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11)
EP.511 황충(蝗蟲)(11)
거대한 메뚜기떼와 오리들이 맞부딪치고 며칠이란 시간이 흘렀다.
메오대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장대한 전투의 끝.
꽤애액──!!
꼬끼오──!!
그 역사의 전장에서 승리한 이들은 다름 아닌 오리 부대였다.
…솔직하게 말해서 잡아먹는 이와 잡아먹히는 이가 맞부딪친 거였으니 당연한 결과지만 말이야.
물론 피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메뚜기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고, 그 규모는 하루 만에 퇴치할 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겠나.
메뚜기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서 패악질을 부리기 전에 미끼를 최대한 뿌려대며 붙잡는 수밖에 방도가 없었다.
황충으로 변한 메뚜기떼는 규모에 따라 수만에서 수십만 명 분량의 곡식을 하루 만에 먹어치운다던가.
이 근방에 있는 잡초를 싹 다 털어왔음에도 수가 부족해지자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병사들의 식량을 뿌릴 수밖에 없었다.
…근데 가져온 곡식의 양이 워낙 많아서 이 정도 손해는 감수할만해.
걸핏하면 수십만 명이 투닥거리는 한나라에서 메뚜기떼가 먹어치우는 곡식의 양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다.
비록 곡식을 엄청나게 털렸단 문제점이 있었지만 미치광이 메뚜기떼를 전국에 풀어놓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밥은 저기 뒤쪽에 있는 원소한테서 더 받아오면 되는 문제니까.
지금 기주가 무척 부유한 곳이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
나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서 주변의 모습이 어떤지 확인했다.
지천에 널린 메뚜기의 사체.
매우 즐거운 몸짓으로 메뚜기를 주워 먹는 오리와 닭들.
타닥, 타닥.
…불을 피워놓은 채 메뚜기를 익혀 먹는 병사들까지.
지금 시간이 해가 저문 밤이라는 걸 생각하면 마치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근데 메뚜기를 구워먹는 광경은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네.
심지어 그걸 바라보면서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더더욱 익숙해지질 않았다.
아주 능숙한 솜씨로 다리를 떼어낸 다음, 물에 끓이거나 아예 직화로 구워버리는 등 사람들이 여러 방법으로 메뚜기를 잡아먹고 있었다.
지금은 저승에 있을 메뚜기들도 이 광경을 봤다면 놀라서 까무러치지 않을까.
동족 포식도 하는 놈들이니 오히려 감탄할지도 모른다는 게 무섭지만.
내가 자신들을 지그시 바라본다는 걸 느낀 모양인지 병사와 함께 메뚜기를 구워먹던 부관이 다가왔다.
“대장군도 드시겠습니까? 이놈들이 아주 살이 통통하게 올라 맛있습니다.”
“…….”
저 멀리 있는 귀상국에서부터 모든 걸 초토화하며 날아왔을 메뚜기들은 부관이 말했던대로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상태였다.
아주 복스럽게도 처먹은 모양이네.
지금 귀상국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지 상상만 해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아니, 난 괜찮다.”
진짜로 괜찮아.
나는 불에 구워진 끝에 몸이 진한 갈색으로 변한 메뚜기의 모습을 확인하곤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황충(黃蟲)이 아니라 갈충(褐蟲)이 돼버렸네.
황충의 황은 누를 황(黃)이 아니라 메뚜기 황(蝗)이다만 이놈들 생김새를 보면 누를 황이란 한자를 붙여도 이상할 건 없었다.
본래라면 초록빛을 띠는 메뚜기들은 무리를 이루기 시작하면 색깔이 누리끼리해지고 몸집도 무럭무럭 자라나니까.
애초에 황이라는 글자가 붙은 이유도 그런 생김새 때문이라 생각한다.
글자야 뭐,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만들어내면 되는 법이니….
“그렇습니까?”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거절하자 부관은 ‘이 맛있는 걸 왜 거부하지?’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바라봐도 난 안 먹어.
내 비위는 생각보다 훨씬 약하단다.
근데 지금 이 시대에선 내가 특이한 편이긴 했다.
식량이 귀한 옛날 시대에는 잡아먹을 수 있는 건 전부 먹었다 해도 될 정도니까.
심지어 대기근이 찾아오면 같은 사람조차 잡아먹었을 지경.
현대 시대에도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시작한지 아직 100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같은 시대는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할머니들이 손자들을 볼 때마다 음식으로 암살을 시도하는 이유가 그 때문 아닐까.
본인은 어렸을 때 배부른 적이 별로 없었으니, 하다못해 제 손자가 굶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거다.
