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08)
EP.508 황충(蝗蟲)(8)
황충 무리의 일부가 이쪽을 갑작스럽게 덮치면서 일어난 전투.
“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어차피 벌레들이다!”
그 난데없는 상황에 나를 호위하던 최정예 병사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수많은 전장을 진전하면서 창칼을 들고 달려드는 적들은 많이 마주쳤겠지만 이런 메뚜기떼를 만나는 건 처음이겠지.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열중하는 인원들이 있었다.
“진짜 엄청나게 많네!”
선두에 서서 메뚜기들을 믹서기처럼 갈아버리는 장비.
“…이게 다 몇 마리일까?”
“잘못하면 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조심하시지요.”
병사를 지휘하며 필요할 때만 메뚜기를 쳐내는 유비와 관우.
“아풉!”
그냥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손권까지.
모두 하나같이 개성 하나는 확실한 인물들이었지만 이 중에서도 단연코 눈에 띄는 여인이 둘 있었다.
뭐, 이 정도 언급했으면 대충 짐작이 가겠지.
바로 나한테 등을 딱 붙인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서여와 여포였다.
“내가 이런 일까지 겪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여포는 장비가 그랬던 것처럼 방천화극으로 풍차를 돌려대며 메뚜기의 침입을 불허하는 상태였고,
“…….”
서여는 팔이 한 번 움찔거릴 때마다 메뚜기 여러 마리가 몸이 동강 난 채 후두둑 떨어졌다.
…여포는 그렇다 쳐도 서여는 왜 혼자 무협지 찍고 있는 거지.
서여도 혹시 전설의 초사이어인이나 어딘가의 대머리 망토처럼 숨만 쉬어도 강해지는 타입인가.
어째 여포가 강해지고 또 강해져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구만.
부우우웅───!!
하지만 이미 정신을 놓아버린 황충 무리는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쫓아 제 생명을 내다 버리고 있었다.
“으음….”
난장판 한가운데에 놓인 나는 고개를 한 차례 갸웃거리면서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고민에 빠졌다.
난 분명 메뚜기떼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는 곳에 자리 잡았는데 말이야.
이 주변에 있던 수풀들은 병사들이 진작 전부 제초해갔기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황량한 벌판만이 남겨진 상태였다.
그나마 예상가는 거라면 시간이 없어 미처 벌목하지 못한 몇몇 나무들인가?
황충으로 진화한 메뚜기떼는 식물이라면 결코 편식을 하지 않는다.
그건 나무라고 예외가 아니지.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은 당연히 뜯어먹고, 심지어 줄기에 달라붙어 나무껍질과 수액까지 야무지게 섭취한다.
황충 무리가 덮쳤을 때 나무를 확인해보면 진짜 농담이 아니라 무슨 거머리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니까?
벌레에 대해 익숙한 사람이라도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혐오스러운 광경이지.
하지만 다른 곳도 나무가 있는 건 마찬가지라 메뚜기떼가 나무 하나만 보고 이쪽으로 달려들었다기엔 살짝 오류가 있었다.
꽤애액─!
꼬끼오─!
“우와아악!”
“죽어라! 죽어!”
심지어 지금도 오리 부대와 함께 온갖 난리를 피우는 아래쪽이 나무가 더 많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쪽으로 날아올 이유가 없….
“…아.”
열심히 이 상황의 원인을 파악하던 나는 문득 누군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으엑, 몸에서 약 냄새가 진동하네요. 도대체 얼마나 드신 거예요?’
내가 화타와 장각에게 본격적으로 약 처방을 받기 시작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 무렵, 한 꼬꼬마 군사가 나한테 했던 말이다.
…그게 누구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난 한 차례 코를 킁킁거린 다음 사마의에게 물었다.
‘…냄새가 거기까지 나?’
‘이건 못 맡는 게 이상할 정도인데요.’
보라색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는 팔짱을 끼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원(醫院)을 지날 때마다 맡는 냄새를 일하는 곳에서도 맡게 되다니….’
‘크흠.’
확실히 약 냄새라는 게 그리 맡기 좋은 냄새는 아니지.
현대에도 한약방 근처를 지나가다 보면 코를 확 찌르는 엄청난 냄새가 느껴지지 않나.
무어라 딱 집어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묘한 냄새가 말이야.
내가 어렸을 땐 그 냄새가 싫어서 한약방 앞을 지나갈 때마다 코를 막고 움직였던 기억이 있었다.
‘으으, 냄새.’
‘…….’
‘남은 일은 제가 처리할 테니 빨리 집에나 가시죠.’
‘진짜?’
‘그러면 거짓말이겠어요?’
사마의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냄새는 핑계일 뿐이고 그냥 내 몸이 걱정돼서 서둘러 내쫓는 행동이라는 걸 말이야.
‘그래. 그러면 간다.’
