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96)
EP.496 뒷정리(9)
여포와 여화의 귀여운 반항을 어렵지 않게 넘긴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손찬의 처형이 집행되는 장소에 도착했다.
웅성웅성….
내가 도착했을 때 대로변은 이미 수많은 백성이 모여 평소보다 훨씬 시끌벅적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공개 처형식이 있다는 소식이 낙양 전체에 일파만파로 퍼진 모양.
누군가의 처형식이라는 건 낙양에서 의외로 보기 드문 광경이었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심지어 그게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일정이라면 뭐….
평소 이런 것에 관심이 없더라도 호기심이 들겠지.
황제 폐하는 아직 자리에 도착하지 않은 듯 그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질서를 지켜라!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자는 즉결 처분이다!”
병사들은 이미 내가 도착하기 전부터 거리를 통제하며 혹시나 있을 사고에 대비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무장한 병사들이 무서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는데 그 어떤 백성이 통제에 따르지 않겠는가.
“아까부터 뒤에서 미는 놈 누구야! 죽고 싶냐?!”
“거 머리 좀 숙여보쇼! 아무것도 안 보이네!”
…아마도 따를 거라 믿는다.
“거기!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마라!”
“헉!”
자칫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경계선을 지키는 병사 외에도 거리를 돌아다니며 눈을 부라리는 병사도 있었으니 유혈 사태가 일어나진 않았다.
사실 병사들이 저렇게 예민한 것도 이해가 가긴 해.
안 그래도 많은 사람이 자주 돌아다니는 대로변에서 황제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만약 신변 호위에 문제가 생겨 아주 자그마한 사고라도 일어나는 순간 엄청난 일이 벌어질 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금군들은 대규모로 교체, 또 그를 지휘하는 부관과 장수들도 한직으로 발령나면서 반쯤 좌천당하겠지.
아무리 게으른 인물이라도 자기 밥그릇이 걸린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법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 경계심이 내가 자리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더욱 올라간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고….
“황제 폐하의 행차시다──!! 전부 길을 비켜라──!!”
…이윽고 폐하께서 도착하셨을 때는 바짝 긴장해 식은땀까지 흘려댔다.
“…….”
숨도 제대로 안 쉬고 눈도 안 깜빡이는 건 너무 과하지 않냐.
그러다 죽는다.
숨 쉬어, 숨.
──────────
“화현(化賢)?”
가벼운 걸음걸이로 마차에서 내린 황제는 나를 보자마자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짐이 이번 일정은 참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무리 그렇다고 하신들, 폐하께서 직접 움직이시는 공식적인 행사에 국서가 어찌 불참할 수 있겠습니까.”
여성의 정치 활동이 엄청나게 제한당했던 본래 역사에서도 황제나 왕의 부인쯤 되면 얼굴을 자주 비춰야만 했다.
한해에도 여러 번 열리는 국가의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고, 궁에서 일하는 모든 고위 관료의 부인들을 감독하기도 했으며,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아예 나라를 집어삼키기도 했다.
본래 역사에서도 이럴진대 수상할 정도로 남녀의 위치가 평등한 이 세계에선 어떻겠는가.
아주 그냥 황실에서 뭐가 일어났다 하면 안 끼는 곳이 없었지.
폐하께서 하늘에 제사를 올린다거나 정기적인 황실 연회가 열릴 때에는 꼭 내가 이를 주관해야 했다.
그러니까 내 허락이 없으면 제사나 잔치에도 참여를 못한다는 뜻.
정치 활동에서 다른 사람들과 인맥을 다지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지는 자세히 설명 안 해도 알 터.
그냥 어느 놈이 마음에 안 들어 기수 열외 시키고 싶다면 넌 앞으로 황실 행사에 참여 못한다며 엉덩이를 걷어차면 됐다.
‘주인님, 오늘 행사에도 그 인물은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부탁한다, 초선.’
‘알겠습니다.’
실제로 이 방법을 쓴 적이 있었고 말이야.
이게 진짜 효과가 어마어마해서 아무리 콧대 높은 놈이라도 금방 고분고분해지는 상황을 만들었다.
근데 이런 조치를 할 정도면 나한테 찍혀도 제대로 찍혔다는 뜻이라 때가 너무 늦은 뒤였지.
안 그래도 내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이는 황제 폐하께서 나한테 찍힌 관료를 얌전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금방 그 관료의 온갖 말꼬투리를 잡으시면서 재산을 압수하고 신분을 강등시키던데….
어우, 보는 내가 다 무서워지더라.
또 나는 이를 제외하고도 궁에서 일하는 고위 관료의 가족이 문제를 일으키진 않는지 계속해서 감시했다.
‘내 부인이 누구인지 알아?! 내가 말만 하면 너희 전부 아무도 모르게…!’
‘그거 정말 궁금하네. 네 부인이 누군지 좀 알려줘라.’
‘…헉?!’
자기 부인이 누군지 아냐며 행패를 부리던 남성에게 몰래 찾아가 정말 궁금하다며 질문도 좀 해주고,
‘얼씨구. 관직을 사고파는 놈이 아직도 있었네.’
