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15)
EP.515 변화(4)
신선의 전기 치료는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충 일각(一刻, 15분) 정도 걸렸나.
현대 시대에도 병원에서 전기 찜질을 받는 시간을 생각해봤을 때 오히려 짧은 시간이었다.
열자는 나한테 손을 떼면서 말했다.
“자, 이걸로 너와 내가 한 약속은 전부 끝난 것 같군.”
“…….”
신선의 말을 들은 내가 의아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나은 게 맞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서 전기 치료를 받을 줄은 몰랐다만,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믿음이 안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어떻게 보면 자신을 의심하는 거냐며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열자는 끌끌 웃으면서 담담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며칠 동안 시간을 두고 지켜보도록.”
“…으으음.”
“그때가 되면 네놈의 몸이 달라진 것을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을 테니까.”
거기까지 말한 열자는 무언가를 잊고 있었다는 듯 뒷내용을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날뛰지 마라.”
───한 번 깨진 그릇은 또다시 깨지기 쉬운 법이니까.
이곳에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신선은 조금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눈앞에서 연기로 변하며 사라졌다.
두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살펴봐도 믿어지지가 않네.
“…갔네.”
내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여포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어, 어디 이상한 곳은 없어?!”
“…….”
“만약 이상하다면 얘기해! 내가 그 망할 영감탱이를 붙잡아서 콱…!”
난 평소처럼 꺄아꺄아 외치는 여포를 바라본 다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과보호라니까.
“…….”
서여는 여포와 달리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 방향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천막으로 가려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서, 쭉.
그 이후 서여가 바라보던 쪽에서 난데없이 날벼락이 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있었지만 금방 잦아들었다.
…뭐지?
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친 거야?
──────────
대장군이 있는 천막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
주변 호위병들의 철통 같은 경계가 닿지 않는 외딴 지역에서 지긋한 인상의 노인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훨씬 특이한 놈이었군.”
적당한 바위 위에 걸터앉은 노인, 열자는 방금 있었던 만남을 떠올렸다.
천막을 비단으로 뒤덮고, 내부는 온갖 사치품으로 장식된 상태였지만 정작 본인 자체는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던 인물.
보통 사치를 부리는 인물은 주변보다 자기 자신을 치장하는데 더욱 공을 들이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보았던 사람만 해도 몇 명인가.
사치를 좋아하는 군주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예외 없이 몸에 온갖 보석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살았다.
그것은 아마 제 추악한 본성을 감추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일 터.
하지만 노인은 평범한 사람이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인물.
그는 오랜 경험과 뛰어난 눈썰미로 전후사정을 완전히 파악한 상태였다.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뭐라?
───제가 필요 없다 말하는 데도 계속 이런 걸 안겨주는데 어찌합니까?
대장군.
그 당돌한 것을 넘어서 살짝 건방지기까지 한 놈은 사치를 부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단순 뇌물이 아닌 마음이 담긴 선물을 함부로 팔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미 우리 집 창고는 미어터지기 직전….
자신이 지금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고 있느냐는 기세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던 놈.
마치 동네 할아버지에게 속풀이를 하는 듯한 그 모습은 열자를 역으로 당혹스럽게 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신선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려다가 다시 입을 다무는 방법으로 골탕먹이려 했지만….
───…예.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모든 권력자가 갈망할 지식을 순순히 포기하는 모습은 아무리 살펴봐도 아쉬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마치 오히려 안도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신선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하면 절까지 올릴 인물이 수두룩하거늘.
“흥미롭다면 흥미롭다만…. 그런 놈이 좋다고 허구한 날 지켜보는 년도 참 이상하지.”
계속해서 혼잣말을 내뱉던 노인은 고개를 돌려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안 그런가? 꼬맹아.”
“…내가 그따위로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노인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인기척이 없던 곳에서 한 소녀가 으르렁거리며 나타났다.
열자가 조금 전 그랬던 것처럼 난데없이 허공에서 튀어나온 소녀는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이번에야말로 향 냄새를 맡게 해주지.”
“…….”
“여기 이년처럼 말이야.”
소녀는 그리 말하고 오른손으로 붙잡았던 무언가를 땅바닥에 휙 내던졌다.
철퍼덕!
소녀가 내던진 것은 한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이미 숨이 끊어진 듯 입가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미동도 하지 않는 상태였다.
