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14)
EP.514 변화(3)
“네놈의 상태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깨진 그릇과도 같다.”
나를 자리에 눕힌 열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어떻게든 조각을 끼워 맞춰 그릇 형태를 복구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물이 새는 걸 완전히 막지 못하는 상태지.”
“그렇습니까.”
온갖 과학 기술이 발전한 현대에도 깨진 그릇 하나 이어붙이는 건 힘든 일이지.
하물며 그게 사람이라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겠나.
내 얼굴을 바라보던 노인은 말을 잇다 말고 갑작스럽게 피식 웃었다.
“네놈은 이미 가장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
“깨진 그릇을 성공적으로 이어붙이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인 걸 생각하면 어지간히도 인복이 좋은 모양이야.”
신선이 칭찬할 정도의 의술이라….
내 부상을 제일 먼저 수술한 인물이 장각임을 떠올려 볼 때 그녀의 실력도 이미 다른 평범한 의원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가장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면 이 신선이 내게 해줄 치료법은 뭘까.
“이 몸이 지금 해줄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내 의아한 표정을 본 열자는 어려울 것 없다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네놈에게 모종의 조치를 취해 본래라면 몇 년이 걸릴 치유 기간을 단축해주는 것뿐이지.”
“…….”
그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하지 않나?
아무래도 비와 바람을 부리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신선이 보기엔 이 정도 일은 별거 아닌 모양이었다.
이런 사람이 진심을 보인다면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
사람들이 신선 나으리 신선 나으리 노래를 부르면서 떠받드는 게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신선의 설명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그 모종의 조치라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 말이더냐.”
내 질문을 받은 열자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알려줄 것이다.”
“…아, 예.”
설명해주는 게 갑자기 귀찮아지기라도 했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알려줄 수 없는 내용인 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얼떨떨한 기색을 보일 무렵 열자가 픽 웃더니 말을 이었다.
“기운을 조금 흘려 넣어 네놈의 회복을 도와주는 것뿐이다.”
“…….”
기운을 흘려 넣어서 사람을 치료한다고?
이거 무협에서 자주 나오는 내가요상술(內家療傷術) 아니냐?
내공을 다른 사람 몸에 흘려 넣은 다음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모든 부상을 뚝딱 치료하는 의학계의 혁명.
죽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강시라거나 사람을 리모컨처럼 조종하는 고독처럼 무협 세계관의 오버 테크놀러지라 부를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총도 흐아압 하면서 날붙이로 튕겨내는 놈들이니 이 정도쯤은 별거 아니라는 걸까.
…여기 진짜 무협 세계관이야?
아직 너무 옛날이라서 체계가 안 잡힌 것뿐이냐고.
나는 이 세계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두려울 따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떤 세계든 딱히 이상할 건 없긴 해.
애초에 내 정체부터가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 없는 무언가 아닌가.
거기에 몇 가지 조금 더 곁들인다 한들 이상할 건 없으리라 믿는다.
아마도.
무협 세계관에서 자주 출현하는 검선 여동빈도 당나라 말기 사람이니 나보다 몇백 년 어리네.
지금이 200년이니까 대충 600살 정도 차이 나나?
농담이 아니라 엣헴하고 헛기침 좀 하면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애송이가….’ 이런 말을 던질 수 있단 이야기다.
물론 그때가 찾아왔을 때는 난 이미 피가 마르다 못해 한 줌의 흙이 되어있겠지만.
600년이 어디 동네 개집 이름이냐.
내가 지금 있는 한나라도 본래 역사에서 500년도 못 가고 멸망했어.
지금 나와 나이를 비빌 수 있을 법한 인물은 달마대사밖에 없겠네.
소림권의 창시자 어쩌고 하는 승려 있잖아.
근데 그 사람도 훗날 한나라가 망하고서야 태어나는 인물이니 결국 나보다 연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무협계의 짱이라 불리는 장삼봉?
에잉,,, 지금부터 1,000년이 넘어서야 태어난 애송이를,,.. 어디에 가져다 붙이느냐,,,!!~~@
…당연히 농담이다.
위에서 언급한 인물 어느 누가 등장해도 나는 일초지적만에 순살 치킨처럼 싹싹 발라 먹힐걸.
당당히 내세울 거라곤 나이밖에 없는 남자.
그게 바로 나였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일찍 태어난 게 다행일 수도 있어.
