 이용하는 이들이었으니 몸집만 무작정 불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실제로 수십만을 계속 쏟아내던 물량의 끝판왕, 금나라와 남송을 학살했던 게 몽골 제국 아니냐.
차라리 징집병에게 갈 물자를 정예병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겠지.
백성을 징집하고 충분히 훈련할 시간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저 북쪽에 있는 놈들이 그때까지 기다려 줄 것 같진 않아.
…애초에 내가 이끌어야 할 백성들을 일회용 화살받이로 써먹는 것 자체가 조금 그렇기도 하고.
인도적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었고 전략적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었으니 내가 무작정 더 많은 병사 운운하며 백성을 더욱 많이 징집할 이유가 없었다.
어휴.
난세다 뭐다 하면서 서로 죽여대지만 않았으면 나도 40만은 끌고 갈 수 있었을 텐데.
물론 병사가 줄어든 만큼 정예도 자체는 몽골 제국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올라간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몽골 제국의 최정예 병사 10만과 한나라 제국의 최정예 병사 20만.
“…….”
아마 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쪽이 앞으로의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이 전투 한 번으로 전쟁이 끝난다면 좋겠지만…. 글쎄.
몽골이든 한나라든 둘 다 내전을 겪으면서 전쟁에 이골이 났기에 상당히 장기전으로 흘러갈걸.
칭기즈 칸이 대규모 회전이 일어나는 데도 모든 병사를 북방에 집중하지 않고 몇몇을 우회시킨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마 전투에서 패배해도 곧장 도망친 다음 그 엄청난 기동력을 통해 골머리를 앓게 하겠지.
“주군, 전방에 부대가 있습니다.”
“부대라고?”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면서 앞으로의 전황을 예측하던 나는 부관의 보고에 고개를 들었다.
“…….”
저 멀리서 말 위에 올라탄 채 우리를 바라보는 금발의 여인.
나는 제 머리를 등 뒤로 가지런히 땋아내린 익숙한 외모의 여인을 발견하곤 툭 중얼거렸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흐음?”
나와 함께 군세를 이끌던 조조는 내 중얼거림을 듣고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처음부터 외모 품평이라니, 설마 본초(本初, 원소의 자)도 노리고 있나?”
“…….”
조금 전 했던 말을 어떻게 해석하면 그리되는 거지.
나는 한 차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조조는 나를 마주한 채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