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27)
EP.527 기주(12)
사람들은 흔히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는 그 문제의 원인부터 제거하라고 말하지.
그렇기에 나는 파벌 싸움을 조장하는 원소에게 제일 먼저 찾아간 것이고, 그녀가 걱정하던 요소를 해결해주며 문제 해결에 온힘을 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찌 됐느냐.
“곽도, 그만하면 됐습니다.”
“…주군?”
파벌 싸움을 방관하던 원소는 곧장 내 의견에 따라 그들의 사이를 중재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평소와 똑같이 기주파 인재들을 은근히 돌려 까면서 제 존재감을 드러내려던 곽도.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닌 듯 눈을 끔벅이면서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제가 지금까지는 여러분께서 기 싸움을 벌이는 걸 참견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봤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원소의 개입에 모든 사람이 잠깐 침묵을 지킬 무렵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 그럴 필요가 없더군요.”
내 지원하에 하북을 다스리는 지배자로서 권력을 공고히 한 원소는 뛰어난 카리스마로 좌중을 단번에 휘어잡았다.
“앞으로 시답지 않은 꼬투리를 잡으면서 분란을 일으키는 자는 엄히 처벌하겠습니다.”
“…….”
“아시겠나요?”
원소는 예주파 중에서도 제일 많이 분란을 일으키는 남성을 바라보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누가 봐도 잠시 넋을 잃을 만한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그 미소가 어떤 의미로 지어졌는지 생각하면 결코 좋아할 수 없을 터.
“며, 명에 따르겠습니다! 주군!”
뛰어난 눈치 하나로 누군가를 시기적절하게 모함하고 끌어내리면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곽도는 원소의 뜻을 알아채고 냅다 허리를 숙였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꼴이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
“알겠습니다.”
“여부가 있겠나이까.”
곽도가 허리를 숙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주파가 모인 자리에서도 몇몇 인물이 대답했다.
왕좌지재로 알려진 순욱의 형제였지만 이상할 정도로 기록이 적은 공기 같은 문관, 순심(荀諶).
곽도와 같은 예주 영천군 동향 출신이자 그와 같이 파벌끼리 다투는 것에 적극 협조하며 훗날 원소 세력을 멸망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신평(辛評).
연의에서는 술에 취해 군량고 경계조차 제대로 못하는 무능한 장군으로 묘사됐지만, 실상은 조조의 정예 기병대에게 끝까지 저항하며 그의 몸에 피가 안 묻은 곳이 없을 정도로 혈전을 벌였다는 순우경(淳于瓊)까지.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순우경 한 명을 제외하고는 죄다 문제가 있네.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순심은 사서에 적힌 기록이 아예 증발한 수준이고, 신평은 곽도와 함께 이리와 승냥이 같은 놈이라면서 후대 사람한테 열심히 까이는 영혼의 단짝이었다.
근데 이 세계는 삼국지 연의의 면모가 강하잖아.
장수 한 명이 홀로 수천 명의 병사를 상대하며 무쌍을 펼치고, 요술과 도술을 부리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도사가 존재하며, 심지어 불로장생을 이룬 신선까지 허공에서 뿅 나타나는 괴력난신의 세상.
그러면 순우경도 정사와 달리 술에 취한 채로 헬렐레하다가 제 업무를 제대로 못 볼 가능성이 큰 건가?
“…끅.”
순우경 저 양반 지금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얼굴이 묘하게 붉었다.
…설마 술에 취한 상태로 군의에 참석한 건가?
진짜로?
아니, 중간마다 보이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면 술에 취했다기보단 숙취에 시달리는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고 치면 순우경은 밤늦게까지 열심히 술을 마셨다는 셈이니, 연의에서처럼 군량고 경계를 소홀히 하다가 조조한테 코가 잘리고 귀가 잘린 다음 원소한테 목까지 잘려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면 예주 출신 파벌들은 제대로 된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거잖아.
이게 맞나?
“…….”
파워 밸런스가 제대로 박살 난 기분을 느낀 나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예주파 인사들을 바라보았다.
장합, 전풍, 저수하고도 굳이 비교할 필요 없이 어디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관리 한 명만 데려와도 저들보단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나는 지금 쓰레기통에 모인 쓰레기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주 그냥 예쁘게 잘 모였어.
이제 쓰레기봉투에 넣은 다음 버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
단호한 목소리로 자기 뜻을 드러낸 원소는 내 표정을 슬쩍 확인한 다음 시선을 다시 되돌렸다.
설마 내가 예주파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걸까.
…그러고 보니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했네.
나는 왠지 한층 더 차가워진 듯한 원소의 분위기를 확인하면서 떨떠름한 기색을 드러냈다.
──────────
원소가 파벌 싸움을 중재하고 세력 관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를 며칠.
내가 원소 세력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눈치채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다른 의견도 있습니까?”
“예. 신(臣)이 판단한 바로는 문제를 급히 해결하는 것보다 조금 더 신중을 기하는 것이….”
회의를 한답시고 한자리에 모이면 다른 파벌의 말꼬투리만 잡으며 열심히 헐뜯기만 반복하던 관료들.