나는 강호라 불리는 인외마경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내 근처에 자리 잡은 신선이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을 터이니 마음을 깊게 가다듬어라.”
“예.”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 내 심장은 무척이나 요동치고 있었다.
이야깃거리로만 전해지던 괴력난신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나는 말로만 듣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목격도 여러 번 했다만 지금처럼 몸으로 체험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다가오던 신선의 손이 이윽고 내 옆구리에 닿았을 무렵,
“…?!”
나는 생각보다 눈이 번쩍 뜨이는 감각에 화들짝 놀라면서 신선을 바라보았다.
전생에서 전기 치료를 매우 강하게 받았을 때나 느껴지던 감각.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픈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아예 안 아픈 것이냐 물으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 그 미묘한 감각에 나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왜, 놀랐느냐?”
열자는 내 표정을 보고 유쾌하다는 듯 말했다.
“이 몸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했지, 아예 고통이 없으리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군요…!”
지금 이 상황은 내가 방심한 게 맞다!
세상에서 제일 믿으면 안 되는 말 중 하나가 의사들이 하는 ‘별로 안 아파요.’이거늘…!
이와 비슷한 거짓말로는 ‘세뱃돈 잘 맡아놓았다가 나중에 돌려줄게.’가 있다.
내가 그렇게 헛되이 잃은 양배추만 몇 장이었지.
“…….”
“으그극….”
근처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서여와 여포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한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손등에 핏줄 튀어나온 거 봐라.
아주 살벌하네.
나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뿌려대는 두 호위 장수에게 말했다.
“난 괜찮으니까 둘 다 진정해.”
“그치만….”
“계속 그러면 성공할 수 있는 치료도 실패한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의원이라도 근처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손을 벌벌 떨어댈걸.
“…….”
내 의도를 눈치챈 두 명은 뛰어난 무인답게 제 감정을 열심히 다스리며 기세를 줄였다.
“끌끌, 이거 내가 실수라도 하면 곧장 목이 날아가겠구만.”
여전히 내게 찌릿찌릿한 전기 치료를 해주던 열자는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다.
이게 바로 생사를 초월해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이루었다 전해지는 신선의 여유인가?
어쩌면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살아왔기에 역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
나는 이 묘한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신선한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거 언제 끝납니까?”
“이제 막 시작했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도록.”
열자도 지금 하는 치료가 언제 끝날지 구체적으론 모르는 모양.
“…….”
처음에는 짜릿했지만 가면 갈수록 이에 익숙해져 마치 전기 마사지를 받는 듯한 감각에 나는 몸이 노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나보다 수백 살은 더 먹은 할아버지가 열심히 치료해주고 있는데 드르렁 뻗어버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나는 대화 주제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신선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으음?”
내가 입을 열자 열자는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흥미로운 이야기라도 없습니까?”
“…….”
“이러다가 저 잠들 것 같습니다.”
“…….”
내 당돌하다면 당돌한 질문에 노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 참. 뭐 신선이 되는 방법이라도 알려주랴?”
“말만 들어도 눈이 확 뜨이는 이야기군요.”
신선.
모든 도사가 목표로 삼고 열심히 정진한다는 마지막 경지.
과거 연회장에서 온갖 신기한 요술을 부렸던 좌자나 혼령이 되어 손책을 괴롭혔다던 우길조차 신선이 아닌 도사라 불렸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목표가 얼마나 드높은 것인지 체감할 수 있을 터.
신선이 되면 천지를 뒤흔드는 경천동지할 힘을 얻게 된다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었다.
불로장생(不老長生).
늙지 않고 아주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는 것.
자기가 툭 내뱉은 말에 내가 곧장 관심을 보이자 열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다.”
“…예.”
대충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
애초에 삶을 초월하고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쉽겠냐.
눈앞의 인물도 아주 개고생을 하며 신선이 됐을 텐데 그 방법을 순순히 알려줄 턱이 있나.
나도 일단 인간이라서 관심이 아예 없는 건 불가능했지만 이리 단호하게 선을 그어주니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었다.
“정 궁금하면 네놈을 졸졸 쫓아다니는 꼬맹이에게 물어보지 그러나?”
“예?”
꼬맹이?
그 사람이 누군데?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열자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설마 아직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것이냐! 그 꼬맹이도 어지간하군!”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왜 혼자만 아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나는 궁금하단 표정을 지었지만 열자는 계속 대답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