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67)
EP.467 충돌(4)
“…….”
12월 말, 여전히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유주 국경 지대 부근.
적발을 지닌 여인은 어느 정도 경치가 멀리 내다보이는 곳에서 무덤덤한 눈빛으로 적진을 내려다보았다.
“대칸(大汗).”
“…응?”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침묵을 지키면서 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던 여인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왜?”
“보로클이 이끄는 부대가 적들을 습격했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날이 어두워진 걸 이용해 기습을 가하다가 반격당했다는군요.”
몽골 장수는 멀리서 화살을 쏘자마자 적들이 곧장 응사해오는 광경에 말머리를 돌렸다고 설명했다.
“으응…. 그렇구나.”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사준사구(四駿四狗)가 허탕을 쳤다는 보고에도 여인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짝 의외라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
“모두, 한 번씩은 졌네?”
“…….”
몽골 제국을 이끄는 군주, 칭기즈 칸이 툭 내뱉자 누구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상황 속에서 칭기즈 칸은 아군이 실행했던 전술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유격전은 안 통하고….”
부대를 나누어 갑작스럽게 기습하는 전술은 조금 전과 비슷하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격을 얻어맞고 역습의 기회나 주지 않으면 다행일 터.
“포위도 안 통했고….”
군세를 넓게 펼치고 한 곳에 뭉친 적들을 사방에서 압박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포위라는 것은 포위망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의미 있는 법.
───병사도 훨씬 적은 놈들이 무슨 자신감이야! 당장 안 꺼져?!
───이런 빌어먹을 년이…! 어쩔 수 없다! 서둘러 후퇴해라!
병사 규모에서 차이가 났기에 안 그래도 상당히 헐거웠던 포위망은 적들이 기병을 이끌고 나오기 무섭게 산산이 박살 났다.
아군의 후퇴 속도가 느렸다면 분명 뒤를 쫓는 적 기병들에게 크나큰 손실을 입었겠지.
자신이 부족을 통일하기 이전부터 수많은 침입을 막아내며 국경 부근을 수비했다는 최정예 기마 부대.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보급로 끊는 것도 안 통했던가…?”
오히려 수레를 엎어버리고 그를 이용하는 전법은 칭기즈 칸도 상당히 놀라웠다.
여러 방향에서 수없이 습격했음에도 번번이 막아내는 걸 보면 단순한 요행이 아님을 알 수 있었지.
“유인하는 것도 안 돼….”
피해를 감수하면서 일부러 근접전을 벌인 다음 적들을 유인해 봤지만, 대장군은 이미 매복을 눈치챘다는 듯 조금 쫓다가 추격을 그만뒀다.
“…….”
그 어떠한 노림수도 통하지 않는 부대는 이다지도 골치 아프구나.
───도망치지 마! 맞서 싸우라고!
───닥치지 못할까!
특히 아군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며 진영 자체를 망가트리던 장수.
그런 장수가 한 명이 아니고, 또 어떠한 노림수도 통하지 않는 부대에 있다는 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겠네….”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칭기즈 칸은 휘하 장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적들은 얼마나 지쳤어?”
“예. 몇몇 정예들을 제외하면 멀쩡한 병사를 찾기가 드물더군요.”
북방에서 이민족의 침입을 저지하던 최전선.
유주(幽州)의 기온은 한나라의 다른 주(州)와 비교했을 때 별 차이가 없었지만, 점점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상황은 달라졌다.
농사는 꿈에도 못 꾸고, 따뜻한 털가죽을 지닌 가축마저 추위를 이기지 못해 종종 얼어 죽는 땅.
칭기즈 칸이 구태여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이곳에서 적들을 기다린 이유가 있었다.
제아무리 약점을 보이지 않는 군대라지만 그들도 결국 어느 한곳에 정착하며 살아가는 민족.
만약 오랜 기간 추위에 노출되면 적들은 자신들과 달리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부타이는?”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신호만 내려주시면 된다고 합니다.”
“알았어.”
말 안장에 곡궁을 매단 몽골 장수가 간단히 인사를 올리자 칭기즈 칸은 말했다.
“제베.”
“예.”
“대칸(大汗)이 아니라, 테무진이라 불러.”
“명심하겠습니다. 대칸.”
“…….”
제베가 그리 대답하자 테무진은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이해한 거, 맞지?”
“물론입니다.”
“…….”
그 대화로 제베의 의도를 알아차린 테무진은 눈가를 살짝 좁히며 제베를 바라보았다.
“…….”