‘…왠지 이상한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인데, 적어도 그건 아니라고 말해둘게요.’
내 흐뭇한 표정을 본 사마의는 그리 말했지만 우리가 어디 하루 이틀 본 사이인가.
‘나도 알아. 알고말고.’
나는 부끄러움을 감추는 사마의의 모습에 더욱 진한 미소를 띠었다.
‘…그그극.’
그런 내 행동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던 꼬꼬마 군사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기회가 된다면 또 해보고 싶네.
이렇게 사마의 같은 경우에는 유쾌하게 지나갔지만 누가 그랬었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이라고.
말은 퉁명맞지만 나를 피하지는 않았던 사마의와 정 반대되는 모습으로 나한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던 인물이 있었다.
내가 조금 전에도 언급했지?
어렸을 때의 나는 한약 냄새에 아주 질색을 하면서 다녔다고.
그건 내 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부아!’
‘그래, 아빠다.’
‘아부…?’
우뚝.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활짝 피면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던 여화가 난데없이 자리에 멈춰 서버린 것.
‘여화야?’
‘…꺄우!’
자리에 잠깐 멈춰 섰던 여화는 내가 다시 이름을 부르자 폭 안겨들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때 아주 잠깐이지만 고민했어.
자기 엄마보다도 날 좋아하는 게 확실한 그 여화가 내 품에 안겨드는데 아주 잠깐 머뭇거렸단 말이다.
누군가는 그게 뭐 별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선 매우, 매우매우 충격받는 일이었다.
사춘기가 와서 자신과 같이 목욕을 안 한다거나, 빨래를 섞어서 넣지 말라는 딸을 봤을 때의 아버지가 이런 기분일까.
지금은 내가 허구한 날 약 냄새를 풍기는 것에 익숙해진 건지 아이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때까지는 나만 봤다 하면 꺄르르 웃던 아이들까지 살짝 거부할 정도로 냄새가 심각했다.
자, 그러면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부우우우웅───!!
지금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는 이 메뚜기들의 후각은 평균적으로 얼마나 될까?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지 않나.
이놈들, 후각이 진짜 예민하다.
메뚜기의 시각은 저 동그란 눈동자만 봐도 알겠지만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다.
만약 눈이 안 좋았다면 진작 퇴화해서 눈 크기가 살짝 작아지거나 했겠지.
…그러면 저 징그러운 외모가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달라졌으려나.
하지만 아무리 눈이 좋아도 수십 킬로나 떨어진 곡창 지대를 발견하기엔 애로사항이 생기는 법.
그렇기에 이놈들은 더듬이를 통해 냄새를 맡으면서 자기가 먹을 게 어디 있는지 본능적으로 찾아낸 다음 슝 날아간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뭐냐면….
“역시 이놈들 뭔가 이상한데?!”
“…….”
“아무리 봐도 정릉을 노리고 있잖아!”
지금 메뚜기들 입장에서는 내가 아주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란 거지.
원래 메뚜기가 사람을 물려고 하는 건 엄청나게 드문 경우라 들었는데 말이야.
하늘을 뒤덮은 수억 마리 중에서 불과 수천 마리만 내게 향하는 것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1억 마리 중에서 1만이 빠져나왔다 치면….
대충 1만 마리 중 1마리꼴로 사람을 무는 건가?
비율을 생각해보면 살짝 이해가 되면서도, 역시 무언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한테 풀 냄새가 난다고 해서 달려드는 식인 메뚜기 무리가 있다고?
이건 누가 봐도 커다란 사건인데 그것과 관련된 정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게 신경 쓰였다.
으음….
내가 단순히 몰랐던 건가, 아니면 이 세계 메뚜기가 특이한 건가.
메뚜기가 눈이 안 좋다면 모를까, 그 곤충은 얼빠진 듯한 눈동자로 볼 건 다 보고 있었기에 내가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을 터.
…설마 메뚜기 눈으로도 내가 곧 죽을 만큼 허약해 보이는 건가?
죽은 자기 동족도 뜯어먹는 놈들인데 아예 다른 종족 시체야 오죽할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곤충들한테도 얕보였다는 뜻이군.
이건 진짜 충격인데.
투두두둑!
“야!! 너희 빨리 움직이지 못해?! 대장군께 생채기 하나라도 나는 순간 다 뒤질 줄 알아───!!!”
“예, 옙──!!”
손책은 의욕이 너무 넘친 나머지 발을 헛디뎌 넘어졌던 제 여동생과 다르게 소패왕에 걸맞은 움직임으로 메뚜기를 여러 마리씩 걷어내고 있었다.
부우우웅──!!
콰드득──!!
꽤액──!!
주변 모든 곳이 난장판인 정신없는 상황.
“…….”
나는 잠자코 침묵을 지키면서 모든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적어도 구경할 거리는 많아서 심심하진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