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28)
EP.528 기주(13)
궁서설묘(窮鼠齧猫).
궁할 궁, 쥐 서, 깨물 설, 고양이 묘.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뜻으로, 제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벼랑 끝까지 몰리면 강자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한다는 걸 뜻하는 사자성어다.
궁서설묘란 사자성어는 모르더라도 뜻 자체를 아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을걸?
이 문장은 생각보다도 훨씬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표현이지.
구체적으론 전한 시기 때 나온 문장이던가?
아무튼 사람을 엄청나게 추궁하면서 그가 물러날 방향이 없는 막다른 곳까지 몰아버리는 순간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형사고를 터트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결국 죽는 건 똑같지 않냐며 더욱 막 나가는 거라고 해야 하나.
뭐, 딱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나도 웬만하면 목숨을 빼앗지 않는 선에서 벌을 내리고 있거든.
범죄자에게 아예 벌을 안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들의 재산을 압수하거나, 신분을 평민이나 노비로 강등시키는 일은 상당히 자주 하지만 사람의 목숨 그 자체를 빼앗는 사형 판결은 진짜 자제하는 편이다.
그 뭐냐.
조선 시대에도 죄수를 사형할 때는 무조건 최고 권력자인 왕한테까지 보고가 들어가야 집행할 수 있었던가?
법이 없으면 나라가 굴러가지 않고, 사람 목숨과 관련된 일에는 더욱 그런 법이니 사람 한 명을 평소에 죽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러면 전쟁이나 약탈은 뭐냐고 물을 수 있겠지.
근데 그건 법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통하는 무법 상황이니 예외로 치는 게 맞다.
애초에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 자체가 정상이겠냐.
…지금처럼 옛날 시대에는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게 문제지만.
하여튼 정상적인 나라에서 누군가를 재판도 없이 사사로이 죽이고, 그게 황제의 귀까지 들어간 상황이라면 제후왕들도 몸을 필사적으로 사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 예주에 머무르는 진왕 유총 같은 인물 말이야.
제후왕은 황제가 임명한 특정 지역에선 정말 엄청난 혜택을 누렸으나 그들도 결국 황제가 까라면 까야 하는 신세지.
이제 내가 직접 황제가 되겠다면서 반역을 일으킬 게 아닌 이상 사람들을 대놓고 서걱서걱하는 건 신하 입장에서 불가능했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닌가?
신하 중에서도 황제가 직접 특별히 임명한 권리가 있다면 누군가를 재판도 없이 사사로이 죽여도 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다.
그 권리가 바로 구석(九錫).
본래 역사의 조조가 위왕에 올랐을 때 허구한 날 언급됐던 그 권리가 맞다.
구석 중에서 부월(斧鉞)이라는 게 있는데 이걸 받은 신하는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지.
평소에도 계속 나를 감싸고 도는 폐하께서 이 권리를 주지 않을 턱이 있나.
‘아들! 폐, 폐하께서 웬 도끼 하나를 휙 건네주고 가셨는데?!’
‘예?’
‘진짜야!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도끼를 주고 가셨어!’
대놓고 구석을 하사하면 내가 이를 사양할 게 분명하니 이젠 별 기상천외한 방법을 쓰시더라고.
이번에는 대리 수령인가.
어머니께선 내 아이들을 보기 위해 집에 자주 머무르시는 편이니 아무리 생각해도 노린 것 같았다.
…근데 구석을 하사한다는 게 이리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 것처럼 날림 방식으로 진행되던가?
진짜 엄숙한 자리에서 예절을 철저하게 지키며 하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긴, 지금도 여전히 우리집 기둥에 몰래 붉은색 칠을 하려고 드시는데 이제 이상할 것도 없지.
기필코 권력을 안겨주겠다는 황제와 이를 피해 도망 다니는 대장군이라니.
아주 가슴이 웅장해질 지경이다.
심상치 않은 빛깔의 검은색 손잡이.
대체 도끼날 부분에 어찌 음각한 건지 의문이 드는 용 그림.
나는 대충 살펴봐도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도끼를 바라보다가 이를 잘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왠지 전설 아이템 하나를 더 얻은 기분이네.
만약 내가 쓰러진다면 게임에서 흔히 그러는 것처럼 땅바닥에 황금빛 아이템을 후두둑 떨어트리지 않을까.
“대, 대장군! 부디 자비를…! 커헉!”
“…어휴.”
궁서설묘(窮鼠齧猫).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지만, 결국 쥐는 쥐에 불과한 법.
쥐가 정말 의외의 타격을 날려 고양이를 따끔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포식자와 피식자의 위치가 뒤바뀌는 건 아니었다.
