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01)
EP.501 황충(蝗蟲)(1)
내가 가족들과 같이 육아에 전념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나는 드디어 그때가 왔음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어느덧 한여름의 무더운 더위가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때.
곡식이 서서히 영글어가고 농부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부지런해지는 시기.
일 년의 노력이 보답 받는 추수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시기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지.
“하북에 올라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요?”
“그래.”
“흐음….”
보랏빛 머리카락을 지닌 군사는 내 망설임 없는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사마의는 제갈량과 달리 가을에 황충(蝗蟲)이 들이닥친다는 정보를 몰랐던가?
사마의가 이 정보를 모른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지.
조만간 황충이 들이닥친다는 걸 모르던 그녀는 내가 난데없이 오리와 닭을 대량으로 사육한다는 소식에 이런 반응을 보였었다.
‘…갑자기 새가 귀여워 보이기라도 하신 건가요?’
‘응? 솔직하게 말하면 귀엽긴 하지.’
‘아, 네….’
내가 그리 말하니까 더 이상 묻지 않더라고.
아마 닭과 오리들은 나름대로 사용처가 있으니까 딱히 터치하지 않은 듯한데, 그렇다 치더라도 이 엄청난 기행을 그냥 넘어갈 줄은 몰랐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나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 걸까.
지금에서야 이 사실을 눈치챈 나는 뒤늦게 오해를 풀 겸 사마의에게 입을 열었다.
“올해 가을, 황충(蝗蟲)들이 하북을 덮칠 거야.”
“네?”
“나는 그 자연재해를 막으러 가야만 해.”
내 폭탄 발언을 들은 꼬꼬마 군사가 눈을 끔뻑거렸다.
“아, 그렇다면 뜬금없이 닭과 오리들을 사육한 이유도….”
“그래. 그놈들한테 대비하기 위해서지.”
나는 척하면 척이라는 듯 내 의도를 단번에 꿰뚫어 본 사마의한테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똑똑하다니까.
“저는 평소처럼 기행을 일삼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설마 그런 이유가 있을 줄 몰랐다면서 놀라움을 드러낸 사마의는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를 들은 나는 황당함을 드러냈다.
“…기행이라기엔 규모가 너무 크지 않나?”
“아뇨, 닭과 오리들을 기르는 정도는 오히려 괜찮은 수준인데요?”
사마의가 평소와 똑같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국에 자기 동상을 세우겠답시고 백성 수십만을 죽인 폭군이나, 단순히 여자 눈에 들기 위해서 국고를 탕진하던 왕이 있었는데 그 정도야 귀엽기만 하죠.”
“…….”
첫 번째는 제 권위를 드러내겠답시고 대규모 토목 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하며 수많은 백성을 죽여대던 진시황(秦始皇).
두 번째는 중국 4대 요녀 중 한 명인 포사(褒姒)의 눈에 들기 위해서 비단을 마구잡이로 찢어대다가 국고를 탕진했다는 유왕(幽王)이다.
“뒷수습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 그저 지켜보자는 마음으로 얌전히 있었던 거죠.”
“그래?”
“인력이나 사료값 정도야 다른 곳으로도 빠져나가고 있는데요 뭘.”
오리를 이용한 농법도 현대 시대까지 가야 나타난 개념이니 이 시대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한 행동을 기행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마의는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면서 지켜봤다는 뜻이구나.
어쩜 이리 기특할까.
난 퉁명스러운 어조 뒤에 감춰져 있는 상냥한 마음씨를 눈치채고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귀엽단 뜻이지?”
“…네?”
“왜? 조금 전에 내가 한 기행은 오히려 귀여운 편이라면서.”
“아, 아닌데요! 대체 어떻게 하면 그리 알아듣는 건가요?!”
사마의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부끄러운 티를 팍팍 내면서 대답했다.
한동안 씩씩거리던 꼬꼬마 군사는 숨을 한 차례 고르더니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후우…. 그나저나 이번 가을에 황충(蝗蟲)이 온다는 정보를 어떻게 얻으신 건가요?”
“믿어줄 수 있겠어?”
내가 슬며시 밑밥을 깔자 사마의는 제 눈가를 살며시 좁혔다.
“제가 못 믿을 이유가 있나요? 말해보기나 하시죠.”
“그렇다면야.”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지나가던 신선이 알려줬어.”
“…네?”
“신선이 알려줬다고.”
“…….”
내 말을 들은 사마의가 곧장 가자미눈을 떴다.
“…장난치는 게 아니고, 진짜로요?”
“그래. 진짜로.”
“하아….”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챈 사마의는 곧장 한숨을 내뱉었다.
“순진한 건 알고 있었는데 이리 쉽게 넘어갈 줄이야….”
“응?”
어째 사기꾼에게 넘어간 순진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이네.
으음….
확실히 입장을 뒤바꿔서 생각해봐도 그럴 만하다.
