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05)
EP.505 황충(蝗蟲)(5)
꼬꼬마 군사들과 함께 정보를 나누면서 행동 방침을 결정한 나는 곧장 원소와 대화를 나눴다.
저 멀리 귀상국에서 대규모 메뚜기떼가 일어났다는 소식.
내게 정보를 전달받은 원소가 드물게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외국에서 대규모 황충 무리가 나타났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
매우 뛰어난 정치적 감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선 원소는 내가 어째서 오리와 닭들을 대량으로 끌고 왔는지 그제서야 눈치챈 듯했다.
“뭐, 그 메뚜기떼가 국경을 넘지 못하고 사그라질 가능성도 있겠지만….”
나는 원소를 바라보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법.”
“…….”
“내가 그대에게 이 정보를 알려주는 이유가 뭔지, 대충 짐작이 가나?”
단순하게 말해서 도와달라는 뜻이지.
하북을 오랫동안 다스리며 제 영향력을 키워왔던 원소라면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이 제일 위험하고, 이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주는 행동 지침들.
멍청한 수뇌부라면 커다란 위협이 찾아왔을 때도 제 이익을 챙기기 위해 서로 아귀다툼만 벌이다가 다 같이 폭삭 망했겠지.
황제와 십상시가 사이좋게 매관매직을 하던 몇십 년 전의 한나라라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
내가 직접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지금 한나라는 잘 돌아가고 있다 생각하거든.
웬 이상한 놈들한테 뇌물을 받으면서 죄를 덮어주고, 또 백성들을 수탈하며 제 재산을 불리던 탐관오리는 내가 직접 그런 것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유토피아로 여행을 보내줬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공석에는 강직하고 청렴한 관리들을 요령껏 임명하면서 나라의 행정력을 어떻게든 끌어올렸지.
수많은 노력 끝에 드디어 나라 구실을 하기 시작한 한나라는 지금 제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문제를 일으킬 인물은 없었다.
물론 나도 완벽한 인물은 아니니 몰래 빠져나간 놈들도 몇몇 있겠지만, 그놈들이 과연 다른 책사들이나 황제 폐하의 눈조차 피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네.
아마 그놈들은 차라리 나한테 걸리는 것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가혹한 벌을 받았겠지.
“대장군, 오늘치 약입니다.”
“…….”
나는 장각이 가져온 쓰디쓴 약을 마주하고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안 마시면 안 돼?”
“예.”
진짜 단호하네.
단호박도 한 수 접고 들어가겠다.
“귀한 약재들로 만들었으니 남기시면 안 됩니다.”
“…….”
결국 장각의 강요를 이기지 못한 내가 억지로 약을 복용할 무렵 눈앞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하북 곳곳에 서신을 보내도록 하지요.”
“…그래. 부탁한다.”
원소의 확답을 들은 나는 아직 반이나 남은 약을 열심히 복용했다.
이거 진짜 더럽게 쓰네.
흔히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과한 거 아니냐.
쓴맛은 인간이 몸에 해로운 것을 먹지 않도록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만들어진 맛이라는데, 최근 나는 그 본능이라는 게 무엇인지 톡톡히 경험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 건강이 달린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지그시─
내가 약을 먹지 않겠다 선언하면 억지로 내 입을 벌릴 기세인 서여와 여포의 눈빛을 마주했기에 먹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
나는 속으로 눈물을 머금으면서 계속 약을 복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던 신선 할아버지.
제발 빨리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
내 명령을 받은 꼬꼬마 군사들과 하북을 다스리는 원소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고 며칠.
운명의 날은 내 생각보다 훨씬 일찍 찾아왔다.
“주, 주군! 보고드립니닷!!”
“응? 무슨 일이야?”
매우 다급하다는 몸짓으로 뛰쳐 들어온 손권이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북 근처에서 거대한 벌레 무리가 날아오는 것을 발견!”
“…….”
“화, 황충(蝗蟲) 무리입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나는 별 전쟁 트레일러로 유명한 모 대사를 속으로 내뱉은 이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대충 한 달 만에 나라를 넘어서 찾아온 건가.
누가 날아다니는 곤충 아니랄까 봐 속도도 참 더럽게 빠르다.
하루에 100km를 날아온다 치면 약 250리를 날아오는 것.
서울에서 부산까지 단 나흘밖에 안 걸리네.
뭐, 빠르게 날아온 만큼 상당히 많은 숫자가 무리에서 낙오돼 죽어버렸겠지만.
자연의 세계는 비정한 법이었다.
…근데 지금 중앙아시아에서 놀고 있을 몽골 제국군의 하루 진군 속도가 130km~150km쯤 되지 않나?
뭐야.
왜 날아다니는 놈보다 속도가 빠른 거냐.
