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31)
EP.531 이리(狼)(1)
원담을 기주에서 사례주로 전출시킨다.
사실 눈치가 있는 인물이라면 내가 원담에게 내린 처우가 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진짜 벌을 내리고자 했으면 원담은 이미 다른 예주파 인사처럼 목이 잘렸겠지.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원담에게 벌을 내리기는커녕 그녀를 오히려 비호하려 한다는 걸 눈치챌 터.
사마의는 이런 내 행동에 눈가를 살며시 좁히면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설마 가정이 있는 여인에게까지 손을 대는 건 아니죠?”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까지 여인에 굶주려 보이냐.
유부녀 킬러였던 조조도 미망인에게만 손을 댔지, 남편이 멀쩡히 살아있는 유부녀한테까지 손을 대진 않았….
…….
…않았던가?
왜 확신할 수 없지.
내가 뭐 조조 스토커도 아닌데 그의 부인 목록을 어떻게 외우고 다니겠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삼처사첩이 기본인 이 시대에도 다른 사람의 여인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는 행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취향이었다.
…아, 그래도 이제 막 떠오르는 게 하나 있네.
조조는 미망인뿐만 아니라 유부녀한테도 손을 댔다.
난세의 간웅인 조조와 미염공 관우를 동시에 홀린 그 유명한 두씨가 있지 않나.
그 당시 두씨의 남편이었던 진의록은 그녀를 하비에 내버려 두고 다른 여인과 놀아나는 상태였지.
그러니까 부인이 소박맞은 상황에서 조조가 날름 가로챈 거라 해야 할까.
다른 여인과 놀아나는 남편….
홀로 남겨진 부인….
그리고 부인에게 뻗쳐오는 검은 손….
나 이런 전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하여튼 조조와 달리 유부녀 취향이 아니었던 나는 원담을 노리고 그런 처우를 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냥 피를 흘리지 않고 끝내려 했을 뿐이야.”
“진짜죠?”
그러면 거짓말이겠니.
다른 건 전부 믿어도 내 이성 관계만큼은 하나도 믿지 못하겠다는 사마의의 반응에 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우리 꼬꼬마 군사께서 그렇고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아지셨네.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던 시절엔 간간이 말만 꺼내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나조차 의구심을 느낄 정도로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으음….
지금 사마의의 나이를 따져봤을 때 이성한테 흥미가 많아질 시기긴 하지.
20대 초반이라.
누가 생각해도 그렇고 그런 쪽으로 의식 전환이 잘되지 않겠는가.
특이한 점은 그런데도 사마의가 다른 이성과의 만남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는 것.
지금 사마의의 관직이 관직이다 보니 혼담 요청도 상당히 많이 들어오는 걸로 기억하는데 사마의는 정말 단호하게 철벽을 쳤다.
꼬꼬마 군사가 지그시 노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화들짝 놀라서 거리를 벌리더라고.
쯧쯧. 성격이 그래서야 데려갈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네.
내 예상으론 조조나 원소처럼 30대 중후반까지 가서야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조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남성을 고르는 눈이 워낙 깐깐해서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입양이라도 했으려나.
과거 어마어마한 위세를 자랑하던 조등도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을 양아들로 들이면서 조조가 입적한 거잖아.
조등이 조숭을 양아들로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했다.
남자의 또 다른 분신이 없는 환관이었기 때문이지.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양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이런 걸 생각하면 참 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권력을 위해 고자 되기 vs 그냥 살기의 웅장한 대결인가.
현대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후자를 고르겠지만 옛날에는 전자를 고르는 독종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환관이 쉽게 타락하는 이유도 이해가 가지.
권력을 위해서 남자의 생명까지 포기했는데 권력에 매달리지 않으면 어디에 매달리겠는가.
나는 여전히 자그마한 몸집을 자랑하는 사마의에게 다가간 다음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올렸다.
“꺄앗?! 가, 갑자기 무슨 짓인가요!”
“그냥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사마의는 보이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인 나조차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몸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분명 밥도 잘 먹고 휴식도 충분히 취할 텐데 왜 이렇게 조그마하지.
도대체 영양분이 다 어디로 가는 거냐.
내가 괜히 성인식까지 치른 사마의를 꼬꼬마 군사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니까?
이렇게 작달막한 몸집으로 성인 남성들을 고꾸라트리는 광경은 지금도 볼 때마다 놀라울 지경.
본래 역사의 사마의는 신출귀몰한 기동전을 강점으로 삼았던 만큼 육체 능력이 상당했을 거로 추측되는데, 아마 그러한 면모가 반영돼서 이리 강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관중 아저씨도 그리 생각했는지 삼국지연의에선 아예 사마의와 위연이 일기토를 벌이는 장면을 썼더라고.