나만 하더라도 웬 무당한테서 흉흉한 일이 있을 거란 말을 듣고 부랴부랴 움직이는 가족이 있다면 저런 눈빛을 지을 것 같긴 해.
아니, 근데 이번에는 진짜라니까?
막 순간이동도 하고 그랬단 말이야.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죠.”
“진짠데.”
“네, 알겠어요.”
내가 짐짓 억울하단 표정을 지어 보이자 사마의는 다 이해한다는 기색을 보였다.
“황충 무리가 창궐한다는 소식이 사실인지부터 살펴보는 게 맞겠죠.”
“…….”
“일단 구체적인 목적은 알리지 마시고, 잠깐 할 일이 있다면서 오리들을 하북으로 데려가세요.”
사마의는 위풍당당하게 나섰다가 정작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만큼 창피한 상황이 없다고 말했다.
“그 이후에는…. 네. 임기응변으로 대응해볼까요.”
상당히 현실주의적 면모가 강한 사마의는 내가 웬 사기꾼한테 속았다는 걸 전제로 한 듯 평온한 반응을 보였다.
아마 거짓말인 게 확실해지면 나한테 사기를 친 인물을 어떻게든 찾아내겠지.
두고 보자.
너도 조만간 신선의 말이 옳았다는 걸 체험하게 될 거야.
──────────
내가 곧 하북으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알겠습니다.”
“좋아! 드디어 그때가 왔네!”
나와 함께 신선을 마주한 적이 있었던 서여와 여포는 내 말을 듣자마자 맡겨만 달라는 듯 호위를 자처했다.
“우에?”
“하북이라…. 예, 저는 대장군을 따를 뿐입니다.”
세월이 흐른 끝에 드디어 염원하던 아기를 낳은 유비는 담담히 나를 따르겠다고 말했지.
“우아아!”
아, 참고로 유비가 낳은 아기 이름은 유환(劉桓)으로 정했다.
성 유(劉)에 굳셀 환(桓).
척 봐도 어떠한 뜻으로 지은 걸까 알 수 있지 않나.
솔직히 굳세다를 표현할 때는 굳셀 건(健)이나 굳셀 강(强)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만약, 정말 만약의 경우가 찾아온다 한들 피휘로 인해 고통받을 백성은 없을 것이다.
하여간 핏줄이 고귀하다 보면 신경 쓸 게 너무 많다니까.
본래 역사대로 유비의 양자였던 유봉(劉封)이나 유선(劉禪)으로 지을까 생각도 해봤다만, 아무래도 조금 그렇지.
유봉은 본래 역사에서 군악대 하나 때문에 맹달과 다툴 정도로 문제가 있었던 인물이다.
그 덕분에 만인지적 관우를 아예 구원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이는 유비의 심기를 제대로 거슬러 양자임에도 목이 뎅겅 날아갔지.
구원을 하려다가 실패한 것과 아예 구원조차 하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지 않나.
안 그래도 후계자 문제 때문에 이래저래 말도 많은 상황에서 유비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하는 일까지 저질렀으니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흔히 관대하다고 알려진 유비도 신하가 선을 넘으면 거리낌 없이 처형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그리고 유선 같은 경우에는….
어….
자세히 말할 필요가 있나?
애가 착하긴 한데, 정말 그것뿐이라는 게 문제지.
유선이 황호(黃皓)란 내시 놈한테 이리저리 휘둘리던 모습은 참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안겨줬었다.
특히 위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황호가 별일이 없을 거란 점괘를 전해주자 그를 믿고 방비를 소홀히 했다는 건 할 말이 없지.
결국 강유가 열심히 지탱하던 촉나라는 등산왕에게 폭삭 멸망.
유선은 삼국지를 읽은 독자에게 현대 시대까지 욕을 줄창 얻어먹으면서 불로장생했다.
나라고 해서 유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이 이름을 붙이는 건 살짝 꺼려졌거든.
그 결과 유비가 낳은 아이의 이름은 유환(劉桓)으로 정해졌다.
여기에 관평과 장하까지 합치면 피치 시스터즈 2세가 완성되는 거지.
“우아!”
“우아아!”
나는 유환에게 관심을 보이는 쪼꼬미들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 곳에만 있으니 심심하던 참이었어! 가자!”
“…익덕, 바깥에선 예의를 지켜라.”
하여튼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처럼 관우와 장비도 곧장 나와 유비한테 따라붙었고,
“때가 된 것인지요?”
“그래.”
“그렇다면 신(臣) 제갈량,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오리 부대의 총책임자인 제갈량도 나를 따라왔다.
…뭔가 오리 부대의 책임자라 하니 모양새가 안 서네.
“또 저만 두고 이야기 나누셨나요…?”
“…….”
“으으. 역시 저는 쓸모없는….”
“잠깐만, 설명해줄 테니 진정해.”
나는 금방 풀이 죽으려는 방통을 달래며 무엇을 하려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다음부터는 전부 한곳에 모은 다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