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17)
EP.517 기주(2)
원소의 환영 인사를 받으면서 무사히 쉬는 곳에 도착한 나는 근처에 모인 면모들을 확인했다.
서여와 여포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들은 내가 평소에도 자주 보는 얼굴이니 신기할 건 없었지만….
“…….”
원소를 따르는 이들은 자주 보기가 힘들다 보니 이런 상황이 아니면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딸꾹.”
일단 저기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 차례 딸꾹질을 한 여성.
방통과 붙여놓으면 잘 어울릴 법한 소심한 인상의 여인이었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낀 나는 근처에 있던 원소에게 이름을 물었다.
“…….”
내 질문을 받은 원소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냉정한 황금빛 눈동자로 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고,
“딸꾹! 딸꾹!”
그와 동시에 여인의 딸꾹질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저러다 숨넘어가겠네.
능력은 어떨지 몰라도 강심장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구만.
한동안 여인을 바라보던 원소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합(張郃). 자(字)는 준예(俊乂)입니다.”
“으음?”
그러니까 저 소심한 여인이 오자양장(五子良將) 중 한 명인 장합이라고?
나는 본래 역사에서 장료, 서황, 악진, 우금과 같은 뛰어난 장수들과 동일한 취급을 받았던 명장을 눈앞에 두고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조금 전 언급한 인물들을 보면 알겠지만 장합은 조조가 세운 위나라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였다.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던 유비는 조조의 왼팔이었던 하후연보다 장합을 더 위협적으로 여겼다고 하니 말 다한 셈이지.
실제로 그는 1세대 인물이 다 저물어간 이후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제갈량의 북벌을 연거푸 저지하며 노장(老將)의 능력을 톡톡히 보여줬다.
제갈량에게 호응하며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무리를 전부 평정하고, 중요하다 싶은 순간에는 꼭 나타나 훼방을 놓았던 인물.
장료가 오나라를 상대했다면 장합은 촉나라를 상대했다 언급해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장수였다.
하지만 장료와 달리 장합에게는 가장 큰 문제점이 하나 있었으니….
말해 뭣하겠는가.
그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적국 최고 지휘관의 역량 차이였다.
오나라의 최고 지휘관은 수비만 잘하는 도망의 귀재, 찍찍이 손권이었다.
근데 촉나라의 최고 지휘관은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 제갈량이네?
그 결과 장료는 손제리의 머리를 여러 번 오목하게 만들고도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지만 장합은 제갈량의 매복에 딱 걸려 고슴도치가 되고 말았다.
근데 장합은 매복 자체를 완전히 예상하진 못했어도 제갈량을 뒤쫓지 말자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도 왜 굳이 제갈량을 쫓았느냐.
하필 상관이 사마의였거든.
안 그래도 원소 밑에 있다가 조조에게 항복했던 장합은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기에 사마의의 추격 명령을 따르다가 쇠뇌 1천 개로 집중 공격을 당해 죽었다.
이에 관해서 누군가는 사마의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보낸 것이라는 의견을 내고, 다른 누군가는 그저 사마의가 제갈량에게 또 ‘사마의’당했을 뿐이라는 의견을 냈지만….
그건 뭐,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전자든 후자든 설득력 있어서 무엇을 믿을지는 결국 본인 자유였다.
삼국지에서 최후로 승리한 인물은 결국 사마의였지만 그 전에 제갈량한테 서열 정리를 당한 적이 워낙 많아야지.
고난을 딛고 성장하는 소년 만화 주인공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야.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장합은 전선에서 직접 날뛰는 맹장형 타입이라기 보단 뒤에서 전세를 예측하며 병사를 지휘하는 지장형 타입이라는 것.
일기당천(一騎當千)의 무력을 지닌 장수들과 비교해 이거다 싶은 대승(大勝)은 없지만 또 그리 처참하게 패배한 전투도 별로 없던 장수다.
즉 최고점은 못 찍어도 저점은 높은 안정적인 맛으로 굴리는 장수라 해야 할까.
장합이 처참하게 패배한 전투라면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있지.
유비와 조조가 맞붙은 한중공방전 전초전 때 장합은 장비와 한 차례 맞붙었다가 아주 개박살이 났다.
병사를 죄다 잃고 겨우 십여 명 남짓한 인원과 함께 두 다리로 후다닥 달려서 달아났다던데….
그건 만인지적이라 불리는 인간 흉기가 이상한 거 아닐까.
만인지적과 1:1로 맞붙었는데 어찌어찌 살아난 것만 해도 참 대단한 거라 생각한다.
그때 장합은 아예 말도 버리고 산을 타면서 도망갔다는데, 장비는 그 신묘한 도주법을 사용하던 장합을 끝끝내 붙잡지 못했다.
“그래, 장합이란 말이지.”
“…딸꾹!”
원소의 대답을 들은 내가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장합은 계속해서 딸꾹질을 했다.
저리 소심한 성격으로 어떻게 병사를 이끄는 건지 모르겠네.
