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39)
EP.539 복귀(2)
“살펴 가시지요.”
“…그래.”
원소는 조조를 바라보면서 한 차례 기 싸움을 벌였지만, 나를 향해서는 아주 고풍스럽고 차분한 몸짓으로 인사를 올렸다.
제 음습한 취향을 드러낸 조조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원소 그녀도 상당히 눈에 띄는 성격이란 말이지.
나는 무려 100리 바깥까지 배웅나온 원소가 제 호위와 함께 천천히 물러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삼국지연의에선 장료나 서황 등 조조의 엘리트 장수들조차 꼼짝 못하게 했던 안량과 문추.
훗날 익주 방면의 대촉 전선을 책임지며 제갈량의 북벌을 끈덕지게 방해했던 장합.
만약 원소가 이를 받아들였다면 판도를 뒤엎을 수 있을 만한 계책을 여럿 건의하던 전풍과 저수까지.
아주 그냥 명성이 있다 싶은 인재들은 모조리 끌고 왔네.
으음, 한나라의 이인자를 배웅하는 행사니 당연한 건가?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가 이를 빌미로 트집을 잡으면서 거슬리게 굴면 원소도 귀찮아할 테니까.
정말 그리 행동할 사람이 있겠냐 싶겠다만, 원래 어디를 가든 원리 원칙을 따지면서 고지식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꼭 한 명씩은 있었다.
낙양에도 나를 나무라는 사람이 있었고, 심지어 황제한테까지 제 의견을 당당히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마당에 원소한테도 그러지 않는 게 이상하지.
그렇게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길 무렵.
기웃기웃.
“……서여.”
난 주변 사람이 보이는 특이한 행동에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예.”
“왜 그러고 있어?”
그도 그럴 것이 오추마 위에 기승한 서여가 내 주위를 계속 빙글빙글 돌면서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
말은 지능이 상당히 뛰어난 생물이고, 오추마는 영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말이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 터.
푸르륵.
하지만 주인의 명령에 따라 한곳을 빙글빙글 돌던 오추마는 살짝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일 뿐, 그 이상의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사이가 훨씬 가까운가 보네.
하긴, 오추마는 사면초가에 빠진 항적이 자포자기한 채 죽으려 하자 자신도 물속에 풍덩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이제 몸은 괜찮으신지요?”
서여는 내 질문을 받자마자 평소와 똑같은 무감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물음을 들은 나는 알 수 있었다.
아, 지금 서여는 눈앞에 있는 개복치가 언제 돌연사할지 몰라 걱정하는 상태였구나.
난 서여가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그래. 나 이제 엄청 건강해.”
심지어 지나가던 신선이 의뢰 보상이라면서 내게 기까지 불어넣어 주지 않았나.
정확한 효능은 모르겠지만 이제 나는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건강할 게 분명했다.
내가 씩 웃으면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자 근처에 있던 여포가 툭 중얼거렸다.
“…벌레한테도 얕보였으면서.”
“…….”
“그런 사람이 건강해져봤자 얼마나 건강해지겠어. 또다시 먹이 취급이나 안 당하면 다행…. 으브브브!!”
당장 그 입 다물지 못할까.
나는 여전히 날 개복치도 아닌 무언가로 바라보는 괘씸한 소녀의 볼따구를 쭉쭉 늘려대며 잠깐 과거를 떠올렸다.
몸이 허약하다 못해 벌레한테도 산송장 취급을 받으면서 잡아먹힐 뻔했던 과거.
…사실 아직도 그를 떠올릴 때마다 살짝 자괴감이 들긴 해.
내가 진짜 맛있어 보였나.
만약 그 자리에 나 혼자만 있었으면 어땠을까.
‘으아악──!! 사람 살려──!!’
…아마도 말 위에 올라탄 채 죽어라 달렸겠지.
말이 어찌 하늘을 날아다니는 메뚜기떼를 따돌리겠느냐는 생각도 하겠지만, 지금 내가 올라탄 말은 평범한 말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 모두가 내 신변 호위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데 평범한 말을 타게 해주겠냐고.
구체적으로 언제였더라.
아마도 서여가 오추마를 길들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내가 이제 막 성인식을 치렀던 시절부터 함께 지냈던 말은 나이가 많이 들었기에 난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그 녀석을 은퇴시키고 노후를 보내게 해줬다.
그 녀석한테는 발발 움직인다는 뜻을 담아 발발이란 이름도 붙여주고 나름 애지중지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더라고.
이미 나를 만나기 전부터 나이를 좀 먹은 친구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내가 타던 말이 은퇴했으니 이제 내가 올라탈 새로운 말을 구해야 했는데….
‘걷는 모습을 보니 좌우 균형이 살짝 틀어졌습니다.’
‘…그러면 쟤는?’