‘부,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안 돼.’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뒷돈을 받아먹는 가문에 찾아가 재산을 압수하고 모든 걸 엎어버리기도 했다.
말 그대로 무소불위(無所不爲,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의 권력이 뭔지 톡톡히 체험할 수 있더라.
이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맛을 보고 불로초다 뭐다 하면서 타락하는 거겠지.
근데 나는 이 권력의 힘에 취하기보단 이를 휘두르기 위해서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는 게 진짜 귀찮았다.
생각해봐라.
황실에서 주최하는 국가 행사에 들어갈 모든 물자와 인원들을 확인하고, 내부에선 문제를 일으키는 놈이 없는지 감시하며, 거기에 더해 대장군 업무까지 병행해야 한다.
오죽하면 마법이 풀린 집요정마냥 자유의 몸이라 말하면서 일을 내버려두고 도주한 적이 있을 지경.
아, 그리고 악마의 피를 마시지 않은 어느 오크처럼 난 노예가 되지 않는다 생각한 적도 있었지.
내 엄청난 정치적 입지를 감안하더라도 분명 여러 뒷말이 나올 무책임한 행동이었지만, 이를 대놓고 언급하며 나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 눈치 없는 놈들은 황제 폐하께서 쓱싹 처리해버리셨다.
…여기선 ‘고마워요 황제맨!’이라 외쳐야 하는 타이밍인가?
하여튼 내가 일을 하기 싫을 때는 진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걸 폐하께서도 알고 계셨기에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편지를 보내신 것이다.
“흐으음….”
봐라.
지금도 살짝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시지 않나.
“그대가 그리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한동안 나를 바라보던 폐하께서는 이윽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짐이 신경 써야 할 점이라도 있느냐?”
역시 눈치가 엄청나게 뛰어나시다니까.
황제 폐하께선 내 의도를 꿰뚫어 보시고 요청 사항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폐하의 질문에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에 형을 집행하는 죄수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예. 그의 시체를 북방으로 보내 오랫동안 고통받았던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려 하니, 되도록 얼굴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호오….”
내 요청을 들은 폐하께서 곧장 고개를 끄덕이셨다.
“좋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감사합니다, 폐하.”
“정말 어렵지 않은 일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황제는 평소와 똑같은 표정으로 제 옆통수를 톡톡 두드렸다.
“머리는 잘못 건드리면 정말 순식간에 죽어버려서 처음부터 손대지 않을 계획이었느니라.”
“…….”
뭔가 되게 많이 건드려보신 듯한 말투이신데.
처음 나와 만났을 때 눈만 마주쳐도 벌벌 떨던 가련한 소녀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하태후 아줌마, 따님께서 당신의 지독한 성격을 아주 제대로 물려받은 것 같네요.
내가 세월의 흐름에 무상함을 느낄 무렵 폐하께선 담담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지. 데려오거라.”
“예!”
황제를 바로 곁에서 보필하던 고위 관료는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재빨리 움직였다.
“…….”
그렇게 잠깐 시간이 흐르자, 낯익은 외모의 소녀가 병사들을 대동한 채 누군가를 끌고 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부관에게 명령해 공손찬을 호송하는 사마의의 모습.
“…흥.”
꼬꼬마 군사는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새침한 반응을 보였다.
이제 없으면 섭섭할 지경이라니까.
픽 웃어 보인 나는 무언가 열심히 준비하는 병사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다음 폐하께 질문을 던졌다.
“저 역적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벌을 내릴 생각이십니까?”
“아, 저놈의 살을 한 점 한 점 포 떠버릴 계획이다.”
응?
그거 능지형(陵遲刑)이잖아.
마치 회를 뜨는 것처럼 죄인을 최대한 오래 살려두며 살점을 하나씩 도려내는 형벌.
진짜 작정하고 회를 뜰 경우 살점을 수천 번도 저며낸다는 끔찍한 사형 방법이다.
사람을 산 채로 끓여서 죽인다는 팽형과 비교했을 때도 우위를 비교할 수 없을 지경이지.
오죽하면 조선에서도 이건 좀 아니라면서 능지형을 사람의 사지를 찢어버리는 거열형으로 부드럽게(?) 대체했다.
능지형이 구체적으로 언제 등장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적어도 수백 년 뒤에 나타날 형벌이란 건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시대를 앞서 가길 원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착융 그놈은 인내심을 기른다는 약재를 섭취하고도 300번밖에 못 버텼지.”
“…….”
“적어도 하루는 살아있길 바랬거늘, 참으로 아쉽지 않나.”
폐하께선 무서우리만치 차분한 기색으로 말씀하셨다.
“저놈은 우습게도 백마장군이라 불린 모양이니 한낱 도적놈보단 오래 버텨주리라 믿는다.”
사람을 데치는 것 다음에는 회로 만드는 건가.
나는 눈앞에서 인체의 신비전이 벌어지려 하자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