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8)
EP.48 연합군(2)
“현덕 언니!”
“응? 무슨 일이야?”
유주 어딘가에 있는 작은 마을.
그곳에서 사이드 테일을 한 흑발의 여성이 자리에 앉아있던 긴 생머리의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마치 뱀처럼 구불구불한 긴 창을 어깨에 걸친 여성은 마치 대단한 일을 했다는 듯 자신의 붉은 눈을 반짝거렸다.
보통 자신의 동생이 이러면 생뚱맞은 소리를 한다는 걸 알기에 유비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천하에 있는 도둑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데?”
“익덕아. 말조심.”
장비라고 불린 사이드 테일의 여성은 콧방귀를 끼었다.
“흥! 뭐 틀린 말이야? 지금 이 천하에 떵떵거리면서 사는 놈 중에 정상적인 놈은 없어!”
“…….”
그때 장비의 뒤에서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꽁지 머리로 묶은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비는 그런 여성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떤 놈이든 내 눈에 띄기만 하면 아주 그냥…. 으갸악!”
난데없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는 주먹에 장비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으으…….”
어마어마한 고통에 장비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할 때 꿀밤을 날린 여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익덕아. 내가 경솔하게 입을 열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자신에게 꿀밤을 먹인 여성을 확인한 장비가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채 투덜거렸다.
“씨….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
장비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리자 다정했던 여성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둘째 언니가 제대로 화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던 장비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알겠어! 알겠다고! 말조심하면 될 거 아니야!”
“그러면 됐다.”
여성이 살짝 미소짓는 걸 본 장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덕 언니가 화내는 것보다 운장 언니가 화내는 게 더 무섭다니까….”
“응? 내가 화내는 건 안 무섭다는 뜻이야?”
“현덕 언니는 화나도 아무것도 안 하잖아.”
그게 언제더라. 하면서 기억을 곰곰이 더듬던 장비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떴다.
“독우인지 뭔지 하는 돼지 새끼가 행패 부릴 때도 억지로 웃기만 하던 모습 난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건…….”
황건적의 난 때 세운 공으로 받은 현위 관직.
유비가 세운 공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은 관직이었으나 부패한 황실을 알고 있던 유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받아들였다.
과거 어느 날.
유비가 맡고 있었던 마을에 한 남성이 찾아왔었다.
얼마나 잘 먹고 살았는지 그 남성은 온몸에 살이 뒤룩뒤룩 쪄있었는데, 유비는 이를 보고 남성이 바로 높은 사람이라고 눈치챘다.
모든 백성이 끼니조차 챙기기 힘든 시대에서 저렇게 살이 쪘다면 높으신 분밖에 더 있겠는가.
유비의 예상대로 마을에 찾아온 남성은 감찰을 명목으로 냉큼 책임자부터 찾으며 유비와 독대를 요구했다.
현을 감찰하는 관직인 독우.
그 남성은 한동안 유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표정을 바꾸고 불쾌한 듯이 입을 열었다.
‘흠흠. 자네는 최소한의 성의도 없는 건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허.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독우는 헛기침하고는 유비에게 눈치를 줬다.
‘나는 비싼 거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받아준다네.’
뇌물.
유비는 어이가 없었다.
당장 나가서 잠깐만 둘러봐도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들이 가득하거늘, 독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뇌물을 요구했다.
‘뭐, 정 안 된다면 다른 방법도 있는데 말이야?’
‘…….’
‘어떤가?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게 아니겠는가.’
유비가 침묵을 지키자 독우는 그걸 다른 뜻으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독우는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유비의 몸을 훑어보며 유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역시 돈을 먹인 보람이 있어. 이런 미인도 안을 수 있다니.’
마치 뇌물을 먹인 게 자랑이라는 듯 당당한 몸짓.
이 나라는 대체 어디까지 썩어버린 걸까.
부정부패를 잡아야 할 관직이 오히려 뇌물을 요구하며 다른 사람을 핍박하고 있었다.
유비가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유비에게 가까이 다가간 독우는 음란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걱정 말게. 내가 이렇게 보여도 다른 놈들에 비하면 꽤 상냥….’