‘안 돼! 척 봐도 비실비실한 게 다릿심이 약할 것 같아!’
‘…….’
이 말은 이래서 안 된다, 저 말은 저래서 안 된다….
분명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수준의 군마들만 모아놓은 마구간이었지만 주변 사람 기준에는 여전히 낮아 보였던 모양이다.
솔직히 오추마와 적토마라는, 사실 말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둔갑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말을 데리고 다니는데 얼마나 눈이 높아졌겠나.
결국 참다못한 나는 두 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을 원하는 거야?’
‘적어도 적토(赤兎) 이상은 되어야지!’
그렇군.
너희는 이제 나를 말 위에 태울 생각이 없나 보구나.
다른 관직도 아닌 한나라의 대장군이 전장에서 뚜벅뚜벅 걸어 다니게 생긴 초유의 상황.
내가 이 두 명을 어떻게 설득할까 아주 깊은 고민에 빠질 무렵, 수상할 정도로 말에 진심인 장수가 다가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제가 주군의 위엄에 걸맞은 엄청난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응?’
말한테도 진심이지만 부하들을 생각하며 때때로 멧돼지를 잡아 잔치를 열어주는 면모도 있었기에 인기가 상당히 많은 장수.
본래 역사에선 여포를 따르는 팔건장 중 한 명이자 기병 대장을 맡고 있었던 후성(侯成)은 마구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우리에게 다가와 헤헤 웃어 보였다.
여포는 후성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정릉의 위엄에 걸맞은 엄청난 말?’
‘그렇습니다!’
‘…야.’
후성에게 한 번 되물었던 여포는 대답을 듣자마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 그 말 똑똑히 기억해.’
‘…옙?’
‘만약 수준 낮은 말을 보여주면 네가 정릉을 고작 그 정도로밖에 안 본다는 이야기니까.’
후성은 여포의 설명을 듣자마자 헉 소리를 내곤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
서여도 여포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후성을 지그시 바라보는 상황.
‘그러고 보니 너희 기강 안 잡은 지 조금 오래됐지?’
여포는 콧방귀를 내뱉곤 팔짱을 낀 채 안내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안내해봐. 일단 지켜보고 판단할 테니까.’
‘…….’
‘만약 내 기준에 안 차면…. 어떻게 될지 알 거라 믿어.’
그 심상치 않은 위협에 후성은 안색이 귀신처럼 창백해졌다.
…자신만만한 건 좋았는데 이건 또 너무 자신만만했구나.
후성으로선 진짜 좋은 말이 있으니 그리 말한 거겠지만, 허구한 날 내가 좋다면서 빙빙 감싸고 도는 여인들에게 나를 다른 무언가와 비교하는 행위는 역린과 다름없었다.
아마 후성이 여포의 기준에 안 차면 훈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하게 될 터.
‘난 신경 쓰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라.’
나는 한 차례 이마를 짚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포가 널 패러 올 것 같으면 곧장 나한테 달려와.’
‘주, 주군…!’
‘정릉! 그리 무르게 행동하면 안 된다니까!’
무르게 행동하고 자시고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다 업보가 된다는 걸 모르겠니.
본래 역사에서도 후성을 가혹하게 대우하다 팔건장들에게 배신당했던 여포를 바라보며 난 한숨을 내뱉었다.
‘나야말로 내 말 안 들으면 일주일 동안 얼굴 안 볼 줄 알아.’
‘?!’
내 각방 선언을 들은 여포는 곧장 체면도 잊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외쳤다.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
‘대답 안 해주면 나 여기서 울어버린다?!’
충격 요법 효과 확실하구만.
내가 없으면 곧바로 죽어버릴 기세인 서여와 비교했을 때 여포는 독립성이 조금 강해서 이런 충격 요법도 마구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여에 비해서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일 뿐.
‘지, 진짜 울…. 으에엥….’
여포는 내가 묵묵히 침묵을 지키자 곧장 눈물샘을 터트려버렸다.
애초에 일주일 각방 선언을 충격 요법이라 부르는 것도 웃기지 않냐.
아직 4살도 안 된 낙양에 있는 우리 딸보다도 자립심이 약하다니, 이거 정말 맞아?
나는 슬쩍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서여는 어때? 내 말 안 들을 거야?’
‘…….’
도리도리도리.
서여는 내가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아주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흔들었다.
속도 봐라.
저러다 목뼈 잘못되는 거 아닐지 몰라.
‘흐끄윽…. 우우….’
‘그래, 이제 울지 마라.’
엉엉 울던 여포를 껴안은 채 살짝 토닥여주던 나는 다시 한번 후성에게 물었다.
‘이야기가 길어졌군. 이제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나?’
‘…역시 대단하십니다! 주군!’
넌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의외로 관리를 철저히 했는지 새하얗게 빛나는 치아를 드러내며 껄껄 웃은 후성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