하지만 제베도 이에 맞서 테무진을 똑바로 응시했고, 그 눈빛 속에 담긴 옹고집을 알아차린 테무진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테무진은 일평생 사치와 거리를 두며 살아왔기에 자신을 칭기즈 칸이라거나 대칸 같은 권위적인 호칭으로 부르지 않길 원했지만 그녀를 따르는 충성스러운 장군들은 의견이 다른 듯했다.
칭기즈 칸은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적들의 군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준비하자.”
“예.”
자신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을 계획이었다.
이제 막 초원을 통일했기에 내부는 아직 불안정했고 식량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만약 이 전투가 장기전으로 흘러간다면 자신에게 불만을 품었던 부족들이 기회를 틈타 분란을 일으킬 터.
자신의 적인 한나라가 이 혼란스러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동족을 쥐고 흔들면서 끝없이 분열을 유도하겠지.
“…….”
그렇게 된다면 또 얼마나 되는 긴 세월 동안 서로 피를 흘리게 될까.
이는 칭기즈 칸으로서도 동족의 미래가 걸린 전쟁이었다.
──────────
칭기즈 칸과의 전초전이 발생한 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아니, 이제 두 달인가?
날씨가 춥다 보니 시간 감각도 애매해지네.
하여튼 그 기간 동안 몽골 제국은 끊임없이 여러 곳에서 공격을 가하며 우리의 신경을 건드렸다.
안 그래도 온도가 낮아서 가만히만 있어도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데, 경계를 똑바로 하지 않으면 모든 게 폭삭 주저앉을 상황이라 체력은 더욱 떨어졌다.
“…주군, 성으로 물러나는 것이 어떻습니까?”
“성으로 물러나자고?”
“예. 날이 갈수록 병사들이 피로한 기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인식을 치렀으나 내 눈에는 여전히 꼬꼬마로 보이는 부관의 제안을 듣고 난 피식 웃었다.
“손권.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구나.”
“그, 그렇습니까?”
나는 얼빠진 표정을 짓는 손권에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을 이었다.
“저 이민족들이 물러나는 걸 가만히 두고 볼지는 둘째 치고, 우리가 성벽 뒤로 물러나는 순간 하북 일대는 쑥대밭이 될 것이다.”
“…….”
“이상할 건 없지. 전쟁에서 마을을 약탈하며 물자를 조달하는 건 기본 아닌가.”
그때 근처에서 사마의가 툭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치곤 단 한 번도 주변 민가를 약탈하신 적 없지 않나요?”
“…아무튼, 더 열받는 건 뭔지 아나?”
“무시하시네요.”
착한 대장군은 약탈 같은 거 할 줄 모릅니다.
본래 역사의 유비도 전쟁한답시고 주변 민가를 약탈한 적 없었기에 수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던 것 아닌가.
의도는 확신할 수 없지만 행동 자체는 본받을 만하지.
구렁이 담 넘듯 사마의의 질문을 흘려넘긴 나는 곧장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북 일대를 초토화한 이후 그들은 북방으로 물러날 것이다.”
“…어째서요?”
“어째서긴.”
나는 오랜 경험으로 깨달은 지식을 어렵지 않게 설명했다.
“한 차례 군사를 정비한 다음 또 쳐들어오기 위해서지.”
“…….”
“저들도 단 한 번의 전투로 한나라를 집어삼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을 거다.”
그러면 전쟁은 장기화될 거고 나라는 더 박살 나겠지.
애초에 몽골 제국과 공성전을 벌인다 해서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도 동원하는 이들이니까.
주변 마을을 초토화한 다음 백성들을 일부러 죽이지 않고 성으로 달아나게 해 식량 부담을 늘린다.
아니면 아예 그들을 포로로 잡아서 선두로 내세우고 화살받이 역할을 시킨다.
저항할 수 없는 백성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하는 병사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을까?
그 안에 자신의 가족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병사의 사기는 뚝뚝 떨어질 테고, 몽골군은 포로들의 시체로 해자를 메운 다음 성에 침입해 모든 걸 불태울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몽골군이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지.
저항하면 죽음뿐이라는 걸 알려주며 적들에게 고의적으로 두려움을 심어주던 군대.
그들은 어느 우주 전쟁의 황제처럼 자기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버리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민족들이 또 겨울에 쳐들어온다면 그때도 성벽 뒤로 물러날 계획인가?”
“그건….”
팔짱을 낀 난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손권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법은 여기서 승부를 내는 것뿐이다.”
“…역시 주군. 제 식견이 짧았습니다!”
뒤로 물러날 것을 건의했던 손권은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그래.”
또 말끝에 느낌표 붙기 시작했네.
나는 오늘도 여전한 손권의 모습에 픽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