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9)
EP.49 연합군(3)
“원가의 적통인 이 원술이 직접 황실의 대변인이 되어 역적을 몰아내겠다….”
격문을 소리 내 읽던 은발의 소녀는 피식 웃었다.
“그 얼간이가 웬일로 머리를 썼구나.”
사예주 바로 옆에 있는 곳이 바로 연주였으니, 아직 살아있는 연주자사 유대는 군웅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연합군에 참가할 것이다.
그리고 조조가 지금 자리 잡은 진류도 결국 연주라는 곳에 속해있었고.
자신도 결국 연합군이라는 태풍에 휘말리겠지.
하지만 조조는 연합군에 참가하게 되더라도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 없었다.
단지 마음이 이끌린 남자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지켜보고 싶을 뿐.
그는 조조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면 분명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리라.
참으로 몹쓸 남자였다. 내 관심을 원하는 놈들이 이 하늘 아래에 얼마나 널려 있는지 알면 깜짝 놀랄 텐데.
조조 주변에 있던 담청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격문의 내용을 듣고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듣기만 해도 속이 느글느글한데.”
하후돈은 과거 자신에게 들이댔던 원술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런 여인의 모습에 조조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왜 그러지. 원술 정도의 집안이라면 훌륭할 텐데.”
“윽. 장난이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줄래?”
얄밉게 말하는 조조를 바라보며 하후돈은 고개를 저었다.
“그 집안 빼고는 하나도 매력이 없으니까 문제지.”
“호오. 구체적으로 말해볼 수 있나?”
“성격이야 뭐…. 맹덕도 알 테니 말할 필요 없잖아.”
늘 남을 깔보는 오만함.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게 노는 어리숙함.
일을 내팽개치고 즐거움만 좇는 방탕함. 자신의 출신만 믿고 건방지게 행동하는 방자함.
과도하게 사치를 부리는 허영심. 자신보다 잘나가는 인물에 대한 질투.
어떻게든 상대를 깎아내리며 자신의 발밑에 깔아뭉개려는 졸렬함까지.
치졸하다. 거만하다. 옹졸하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진 원술은 인간으로서 아주 최악이라 말할 수 있었다.
마치 이래도 날 싫어하지 않을 거냐면서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원술의 행동에 낙양에 있는 인물 대부분이 원술에게 학을 뗐다.
“능력이라도 있으면 좀 참작해주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무능하면서 성격까지 최악인 놈이 자신의 가문만 믿고 떵떵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침에 먹었던 게 전부 올라올 지경이었다.
“듣자 하니 여자관계도 되게 난잡하다던데.”
달라붙은 여성들도 결국 원술보다 원술이 가진 재산과 가문을 보고 아양 떠는 거겠지만.
원술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좋다꾸나 웃으며 여자들과 색을 즐긴다고 들었다.
하후돈의 말을 듣던 조조가 의아한 듯이 말했다.
“여자 관계가 난잡한 게 어때서 그러나?”
“엥?”
이 땅꼬마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하후돈의 당혹스러운 눈초리에 조조는 당당히 말했다.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정실의 자리에 우뚝 선다….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나?”
“어…. 응.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예전부터 느껴왔던 거지만 조조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조금 엇나간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
……조금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임자 있는 남성도 나쁘지 않다.”
“…….”
조금이 아니었다.
“낮에 자신의 부인을 애매한 눈길로 바라보던 남성이, 밤에는 날 껴안고 누구보다 사랑한다며 속삭이는 거지.”
“…….”
“떠올리기만 하는 데도 몸이 찌르르 울리는군.”
이런 또라ㅇ…….
흠흠. 아무리 그래도 맹덕에게 심한 말은 좀 그렇지.
하후돈은 질린다는 표정을 짓고 입을 열었다.
“그럼 유부남이라면 누구든지 괜찮다는 거야?”
“날 뭐로 보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쉬운 여자는 아니다.”
“그건 그렇지.”
나름대로 예쁘다고 자부하는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외모와 그를 뒷받침하는 능력까지.
눈앞에 있는 조조는 남자 취향이 조금…. 아니 많이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아무에게나 허락할 소녀가 결코 아니었다.
“이 남자 저 남자 갈아치우는 것도 취향이 아니니 나를 평생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는 남성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맹덕이 흠뻑 평생 빠져들 만한 남자라….”
잠깐 생각에 빠진 하후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성 관계에 관심이 없으면 그냥 그렇게 말을 하지. 괜히 이상한 말 해서 고민했잖아.”
“…그게 무슨 말이지?”
“그야 그렇잖아. 맹덕이 그렇게 좋아할 만한 남자가 있어?”
조조 맹덕이라는 소녀는 애초에 관점부터가 다른 사람에 비해 엇나가 있는 인물이다.
평범한 여성이라면 좋아할 남성의 멋진 외모라든가, 친절한 성격이라든가, 재산과 가문이 어떻다든가 하는 건 전부 조조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근데 그 마음에 들어야 하는 기준점을 아예 모르겠다.
맹덕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왔던 자신조차 이러한데, 어떻게 처음 마주치는 남성들이 조조의 마음에 들 수 있겠는가.
