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81)
EP.481 움직임(4)
오늘도 어김없이 아군 병사가 하하호호 웃으면서 공손찬군과 맞지도 않을 돌을 교환하던 때.
“에이, 오늘도 텄네.”
벌써 한 달째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걸 지켜보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도 같은 광경만 지켜봐서 그런지, 이제는 처음 날린 돌이 어디까지 날아가는지 보고 그날 명중률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오늘은 성벽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힘없이 떨어졌으니 별다른 타격은 주지 못할 터.
투석이 어찌어찌 성벽에 도달해도 5, 6장(약 12m~14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성벽을 넘어가기란 요원했다.
삼국시대 당시 성벽들의 높이가 보편적으로 5m 안팎인 걸 생각해보면 아예 비교조차 불허하는 높이지.
과거 유표가 틀어박혔던 양양성조차 성벽이 저렇게 높진 않았어.
“와, 저것들 그새 망루를 더 세워놨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투석에 가담하며 돌을 날려대던 여포조차 우주 방어가 무엇인지 제대로 체험시켜 주는 공손찬에게 기가 질린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벽이 낮으면 몰래 넘어보기라도 했을 텐데.”
“…그랬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을걸.”
“그런가?”
당연하지.
성벽이 낮았으면 진작 병사들을 투입시켜 역경루를 힘으로 밀어버렸을 테니까.
저 정신 나간 요새는 힘으로 밀어버릴 수 있는 영역을 훌쩍 넘어섰으니 자리에서 얌전히 때만 기다리는 거다.
흔히 삼중 성벽으로 유명한 콘스탄티노플의 성벽도 약 12m 정도 된다던데.
외세의 침입을 수십 번이나 막아냈던 난공불락의 도시는 오스만 제국이 대포를 끌고 와 펑펑 쏴 재끼고 성벽 아래에서 화약을 터트리는 등 별의별 방법을 동원한 끝에 점령했지.
…물론 그 시절의 성벽 축조 기술은 지금과 비교할 바가 아니겠지만, 공성측의 기술력이 뒤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라서 죽을 쑤는 건 마찬가지였다.
투석기도 무게추 방식이 아니라 인력을 쓰는 방식으로 겨우 사용하고 있는데 뭘 어쩌겠냐고.
“…주인님.”
그때 시간이 됐다는 듯 서여가 잔잔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평소와 똑같은 무감정한 눈빛을 마주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 쉴게.”
날이 따뜻해지자 주변 인재들을 겨우겨우 설득하여 역경루 근처에 자리 잡은 나는 강제로 활동 시간이 정해지게 됐다.
어린아이 통금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람.
신의(神醫) 화타와 장각의 정성어린 보살핌에 정상적인 몸 상태를 되찾았음에도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그칠 줄 몰랐다.
그러다가 쓰러지는 거 순식간이다, 적어도 몇 달은 쉬라고 하지 않았냐 등등….
나를 밧줄로 꽁꽁 묶어 어디로 가지 못하게 막을 기세였던 근처 제장들은 의외의 인물이 찬성하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온갖 신비한 명사들과 끈이 이어져 있는 마당발이 이렇게 말했거든.
‘아마 운이 따른다면….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화타와 우길, 그리고 내 예상대로라면 과거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좌자와도 면식이 있을 대현량사의 주장에 나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지.
장각의 정체를 모르는 주변 인물들도 그녀의 인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으니 어렵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저번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장각은 우리 세력 내에서 엄청난 최고참이거든.
장각은 병주 토박이던 시절부터 나와 함께한 이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여인이었다.
조금 더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짬밥 자체가 다르단 이야기지.
하지만 내가 궁금한 점은 어째서 주변 인물들이 장각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느냐가 아니었다.
삼국지에서 유명한 도사들은 이미 전부 구경한 것 같은데, 여기서 더 만나볼 인물이 있나?
우길은 제 명성대로 매우 뛰어난 의술을 어려운 이에게 무상으로 베푸는 선한 도사였다.
비록 바둑은 진짜 못 뒀지만 말이야.
의술과 바둑 실력이 반비례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좌자는 괴력난신 타파를 주장했던 공자가 뒷목을 붙잡을 정도로 연회장에서 엄청난 도술을 부려댔지.
장각이 언급하기론 단순히 심심해서 그런 게 분명하다던가.
하여튼 이 양반도 특이하다니까.