그런 모습을 보이던 관료들은 날짜가 지날수록 몸을 사리면서 건설적인 의견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비록 오랫동안 다퉈온 앙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지 이따금 서로 노려보는 일이 있었지만, 그를 눈치챈 원소가 잠깐 침묵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하 웃으면서 사이좋게 지내더라고.
선생님을 눈앞에 두고 열심히 친한 척하는 학생들이 연상되는데 기분 탓은 아닌 것 같다.
뭐가 됐든 이제 건설적인 의견을 내야 하니,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간신배적인 면모보다 정말 능력이 뛰어난 탁월한 인재들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찾아오기 무섭게 점차 입지가 줄어들어 가는 파벌이 있었지.
“…….”
“…크흠.”
말해 뭣하겠나.
그 파벌은 바로 예주 소속 파벌이었다.
예주파 인물들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인물들한테 점차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었다.
물론 그들도 멀뚱히 서서 당하기만 하지 않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 원소한테 의견을 낸 적이 있었지만….
‘그것뿐입니까?’
‘…예?’
‘의견이 그것뿐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그건….’
원소가 예주파 인물들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마구 압박을 넣더라고.
아무래도 내가 그때 저놈들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눈치챈 게 확실했다.
자기 남편이 안 좋게 생각하는 놈들을 굳이 중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어째 내가 예주파를 죽여버린 꼴이 됐네.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가시길.’
‘예, 옙….’
안 그래도 허구한 날 분열을 일으키던 파벌이라 모두한테 백안시당하는 상황인데, 본인들이 유일하게 붙잡고 있던 동아줄마저 자신을 내치자 그들은 누가 봐도 다급한 기색을 보였다.
이대로 흘러가다간 제 입지를 완전히 잃을 테고, 그렇게 되면 군의에 참석조차 못할 것이며, 거기서 시간이 더 흐를 경우 아예 옷을 벗어야만 하는 상황까지 찾아올 수 있었다.
관직에 오르는 걸 엄청난 명예로 생각하는 이 시대 사대부들이 오히려 관직에서 쫓겨난다?
그러면 평생 농사나 짓거나 장사나 하면서 살아야지 뭐.
물론 엄청난 수치심에 시달리며 분통을 삼키는 것도 덤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순심은 봐주는 게 나으려나?
비록 사서에 적힌 것이 별로 없는 공기 같은 문관이지만 존재감이 적은 게 죄는 아니잖아.
낙양에서 폐하를 보필하고 있을 순욱의 얼굴을 봐서라도 따로 이야기해줘야겠네.
넌 동생 잘 만났다고 생각해라.
이외에도 봉기(逢紀)나 심배(審配)처럼 신경 쓸 인원이 상당히 많았지만 그 인물들은 예외였다.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그 두 명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어느 파벌에 속해 활동하는 인물이 아니었거든.
봉기는 원소 세력 내부에서도 짬이 높고, 기주나 예주와 관계없는 형주 출신이었으니 웬 이상한 파벌에 껴서 기 싸움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한복을 꼬드겨 기주를 집어삼킨다는 계책을 냄으로써 어마어마한 공을 세운 인물이라 그런 거 없어도 되긴 해.
심배는 한복이 원소한테 항복하면서 자연스럽게 휘하로 들어온 기주 출신 인물이었지만 이 사람도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다.
원래라면 기주파에 껴서 예주파와 투닥거려야 정상이겠지만 심배는 그냥 대놓고 원소한테 충성하는 쪽으로 가버렸거든.
원소와 살짝 껄끄러운 사이인 기주파 입장에서도 찝찝하고, 예주파도 심배가 기주 출신이라서 받아들이기 싫다.
그냥 입지가 붕 떠버린 거지.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심배의 능력이 뛰어나고 원소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심배의 행동에 흐뭇해하며 그를 중용했기에 파벌 싸움에 끼지 않아도 됐다는 걸까.
애초에 심배처럼 파벌에 속하지 않은 인물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들은 그냥저냥 적당한 수준으로 입지를 다졌다.
근데 이들조차 원소라는 구심점이 사라지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게 문제지.
이런 요소를 생각하면 원소가 대단하긴 하다니까.
삐끗하면 대형사고를 일으킬 폭탄을 대체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거냐.
“대, 대장군. 잠시 보고드릴 것이….”
“응?”
내가 회의 광경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을 무렵 첩자로 심어놓은 허유가 내게 다가와 슬그머니 속삭였다.
“과, 곽도와 그를 따르는 무리가 최근 수상한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상한 행동?
무슨 일이라도 벌이려는 걸까?
나는 여전히 나만 봤다 하면 벌벌 떠는 허유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거짓은 아니겠지?”
“제, 제가 어찌 대장군께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믿어주십시오!”
“그렇다면야.”
그러면 그 수상한 행동이라는 게 무엇인지 들어봐야지.
난 계책 성공률 0%에 달하는 책사를 저 멀리 치워버릴 생각을 한 다음 경청하는 자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