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97)
EP.497 뒷정리(10)
공손찬의 최후는 잔혹하단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저며내는 소리와 대로변에 울려 퍼지는 비명.
땅바닥에 넘어져서 살갗이 조금만 쓸려나가도 눈물을 찔끔 흘리는 게 사람인데, 날카로운 도구로 살이 잘려나가는 고통은 어떻겠는가.
으아아악──!!
온갖 전쟁터를 진전하며 수없이 많은 부상을 입었던 역전의 용사라도 능지형에는 별수 없는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얼굴을 제외하면 멀쩡한 곳 하나 없이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공손찬의 모습.
“…어우, 더는 못 보겠군.”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저런 꼴이 된 건지…. 쯧쯧.”
처형식을 구경하러 왔던 백성은 형벌이 어찌 진행되는지를 보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죽여라, 죽여!”
“오른쪽 팔뚝이 멀쩡한데 다음에는 거길 베어버리라고!”
자극적인 것에 굶주렸던 몇몇 특이한 사람들은 오히려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말이야.
어차피 죽어도 싼 놈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피를 보고 싶은 걸까.
역시 세상에는 참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야. 생각보다 오래 버티네.”
그렇게 능지형이 시작되고 한 시간이 지나갔을 무렵 여포가 감탄했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릉, 저것 봐라. 손가락이랑 발가락 가죽을 아주 정성스럽게 벗겨 놨어.”
“어어…. 그래….”
손톱 밑에 생기는 거스러미를 잘못 만져서 생살까지 쭉 찢어져도 고통스러운데, 저기는 아예 근육까지 싹 다 드러났구나.
이걸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공손찬의 손톱과 발톱은 진작 뽑혀서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
공손찬에게 달라붙은 황실의 고문 기술자들은 아주 신중한 표정으로 칼을 움직였다.
사람을 너무 깊게 베어서 피를 많이 흘리게 하지 않는 기술.
고문 기술자가 저리 필사적으로 일할 이유가 있나 싶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능지형을 집행할 때 죄수가 너무 빨리 죽으면 그를 집행한 기술자는 일을 제대로 못했다면서 처벌받았던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하긴, 고문 기술자가 고문을 못하면 고용할 이유가 없긴 하지.
“으음….”
나는 이번에도 형벌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만 대충 살펴보고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최근 식사를 많이 하고 다녀서 위장에 늘 뭐가 들어있는 상황인데, 저렇게 보기만 해도 속이 느글느글해지는 고문 광경을 자세히 살펴서 뭐 하겠나.
자칫 잘못하면 음식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다시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최근 내 몸이 나빠지지 않는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 아냐.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지갯빛 무언가를 구와악 쏟아낸다면 농담이 아니라 몇 주일은 집에서 못 나오겠지.
그러니까 자신이 집 밖에 나가지 말라 하지 않았냐면서 빼애앵 울부짖을 여포, 시종들을 시켜 바깥에서 오는 모든 손님을 물릴 초선, 내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온몸으로 가로막을 서여 등등….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며 딴청을 부릴 이유는 충분했다.
“…….”
자리에 앉은 채 잠깐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생각했다.
저기 하늘 한가운데 있는 큰 구름이 마치 고래를 닮은 것 같다고.
──────────
“슬슬 날이 저물어가는군.”
“…그렇습니다, 폐하.”
난 옆에 있던 황제의 말에 속으로 흠칫 놀라면서 대답했다.
배가 부르고 날씨도 따뜻하겠다 잠깐 잠이 든 것이라곤 절대 말 못하지.
…이미 들켰을 확률이 크지만 말이야.
나는 폐하의 뜨뜻미지근한 시선을 모른 척하면서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이걸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공손찬의 형벌 집행식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착융에게 인내심을 기르는 약재…. 그러니까 고통에 의한 쇼크사를 방지하는 약을 먹인 폐하께선 이번에도 그 약을 잊지 않고 공손찬한테 사용했지.
또 하염없이 살만 저며내지 않고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기를 기다렸다가 그곳을 또다시 도려내는 철저한 모습도 보였다.
그 결과 공손찬은 무려 몇 시간 동안이나 칼질을 버티며 죽지 않는데 성공했지.
도대체 그런 이상한 약을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모르겠고, 저런 발상은 대체 어떻게 생각하신 건지도 모르겠다만 효과 하나는 끝내준다는 걸 알겠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한계는 있는 법.
“그으윽….”
제아무리 고통에 의한 쇼크사를 막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렸다 한들 온몸이 저며진 공손찬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과다 출혈로 죽는 게 먼저일까.
아니면 상처 감염으로 죽는 게 먼저일까.
원술이 당했던 데치기 형벌도 이 경우와 상당히 비슷할 터.
