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94)
EP.494 뒷정리(7)
옥중으로 찾아온 사마의는 한나라의 지도자인 황제에게 한 가지 임무를 받은 상태였다.
───화현(化賢)에게 허락도 받았으니 짐은 조만간 공손찬을 처리할 계획이다.
나라의 지존인 황제가 누군가의 허락을 받고 움직인다는,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상황.
하지만 멸망을 목전에 두었던 한나라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확인한 이들은 담담하게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먼 옛날 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의 군주 제환공(齊桓公)이 관이오(管夷吾)에게 모든 정무를 맡겼던 것처럼, 일국의 군주가 신임할 수 있는 신하에게 허락을 받고 움직이는 경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 뒤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아는 인물은 지금도 황제 곁에서 담담히 기록에 집중하던 사관밖에 없었다.
“…….”
하지만 사관은 역사의 편찬이란 임무에만 집중할 뿐 정치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이 자세한 전후 과정을 처음으로 알게 될 이는 수백 년 뒤 역사 기록을 확인할 수많은 후손들일 터.
───군사(軍師).
───부르셨습니까.
황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거뭇한 눈동자로 사마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감옥에 갇혀있는 공손찬을 내 앞으로 끌고 오도록.
───명에 따르겠습니다.
사마의로선 그 남자가 아닌 다른 인물이 자신한테 명령을 내리는 건 생각보다 부아가 치미는 일이었다.
‘…에휴, 그래도 어쩌겠나요.’
그 남자도 저 여자의 말을 따르는데 자기가 반항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나.
황실에 대한 충성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전부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존재했던 적이 아예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 음습한 백발 꼬맹이는 연회장에서 자신을 만났을 때 이렇게 쏘아붙였던가.
───이리의 관상(狼顧之相, 낭고지상)을 지닌 자가 어찌 주군의 곁을 맴도시는 건가요?
이리처럼 경계심이 많고 속마음을 짐작할 수 없다 하여 붙여진 이름.
예로부터 음흉한 자들과 특히 나라를 뒤엎을 역적(逆賊)이 타고난다는 불길한 평가가 그녀를 따라다녔다.
“흥.”
그렇다고 사마의가 이에 반박할 마음이 든 건 아니었다.
자신이 다른 뜻을 품지 않았다고 해명하는 건 피곤하기만 한 일이었고, 그 재수 없는 백발 꼬맹이의 말이 어느 정도 옳다고도 여겼으니까.
자신은 한나라의 다른 충신들처럼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 죽을 인물이 아니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만약 상황이 최악으로 흐른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됐든 누군가는 피를 흩뿌리게 되겠지.
‘…정작 그런 말을 한 백발 꼬맹이도 한나라를 향한 충성심이 없던 것 같지만요.’
백발 꼬맹이가 제 주군을 배신할 인물이란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모시는 이를 위해서라면 자기 몸조차 돌보지 않고 무작정 일만 하다가 혼자서 나자빠질 미련한 꼬맹이지.
오죽하면 그 남자가 직접 나서서 다소 강압적인 방법으로 휴식을 내렸겠는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척 간단했다.
그저 꼬맹이의 충성심이 한나라가 아닌 다른 인물을 향해있을 뿐이라는 것.
───저기…. 아, 안녕?
───…네. 안녕하세요.
───우와, 나 인사받았다….
…커다란 모자를 쓴 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는 또 다른 책사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평소에는 그냥 겁이 많은 유약한 소녀인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를 해야 할 때는 확실하게 처리하는 인물이라니.
지금 한나라는 정말 기형적인 구조로 돌아가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이 사라진다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터.
‘아, 유현덕. 여기 있었군.’
‘…조(曺)장군이시군요.’
서로 만나기만 했다 하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웃는 두 여인.
상대방을 바라보며 대화를 주고받는 은발과 흑발의 여인은 누가 봐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리저리 떠도는 말로는 아이가 생겼다는데, 그게 사실이었나 보군.’
‘예. 앞으로는 어느 누군가가 저를 괴롭힐 일이 없어 다행이지요.’
‘그건 다행이구나. 나도 어느 누군가가 부인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줄 알고 고민했거든.’
…비록 지금은 저리 얼빠진 내용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조조의 말을 들은 유비가 눈썹을 한 차례 움찔거리면서 혼자 팔짱을 끼고, 상대적으로 빈약한 몸매를 지닌 조조는 제 가슴을 강조하는 유비의 행동에 눈가를 살짝 좁혔다.
‘…….’
‘…….’
저리 유치하게 싸우는 두 명이 나라를 뒤엎을 수 있는 인물이라니….
사마의는 그때 처음으로 제 안목을 잠깐이나마 의심했다.
‘공근! 다음은 주군과 언제 만나는 게 좋을까?’
‘…조용히 해.’
‘어허! 그렇게 거리만 두면 될 일도 안 된다니까?! 자,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그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닥쳐──!!’