“허, 또 누군가를 죽였군.”
열자는 이게 어찌 된 영문이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네년의 성질을 건든 것 같은데…. 이유는 뭐지?”
“간단해.”
시체를 던진 소녀는 제 손을 탁탁 털면서 말했다.
“이 녀석, 황충(蝗蟲)을 이용하더군.”
“으음?”
“미물들을 홀려서 제 마음대로 조종했다는 이야기다.”
소녀의 설명을 들은 노인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가 이윽고 무언가를 떠올린 듯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하하하! 그러니까 메뚜기 수천 마리를 홀려 그 당돌한 놈을 공격한 게 이 녀석이라고?!”
아무리 벌레에 불과한 미물이라 한들 수천 마리를 동시에 조종하다니!
참 재미있는 재주가 아닌가!
그저 이런 때도 있는 건가 생각하며 별다른 고민 없이 넘어갔는데, 이런 뒷사정이 존재할 줄은 예상도 못했다.
쓰러진 여인에게 다가가 진맥을 짚어본 노인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곤 피식 웃어 보였다.
“내부 장기를 전부 곤죽으로 만들었군.”
인간의 생명을 담당하는 오장육부가 모두 터지거나 뭉개진 참혹한 상황.
저 꼬맹이도 한때 태평 뭐시기란 제목으로 여러 가지 서적을 집필한 적이 있던 인물이다.
그만큼 의술에 밝은 꼬맹이었으니 지금 시체가 이리된 건 의도한 것이 분명할 터.
“에잉 쯧쯧, 역시 이상한 년 아니랄까 봐 손속하고는….”
일말의 회생 가능성도 주지 않겠다는 듯 철저하게 처리해버린 모습에 열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이런다는 거 그 당돌한 놈은 알고 있더냐?”
“…….”
제 질문을 받은 소녀가 살벌한 눈초리로 노려보자 노인은 과장된 몸짓을 지었다.
“어이고, 어디 무서워서 입이라도 뻥긋하겠나.”
여기서 더 자극한다면 분명 제 성격을 못 참고 냅다 주먹부터 휘두를 터.
역시 하늘의 이치를 거스른 년답게 성깔 하나는 보통이 아니었다.
근처 상황을 판단한 열자는 입을 다물면서 눈앞의 꼬맹이가 움직이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그렇게 한동안 두 명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형성하며 대치 상태를 이어나가던 그때.
“…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놈과 접촉한 거냐?”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소녀가 먼저 질문을 던지면서 팽팽한 분위기는 한층 가라앉았다.
“무슨 생각이냐고 물었나?”
질문을 받은 열자는 제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먼 곳에서 도둑년처럼 지켜보기만 하는 누구와 달리 난 흥미로운 걸 못 참는 성격이라서 말이다.”
“…….”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 호기심을 해소하는 확실한 방법도 없으니 그리 행동했을 뿐.”
노인은 조금 전 그랬던 것처럼 살짝 과장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아, 설마 이몸께서 누군가가 등장할 차례를 가로채버린 건가?”
“…….”
“그런 거였군. 그런 거였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잇던 노인이 소녀를 바라보며 씩 웃어 보였다.
“하기야 신선이란 년이 모양 빠지게 아무런 이유 없이 등장할 수는 없지.”
“…….”
“하물며 몇 년 동안 몰래 쫓아다니며 관심을 보인 이성이라면 더더욱….”
“오냐! 오늘 아예 끝장을 보자꾸나!”
슈웅─!
열자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달려든 소녀는 어마어마한 파공음과 함께 뛰어들어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하지만 그 공격은 애꿎은 땅바닥만 후려칠 뿐, 소녀가 목표로 했던 노인에겐 닿지 않았다.
어느샌가 허공을 부유하던 노인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외쳤다.
“으하하하──!! 꼬맹아──!! 나이 차이가 몇 살인데 부끄럽지도 않느냐──!!”
“산속에서 애인(愛人)을 몇 명씩이나 끼고 사는 네놈한테는 듣고 싶지 않다──!!”
서로가 서로의 추태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현장.
“그래도 수백 년 넘게 남자 한 명 만나지 못했던 꼬맹이보단 훨씬 낫지 않겠나!”
“…죽여버리겠다──!!”
하지만 결국 말싸움에서 패배하는 쪽은 소녀였으니, 신선이라기엔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유로 맞붙는 두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