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71)
EP.471 이변(3)
나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그런 정보를 본 적이 있다.
대충 화살을 맞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존율이란 글이었던가.
그게 뭔가 하니 화살을 어느 부위에 맞고도 살아남았는지 알려주던 내용으로 기억한다.
생존한 사람 대부분이 팔이나 다리에 화살을 맞은 인원이었고, 몸통이나 머리에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아주 극소수였지.
뭐, 아무리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가는 내용이었다.
팔이나 다리는 중요한 혈관만 건드리지 않으면 치료를 잘한다는 가정하에 높은 확률로 살아남을 거다.
하지만 머리와 몸통은?
머리는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고, 몸통은 온갖 장기가 몰려있는 부위다 보니 어디를 맞아도 치명상이었다.
“끄응….”
그래.
지금처럼 말이야.
내 몸통을 깔끔하게 꿰뚫은 화살이 복부로 빼꼼 고개를 내민 상황은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날붙이로 망가지면 그냥 예비 시체라 불러도 될 심장과 간은 비껴간 듯하고, 숨을 제대로 못 쉰 채 꺽꺽거리는 것도 아니니 폐를 맞은 것도 아니다.
부상 위치만 대충 짐작해보면 소장이 작살 난 것 같은데….
뭐가 됐든 이대로 있으면 난 ‘꽥’하는 단말마와 함께 정릉(이었던 것)이 되고 말 거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이게 아니지.
군대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큰 부상을 당했으니, 부대가 크게 동요한 다음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전장에서 지휘관이 생사의 기로에 선다는 건 다 이기던 전투조차 패배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 이순신 장군님조차 노량해전에서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따르는 주군이 공격당했다는 것에 분노할 것이고, 누군가는 하늘이 무너진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아 절망하겠지.
반대로 적군들은 전의가 상승하여 승리를 의심치 않고 진격할 것이다.
아군은 지휘관을 잃은 채 따로따로 놀기 시작하고, 적군은 한몸처럼 싸우며 아군을 쓰러트린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군대를 수습하지 않으면 전멸을 피하지 못할 터.
하지만 지금 이곳에 모인 인물들의 개성이 워낙 뚜렷하다 보니 내가 아니면 군대를 수습할 인원이 없었다.
“끄으응….”
아프기는 더럽게 아프네.
그렇다고 한들 말 위에서 굴러떨어지는 추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이 상황에서 그런 모습까지 보였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거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괜찮으니까 주변 경계해.”
“예, 옙!”
호위병에 물음에 그리 대답한 나는 품속을 뒤져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러니까…. 화살을 맞았을 때는 이렇게 하라던가.
주머니 속에서 동그란 단약 하나를 꺼낸 나는 그를 입속에 넣고 콰득 깨물었다.
단약이 뭉개지는 것과 동시에 느껴지는 알싸한 맛.
마치 겨자를 생으로 씹은 것처럼 코가 뻥 뚫리는 감촉에 나는 얼굴을 왈칵 찌푸렸다.
이거 맛이 왜 이따위야.
역시 약은 약이라는 건가?
하지만 효과는 확실한지 단약을 깨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통에서 전해지던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역시 화타 선생이야.
단약 효과 확실하구만.
듣기로는 자기가 수술할 때 쓰는 마비산을 조금 개량해서 진통 효과가 있게 만든 것이라던가.
이 단약은 약효가 뇌로 전해져야 효과가 있으니 굳이 먹지는 말고 전부 녹아 없어질 때까지 입으로만 물고 있으라 설명했다.
현대에도 이것과 비슷한 복용법을 지닌 진통제가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기 혼자 외과 수술을 하는 것도 그렇고, 대체 몇 세기나 뛰어넘은 의술을 부리는 걸까.
내 머릿속을 찌릿하게 울리던 고통이 가시자 나는 화살촉을 베어서 떨어트린 다음 등 뒤로 손을 뻗어 화살대를 뽑아버렸다.
울컥!
으음.
보는 사람이 다 아파 보일 정도로 피가 흐르는구나.
“꺄아아악!”
때마침 주변 병사들을 밀치고 모습을 드러낸 사마의는 비명을 질렀다.
“정신 나갔어요?! 그걸 뽑으면 어떻게 해요!!”
“괜찮으니까 진정해. 병사들이 동요하잖아.”
내가 그리 대답하자 사마의는 흡사 불을 내뿜을 기세로 외쳤다.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기엔 늦었단 생각이 안 드나요!”
“그건 그렇네.”
“장난칠 때가 아니라고요!!”
그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었다.
지금 사마의가 걱정한 대로 몸에 박힌 화살을 냅다 뽑는 짓은 명줄만 단축하는 길이다.
심지어 부상당한 부위가 몸통이라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기 딱 좋지.
하지만 나는 다 방법이 있었다.
“괜찮아. 화타가 이런 일에 대비해서 약을 한가득 챙겨줬으니까.”
“…약이요?”
난 혼자서 수십 명씩 썰어 재끼는 다른 무장들과 다르게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 어디 한 곳만 잘못 다쳐도 목숨이 오락가락하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죽는 순간 일어날 개판에 대해서도 말이야.
난 주머니에서 조금 전과 색깔이 다른 단약을 꺼낸 다음 상처 부위에 꾹꾹 쑤셔 넣었다.
뭔가 물컹물컹한 게 느껴지는데.
참으로 기묘한 감각이야.
“꼬로록….”