‘이 돼지 새끼가 누구한테 손을 대는 거야──!!’
그때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유비가 걱정되어 몰래 상황을 살펴보러 온 인물.
독우가 유비에게 더러운 손길을 뻗치려는 광경을 장비가 목격한 것이었다.
‘뭐, 뭐냐?’
독우가 흠칫 놀라며 행동을 멈춘 사이 장비는 씩씩거리며 독우의 옷깃을 붙잡고 바깥으로 던져버렸다.
‘으아아악──!’
장비에게 내던져진 독우는 땅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혹시나 해서 몰래 보러 왔는데 이럴 줄 알았지!’
장비는 나무에서 가지를 하나 부러트리고는 우두둑 몸을 풀며 흙먼지를 뒤집어쓴 독우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독우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감지하고 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잠깐! 내게 해를 가하면 너희는 바로 범죄자가 될 것이다!’
‘어쩌라고.’
‘알아듣지를 못하는 건가! 범죄자가 된다면 너희는 평생 한나라에게 쫓기게 된다는 거다!’
‘헹. 지랄하네.’
장비가 독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현덕 언니가 거절했으면 분명 삐져가지고 없던 죄도 만들어서 감옥에 집어넣을 새끼가.’
‘…….’
‘왜. 부정 못하겠지?’
장비의 핏빛 같은 눈동자를 마주한 독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여간. 너무 예쁜 것도 문제라니까? 별별 벌레들이 다 꼬이니까 말이야.’
‘뭐, 뭐라고….’
‘그렇게 높은 관직 좋아하면 내가 환관 지원할 수 있게 만들어줄게. 이 은혜는 잊지 말라고.’
장비는 들고 있는 굵은 나뭇가지를 휙휙 휘둘러대며 독우에게 다가갔다.
장비의 손에 들린 거의 흉기나 다름없는 나뭇가지를 바라본 독우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머, 멈춰! 멈추란 말이다!’
‘싫은데.’
‘내가 잘못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착하게 살아갈 테니 부디…!’
‘네가 반성할 새끼냐?’
독우는 고개를 돌려 유비를 바라보았다.
‘유공! 부디 이 미친 망나니 좀 말려주시오!’
‘뭐? 망나니?’
장비가 얼굴을 왈칵 찌푸렸다.
유비는 여전히 미소지은 얼굴로 독우를 살며시 외면했다.
‘우리 언니도 찬성하는 것 같은데.’
‘이, 이…! 두고 봐라! 너희 싹 다 대가를 치르게 해줄…!’
‘시끄러우니까 좀 닥치고.’
장비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딱 대 새끼야. 아주 저승 문턱까지 보내줄 테니까.’
자신에게 음습한 손길을 뻗었던 독우는 장비에게 흠씬 두들겨맞고 겨우 목숨만 부지했다.
그 후로는 관직을 버리고 달아나서 의병들을 이끌고…….
“현덕 언니?”
“…응?”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유비는 과거 회상을 멈췄다.
자신과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생각에 잠긴 유비를 바라보며 장비는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여튼, 현덕 언니는 너무 사람이 좋은 게 탈이라는 거야.”
“…….”
“화낼 때는 화내고! 마음에 안 들면 막 때려 부수라고!”
“때려 부수는 건 좀 어떨까 싶네.”
“언니!”
장비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유비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 그때 장비가 안 끼어들었어도 내가 알아서 했을걸?”
“알아서 했다니?”
“우리 익덕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곤장 200대 정도는 치지 않았을까.
유비의 생각을 알리 없는 장비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근데 익덕이 얘기하려던 건 이게 아니었잖아.”
“아 참! 그랬지!”
장비도 이제서야 눈치챘는지 다시 주제를 되돌렸다.
“원술을 필두로 온갖 놈들이 연합해서 낙양을 공격할 거래!”
“그래?”
“현덕 언니는 어떡할 거야?”
장비의 물음에 유비는 골똘히 생각했다.
현재 낙양을 비롯한 사예주, 병주, 서량을 차지하고 있는 정릉 세력.
