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95)
EP.495 뒷정리(8)
오늘도 간호를 빙자한 주변 사람의 감시를 받던 나는 정보원이 가져온 소식에 놀란 감정을 드러냈다.
“공손찬의 처형 날짜가 잡혔군.”
“응? 정말?”
마치 명절에 만난 할머니마냥 나한테 비싼 과일을 이것저것 먹이고 있던 여포는 궁금증을 드러내면서 내 곁에 딱 달라붙었다.
“진짜네. 심지어 대로변에서 처형을 집행한다는데?”
“으음….”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죽이려고 이러는 걸까.
이 시대의 처형식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때때로 있는 백성들의 유흥 거리라 봐도 손색이 없었다.
별다른 유흥 거리가 없는 고대 시대에서 누군가를 죽인다는 자극적인 행위가 사람을 불러모으지 않는다면 이상한 거겠지.
심지어 대로변에서 처형을 당하는 범죄자는 누가 봐도 죽어 마땅한 인물이 대부분이었기에 백성들은 오히려 온갖 잔혹한 광경을 보면서도 이를 환호하며 즐거워했다.
물론 정치적 이유로 누명을 써서 쓱싹 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아부, 아부부.”
“어쩔래? 보러 갈 거야?”
여포는 자기 품속에서 끊임없이 꼼지락거리는 여화를 달래주면서 내게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보러 가야겠지.”
애초에 황제 폐하께서 직접 참관하실 일정이니만큼 나도 같이 불려 갈 가능성이 컸다.
사실 이를 제외하더라도 공손찬의 최후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놈이 죽인 죄 없는 백성들만 몇 명인데.’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내며 유주를 지켜야 하는 놈이 칼끝을 이상한 쪽으로 돌려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그와 맞붙었던 원소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공손찬은 유주의 도시와 마을을 약탈하며 전쟁을 억지로 이어나갔다고.
이놈이 얼마나 많은 행패를 부렸는지, 현재 유주에 머무르는 백성들은 북방 이민족보다 공손찬 이놈을 더 혐오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공손찬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든 시체를 소금에 절여서 북방에 보내버릴 계획이지.
공손찬의 시체는 유주 백성들의 충성심을 얻고 치안이 안 좋은 틈을 타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놈들이 더욱 몸을 사리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내가 시체를 젓갈처럼 소금에 절여버리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나도 많이 달라지긴 했어.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공손찬의 시체가 얼마나 온전하게 남느냐는 것인데….
으음.
다른 곳은 몰라도 얼굴은 멀쩡히 남겨두라고 해야겠다.
웬 해골 하나를 가져다 두고 ‘이놈이 공손찬입니다!’라고 말해봤자 누가 알아보겠는가.
적어도 공손찬(이었던 것)이란 걸 알아볼 수 있어야 효과를 보겠지.
“주인님.”
“응? 아, 초선이구나.”
분명 어제도 만났는데, 어째서인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구나.
초선은 내가 바깥을 이리저리 나도는 동안 집안 내부의 일을 책임졌다.
집안에 있는 시종들을 지휘하며 손님을 맞이하고 청결을 유지하는 등의 일도 있지만, 최근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바로 아이들을 돌보는 거지.
낯가림이 심한 아이들을 여러 명 품속에 안은 채 돌아다니는 초선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어울렸다.
“…….”
“…….”
어느덧 돌을 넘기고 무럭무럭 자라난 서희는 초선의 품에 안긴 채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기묘할 정도로 조용한 건 제 엄마와 똑같구만.
보통 저 시기쯤 되면 말문이 트여서 아기가 이것저것 말한다던데….
이에 내가 살짝 아쉬운 기분을 느낄 무렵 서희는 내게 양팔을 뻗은 다음 앙증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바.”
“…….”
그 귀여운 모습을 본 나는 스르륵 다가가 초선에게서 서희를 받아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처음 품속에 안았을 때 불과 3kg도 넘기지 못했던 자그마한 아이는 어느샌가 살짝 묵직해진 상태였다.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다 보면 아주 예쁜 소녀가 되겠지.
거기서 시간이 더 지난다면 제 앞가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성인이 될 수 있을 테고, 따로 독립한 다음 운명의 짝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
두고 보자, 사위.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다.
나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을 사위에게 알 수 없는 분노를 불태웠다.
──────────
공손찬의 처형일이 찾아오자 나는 황제 폐하께서 보내신 전령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전령이 건넨 편지 안에는 황제가 직접 쓴 것이 분명한 글씨로 이리 적혀있었지.