곡물을 먹어치우며 하루에 100km를 날아오는 자연재해.
전쟁을 치르면서 성을 점령하고 하루에 150km를 달려오는 몽골 제국.
춘추전국시대 때 보병 군대가 하루에 12km~15km를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걸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 차이였다.
그 로마 제국도 낙오자를 감당한 다음 밤낮없이 진군해야 40km를 겨우 이동한다던데.
만약 싸우지 않고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면 하루에 얼마나 달리냐고?
글쎄.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몽골 제국군 전령의 최고 기록이 하루에 350km를 달렸다던가.
그 결과 유럽에서 중국까지 약 2주밖에 안 걸렸다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350km면 약 900리 정도 되니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당일치기가 가능한 수준.
현대 KTX도 아니고 무슨 정신 나간 속도지.
나는 인간 병기들의 기상천외한 속도에 속으로 살짝 기겁한 다음 입을 열었다.
“…좋아. 창고는 제대로 봉해놨겠지?”
“넵! 명령하신 대로 일찍 수확한 곡물을 전부 창고에 저장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손권이 살짝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명령이 전달되는 게 늦어 미처 곡물을 수확하지 못한 지역이….”
“그건 어쩔 수 없다.”
이럴 땐 땅이 넓은 게 참 애매하다니까.
하북 전체로 명령이 전달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테고, 수확이란 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으니 일단 곡물의 허리만 썩둑 베고 급하게 창고에 처박아둔 것이 대부분이었다.
벼 이삭을 골라내고 껍질을 벗길 시간 같은 게 어딨어.
지금 당장이라도 눈 시뻘겋게 변한 채 부아앙 날아오는 곤충들이 있는데.
피해를 아예 보지 않는 건 불가능하리란 것을 이미 예상한 상황이었으니 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갈량.”
“예. 부르셨습니까.”
“지금부터 오리와 닭들한테 들어가는 사료량을 줄이도록.”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내가 저번에 제갈량에게 보여준 오리는 그렇게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메뚜기 100마리를 뚝딱 먹어치웠다.
심지어 그러고도 아직 부족하다는 모습을 보였지.
그렇다면 배고픈 오리는 메뚜기를 얼마나 먹어치울까?
참 볼만하겠네.
물론 그 메뚜기들은 황충(蝗蟲)으로 진화하지 않아 상당히 몸집이 자그마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자연재해로 진화한 메뚜기는 그 크기가 성인 남성의 손바닥에 달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커지니까.
하지만 내가 이를 모르지 않았으니 나는 오리들을 기르면서 최대한 많은 양을 먹을 수 있게 사육했다.
몸집은 몸집대로 커지고, 밥은 밥대로 많이 먹는 돼지 오리 군단.
뭔가 이렇게 말하니까 오리들을 욕하는 기분인데.
그렇다면 많이 먹는 오리 군단으로 하자.
…이것도 욕하는 건가?
하여튼 오리 10만 마리에 닭 30만 마리까지 끼워 넣으면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게 된 대군이라면 능히 메뚜기 군세에 대항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닭 한 마리가 벌레 30마리, 정예 병력(?)인 오리가 100마리씩 해치운다 치면 하루에 약 2천만 마리씩 먹어치우겠네.
만약 거기서 더 먹어치운다면 숫자는 더욱 늘어날 테고.
물론 싸우는 도중 메뚜기떼가 날아가지 않게 먹을 것을 계속 뿌리면서 한 자리에 앉혀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했다.
오리와 닭의 뒤뚱거리는 발걸음으론 작정하고 날아가는 메뚜기떼를 잡을 수가 없어.
자연재해로 진화한 메뚜기떼는 머릿속에 ‘먹는다!’ 생각밖에 없는 무지성 생물체가 되었기에 먹을 것을 눈앞에 두고 무시할 놈들이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보자마자 도망쳤을 사람한테도 냅다 들이받는 놈들인데 그깟 조류가 대수일까.
“이제 슬슬 움직이자.”
“…직접 보러 가게?”
내가 성 바깥으로 빠져나갈 낌새를 보이자 여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담담히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메뚜기는 고기를 먹지 못해.”
“그, 그래?”
설마 몰랐던 거냐.
머릿속이 순수한 여포를 바라보던 내가 쓴웃음을 지을 무렵 그녀가 갑작스럽게 빽 외쳤다.
“…그게 아니더라도 문제가 있잖아!”
“응? 뭔데?”
내 질문을 받은 여포가 곧장 큰 목소리로 말했다.
“메뚜기들한테 치여서 큰일 나면 어쩌려고!”
“…….”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해! 나가지 마!”
내가 살다 살다 곤충한테 치여서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나는 이미 사람이 아니라 그 언저리에 걸친 다른 무언가 취급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