안 그래도 창백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던 방통은 이 광경을 보자마자 입가에 거품을 물더니 그대로 철퍼덕 쓰러졌다.
“…….”
제갈량은 백우선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지만 손을 벌벌 떨고 있는 걸 보니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고.
“아, 안 아파요?”
“그래. 약 먹어서 괜찮다.”
사마의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나는 말에서 천천히 내린 다음 고개를 돌렸다.
“서여.”
“아, 아으, 아.”
어느샌가 내 근처로 다가온 서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주, 주인, 님.”
“…….”
“제가, 제가 부족해서….”
“괜찮아. 그 상황은 어쩔 수 없었잖아.”
전방에서 수만 명의 이민족이 날 죽이겠답시고 쉴 새 없이 뛰어드는데 혼자서 그들의 돌격을 막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다.
하필 화살이 날아온 방향도 서여가 있는 쪽과 정 반대편이었고.
오히려 지금에서야 처음 상처 입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지.
“서여.”
“…으, 으.”
“이제 이길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난 서여에게 다가가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네가 직접 가서 적 지휘관을 무력화시켜야 해.”
그리 설명한 나는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하하하! 왜 그러지?! 갑자기 조용해졌군!”
전방에서 여포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던 몽골 장수.
“……쳐.”
“응? 뭐라고 했나! 조금 더 크게 말해봐라!”
이름을 알 수 없는 몽골 장수가 껄껄 웃으며 제 무기를 계속 휘두르려는 순간 적발의 소녀는 어느 때보다도 큰소리로 외쳤다.
“닥쳐──!!”
콰아앙──!!
“커헉?!”
나름대로 여포에게서 잘 버티던 몽골 장수는 여포가 휘두른 방천화극에 가슴을 얻어맞았다.
“…장군?!”
피를 내뿜으며 날아가는 장군의 모습에 부관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
“꺽…!”
“으아악!”
장군과 힘을 합치면서 여포를 붙잡던 부관과 병사들은 순식간에 피를 내뿜으며 절명했다.
주변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적발의 소녀는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부 죽여버려────!!!”
와아아아───!!
나는 명령조차 잊은 채 진형을 벗어나 돌진하는 아군 병사들을 바라보곤 한숨을 흘렸다.
내가 조금 전까지 유리하다 어쩌다 했지만 아직 전세 자체는 팽팽한 상황이었다.
지휘관이 큰 부상을 입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아군 진형 깊숙이 들어왔던 몽골 제국은 곧장 말머리를 돌렸고, 버티는 것에만 치중하던 수부타이조차 안량과 문추를 밀어낸 후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수부타이의 부대 절반가량이 쓰러졌고,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과정 중 더욱 많이 쓰러지겠지만 그래도 몇만 명은 무사히 탈출할 거란 말이지.
그리고 여포와 함께 이성을 잃은 채 홀로 뛰쳐나간 부대는 몽골 제국과 맞섰던 수많은 군대가 그랬던 것처럼 각개 격파당하기 딱 좋았다.
그저 감정이 격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승리하기에는 전쟁이란 게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뜻.
“적의 진형이 무너졌다! 거리를 벌려라!”
봐라.
우리 진형이 무너졌다는 걸 보자마자 몽골 제국의 움직임이 또 심상치 않게 바뀌었다.
이대로 가다간 선두 부대가 함정에 빠져 큰 피해를 면치 못하겠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울컥!
“…으음.”
“주, 주인님!”
내 부상이 너무 심각해.
지금은 어찌어찌 땜빵해 놓았지만 이대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을 터.
모든 판단을 끝마친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훔치며 서여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전쟁을 못 끝내면 나 죽는다.”
“…….”
안 그래도 몇몇 이민족 부대는 진형을 넓게 펼친 채 전장 바깥쪽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가 후퇴하는 꼴을 얌전히 두고 볼 리 없지.
애초에 군을 물리고 후퇴한다는 것 자체가 큰 피해를 감수한다는 건데, 그렇게 큰 피해를 입으면 훗날 있을 몽골 제국과의 2차전은 더욱 어려워질 게 뻔했다.
“지금은 내 근처에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쉴 새 없이 떨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면서 말했다.
“죽어───!!”
지금 여포는 분노에 눈이 멀어 홀로 뛰쳐나가 날뛰고 있었다.
“하! 대칸께 가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이 쿠빌라이를 뚫어 보거라!”
하지만 그녀조차 사준사구(四駿四狗)를 위시로 한 수많은 케식(Хишиг)이 달려들면서 돌진을 막아 세웠다.
“…많군.”
“쯧! 전부 죽여버리면 되는 일이야!”
관우와 장비도 똑같이 눈이 돌아간 듯 여포를 따라 돌진했지만 무려 만 명에 달하는 최정예 호위병들을 뚫기란 요원한 상황.
하물며 조금 전 내게 화살을 발사했던 제베조차 보이질 않으니, 이대로 가다간 분명 끝을 내지 못할 것이다.
“서여.”
“…….”
“다녀와.”
“…네.”
내가 따뜻하게 웃으면서 말하자 서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
“아, 왔구나.”
그때 조운과 장료가 기병대를 수습하고 돌아오자 난 타이밍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오자마자 명령해서 미안한데, 서여 좀 도와줘.”
“…….”
“나는….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게.”
내가 끙 소리를 내며 적당한 곳에 걸터앉자 두 명은 내 상처를 힐끔 바라본 다음 차분히 대답했다.
“이 목숨이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부디 무사하시길.”
결말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전쟁이 끝날 것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