───짐은 오늘 공손찬을 처리할 계획이지만, 그대는 몸이 불편하니 일정에 참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를 배려해서 굳이 억지로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슴 따뜻한 내용.
아마도 내가 죄수를 처형할 당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신 것이 틀림없었다.
특히 어느 황제 참칭자, 꿀물쟁이 같은 경우엔 살아있는 사람으로 뜨끈하게 데치기를 하시지 않았나.
나는 그때 사람이 극한의 고통을 느끼면 어떤 비명을 내지르는지 처음 알 수 있었다.
내가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채비를 갖추자 여포는 문 바깥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진짜 나갈 거야?”
“…어. 진짜 나갈 거야.”
아니, 옷 갈아입고 있는데 갑자기 쳐들어오네.
아무리 서로 이것저것 다 본 사이라지만 이럴 때는 많이 당혹스럽다.
“…….”
봐라.
지금 서여도 호위를 목적으로 내 근처에 떡하니 자리 잡은 상황인데 눈빛이 심상치 않다.
비록 본인은 안 그런 척하나, 직접 당하는 입장에선 그 의도조차 아주 잘 느껴지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다.
“으으…. 안 되는데….”
여포는 서여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위에서 아래로 쭉 스캔하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불만스럽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인짜, 안 되는데…….”
힐끔힐끔.
여포는 가면 갈수록 눈빛이 이상해지더니 살짝 음습한 표정으로 비슷한 말만 중얼거렸다.
너 뭔가 본래 목적을 잊은 것 같지 않냐?
여포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잊어버린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을 때 나는 재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었다.
“…….”
“아.”
그러자 서여와 여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는 게 개그였지만 말이야.
무슨 캣닢 냄새 맡은 고양이도 아니고 나만 봤다 하면 흐물흐물 늘어지네.
그를 지켜보던 나는 서여와 여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자. 후유증 때문에 집안에만 있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아.”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
“응?”
나는 자신만만한 여포의 태도에 물음표를 띄웠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가라, 우리 딸! 아빠를 못 움직이게 막아!”
“빠아─!”
찰싹!
“…….”
난 다리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감촉에 고개를 돌렸다.
“아부아!”
어느샌가 첫 걸음마를 떼고 앙증맞게 걸어 다니던 여화는 나를 보자마자 내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여포가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이유가 있었군.
나는 눈을 반짝이면서 헤실헤실 웃는 여화의 모습에 우뚝 굳어버렸다.
무척이나 가벼우면서도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무게.
“어때!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겠지?!”
“…그러네.”
비록 천하무쌍이라 불리는 여포였지만 나한테만큼은 수수깡처럼 이리저리 휘날리는 처지였다.
복숭아 시스터즈가 한꺼번에 몰려와도 꿋꿋이 버텨내던 강인한 육체?
내가 힘을 주면서 밀어내면 주르륵 밀려나더라고.
이게 그 상성 시스템인가.
당신이 하는 공격은 여포에게 수백 배 플러스 돼서 들어간다는 그런 거 말이야.
서여도 여포와 상황은 비슷했으니 머리를 굴리던 여포가 결국 새로운 대타를 부르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여포.
이 계획에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단다.
“우리 딸, 이제 말도 잘하네?”
“자라네!”
세상 그 무엇보다 무거웠던 억제기는 내가 손을 뻗기 무섭게 품속에 안겨들었다.
“어?!”
자신이 묶었던 족쇄가 한순간에 풀려버리자 여포는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진심으로 통할 거로 생각한 걸까.
이 순진한 소녀를 어찌해야 하나.
사실 효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나도 순간 마음이 약해져서 ‘집에 남을까…?’ 이런 생각도 했으니 말이다.
흔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이 고집을 부리면 가여운 부모는 식은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포만 하더라도 품속에서 날뛰던 여화에게 어퍼컷을 얻어맞았다는 전무후무한 경험을 하지 않았나.
하지만 내 사랑스러운 딸들은 어머니에게 가혹할지언정(?) 나한테는 따뜻한 아이들이었다.
“아빠 금방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이써!”
똑똑한 여화는 마치 내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예뻐라.”
“꺄르륵!”
이 몽실몽실한 볼따구 좀 보라지.
내가 아무리 지쳤어도 이 볼따구 한 방이면 바로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으으…. 이건 차별이야….”
나는 힘없이 중얼거리는 여포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피식 웃었다.
조만간 다른 아이들도 만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