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37)
EP.537 이리(狼)(7)
설전을 벌인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참 보기 드문 상황.
사실 설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말싸움은 내가 평소처럼 그녀들을 중재하자 금방 끝이 났다.
“슬슬 그쯤 해둬. 아직 할 일이 남아있잖아?”
“…칫.”
딱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아쉬워하는 쪽이 제갈량에서 사마의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
사마의는 정말 흔치 않은 기회를 이리 날린다는 게 아쉬워 보였으나, 그런 모습과 별개로 정말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내 의아한 표정을 눈치챈 사마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회는 이번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
대충 예상은 했지만 아직 그렇고 그런 짓도 한 적 없는 숫처녀라며 제갈량을 놀릴 계획이 수두룩한 모양이다.
“애초에 제가 그만하랄 때 그만두지 않으면….”
“…?”
“…….”
그때 계속해서 말을 잇던 사마의는 난데없이 입을 다물더니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사마의 너도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구나.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바로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지.
그리고 두 번째는….
“않으면?”
“…으, 으으. 그걸 꼭 제 입으로 말해야겠어요?!”
내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묻자 사마의는 곧장 얼굴을 붉히면서 외쳤다.
난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왜? 나는 정말 모르겠는데.”
“됐어요!”
내 음흉한 목소리를 들은 사마의가 새침 맞게 고개를 휙 돌렸다.
하여튼 눈치도 빠르다니까.
만약 사마의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가 걱정했던 것처럼 엄청난 짓을 벌였을 것이다.
가령 진짜 입맞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야.
이제 와서 부끄럽다는 둥 점잖게 행동하기엔 너무 먼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나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면서도 내 무릎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사마의를 바라보며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으으…. 예상은 했지만 나보다 먼저 앞서갈 줄이야….”
“…….”
이윽고 모든 상황을 파악한 방통과 제갈량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으로선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지금은 말이야.
난 이리저리 당황해하고 우물쭈물하면서도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진 두 책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
메뚜기 재해를 해결하기 위해 기주로 찾아오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대충 두 달 조금 안 되는 것 같은데.
원래라면 메뚜기만 후딱 해치운 뒤 곧장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마치 내가 기주로 오는 걸 기다렸다는 듯 다른 사건이 연달아 터지니 낙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차일피일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기주의 지배자인 원소가 나를 유혹한다는 생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으며, 오랫동안 나를 졸졸 쫓아다니던 꼬꼬마 군사 중 한 명과 맺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곽도와 신평을 중심으로 한 원소 세력 예주파 인사들이 기주를 아예 뒤엎으려는 사건이 있었지.
내가 이를 너무 간단하게 해결해버렸기에 감이 안 올 수도 있을 터.
근데 예주파 인사들이 기주에서 벌이려 했던 짓은 무려 반역이었다.
죄수와 조금이라도 엮여있다 싶으면 전부 모가지가 뎅겅 날아가는 그 역모죄라고.
일단 계획의 입안자가 계책 적중률 0%를 자랑하던 곽도이니만큼 반역자들을 진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이놈과 엮여있는 놈들이 워낙 많다 보니 뒤처리에 상당히 애를 썼다.
비록 능력은 부족할지언정 오랜 기간 동안 상석에 앉아있던 놈들이니 인맥이 상당하더라고.
그 인맥들을 일일이 조사해서 역모와 연관이 있는 놈과 없는 놈들을 추려내는 데 상당한 기간이 소모됐다.
사실 시간을 아끼고 싶다면 이런 짓을 할 필요도 없이 전부 사형 판결을 내리면 되지만….
내가 그러겠냐.
역모는 기본적으로 삼대를 멸하고,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구족까지 멸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 역도 한 명이 수천 명의 관계자를 길동무로 데려가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하물며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하북의 고위 관료라면 어떨까.
농담이 아니라 만 명이 넘는 사람이 형장으로 끌려갈 수도 있을걸.
지금 같은 시기에도 무려 5천만 명이란 인구를 자랑하는 한나라였으니 한 번 칼춤이 벌어지면 어마어마한 피가 흘렀다.
어쨌든 그런 상황을 최대한 막고자 이리저리 동분서주하기를 며칠.
“대충 이 정도면 전부 해결했나?”
“그, 그렇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누군가와 밤 산책을 즐기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한가?”
“예! 제 정보에 따르면 예주파와 결탁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려던 장사치는 이놈이 끝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허유를 바라보다가 눈앞에 있는 무언갈 살짝 걷어찼다.
“…히이익!”
“아, 미안하군. 의도한 건 아니었다.”