연합군이 얼마나 모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정릉 세력이라고 한들 연합군 전부를 쉽게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소문으로 들어보니까 정릉도 동탁과 다를 바 없는 역적이라는데?”
“…….”
과연 그 소문이 사실일까?
여론을 조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는 행동.
원술 정도 되는 세력이라면 악의적인 추문 정도야 쉽게 퍼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소문이 아예 거짓이라고 보기에는 또 애매했다.
정릉은 동탁을 쫓아내자마자 한나라의 모든 군권을 통솔하는 대장군에 올랐다.
또 장안을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계속 황실의 재산을 꺼내다 쓰는 거로 알고 있다.
멸망의 기로에 선 한나라.
정말 기적같이 등장한 나라를 위하는 위인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본 짐승들과 다를 바 없는 역적인가?
장비가 자신의 적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때? 황실의 핏줄로서 황제 폐하를 핍박하는 역적을 혼내줘야 하지 않을까?!”
“…그냥 여포와 한 판 붙어보고 싶은 게 아니고?”
유비의 질문에 장비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걸 어떻게?”
“우리가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그걸 모르겠니.”
유비는 한숨을 푹 내뱉었다.
“저도 궁금하군요.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그 둘을 지켜보고 있던 관우가 유비에게 물었다.
장비의 적색 눈동자와 다른 관우의 청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유비가 입을 열었다.
“정릉이라는 사람이 어떤지 직접 지켜봐야지.”
그저 세간에 떠도는 말들로 결정을 내리기엔 신경 쓰이는 것이 많았다.
이미 정릉군과 연합군은 전쟁 상태라 볼 수 있으니 하나씩 확인하는 수밖에.
“…그래. 일단 연합군이 어떤지부터 살펴볼까?”
“어떻게 살펴볼 건데?”
장비의 물음에 유비가 살짝 웃었다.
“인맥 좋다는 게 뭐겠어. 공손찬 장군의 객장으로 들어갈 계획이야.”
“아하. ……현덕 언니와 아는 사람이랬나?”
장비는 기억이 흐릿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식 휘하에서 학문을 배우던 시절.
그때 유비는 타고난 친화력으로 공손찬과 연을 맺은 적이 있었다.
자신의 울타리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너그러웠던 인물이었기에 분명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리라.
“역적을 토벌하고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연합군의 실체가 어떨지 직접 확인해 봐야겠지.”
유비가 말을 이었다.
“그 다음에는 정릉군이 차지하고 있는 도시를 쭉 둘러볼 계획이야.”
“…가능하겠습니까?”
전쟁터에서 마주한 적을 자신의 도시로 들여보낼 군주가 있을까.
첩자로 몰려 붙잡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리라.
“어쩌겠어. 이미 전쟁은 시작됐는걸.”
관우의 걱정에 유비가 어깨를 늘어트렸다.
“내가 사람 보는 건 자신 있으니까 연합군에 있는 세월이 그리 길지는 않을 거야.”
“…….”
“천하에 있는 온갖 군웅들이 다 모여들 텐데,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그렇군요.”
자신의 계획을 듣던 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눈에 띄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유비는 웃으며 장비를 바라보았다.
“그치 익덕아?”
“그, 그렇지! 눈에 띄지 않으면 되지!”
무언가 찔리는 게 있는지 장비가 고개를 휙휙 끄덕였다.
식은땀을 흘리는 장비를 바라보던 관우가 다시 유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두 가망이 없다 느끼시면 어찌하실 겁니까.”
관우의 물음에 유비는 눈을 감았다.
천하에 있는 모두가 인의에서 눈을 돌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움직인다면 어찌할 것인지 관우는 묻고 있었다.
“……만약, 정말 만약 그렇다면….”
잠깐 숨을 고르던 유비는 갑작스럽게 픽 웃었다.
“글쎄. 어떻게 할까?”
“…또 궁금하게 만드시는군요.”
황족의 핏줄이라는 걸 증명하는 흑발과 흑안.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삼국지의 또다른 주인공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충 노벨쨩 꿀밤 맞는 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