근데 이건 너무 나갔다며 독자들한테 상당히 욕을 먹는 장면이기도 했다.
사마의가 갑자기 각성해서 변신이라도 한 게 아닌 이상 촉나라 후반부 대표 장수인 위연과 비등비등할 리 없잖아.
하지만 삼국지에서 나관중 아저씨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니, 사마의는 여러 매체에서 문관 중에서도 상당히 독보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아주 대표적인 삼국지 게임만 하더라도 라이벌인 제갈량의 무력이 저기 30이란 밑바닥에서 노는 동안 혼자 60대에서 놀고 있단 말이지.
이는 제갈량이 이상한 게 아니라 사마의가 이상한 거다.
총합 능력치가 제일 높게 나오는 유부녀 킬러조차 무력이 70 언저리인 걸 생각하면 매우 엄청난 것.
그렇다 쳤을 때 나는 아마 40쯤 되지 않을까.
아, 초선한테 건네줬던 칠성보도나 폐하께 받았던 부월이란 좋은 무력 아이템이 있긴 하니 45쯤 되겠네.
…이딴 게 대장군?
아랫도리 없는 십상시한테 모가지가 잘렸던 하진 대장군과 의형제를 맺어도 되는 수준이구만.
하여튼 사마의는 인터넷상에서 자주 봤던 수상한 취향들이 딱 좋아할 법한 체형을 지녔다.
막 사형수 어쩌고 하는 몇몇 사람들 있잖아.
이제 와서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이미 나도 이런 체형에 가까운 여인들을 여러 명 품에 안았으니까.
살짝 위험한 생각을 하던 나는 고양이처럼 들어 올려진 사마의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 기분 풀렸어?”
“으, 으으…. 진짜….”
사마의는 내 질문을 받았음에도 부끄러운 기색만 보일 뿐, 평소 그랬던 것처럼 틱틱거리며 날 쏘아붙이지 못했다.
사실 사마의가 지금 마음만 먹는다면 날 사람(이었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걸.
내 눈앞에서 자주 보였던 가벼운 몸놀림으로 휘리릭 돌아 턱을 걷어차면 나약한 개복치는 바로 돌연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마의가 굳이 내 손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건 무엇을 뜻하겠는가.
피식 웃은 나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기분 풀렸다고?”
“아, 아닌데요!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가요?!”
무슨 자신감이긴.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너를 지켜봐 왔던 자신감이지.
물론 이 오그라드는 대사를 대놓고 말했다간 눈앞의 꼬꼬마 군사가 창피하지도 않냐면서 방방 날뛸 것이 분명하니 난 잠자코 침묵을 지켰다.
그나저나 우리 꼬꼬마 군사께선 누구와 맺어지려나.
사실 나한테 보이는 행동거지를 보면 대충 감이 잡히긴 한다만….
근데 사마의와 나는 족히 15살 이상 차이 나지 않냐.
누군가가 보면 이만한 도둑놈 새끼도 없다면서 욕할 것 같은데.
본래 역사의 유비와 손부인은 무려 30살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그건 촉나라와 오나라의 정치적 이해 관계가 얽힌 정략결혼이었기에 어찌어찌 이해는 간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엔….
으음….
아무리 봐도 여자를 밝히는 대장군이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성을 호로록 먹어버린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그때가 되면 내 주변 사람들이 날 어떻게 바라볼까.
상상만 해도 살짝 으슬으슬할 지경이다.
“그래서 언제 내려주실 건가요?!”
“글쎄?”
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빽 소리 지르는 사마의를 계속 비행기 태워주며 즐겁게 웃었다.
그때가 되면 미래의 내가 알아서 감당하겠지.
난 믿고 있….
“…흐우우.”
“?”
“저기요.”
내가 꼬꼬마 군사를 놀리면서 싱글벙글 웃고 있던 그때 사마의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꾸 그렇게 나오시면 확 자빠뜨리는 수가 있어요.”
“…으응?”
내 당혹스러운 표정을 본 사마의가 볼에 홍조를 띤 채 곧장 말을 이었다.
“제가 지금 농담하는 걸로 보이시나요?”
“…….”
“그러면 진짜 어떻게 되는지, 한번 시험해보죠?”
잠깐만.
그 미래가 설마 지금이었나.
과거의 나,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
“으음….”
늘 내 근처에서 호위에 열중하는 서여와 여포조차 지금 자리를 비켜줘야 할지 잠깐 고민하는 상황.
…역시 장난은 선을 지키면서 하는 게 맞구나.
나는 불과 몇 초 전의 내가 활짝 웃으면서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올리는 광경에 어이를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