내게 허리를 굽신거리며 연신 눈치만 살피던 허유의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온 그것.
그 무언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인간의 머리였다.
사람들은 흔히 끼리끼리 논다고, 곽도와 결탁해 제 잇속을 챙기려 했던 상인 몇몇은 아주 은밀하게 불법적인 사업에 손을 뻗친 상태였다.
왜, 밀매나 노예 사업 같은 것들 있잖아.
이놈은 그들 중에서도 특히 악질이라 관용을 베풀지 않고 목을 베어버렸다.
솔직히 어린아이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팔아버리는 건 선을 아주 세게 넘었지.
특히 부모를 잃은 아이나 빈민가의 아이만 쏙쏙 골라서 잡아다 파는 게 아주 악질이었다.
난 눈을 부릅뜬 채 죽음을 맞이한 상인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 돈 좀 만지겠다고 다른 사람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 쓰겠나?”
“그렇습니다! 아주 고약한 놈들이지요!”
“그래. 쓰레기처럼 고약한 놈들이지.”
나는 지금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허유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지금 이 상황을 늘 마음에 새겨두도록.”
“그,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뭐긴 뭐겠냐.
아직도 이해 못하겠어?
최근에는 몸을 사리느라 뒷돈을 챙기는 것 같지 않았지만, 내가 낙양으로 돌아가면 다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정말 모르겠나?”
“…!”
내 기색이 달라진 걸 눈치챘는지 허유는 나를 향해 재빨리 외쳤다.
“아닙니다! 전부, 전부 이해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온 밤.
달빛을 받아 스산하게 빛나는 서여와 여포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허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덜덜덜덜.
적어도 엄청나게 무서워한다는 건 잘 알겠다.
하긴, 솔직하게 말하면 그럴 만도 해.
근처에 자신의 아군은 한 명도 없고, 조금 전 사람을 단칼에 베어 죽인 인간 도살자들이 피가 뚝뚝 흐르는 무기를 손에 든 채 자신을 바라보는 상황이다.
심지어 그녀들을 지휘하는 인물이 걸핏하면 자신을 죽일까 말까 하면서 살인 스텝을 밟는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조금 전만 하더라도 허유가 대답을 잘못했으면 뭐….
이 인물이 과연 살아있었을지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허유의 첩자 노릇으로 시간을 많이 절약한 건 사실이니까.
허유의 도움이 없더라도 결과 자체는 똑같았겠지만, 날짜가 지날수록 내용이 점차 길어지는 폐하의 손 편지를 고려했을 때 그녀의 공은 상당하다 볼 수 있었다.
내용 자체는 평범하게 안부를 전하는 것이었지만 난 알 수 있거든.
내 딸 유정이 허구한 날 아비를 찾으며 울음을 터트린다든가, 어제도 혼자서 잠에 들었다는 둥의 내용을 보면 굳이 내가 아니라도 전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빨리 돌아오라며 은근히 압박하는 거잖아.
하루가 지날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던 금군의 표정을 확인하는 것도 꽤 흥미진진했다.
지금 황궁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머리를 잃은 몸통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을 슬쩍 피한 다음 근처에 있던 유비에게 말했다.
“이놈의 재산은 국고에 더하고, 주변 시체는 적당히 불태워버려.”
“명에 따르겠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은 자는 상인 한 명뿐만이 아니었다.
이놈도 뭔가 찔리는 점이 있는지 웬 깡패 패거리들을 데리고 다니더라.
돈으로 고용한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약속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나쁜 놈과 붙어먹은 놈들인 건 확실하지.
바로 수준 차이를 실감하고 순순히 항복한 다음 감옥에 끌려간 놈도 있었지만, 노예만큼은 될 수 없다며 끝까지 저항한 몇몇 눈치 없는 놈들도 있었다.
그 눈치 없는 놈들이 결국 어찌 됐을진 일목요연하지 않나.
나는 수행원들이 시체를 한곳에 모으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허유에게 말을 걸었다.
“허유.”
“부, 부르셨습니까?”
“앞으로 내 눈에 거슬릴 법한 짓은 하지 말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장군!”
연의에선 입을 잘못 놀리다 조조의 호위 장수인 허저한테 죽고, 정사에선 조조한테 직접 죽임당한 인물이 나한텐 이상하게 대답을 잘한단 말이지.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오만해지지 않아서 그런가?
솔직히 선을 넘는다고 판단되면 바로 처리해버릴 계획이었는데 말이야.
조금 전 내가 던진 질문을 잘못 대답했으면 저기 시체 더미에 사람이 한 명 더 추가됐으리란 걸 눈치챘는지 허유는 자리에서 벌벌 떨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