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42)
EP.542 복귀(5)
나는 지금도 여전히 대량의 토사를 운반하는 거대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별다른 사건 없이 낙양에 도착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황궁으로 제일 먼저 호출당한 내가 들은 말.
“많이 늦었구나.”
“…폐하.”
“분명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폐하께선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지만 그게 정말 즐거워서 짓는 표정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을 꼽자면 폐하의 품에 안겨있던 유정의 반응이라 해야 할까.
“짐에게 거짓을 고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 알고 있을 터.”
“브브아!”
유정은 제 어머니가 말을 이을 때마다 열심히 혀 짧은 소리를 내며 같이 호응했다.
아마 자기 딴에는 어머니처럼 위엄 있는 모습을 보이려 한 것 같은데….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아이가 그래봤자 귀여울 따름이지.
───…….
그 귀여운 모습을 마주한 몇몇 관료들은 당연하게도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하지만 지금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여기서 웃음을 터트렸다간 어마어마한 일을 겪으리란 것이 명확했기에 관료들은 슬쩍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혹여나 황제와 눈이 마주칠까 시선을 내리까는 관료들.
티가 나지 않게 눈동자를 굴리면서 그들을 한 차례 훑어본 황제 폐하께서는 곧장 말을 이었다.
“그대는 당분간 황궁에 머무르면서 자숙하는 기간을 가지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황제는 예상대로 내가 어딜 함부로 나돌아다니지 못하게 근신 처분을 내렸다.
한나라의 지존인 황제에게 거짓을 고한 것 치고는 엄청나게 유한 처벌이지.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괘씸죄로 목이 슝 날아갔을걸.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한들 황제에게 거짓을 고했으니 어느 한 군데는 성치 못했을 거고.
폐하께서 내게 내린 근신 처분은 사실상 처벌이 아니라 포상이나 다름없었다.
근신이 어째서 근신이겠는가.
어디 한곳에 얌전히 있으면서 느긋이 지내면 되니까 근신인 거지.
근신 처분을 당하는 동안에는 직장에 출근하거나 집무도 보지 않으니 싱글벙글 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물론 당사자가 정말 행동을 조심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이를 감시한다던가, 일을 하지 않으니 녹봉도 지급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긴 해.
근데 나는 그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말이 근신 처분이지 폐하께선 이미 내 죄를 용서하신 거나 다름없었고, 재산은 이미 자택 창고에 수북이 쌓여있는 상황.
‘최근 황실 창고에 쓸모없는 사치품이 많이 쌓여있더군. 그대가 가져가거라.’
‘…폐하. 저는 사치품을 모으는 취미가 없….’
‘가져가거라.’
‘…….’
폐하께서 자꾸 나한테 소매 넣기를 해주시는데 가난해지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짐이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내뱉게 만들 셈인가?’
‘아닙니다, 폐하.’
내가 선물을 받지 않으면 아예 전부 불태워버릴 듯한 기색이더라고.
이미 어떤 인물을 판단할 때도 내게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란 기준으로 나누는 분인데, 애물단지에 불과한 물건들은 오죽할까.
탐관오리들을 쳐내면서 나한테 선물이 오는 횟수가 줄어들면 뭐 하나.
이 나라에서 가장 부유할 게 분명한 사람이 내 입을 강제로 벌리고 보물을 쑤셔 넣는 상황이라 창고가 마를 날이 없었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제 아이를 품에 소중하게 안은 폐하께서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근신 기간은 그리 길지 않겠지만, 짐이 따로 조서를 내리기 전까지는 행동에….”
“부아!”
하지만 그때 폐하의 품에 안겨있던 유정이 돌발행동을 일으켰다.
그 돌발행동이 과연 무엇이냐.
“마랑마랑!”
“…….”
제 작달막한 손을 뻗어 황제의 볼따구를 쭉쭉 늘려대기 시작했다!
“…….”
“꺄륵! 꺄르륵!”
무표정 그대로 뺨이 쭉쭉 늘어나는 폐하와 그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언밸런스한 조합.
“허어업…!”
“흐읍…!”
그 기묘한 광경을 마주한 관료들은 수년간 황궁에서 활동했던 뛰어난 순발력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웬만한 일에도 끄떡없던 황실의 고관대작들조차 흔들리게 만드는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
웃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구나.
표정 관리 잘못하는 순간 모든 것이 멸망하는 어마어마한 시련이었다.
…솔직히 공식 선상에서도 아이를 데리고 다니시던 걸 볼 때부터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 건 알고 있었다.
근데 아이가 너무 좋으시다는데 어쩌겠어.
황실 관료들도 폐하한테서 아이를 강제로 떼어놓았다가 어마어마한 후폭풍에 휩쓸리는 건 원치 않을 터였다.
