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44)
EP.544 복귀(7)
내가 근신 처분을 받고 얌전히 집에 있는 동안 나는 그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가족과 마음껏 시간을 보냈다.
보모 역할을 하는 시종들이 열심히 보살펴 줬겠지만, 그래도 아이들 입장에선 무언가가 살짝 채워지지 않았겠지.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나이의 아이들은 마치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오죽하면 업무가 별로 없음에도 정신없는 하루를 보낼 지경.
“아빠! 놀자!”
“놀쟈!”
“노아!”
피치 시스터즈 중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맏이인 관평.
아직 발음이 부정확해 혀짧은 소리를 내는 장하.
자녀 중에서 가장 막내였기에 옹알이 단계조차 벗어나지 못한 유환까지.
늘 똘똘 뭉쳐 다니며 함께 지내는 제 어머니들의 모습에 무언가 감명이라도 받은 걸까.
이 꼬마 삼인방은 삼총사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온갖 행동을 함께했다.
뭐, 그것까지는 상관없다.
자매끼리 우애가 좋으면 부모 입장에서 땡큐 아닌가.
허구한 날 쌈박질 하다가 우에엥 울면서 달려오면 이를 달래고 혼내는 것도 일이다.
하지만 지금 문제점은 그거지.
난 조금 전까지 여화와 술래잡기를 하면서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아빠! 느려!’
‘…뭐지? 언제 저기까지 간 거야.’
누가 그 여포 딸 아니랄까 봐 어마어마하게 빠르더라.
물론 이제 막 4살이 된 어린아이가 보폭에서부터 큰 차이가 나는 성인 남성을 이길 순 없었다.
근데 괜히 봐주겠답시고 설렁설렁하다간 하루 종일 뛰어다녀야 하는 상황이었어.
어린아이들은 그 어른조차 진을 빠지게 만드는 무한 동력의 소유자가 아닌가.
결코 멈추지 않는 영구 기관을 소유한 어린아이와 체력 싸움을 벌일 무지한 부모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게 바로 아인슈타인이 기함하고 스티븐 호킹조차 이마를 탁 칠 과학계의 혁명이지.
분명 지쳐서 쉬고 있던 아이가 몇 분 만에 충전을 완료한 다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건전지라도 갈아 끼웠느냔 생각을 하게 될걸.
“코오….”
지금 여화는 잠시 눈을 붙이고 쉬는 상태였지만 내 눈엔 급속 충전기를 꽂고 배터리를 충전하는 로봇으로밖에 안 보였다.
저렇게 한두 시간 정도 있으면 충전을 마치고 다시 벌떡 일어나겠지.
잠깐이라도 쉬고 싶었던 내가 제2의 복숭아 자매들에게 꺼낼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러면 우리 기절 놀이할까?”
“우웅?”
아직 기절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표정.
나는 그 귀여운 모습에 순간 마음이 흔들릴 뻔했지만 정말 곧이곧대로 놀아주다간 철퍼덕 쓰러질 터.
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규칙은 간단해.”
“규칙이 뭐야?”
“…어….”
관평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순간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우뚝 멈춰 섰다.
아직 단어를 잘 모르는 때라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도 의외로 번거롭단 말이지.
걸핏하면 세상을 구하는 감자 머리의 5살짜리 유치원생도 단어를 잘못 사용해서 부모에게 자주 지적당하지 않나.
하지만 이런 사소한 배려 하나하나가 언어 발달에 도움을 주니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이 지키기로 약속한 내용을 말하는 거란다.”
“와! 약속!”
“나 약속 잘 지켜!”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나는 귀여운 딸의 눈높이에 맞춰 어떻게든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휴, 이번에는 무한의 질문에 갇히지 않아서 다행이군.
설명 내용에 조금이라도 복잡한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이 날아오는 건 예삿일이었던지라 나는 계속 어휘력 테스트를 당하는 상황이었다.
늘 두근거리고 짜릿해.
마치 10초 퀴즈쇼에 나간 듯한 기분이야.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모두가 공감할 고민.
하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는 특이한 인물도 있었다.
───엄마! 청산유수(靑山流水)라는 게 무슨 뜻이야?
───나도 몰라!
───??
아이의 질문에 자신도 당당하게 모른다 외치는 여포 같은 경우처럼 말이야.
일평생을 쌈박질만 하며 살아왔고, 또 그와 관련된 것이 아니면 관심이 전혀 없던 여포는 사자성어나 고사성어에 무척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긴, 비유적인 표현을 가진 고사성어가 한두 가지인가.
청산유수(靑山流水)만 하더라도 단어를 그대로 풀이하면 푸른 산에 흐르는 물이라는 뜻인데, 이는 무언가를 막힘없이 잘한다고 할 때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여포는 단순히 모른다 외치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훨씬 놀라운 행동을 보여줬지.
───엄마도 모르니까 우리 한번 같이 찾아볼까?
