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98)
EP.498 휴식(1)
후세에 참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공손찬의 잔혹한 처형이 지나가자 내가 할 일은 전부 끝났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아예 없는 건 아니네.
지나가던 신선 양반께서 내게 의뢰한 황충 무리 구제.
현재 그를 위해서 닭, 오리 부대를 양성하고 있지 않나.
전국에 포고문을 붙이고 수많은 사람과 그보다 더욱 많은 닭과 오리를 모아서 본격적으로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상태였다.
누가 알 여러 개 낳는 조류 아니랄까 봐 수가 엄청나게 불어나더라.
물론 이들이 완전히 성장하고 성인 남성 손바닥만 한 황충을 잡아먹을 수 있을 때까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터.
하지만 황충 무리가 몰려오기까지 시간이 남은 것도 마찬가지였으니 우리는 차분히 미래를 대비하면 됐다.
‘결국 저희한테 일을 떠넘기신다는 이야기네요?’
‘어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할 법한 말을 내뱉는 꼬꼬마 군사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조금은 일하잖아.’
‘…….’
내 말을 들은 사마의는 ‘이 뻔뻔한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표정을 보자마자 늘 나를 감싸고 도는 제갈량 뒤에 슬쩍 숨었다.
숨었다고 한들 덩치 차이가 많이 나서 내 모습이 대놓고 드러난 게 문제지만.
‘군주는 위에서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역할이지요.’
하지만 제갈량은 내게 뭐라 하기는커녕 내 의도를 그대로 따라 사마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인물에게 자잘한 업무까지 처리하라 말하는 것은 범에게 고양이 흉내를 내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겠습니까?’
‘…아, 네. 그러시겠죠.’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아주 질린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굳이 필요없는 일까지 처리하다가 강제로 휴식을 당한다는 게 놀랍네요.’
‘…….’
자존심 강한 두 군사가 또 말싸움을 시작하자 방통은 여느 때와 똑같이 스리슬쩍 모습을 감췄지.
하여튼 그렇고 그런 일이 있던 이후 대부분의 공무를 떠넘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무엇이냐.
“부아!”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육아에 시달리고 있었다.
기어 다니는 것조차 못해 자리에 얌전히 누워있던 과거와 달리,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은 잠깐 눈을 떼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있었다.
“여화야! 어디 가!”
“아무아!”
봐라.
지금도 그새를 못 참고 이리저리 뽈뽈거리고 있지 않나.
거기서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이 뭐냐면 제 어머니를 닮아 운동신경이 탁월한 아이가 많다는 걸까.
오도도도.
여화는 지금 아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움직이는 상태였다.
“제발 얌전히 좀 있어줘─!”
“꺄아─!”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제 자녀에게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여포는 질질 끌려다니기 바빴다.
여화는 지금 여포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인식하는 게 아닐까.
저 즐거운 표정을 보면 아마 맞는 것 같은데.
또 특이한 점은 여포처럼 제 아이에게 시달리는 여인이 적지 않다는 것.
“…….”
“우아!”
장비는 땅바닥에 풀썩 엎어진 채 제 딸인 장하와 관우의 딸인 관평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분명 내가 남만 정벌을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저러지 않았나?
그때 땅바닥에 엎어져 있던 장비가 누군가를 바라보더니 툭 중얼거렸다.
“운장 언니…. 배신자….”
“…….”
자기 아이가 장비를 괴롭힌 것에 대해서 딱히 할 말이 없는 모양인지 관우는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이겨따!”
“잉다!”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모습이 귀엽구나.
“노라조!”
“라조!”
“…?!”
만인지적 중 한 명, 장비를 두 번이나 쓰러트린다는 어마어마한 업적을 세운 두 아이가 곧이어 관우에게 달라붙을 무렵 내 근처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생각보다 소란스럽군.”
“…조조?”
도대체 언제 찾아온 거지.
“당당히 문을 열고 찾아왔건만 눈치채지 못한 것이냐?”
내 의아한 표정을 본 조조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그리 무방비하게 지내다간 콱 잡아먹힐지도 모르느니라.”
“…잡아먹힌다니.”
나는 평소와 같이 장난을 치는 조조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보자마자 성희롱이냐.
이런 면모는 아이를 낳아도 영 달라지지 않네.
“으음? 본인이 어떻게 잡아먹힐지 감을 잡지 못한 것 같군.”
그리 말한 조조가 품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우아?”
제 어머니와 다르게 무척 순진한 성격을 지닌 조앙은 조조를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아마 자신을 왜 내려놓았느냐는 물음이 아닐까.
