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50)
EP.550 과거(科擧)(5)
옛날 과거 응시자들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기록이 상당히 존재했다.
전래동화처럼 떡 하나 건네준다고 한들 전혀 봐주지 않는 호랑이.
비록 호랑이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사람 한 명쯤이야 뚝딱 한 끼 식사로 해치우는 이리떼와 표범들.
사람을 해치는 산짐승만 해도 이 정도인데, 설상가상 어려운 살림살이에 마음이 그만 제대로 비뚤어진 산적들까지 길에서 매복하는 형편이니 사람들이 온갖 사건 사고를 당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뭐겠는가.
당연히 도로를 정비해서 교통을 원활하게 만들고 치안을 위협하는 산짐승과 도적들의 대가리를 깨버리는 일이지.
그리고 나는 이런 일의 전문가들을 아주 많이 휘하에 두고 있었다.
“야! 이런 곳에 숨어있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냐?!”
“그, 금범적(錦帆賊)!”
“…그딴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니까!”
“커헉!”
한때 거대한 도적 무리를 이끌었기에 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선 아주 훤히 꿰고 있는 감녕.
“맡겨주십시오! 제 범돌이, 흰둥이와 함께라면 제아무리 굴속에 숨은 산짐승이라 한들 싹 다 잡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흥!!
───뿌오오!!
이리 살펴보고 저리 살펴봐도 드루이드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목록대왕과 그녀의 휘하 맹수 조련사들.
“…범돌이와 흰둥이?”
“맹획 언니, 특이한 이름이네요.”
그리고 정글과 산맥을 제집처럼 넘나드는 남만족의 왕까지.
개인적인 감상평이었지만 목록대왕의 이름 짓는 센스도 폐하와 엇비슷한 것 같았다.
야옹이와 범돌이.
뿌오와 흰둥이의 대결이라.
아주 가슴이 웅장해지는군.
발발이와 씽씽이란 이름을 언급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이외에도 병사들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해주겠다며 주변 구역을 순찰하는 고순과 서황 등을 포함하면 도로 치안이 불안해질 일은 없었다.
도적 무리도 대부분 먹고 살기 팍팍해서 생겨나는 거니까.
지금처럼 나라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는 경우에는 도적들의 숫자도 대폭 줄어들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물건을 빼앗는 것보단 적당히 농사지으면서 장사나 하는 게 훨씬 안정적이잖아.
사람이 무슨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누군가를 죽이는 게 좋아서 도적이 됐겠냐.
실제로 삼국지 도적 집단에서 가장 유명한 황건적이나 흑산적들은 한나라가 워낙 개판이다 보니 발호한 경우다.
이제는 잃을 것이 없다며 백성이 칼을 든 경우들.
이런 경우는 나라에서 다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면 평범한 양민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아예 자신의 직업을 도적으로 택하고, 평생 누군가에게 해악을 끼치며 살아갈 것을 맹세한 악질도 있었지.
이런 미치광이들은 나라가 부유하든 말든 자기가 좋아서 도적질을 하는 거니까 타이밍 좋게 갱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공권력에 모가지가 날아갔다.
황건적, 흑산적, 백파적처럼 이름 있는 도적 집단이 사라진 지 언제인데 아직도 도적질을 하고 있어?
어디 무협지처럼 녹림 72채나 장강수로십팔채(長江水路十八寨) 같은 거라도 만들려고?
어림도 없는 소리지.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황건적, 흑산적, 백파적 전부 내가 없애버린 세력이네.
황건적은 장각을 포섭하면서 그녀를 교주로 삼았던 이들이 티가 나지 않게 합류했고, 과거 내 이웃이나 다름없었던 흑산적은 그들의 우두머리였던 장연을 여포가 장연(이었던 것)으로 만들었다.
또 백파적들은 내게 서황이라는 초특급 인재를 안겨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니 뽕을 뽑아도 아주 제대로 뽑았구나.
“주군, 행인을 약탈하던 도적 무리를 토벌하고 복귀했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두 번째 시험에 앞서 오늘도 열심히 교통을 정비하던 나는 주변 무장의 보고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병 부대를 이끄는 장료는 길을 오가는 행상인들에게 도적 신고를 받자마자 냅다 출진하더니 그대로 사례주를 한 바퀴 주파해 버렸다.
이게 바로 700명으로 10만 명을 무찔렀다는 장료의 기마술이지.
“…….”
어지간히도 강행군이었는지 웬만한 일을 겪어도 끄덕 안 하던 병주 출신 기마병들의 안색이 영 좋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게 굴린 거냐.
제아무리 최정예 병사라고 한들 온몸을 갑옷으로 무장한 채 며칠 동안 달리는 건 힘들지.