“……걱정할 필요 없다. 이미 마음에 드는 남자는 찾았으니까.”
“엥? 정말로?!”
조조가 꺼낸 말에 하후돈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이댔다.
조조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그마한 손으로 하후돈의 머리를 꾹꾹 밀어냈다.
“저리 가라. 여자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취향은 없다.”
“아이참. 그래서 누군데? 누구인지 이름만 살짝 알려줘!”
“이름을 알려주면 알려주는 거지 살짝 알려달라는 건 대체 무슨 뜻이냐.”
당연한 얘기였지만 조조는 힘으로 하후돈을 이겨낼 수 없었다.
조조가 아무리 밀어내도 꼼짝 안 하는 하후돈에게 살짝 화를 냈다.
“멧돼지같이 힘만 세서는. 대답해줄 테니 저리 가라.”
“좋아!”
하후돈은 싱글벙글 웃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조조는 살짝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살짝 알려만 달라고 했으니 그렇게 해주지.”
“에이…. 쪼잔하네.”
“시끄럽다.”
하후돈을 불만스럽게 바라본 조조가 단서를 던져주었다.
“내가 관심 있는 남자는 언덕을 뜻하는 글자를 이름으로 가지고 있다.”
“언덕?”
“그래. 언덕.”
하후돈은 곰곰이 생각했다.
언덕을 뜻하는 글자는 많다.
丘(언덕 구)
厓(언덕 애)
崗(언덕 강)
岸(언덕 안)
…….
原(언덕 원)
잠깐만.
잠시 생각을 이어나가던 하후돈은 조금 의심 가는 글자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근원과 언덕이라는 뜻이 같이 존재하는 글자.
지금 이 천하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의 어머니가 이 글자를 쓰고 있지 않은가?
정원 건양(丁原 建陽).
현재 병주자사를 맡은 여성.
그리고 지금 천하에서 제일 유명한 남성의 어머니.
“걔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하후돈은 고개를 번쩍 들며 조조를 바라보았다.
陵(언덕 릉)!
정릉 화현(丁陵 化賢)!
“정릉이구나! 그렇지?!”
“…꼭 이럴 때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나.”
조조는 하후돈에게 너무 결정적인 단서를 줬다며 잠깐 후회했다.
하후돈이 실실 웃었다.
이거 참. 궁금해서 못 참겠는데.
“언제부터 그리 관심을 가진 거야? 아니, 애초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뭔데?”
“애초부터 말을 하지 말아야 했군.”
점점 수다스러워지는 하후돈을 바라보며 조조가 한숨을 내쉬었다.
설명하기 귀찮았던 조조는 하후돈의 질문을 어물쩍 넘어갔다.
“그냥 마음에 들었다.”
“……?”
외모는 다른 평범한 남성들과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병주자사의 아들이라지만 그 조등이 있는 조조의 가문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하다.
능력? 평균은 가는 것 같다만 조조가 눈독 들일 정도로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영문모를 확신이 존재했다.
그만한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폭풍 속에 망설임 없이 몸을 내던진다.
옳다고 생각하면 거리낌 없이 행하고, 옳지 않다 생각하면 고민없이 등을 돌린다.
조조는 어쩌면 그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고 있는지 몰랐다.
수도 북문의 경비대장을 맡을 때 십상시의 숙부인 건석을 때려죽였던 일.
그때 조조는 자신의 가문이 어떻다든가 그런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였다.
아무리 십상시의 친척이라고 한들 어찌 개인이 국법 위에 설 수 있겠는가.
그저 옳다고 생각했기에 행했던 일이었다.
그 이후 한직으로 밀려난 조조는 중앙 정부에서 온갖 꼴을 다 보았다.
부패한 나라에서 살고자 하는 백성들의 반란.
분명 나라를 보살피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겠다 다짐한 기억이 있는데 그 백성들을 자신의 손으로 참살했다.
그때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욕망에 사로잡힌 이리 떼들의 싸움.
그저 권력과 이익만을 좇는 대장군과 십상시가 서로 부딪히며 조정에 피를 흩뿌렸다.
조조의 눈에 보인 청류파와 탁류파는 그저 나라를 좀먹는 해충 같은 놈들이었다.
이리 떼가 사라지고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포악한 호랑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움을 벌이던 썩어빠진 짐승들이 막대한 힘 앞에 전부 고개를 조아렸다.
그 호랑이가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먹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은 천하의 풍파에 휩쓸리며 천천히 마음이 깎여나갔다.
그리고 어느샌가 강직했던 과거의 자신을 잃어버렸으리라.
그때 그 남자가 등장했다.
모두가 놀랄만한 뛰어난 능력도 없고,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조차 없다.
그렇지만 꿈이 있었다.
자신이 지금 놓아버린 그의 꿈은, 분명히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한 줄기 빛이었다.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라.
자신의 인물평을 떠올린 조조가 미소지었다.
그대는 나를 능력 있는 신하로 만들 것이냐?
그도 아니라면 간사한 영웅으로 만들 것이냐?
조조는 그게 정말로 기대되어 참을 수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쬬는 이상한 게 매력 아닐까???
아니면???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