방통은 뒤에서 계책만 짜면 된다지만, 장합은 직접 창칼을 휘둘러야 할 텐데 말이야.
장합도 아마 꼬꼬마 군사처럼 해야 할 때는 확실하게 하는 성격이 아닐까 생각했다.
‘제, 제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무서운 꼴을 당할 거예요!’
‘으하하하! 꼬맹아! 그따위 위협으로 내가 겁먹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으으…. 정말 안 되는데….’
그 뭐냐.
내가 저번에도 설명한 적 있잖아.
‘그, 그러면 손가락부터 시작할게요.’
‘…뭐?’
‘되도록 빨리 대답해주세요…?’
‘자, 잠까…. 끄아아악!!’
방통 걔 소심한 얼굴로 온갖 무서운 행동은 다 한다니까?
근처에 있던 내가 소름이 돋을 정도라고.
…그러니 낙봉파에서 올돌골의 군대 절반을 산 채로 태워죽인 거겠지만 말이야.
생각하니까 궁금하네.
듣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말을 뚝뚝 끊어서 말하던 그놈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정릉! 내가 여자 함부로 유혹하지 말랬지!”
“응?”
내가 신기하단 눈초리로 장합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자 근처에 있던 여포가 방방 뛸 기세로 외쳤다.
“그렇게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전부 홀라당 넘어간단 말이야!”
“그윽한…. 뭐?”
여포의 엄청난 표현에 순간 어이를 상실한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난 잠깐 머릿속을 정리한 다음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라고?!”
내 대답을 들은 여포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장합을 노려봤다.
“야! 너 다 들었지!”
“히익?!”
“누구 말이 맞아! 똑바로 대답…. 읍읍!”
나는 오늘도 어김 없이 급발진하는 여포의 입가를 막으면서 하하 웃었다.
“이거 미안하군. 우리 천하무쌍께선 상당히 자주 이러거든.”
“그, 그렇습(딸꾹!)니까?”
“그래. 그러니까 조금 전 대화는 신경 쓸 필요 없다.”
“(딸꾹!)예, 옙!”
어째 조금 전보다 딸꾹질이 훨씬 많아진 장합은 내 말을 듣기 무섭게 고개를 엄청난 속도로 끄덕였다.
“…….”
“흐이익….”
나는 입을 봉쇄당한 여포가 장합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본다는 걸 깨닫고 나머지 빈손으로 여포의 눈까지 덮었다.
무슨 악어 진정시키는 것처럼 입과 눈을 동시에 막고 있네.
내가 근처에 없을 땐 도대체 무슨 히스테리를 부리고 다닐지 예상이 안 갔다.
힘도 별로 없는 내가 여포를 어떻게 제압하는지 의문이 들 텐데, 여포는 사고가 일어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내가 손을 댈 경우 본능적으로 몸에 힘을 쭉 빼버린다.
여포가 바둥거리다가 한 방 잘못 치기라도 하면 난 쿠크다스처럼 와자작 부서져 버릴걸.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물론 서여가 그를 두고 볼 리 없겠지만, 애초에 여포는 날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소중히 감싸던 인물이니 나와 부딪히는 일을 최대한 피했다.
이럴 때마다 그녀들 속에서 내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느껴지기에 쓴웃음이 나올 따름.
“으음! 기세만으로도 온몸이 저릿저릿하군!”
“이게 바로 천하무쌍인가…!”
나를 호위하는 서여와 여포처럼 원소를 호위하기 위해 대기하던 안량과 문추는 상황이 진정되자 곧장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천하무쌍을 저리 가볍게 다루는 대장군은 도대체….”
“세간에서는 밤의 대장군이라 불린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
“…….”
아니, 지방방송 왜 이래.
진짜 수다 좋아하는 아줌마들이야?
내가 당혹스러운 기색을 드러내자 줄곧 침묵을 지키던 원소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안량, 문추.”
분명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인데 왜 이리 차갑게 들리는 걸까.
이 묘한 분위기는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무어라 계속 이야기를 나누던 두 명은 화들짝 놀라면서 원소한테 힘차게 대답했다.
“헙!”
“죄, 죄송합니다!”
제 휘하 장수들을 단번에 휘어잡는 뛰어난 카리스마.
저런 모습이 있었기에 원소는 본래 역사에서도 그 누구보다 강대한 세력을 일구어낼 수 있었겠지.
“부하들이 잠시 실례를 보였군요.”
“…….”
“사죄의 뜻을 담아 제가 직접 대장군께 술을 따라 드리려 하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야 난 상관없다만.”
나는 여포의 눈을 봉쇄하던 한쪽 손을 풀고 천천히 잔을 내밀었다.
쪼르르르.
“…읍! 읍읍!”
원소가 담담히 술을 따라주는 광경에 여포는 계속 무어라 외쳤지만 나는 이를 무시했다.
풀어주면 또 여자 늘리고 있느냐면서 난장판이나 피우겠지.
나는 여포의 행동 패턴을 전부 다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