살짝 상상만 해도 두려울 지경.
나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공손히 예를 보이는 장료를 바라보면서 툭 중얼거렸다.
“이번 건에 대한 보상은 무엇이 좋을까….”
내 고민을 들은 장료가 싱긋 웃어 보였다.
“주군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
“예.”
이미 전장에서 여러 번 공을 세워 집안 재산이 부족할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 하나로 만족한다니 놀랍네.
그때 장료가 뒤늦게 떠올렸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최근 고(高) 장군께서 고민이 조금 깊어 보이더라고요.”
“…고순(高順)이?”
현재 우리 세력 내부에서 병사를 통솔하는 능력을 따졌을 때 모두가 담담히 인정하는 장수.
고순은 의외로 알게 모르게 존재감 없이 여포 밑에서 묵묵히 일하는 팔건장 트리오와 짬이 비슷한 최고참 무장이었다.
장수가 아닌 병사로 종군하던 걸 처음 발견했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고순이 본래 역사에서 어떻게 여포 세력에 합류했는지는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서 참 많이도 고생했다.
본래 역사의 여포와 장료는 정원이 뛰어난 눈썰미로 등용했다고 하는데 고순은 진짜 모르겠더라.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숨어있어도 주머니 속의 송곳니처럼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병영을 이리저리 순회하는 건 상당히 고된 일이었다.
───주군을 세상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뭐, 그만한 고생을 한 값어치가 있어서 다행이지.
평소 사생활도 청렴하고,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제 주군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능력까지 뛰어나니 이런 모범 군인이 어디 있겠어.
나는 집게 머리핀으로 제 회색 머리카락을 올림 모양으로 고정한 여인을 한 차례 떠올렸다.
솔직히 그 냉철한 청녹색 눈동자를 지닌 여인이 고민 하나 해결하지 못해 끙끙거릴 거라곤 예상이 안 가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고민인지 알 수 있겠나?”
“으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것?”
“응?”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장료는 살풋 웃어 보였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크기에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이라니, 참 모순적이죠?”
“…….”
공적인 내용은 전부 끝났는지 말투가 편하게 변한 장료를 바라보면서 나는 얼떨떨한 기색을 드러냈다.
본래 역사의 고순은 여포한테 온갖 불합리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그 뒤를 따랐던 인물.
그런 인물이었기에 나를 향한 충성심이 높은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충성심의 방향이 살짝 이상한 방향으로도 뻗어있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해서 표정 변화가 하나도 없고 공적인 태도로만 나를 대하던 여인의 마음을 어떻게 눈치채겠냐.
늘 무표정을 유지하는 서여는 얼굴만 무표정하지 나한테 보이는 행동 자체가 무척 티가 났으니 고순과 살짝 다른 경우였다.
“이대로 가다간 평생 혼자 살면서 일에만 집중할 것이 눈에 보이는데, 제가 뭘 어쩌겠나요.”
내 반응을 지켜보던 장료는 살짝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늘어트리면서 말했다.
“그러니 부디 부탁드릴게요?”
“…….”
갑자기 그런 말을 해도 당혹스러울 따름인데.
으음….
근데 곰곰이 따져보니 장료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조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고순은 우리 세력 최고참이다.
즉 20년 가까이 내 근처를 맴돌면서도 전혀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뜻이지.
…이런 걸 생각하면 정말 내게 마음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데, 장료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기에 살짝 혼란스러웠다.
이럴 때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마음이 있지만 이를 결코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여성.
그런 여성의 태도에 당연하게도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남성.
그렇게 서로 이어질 듯 말 듯한 로맨스 상황을 20년 넘게 지켜본 주변 인물이라.
확실히 눈이 뒤집혀서 대놓고 등을 떠밀어도 인정할 만한 상황이긴 하네.
모든 상황을 정리한 나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던 장료에게 말했다.
“조만간 고순을 불러서 따로 이야기를 나누면 되겠나?”
“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나는 그 나긋하면서도 청초한 목소리를 듣고 머쓱한 표정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곧 40대를 눈앞에 둔 남성이 여인을 계속 늘리는 게 맞나?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바라보겠어.
“주군!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지금도 부관으로 활동하는 손권은 내 곤란한 기색을 눈치채고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없어.”
“?!”
그게 또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러고 보니 손권도 나와 맺어지는 건 영광이라는 둥 살짝 이상한 말을 내뱉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 대답을 듣자마자 곧바로 시무룩해진 손권을 바라보던 나는 불현듯 머릿속에 손견이 훈훈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이 살짝 아른거렸다.
뭔가 처치가 곤란한 딸들을 나한테 휙휙 떠넘기는 기분인데 착각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