나는 끝내 선을 넘어 큰일을 벌이려는 몇몇 인물들을 별다른 경고도 없이 처리했다.
경고를 한답시고 시간을 주면 오히려 기회만 주는 꼴 같아서 말이야.
촤악!
여포는 핏물이 뚝뚝 흐르는 방천화극을 한 차례 털어내면서 말했다.
“이 근처는 전부 끝난 것 같은데.”
“그래?”
사람 시체가 이리저리 널려있는 꽤 참혹한 광경.
난 그 광경을 한 차례 둘러본 다음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이 정도로 깽판을 부렸으면 나올 사람은 다 나왔겠지.
또 짐승처럼 뛰어난 육감을 지닌 여포가 근처에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하면 없는 게 맞다.
“…….”
내게 살려달라고 외치며 다가오던 관리를 단번에 죽여버린 서여도 잠자코 침묵을 지키는 상태지 않나.
그때 나를 따르면서 일을 차분히 보좌하던 여인이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군, 뒷정리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인사를 올리는 유비와 관우.
“맞아! 우리 낭군님은 허약하니까 잠이라도 푹 자야…. 으꺅!”
…진지한 자리임을 잊고 힘차게 외치다가 제 둘째 언니한테 꿀밤이 꽂히는 장비까지.
이외에도 내 부곡으로 활동하는 조운 같은 장수를 바라본 다음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이제 돌아가야겠네.”
이미 통금 시간은 진작 지난 야심한 밤.
달이 하늘에 떠있는 위치를 보니 지금 시각이 새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또 이 시간에 이런 엄청난 짓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러게 왜 대형사고를 치려고 했냐.
가만히 있었으면 관직은 내려놓게 될지언정 피가 흐를 일은 없었을 텐데….
권력을 잃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갈 바에야 차라리 죽는 걸 택한 관리들을 바라보면서 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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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곽도를 따르는 무리가 최근 수상한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게 완전히 굴복하고 굽실거리기 바쁘던 허유가 나한테 처음으로 건넨 정보.
걸핏하면 뒷돈을 받아챙기고 제 오만한 성격을 숨기지 못해서 문제일 뿐, 능력 자체는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던 허유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정보를 얻어왔다.
그래서 곽도를 따르는 무리가 어떤 수상한 행동을 보였느냐.
평소에는 원소의 동생으로 태어난 원담과 계속 접촉하면서 아부를 떨고,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간에는 금은보화를 풀어 자기 명령에 따르는 사병들을 육성한다더라고.
이건 정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데려와도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충 예상하지 않을까.
예주파 이놈들은 내가 낙양으로 돌아가면 원소를 푹 찌르고 기주목 자리에 원담을 올려놓을 속셈이었다.
그 이후에는 뭐, 한나라와 독립 선언을 하든 뭘 하든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나갈 생각이겠지.
물론 허유가 나한테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으니 아랫사람들을 풀어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진짜네요?’
‘왜 진짜지.’
과거 다른 세력의 첩자를 수없이 색출해내며 정보전엔 이골이 난 사마의와 그녀가 일하는 광경을 잠자코 지켜보던 나는 허유의 정보가 진실임을 깨닫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낮에는 원담이 귀찮은 기색을 보이면서 밀어내도 계속해서 달라붙고, 밤에는 병사를 육성하면서 몰래 힘을 기른다.
…그래서 이게 왜 진짜냐고.
내가 없으면 반역 계획이 정말 성공할 거라 생각한 걸까?
지금 원소 곁에는 장합, 전풍, 저수 등 예주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뛰어난 인재들이 있었고 애초에 원소 본인 자체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사세삼공 가문의 얼자로 태어나 기주목까지 오르는 게 그리 간단해 보이더냐.
만약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더라도 원소는 요령껏 예주파를 처리했을 것이다.
단지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을 없애버린 게 다를 뿐.
이 상황을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그거지.
계책 성공률 0%에 달하는 곽도의 뛰어난 지성이 또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역시 굉장한 인물이라니까.
곽도가 낸 계책을 반대로만 실행하면 무조건 성공하는 거 아니냐?
“끄으윽….”
나는 관청으로 끌려오는 길에 매타작이라도 당했는지 얼굴이 퉁퉁 붓고 시퍼런 멍까지 든 비열한 인상의 남성을 바라보았다.
듣자하니 말에 올라타고 성문을 넘으려다가 붙잡혔다던가.
아마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채고 도망치려다가 실패한 것 같은데.
난 소란스러운 도시 내부를 확인한 다음 적당한 자리 위에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거리 곳곳에서 추격전이 벌어지는 모양이네.
아주 시끌벅적해.
나는 본격적으로 보물찾기를 시작한 원소의 병사들을 바라보면서 얌전히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