그 귀여운 모습을 본 조조가 조앙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힘들어 보이는 아빠가 있구나.”
“…아바!”
“우리 딸이 꼭 껴안아줘서 힘이 나게 해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
“우웅?”
아직 배운 게 별로 없던 두 살짜리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복잡한 말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바!”
“…응?”
하지만 눈치가 빠른 조앙은 어머니가 무엇을 원하는지 본능적으로 눈치챈 모양.
“아바아바!”
오도도도!
아니, 저게 무슨.
나는 아예 뜀박질하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다가오는 조앙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햐아─!”
“여화! 그만 뛰어다니라니까!”
지금 근처에서 신나게 날뛰고 있는 여화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속도구나.
내가 무럭무럭 성장한 조앙을 확인하고 안아 올릴 준비를 할 때 이변이 일어났다.
“아부?”
나한테 오도도도 다가오던 조앙이 갑자기 앞으로 기우뚱 넘어지기 시작한 것.
“?!”
아이가 중심을 잃은 걸 확인한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 조앙을 휙 낚아챘다.
“우아!”
“어우, 큰일 날 뻔했네.”
난 이게 놀이인 줄 알고 꺄르륵 좋아하는 아이를 번쩍 들어 다친 곳이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본 다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 품에서 내려온지 얼마나 됐다고 넘어지는 거냐.
아이는 정말 이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자기 혼자 다치려는 경우가 많았다.
날 보고 혼자 깡총거리며 좋아하다가 난데없이 뒤로 넘어지려 한다거나, 침대 위에서 앉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갑자기 앞구르기를 하면서 밑으로 굴러떨어지려 하지 않나….
아이는 부모 입장에서 식겁할 별 해괴한 일을 자주 일으키면서 아빠와 엄마의 반사 신경을 테스트했다.
“호오?”
불과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파악한 조조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버지가 된 이들은 가끔 놀라운 능력을 선보인다더니 정말이었구나.”
“…….”
“그거 아느냐? 그대가 조금 전 보여줬던 속도는 나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야 온 신경을 아이한테 집중하니까 그렇지.
아빠라 하면 보통 일을 끝마치고 돌아와 소파에 누워 축 늘어지는 인상이 강하지만, 그러면서도 주변 상황이 어찌 흘러가는지 판단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이를 보고 흔히 ‘아빠 안 잔다.’라 표현하던가.
재미없는 뉴스 채널을 바꾸기 위해 리모콘을 집으려는 순간 자는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이다.
분명 공포 게임에서 이와 비슷한 연출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내 감상평이 어찌 됐든, 아버지의 이런 면모는 분명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라 생각한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자기 가족한테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람이 더욱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나라고 해서 예외일 리 없었다.
……사실 과학적인 이유로는 렘수면 상태에 빠져 주변 소리가 변화하면 깨는 거라지만 그러면 로망이 없잖아.
생각하고 보니 아깝네.
이곳이 현대였다면 나도 ‘아빠 안 잔다.’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내게 안긴 상태로 높이 떠있던 조앙이 힘차게 말했다.
“노파!”
“응? 높다고?”
“부바바바!”
아기가 2살쯤 되면 단어를 말할 수 있다던데 아무래도 그게 사실인 모양.
비록 발음은 부정확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귀여워서 좋기만 하네.
아기는 계속 이렇게 옹알이를 하며 자기가 사는 곳에 걸맞게 성대가 발달한다던데, 이런 요소가 훗날 자연스러운 억양 차이를 만든다고 들었다.
“…….”
서여는 주변이 이렇게 소란스러웠음에도 서희를 품에 꼭 껴안은 채 담담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서희도 자기 어머니처럼 날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단 것.
로봇이 하나에서 둘이 됐네.
엄마를 닮아도 너무 닮은 거 아니냐.
“으게엑!”
우당탕!
조앙을 품은 내가 엄마 로봇과 아기 로봇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 빔을 맞고 있을 때 주변이 한바탕 엎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꺄아! 꺄아아!”
“거, 거기 서….”
그 천하무쌍이 아이 한 명한테 쩔쩔매고 있네.
이럴 때는 서희가 제 어머니를 닮아 얌전하다는 게 다행일 따름이었다.
여화도 자기 어머니를 닮아 저리 활발한 거겠지만 말이야.
“주인님, 요깃거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래. 고맙다.”
어떻게 보면 이게 바로 평화롭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는 초선한테 간식을 받아들며 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