우길과 좌자, 그리고 지금도 도사인지 아니면 평범한 의원인지 아리송한 화타까지 만난 이상 여기서 더 만날 인물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왜 멀뚱히 서 있어? 바람 차니까 빨리 들어가!”
“…따뜻한데?”
“…….”
나는 ‘환자가…. 말대꾸?!’란 표정을 짓는 여포에게 얌전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
공손찬은 요근래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였는데, 그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어떤 인물이 불현듯 공손찬 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과거, 공손찬이 모든 외부인과의 만남을 거부한 채 보금자리에 틀어박혔던 때.
───흐음…. 네놈에게서 재능이 보이는구나.
───뭐, 뭐라고?
그때 한 노인이 누각 바깥쪽에서 구름을 타고 날아와 툭 중얼거렸고, 노인의 눈빛을 마주한 공손찬은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재능?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그게 무슨 소리지?
자신의 말에 공손찬이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자 노인은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으로 얼굴을 확 찌푸렸다.
───그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을 보아하니 내가 헛짚었나 보군. 그냥 돌아가련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사람이 구름 위에 올라탄 채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상망측한 상황.
공손찬의 지식으론 이런 짓이 가능한 인물은 단 한 부류밖에 없었다.
신선(神仙).
모든 고통과 질병에서 벗어나 결코 죽지 않는다고 알려진 상상 속의 존재.
공손찬은 평소 구름을 타고 다니며 온갖 도술을 부리는 신선이 정말 존재하겠냐며 코웃음 쳤지만, 눈앞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일어나자 마음을 달리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소인이 무릎 꿇고 빌겠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으음?
그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태도가 휙 바뀐 공손찬의 모습에 노인이 다시 관심을 보였다.
───배움을 청하는 자세 하나는 훌륭하구나.
───영광입니다!
공손찬은 과거 여러 사람과 같이 노식한테서 가르침을 받은 기억이 있었기에 이런 자세를 치욕스러워 하지 않았다.
‘허허, 제자야. 표정이 안 좋구나.’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이더냐. 스승에게 예를 보이는 게 싫거든 당장 짐 싸고 돌아가거라.’
…구체적으론 치욕스러워 할 틈 자체가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만.
키가 무려 8척 2촌(약 194cm)에 달하고, 솥뚜껑만 한 거대한 손으로 사람 머리쯤은 가볍게 으스러트릴 것 같은 근육질의 스승에게 대놓고 저항할 제자는 아무도 없겠지.
공손찬은 그런 가르침 아닌 가르침 덕분에 고개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숙일 수 있었다.
───좋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구름 위에 걸터앉은 노인은 담담히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권력자가 갈구하던 지식을 알려주지.
───…….
───네놈이 이를 제대로 따를 수만 있다면 불로장생(不老長生)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그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평생을 늙지 않고 살 수 있는 힘.
천하를 최초로 통일했던 진시황(秦始皇)마저 손에 넣지 못했던 금단의 지식을 알 수 있다는 말에 공손찬은 희열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면 이깟 권력 따위가 무엇이 귀중하겠는가!’
오늘도 어김없이 스승의 명에 따라 여러 가지 행동을 하고 온 공손찬이 씩 웃어 보였다.
신선이 되는 데 필요한 약들을 섭취하고, 약효가 온몸에 돌게 하기 위해 뜨거운 방에 앉아있기를 며칠째.
“…군! 주군!”
“으, 으음? ……무슨 일이냐?”
“괜찮으십니까?”
“그래…. 난 멀쩡하다.”
공손찬은 제 의식이 흐려지는 때가 많아지는 걸 깨달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육신이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라 했던가.’
서서히 변해가는 몸을 정신이 적응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일이라 했으니, 이것만 잘 견뎌낸다면 신선은 자신처럼 구름을 타고 다니며 하늘을 노닐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신선만이 알고 있다는 특별한 연단술(煉丹術).
그렇게 만들어진 천금보다 더욱 귀중한 불로장생의 약.
그것들을 복용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공손찬은 이미 주변 상황을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있었다.
“이봐…. 성…. 바깥….”
“…마음대로,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때도 어김없이 불로장생의 약을 섭취하고 헤롱거리던 공손찬은 신선이 가져온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른 사람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황이기도 했거니와, 이를 괜히 거절했다가 신선이 훌쩍 떠나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공손찬이 신선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날.
와아아아───!!
공손찬의 지휘 아래에서 앞으로 몇 년이고 수성을 이어나갈 수 있던 초월적인 규모의 요새.
역경루(易京樓)가 어이없이 함락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