───조아!
무언가를 모르는 게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듯 아이와 꺄르륵 웃으며 돌아다니는 모습.
자신의 부족함을 당당히 인정하는 모습은 내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정릉! 그래서 청산유수가 뭐야?!
───모야?!
───…….
딱 한 가지 문제점이라면 그 두 명이 제일 먼저 향하는 인물이 바로 나라는 걸까.
청산유수는 상당히 자주 사용하는 사자성어라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인 고사(故事)는 워낙 양이 방대했기에 나도 잘 알지 못했다.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던가 온고지신(溫故知新), 또 과공비례(過恭非禮)처럼 옛 성인의 이야기에 유래된 고사성어가 얼마나 많은데.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복잡한 말을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이 주변에 유식한 인물이라도 있는 건가.
도대체 누구냐.
뭐 어쨌든, 그런 상황에 부닥친 내가 보일 행동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
───…나도 모르는데 같이 찾아볼까?
───응! 조아!
바로 폭탄 돌리기가 시작되는 거지.
우리와 눈이 마주쳤어?
그러면 포켓몬 배틀을…. 아니, 질문에 대답해라!
하지만 그 유쾌한 반란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주변에 똑똑한 사람이 한두 명인가.
───…진짜 모르세요?
───응.
───휴우…. 잘 들어요.
늘 알게 모르게 내 근처에 머무르는 꼬꼬마 군사들.
───송양지인(宋襄之仁)은 쓸모없는 인정을 이르는 말로, 옛날 춘추 시대 때 송나라 양공(襄公)이란 자가 적이 포진하는 걸 기다려줬다가 오히려 대패했다는 기록에서 유래된 단어예요.
사마의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질문에 또박또박 열심히 대답해줬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
───옛것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이지요.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제갈량도 당연히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으며,
───과, 과공비례(過恭非禮)요?
───그래.
───매, 맹자(孟子)와 공자(孔子)가 꺼냈던 말이죠! 너무 과하게 예를 차리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실례라는 뜻이에요!
방통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떻게든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외에도 어렸을 때부터 사도 왕윤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초선이라든가, 미주랑이라 불리는 주유 등 물어볼 사람은 차고 넘쳐나는 상황.
…적어도 이들이 제 아이가 던지는 뫼비우스의 질문에 쩔쩔매는 일은 없겠네.
똑똑한 사람들 무섭다, 무서워.
나는 반짝이는 눈빛을 지은 아이들에게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이 놀이를 하는 방법은 간단해. 먼저 이렇게 적당한 자리에 눕고….”
“눕고?”
“빨리 잠드는 사람이 이기는 거란다.”
“…우응?”
내 설명을 들은 쪼꼬미들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벌써 이상한 점을 눈치챈 건가.
이렇게 된 이상 정면 돌파다.
“그러면 시작!”
“아, 앗! 먼저 시작하는 거 반칙인데!”
“전혀 안 들린단다.”
나는 복숭아 자매 주니어들이 생각을 더 이어 나가기 전에 먼저 행동에 나서며 냅다 눈을 감았다.
그를 마주한 관평이 힘차게 외쳤다.
“…나도 자는 건 자신 있어!”
“이써!”
“부아!”
관평의 외침에 한 차례 호응한 쪼꼬미들은 제 언니를 따라 그 앙증맞은 몸을 땅에 찰싹 맞붙였다.
역시 내 계획대로군.
내가 병주에 있던 시절부터 얼마나 많은 아이를 속여먹었는지 아느냐.
너희는 이 어른의 더러운 계략에 걸려든 거란다.
“…….”
내 눈빛을 확인한 초선이 슬그머니 이불을 가져오는 광경을 바라보며 난 속으로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우으….”
이미 나와 대결하는 것에 몰두한 쪼꼬미들은 초선이 이불 위에 자신들을 올려놓았음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
잠깐만.
유환은 벌써 잠든 것 같은데.
누가 가장 어린 나이 아니랄까 유비의 딸은 땅바닥에 들러붙기 무섭게 곯아떨어졌다.
아주 엄청난 승부욕이군.
분명 미래에는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거야.
“코오….”
현대였다면 유치원을 다니며 곤히 낮잠을 잤을 어린 나이답게 관평과 장하도 푹신한 이불에 둘러싸이자 곧장 뻗어버렸다.
그를 확인한 나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이런. 져버렸군.”
하지만 이기기도 했지.
내가 비열하게 웃어 보이는 동안, 근처에 있던 서여는 평소와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
구체적으론 내 가슴팍에 매달린 서희를 바라보고 있단 말이 맞겠네.
얘는 도대체 언제 떨어질 생각인 거지.
너 정말 코알라가 될 속셈이니?
어머니를 닮아서 무뚝뚝했지만, 어떤 의미론 손이 더욱 가는 서희의 모습에 나는 난감한 기색을 드러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