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몸을 부들부들 떠는 관료들의 모습을 확인하다가 폐하께 천천히 다가갔다.
“우리 딸, 그쯤 하렴. 모두 곤란해하잖니.”
“꺄우?”
나는 여전히 제 어머니의 얼굴을 이리저리 뭉그러트리며 꺄르륵 웃고 있던 유정을 들어 올렸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짐작했지만 꽤 묵직해졌네.
정말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구나.
마치 고양이처럼 겨드랑이를 붙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린 유정은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아바!”
“그래. 아빠다.”
내가 피식 웃으면서 품에 꼭 껴안아 주자 꺄르륵 웃던 딸.
“주우욱!”
“…….”
그 딸은 조금 전 어머니한테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볼을 쭉쭉 늘려댔다.
이 볼따구 집착은 무엇이지.
도대체 누굴 닮은 것이냐.
…난가?
“…후후.”
내 난데없는 표정 개그를 바로 코앞에서 마주한 황제 폐하께서 살짝 웃음을 흘리셨다.
사실 개그라 부르기에도 뭣한 표정인데 말이야.
이것도 콩깍지라면 콩깍지라 해야 할까.
“휴우우….”
저러다 숨넘어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웃음을 참던 관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조금 전 상황이 계속 뇌리에 떠오르는지 다시 입을 틀어막는 관료도 있었지만.
“애옹.”
옥좌 근처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애옹이…. 아니, 야옹이는 참 잘 논다는 표정으로 한 차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뭔가 과거에 비해서 되게 토실토실해졌군.
저게 고양이야, 돼지야?
황제 폐하께서 직접 기르는 고양이 아니랄까 봐 어지간히도 잘 먹었나 보네.
난 또다시 이름이 헷갈리는 야옹이를 눈앞에 둔 채 폐하께 슬그머니 속삭였다.
“폐하. 아무래도 야옹이는 운동을 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가?”
내 의견을 들은 폐하께선 고개를 돌려 돼지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짐은 저 모습도 귀엽다 생각한다만….”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나는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야옹이와 오래 지내기 위해선 꼭 필요한 선택입니다.”
“으, 으으음….”
내가 이렇게까지 주장하는데 폐하께서 뭘 어찌하겠나.
결국 황제 폐하께선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의견에 찬성했다.
“…알았다. 일단 간식부터 줄여야겠군.”
“애옹?!”
팔자 좋게 늘어져 있던 고양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벌떡 일어났다.
하하, 꼴좋다 이놈.
그러니까 누가 나 비웃으래?
나이도 충분히 먹은 놈이 자기 관리 안 하면 훅 가는 거 순식간이다.
넌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또 유협에게 말해 운동도 시켜야겠고….”
“…….”
그러고 보니 황제 폐하와 진류왕 전하가 서로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야옹이 덕분이었지.
아름다운 소녀들에게 이쁨을 두 배로 받으면서 이것저것 주워 먹으니 살이 뒤룩뒤룩 찌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근데 저놈을 콱 잡아다가 요리해 먹을 것도 아닌데 살찌워서 뭐 하겠냐.
관절에 좋다면서 저 고양이를 나비탕으로 요리하는 놈이 있다면 그 당사자도 폐하한테 요리당할걸.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로.
‘이것 보세요! 근처에 있던 강아지를 주워 왔어요!’
‘멍!’
진류왕 전하께선 내가 야옹이를 보여준 걸 계기로 새로운 취미가 생겼는지 귀여운 소동물들을 궁에서 기르기 시작하셨다.
고양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강아지가 이리저리 우다다다 돌아다니는 건 확실히 정신없더라.
뭐, 그래도 강아지의 충성심은 모두가 알아주는 편이니 만약을 대비한 호위 역할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사정이 있는 놈인지 처음 보는 사람은 무척 경계하더라고.
내가 저 돼지인지 고양인지 헷갈리는 놈을 바라보면서 진류왕 전하를 떠올릴 무렵, 폐하는 근처 관료들에게 입을 열었다.
“중요한 안건은 전부 끝났으니 이제 물러나도록.”
“예, 폐하.”
근처에서 눈치만 살피며 물러날 때만 기다리던 황실 관료들은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를 우르르 벗어났다.
…그러면 나도 물러날 때인가?
“브아!”
여전히 품 안에 유정을 안고 있던 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슬슬 저도 돌아가 보겠….”
“으음? 가기는 어디를 간단 말이더냐?”
“…예?”
내가 살짝 얼빠진 표정을 짓자 폐하께선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웃어 보이셨다.
“적어도 내일까지는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거라.”
“…….”
“자, 어서 가자꾸나.”
누가 봐도 그렇고 그런 의도로 손을 붙잡아 오는 황제 폐하의 모습에 난 어어 하면서 힘없이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