2020년 기준으로 60, 70세면 한국 전쟁이 막 끝났을 시기이니….
얼마나 힘드셨는지 말 안 해도 알겠지.
그때는 외국도 대공황이다! 세계 2차 대전이다! 냉전이다! 하면서 개판이 여러 번 났으니 별로 다른 건 없었던가.
“…….”
나는 메뚜기떼를 박멸하면서 또 하나의 재앙을 막아냈다는 것 때문인지 잔뜩 흥에 취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술자리 같은 곳에서 이야깃거리가 부족할 일은 없겠네.
자기 아들딸, 또 손자 손녀한테도 자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랑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어쨌든 이 자리에 계속 서 있으면 메뚜기 축제를 벌이는 병사가 계속 눈치를 보겠지.
제일 높으신 분이 음식에 입도 대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그 누가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겠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이건 대놓고 건드리는 거잖아.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하네.
역시 축제 때는 사람들의 눈이 잘 안 닿는 곳에 있는 것이 훨씬 도움되는구만.
뭐, 나도 적당한 곳에서 멋있는 척 분위기 잡는 걸 훨씬 좋아하니 상관없었다.
난 무언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단 한 발 떨어져서 관망하는 타입이니까.
낙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때 괜히 성벽 위에 올라 술만 홀짝였던 게 아니다.
여포는 내 이런 행동을 보면서 감상평을 내뱉었지.
‘왜 이리 청승맞게 있어? 보는 내가 힘이 쭉 빠지네.’
‘…….’
남자가 분위기 잡는 걸 그렇게 말하다니.
역시 차갑고 시크하며 쿨한 남자가 되는 건 내게 불가능한 일인 모양이었다.
내가 조용히 발걸음을 돌리는 걸 확인한 유비가 물었다.
“이제 쉬러 가십니까?”
“그래. 뒷정리는 맡기지.”
내 담담한 목소리를 들은 유비는 허리를 차분하게 숙여 보였다.
“예. 부디 편안한 밤 되시길.”
──────────
안 그래도 아픈 사람이 열악한 곳에서 쉬면 안 된다며 온갖 비싼 물품들이 존재하는 천막.
단 한 줌의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조차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천막 전체를 비단으로 두른 광경은 여전히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사실 천막이 아니라 비단막이라 불러도 될 정도야.
도대체 여기에 돈이 얼마나 들어간 거지?
그것 외에도 출처를 알 수 없는 고급스러운 털가죽과 사치품들은 적어도 내가 여기서 얼어 죽을 일은 없다는 걸 보여줬다.
농담이 아니라 이 천막 하나만 가져다 팔아도 수십 년은 놀고먹을 만한 돈이 나올 것 같은데….
거기에 24시간 상시 대기하는 수많은 호위병은 흡사 황제의 행렬을 떠올리게 할 지경.
이에 부담스러운 감정을 느낀 내가 규모를 조금 줄이자 말해도 주변 사람은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구체적으론 제갈량이 이렇게 말했던가.
‘황제 폐하께서 직접 명하신 일입니다.’
‘…….’
‘저희가 어찌 황명을 함부로 어기겠습니까?’
나조차 함부로 어찌할 수 없는 합당한 이유였지.
…비겁하게 황제 방패를 쓰다니.
주변 사람들이 합심해서 몰래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지만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예상은 하고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개복치가 제 목숨 귀한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싸돌아다니고 있으니 얼마나 애가 탈까.
그걸 알고 있으면 조금 자중하라는 소리를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무언가 일이 벌어졌을 때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휘하에 있는 인재들이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것이란 걸 알고는 있다.
그래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걸 어떻게 해?
이 마음을 꾹꾹 억누르다간 개복치는 자기 마음에 솔직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사망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살짝 어이가 없네.
그게 정말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싶으면서도, 아예 설득력이 없는 건 또 아니니 주변 사람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겠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으면 혼자 죽어버리는 개복치.
근데 그 개복치가 죽을 경우 한나라가 공중분해 된다?
이야, 내가 생각해도 악질이네.
내 건강이 나빠진 이후로 불편한 점도 많아졌지만 반대로 편해진 점도 있었으니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오래오래 사는 게 제일 아니겠나.
진시황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불로초를 찾겠다며 난리를 피울 마음은 없다.
그냥 천천히 늙어가면서 고통 없이 죽기를 바랄 뿐이야.
“흐음, 생각보다 사치스러운 곳에서 머무르는구나.”
“…?”
나는 근처에서 불현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묘한 목소리는….
“오랜만이군.”
“…….”
“네놈과 한 약속을 지키러 왔다.”
과거 나한테 황충 무리가 덮치리란 걸 알려준 신선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