또 자신이 봐도 놀라운 미모를 지닌 여성을 매일 놀려먹는 인물도 빼먹을 수 없겠지.
‘이야! 예전보다 빨라졌네! 역시 그것만큼 확실한 약이 없지?!’
‘진짜 죽여버린다!’
적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은 살짝 외설적인 손놀림을 보이자 자신에게 달려드는 친우의 분노를 웃으면서 받아줄 뿐이었다.
사마의가 이 세 가문을 구체적으로 집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아직 사례주에 머물던 때, 어렸던 자신이 보았던 과거의 기억 때문.
오행에서 흙(土)을 상징하는 토성의 자리를 한낱 이름 없는 세 개의 별이 차지하는 광경을 보았다.
토성은 점성술에서 신화 속의 생물인 황룡(黃龍)이나 기린(麒麟)을 뜻하는 별자리이기도 했으니 이가 뜻하는 바는 명확할 터.
‘…하나의 하늘 아래에서 황제가 무려 세 명이나 등장한다는 거겠죠.’
그 정도 지경까지 갔으면 한나라는 이미 멸망하고도 남지 않았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재주를 지녔던 사마의는 그 이후 세 개의 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판단했지만, 그 별들이 어떤 가문을 뜻하는 건지는 끝끝내 알 수 없었다.
…당사자를 직접 제 눈으로 오랫동안 지켜보기 전까지는.
‘지금 생각해보니 말이 안 되네요.’
사마의는 한 얼빠진 남자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누구보다 높이 떠올라 하늘이 될 별들을 미리 눈치챈 걸까요.’
누군가는 단순히 얻어걸린 게 아니겠느냐 말하겠지만 몇몇 인물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주군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유독 세 명한테 관심을 쏟는 것을 말이다.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백발 꼬맹이마저 이런 말을 하며 치켜세울 정도.
───주군께서는 천안(天眼)을 지녔습니다.
천안(天眼)이라.
하늘에서 태어난 이들만이 지닌, 삼라만상(森羅萬象, 우주에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을 꿰뚫어 본다는 눈 아닌가.
그 재수 없는 꼬맹이는 원래부터 자기 주군을 떠받드는 경향이 강해서 어느 정도 걸러 들어야겠지만 안목이 뛰어나단 의견만큼은 사마의도 반대하는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어떤가요 방통, 역시 대단하신 분 아닌가요?
───어, 어어….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후에도 쭉 이어지는 여러 헛소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사마의는 눈앞에 있는 남성을 향해 말을 걸었다.
“공손찬.”
“…으음?”
자리에 정좌한 채 얌전히 눈을 감고 있던 남성은 사마의의 부름에 반응을 보였다.
공손찬은 자신을 지켜보는 사마의의 눈빛에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때 봤던 여자로군.”
“…….”
“정릉 그놈이 드디어 마음을 바꾸고 내게 가르침을 청했더냐?”
마치 자신이 뭐라도 된 듯 기고만장하게 뻗대는 태도.
지금도 마치 도사가 산속에서 수행하는 것처럼 정갈한 자세를 취한 공손찬의 모습에 사마의는 코웃음 쳤다.
“상대해줄 가치도 못 느끼겠네요.”
“…뭐라고?”
“빨리 끌고 나오세요.”
“예.”
사마의를 따르던 여러 부관은 명령을 받자마자 철창 안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가 우악스러운 손길로 공손찬을 잡아끌었다.
“이게 무슨 경박한 짓이냐! 이몸은 불로장생을 이룬 신선…!”
“와, 아직도 불로장생 타령을 하고 있을 줄이야.”
공손찬은 부관의 손에 붙들린 채 발버둥쳤으나 의미 없는 발버둥이었다.
과거 혼자 이민족 수십 명을 무찌른 백마장군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허약해진 모습.
사마의는 자신 앞에 무릎 꿇려진 공손찬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거 알아요? 황제 폐하께선 가끔 저조차도 예상 못한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녀는 마치 어떻게 해야 사람을 더욱 괴롭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과거 포락지형(炮烙之刑)을 만들어 냈다는 주왕이 이러한 모습이었을까.
자신이 대장군과 함께 북방으로 올라간 사이 착융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낸 사마의는 감탄사를 내뱉은 적이 있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당장 이 몸을 풀어주지 못할까!”
“…흐음, 그렇다면야 뭐.”
공손찬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지 못한 듯 크게 외쳤고, 그를 들은 사마의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빠악─!
“…?!”
“뭐 하고 있어요? 서둘러 옮기세요.”
“아, 알겠습니다.”
무언가를 휘둘러 공손찬을 기절시킨 사마의는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
부관은 의식을 잃은 공손찬을 바라보며 조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떠올렸다.
분명 부채를 쥐고 있지 않던 손으로 검을 검집째로 뽑아 기절시켰던가.
…군사(軍師)라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강한 모습에 주변 병사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