끓는 물에 그를 푹 익히는 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중간마다 원술을 꺼내면서 고통에 몸부림치게 하는 시간은 상당히 길었다.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을 정도로 익혀버리고, 그렇게 뜨끈해진 꿀물쟁이를 밧줄로 꺼내 30분 정도 허공에 매달아 놓으면서 몸 식히기를 계속 반복한 것.
그때 원술이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혀 보였던 추태는….
으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사람이 위와 아래로 배출할 수 있는 액체를 전부 쏟아낸 것이 상당히 역겨웠지.
현재 공손찬의 모습도 그와 다를 바 없었으니 몇 시간에 걸친 고문이 드디어 끝을 보이는 듯했다.
“1,200번은 버텼군.”
그때 근처에 있던 황제가 심상치 않은 말을 내뱉었다.
뭘 1,200번을 버텨?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과연 백마장군이라 불렸던 이유가 있었구나.”
내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폐하께선 만족스럽다는 기색을 보였다.
“형을 집행 받는 죄수가 이리 오래 살아남은 적은 처음이니라.”
황제 폐하께서 만족스러운 기색을 보이자 형을 집행하던 고문 기술자들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여기서 더 도려내자면 도려낼 수 있겠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 같군.”
“…….”
“이제 그대의 부탁을 들어줄 때가 되었구나.”
“…폐하?”
내 부탁을 들어준다니?
내가 황제한테 무슨 말을 했던가?
그리 말한 황제는 고개를 살짝 돌려 자신을 보좌하던 고위 관료에게 명령을 내렸다.
“항아리와 소금을 가져오도록.”
“…….”
“저 죄수를 절여서 죽더라도 시체가 썩지 않게 보존하겠다.”
세상에.
안 그래도 온몸이 저며진 사람한테 소금까지 묻히겠다고?
소금이 상처에 닿으면 얼마나 아픈지 아는 사람은 알 터.
내가 폐하의 설명에 경악한 사이 고위 관료는 혹여나 불똥이 튀지 않게 재빨리 움직이면서 명령을 그대로 수행했다.
황제는 멀뚱멀뚱 자리에 서 있는 고문 기술자들에게 말했다.
“뭐 하고 있느냐? 어서 죄수를 항아리 안에 집어넣고 소금을 가득 채우거라.”
“아, 알겠습니다!”
고문을 업으로 삼는 기술자들도 폐하의 아이디어에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일 지경.
끄아아아….
그렇게 완성된 공손찬의 모습은 누가 봐도 참혹한 것이었다.
현대에 그런 장난감이 있지 않나.
통에 장난감 칼을 박아넣으면 일정 확률로 안에 있던 인형이 푱 튀어나오는 해적 장난감.
“…….”
유일하게 항아리 바깥으로 나온 머리는 위쪽을 향해 있고, 커다랗게 벌린 입에선 미약한 비명소리만을 흘리는 모습에 나는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
“우와….”
오죽하면 근처에서 이를 지켜보던 여포가 감탄사를 내뱉었겠는가.
“…….”
서여는 여전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느라 공손찬한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 집중력에는 감탄이 나오는구나.
그때 폐하께서 말씀하셨다.
“저 죄수의 끝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고민했는데, 그대 덕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느니라.”
“…그렇습니까.”
옛날 주나라를 다스리던 왕과 그의 애첩은 죄 없는 사람을 무슨 방법으로 고통스럽게 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특히 가족을 죽이고 인육으로 만든 음식을 억지로 먹인 다음 그를 비웃었단 일화는 정말 지독했지.
말해 뭣하겠나.
그 악독한 연놈들이 바로 훗날 자주 언급되는 주왕과 달기다.
문제는 지금 광경이 딱 주왕과 달기의 모습을 닮았다는 걸까.
황제의 배우자가 이번에는 이렇게 죽여보자면서 속삭이고, 그 의견을 들은 황제가 좋다고 외치며 말했던 그대로 시행하는 상황.
“…….”
아니, 근데 나는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시체를 하북으로 보내기 위해 얼굴은 훼손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도대체 어떤 회로를 거치면 ‘저놈의 온몸을 회 치고 소금을 가득 채운 항아리에 집어넣자!’로 변질되는 걸까.
저 결론이 나기까지 머릿속에서 몇 번의 드리프트가 있었을지 예상이 안 가네.
이걸 예상할 수 있으면 그 인물은 천재가 아니라 아예 미래를 보고 온 회귀자나 예언자일 게 분명했다.
“꺼어….”
그로부터 정확히 삼십 분 후, 나는 숨이 끊어진 공손찬이 항아리 속에 완전히 밀어 넣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제베야.
너 진짜 나한테 빚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