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57)
EP.557 과거(科擧)(12)
한 사람이 나라 대부분의 권력을 차지하는 군주제 국가가 멸망하는 이유는 크게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외척이 횡포를 부리다가 폭삭 멸망한 경우.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시로는 전한을 멸망시킨 다음 신나라를 건국한 왕망이 있겠지.
두 번째, 환관이 횡포를 부리다가 폭삭 멸망한 경우.
이 경우는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인 진나라를 멸망시킨 조고가 대표적이겠네.
마지막 세 번째는 뭐…. 당연히 군주가 무능해서 멸망한 경우지.
이건 예시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할 수도 없다.
본래 역사의 한나라만 하더라도 영제라는 걸출한 인물 덕분에 삼국지란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국력이 강한 나라는 외부의 침입보단 내부의 병폐와 폐단이 쌓이면서 멸망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외에도 나라가 멸망하는 이유는 더 있으나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터.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내 권력을 약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봐라.
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채 세상을 뜨면 뒤를 잇는 내 후손들도 엄청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즉 황제와 혼인했던 외척 일가가 마음만 먹으면 나라를 얼마든지 뒤엎을 수 있다는 뜻.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나라를 그대로 집어삼킬 수 있는 압도적인 권력이 눈앞에 있는데 이를 참아낼 인물이 얼마나 될까.
내 아들과 딸들은 내가 어떻게든 교육하며 인성을 함양한다고 쳐도 평생 이럴 순 없는 노릇.
나는 어느 누군가처럼 불로를 이룬 신선이 아니니까.
결국 언젠가 세상을 뜰 수밖에 없단 이야기지.
한고조 유방과 그의 후계자들을 서초패왕한테서 이 악물고 살려냈던 하후영의 후손이 훗날 한나라를 멸망시킨 것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나.
지금은 조(曹)씨로 성씨를 개명한 누군가라던가, 애꾸눈으로 유명한 누군가 말이야.
조금 더 막말하자면 내 후손 중에 왕망 같은 놈이 튀어나올 수도 있는 상황.
그렇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적당히 시기에 관직을 내려놓고 물러나서 다음 세대를 새로운 젊은 피에게 맡기는 것이다.
결국 권력의 주체는 나니까.
내가 직접 자리에서 물러나는 행동만 보여도 가문의 힘이 대폭 줄어들겠지.
한 가지 문제점이라면 이런 내 의도를 주변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따라주느냐는 건데….
내가 낸 의견을 정 안 들어준다 싶으면 자택에 처박힌 다음 파업할 생각이다.
‘의견을 들어주지 않을 거면 차라리 죽이시오!’ 작전.
물론 내 몸에 자그마한 생채기가 나는 것에도 극성인 폐하께서 나를 정말 죽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말해놓고 보니 조금 쓰레기가 된 기분인데 어쩔 수 없다.
내가 열심히 살려놓은 나라를 내 후손들이 권력 다툼으로 망친다 생각하면 뒷목을 잡을 것 같거든.
황제와 외척이 서로를 처리하기 위해 내분을 일으킨다거나.
아니면 한쪽이 내분이고 뭐고 아예 상대방을 압도하거나.
이 두 가지 선택지를 고르라면 후자를 고르겠다만 결국 피가 흐르는 건 똑같지 않나.
하여튼 권력을 축소하는 계획도 대쪽 같은 성격을 지닌 유능한 인재가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는 법.
상당히 높은 관직에 앉은 꼬꼬마 군사들이야 오래 살 테고, 애초에 나 같은 놈보다 훨씬 똑똑하니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어디 보자…. 이름이….”
육손 백언(陸遜 伯言).
“…….”
답안지를 훑어보던 나는 그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우뚝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더라니 내가 몇 년 전에 육손을 지켜본 적이 있어서 낯이 익었던 거구나.
내가 제갈씨들을 사례주에 불러들임으로써 제갈량을 영입한 것처럼, 나는 아주 오래전에 강동에 있는 육씨 일가를 사례주에 불러들여 그들을 정착하게 만든 적이 있다.
그때 당시 육손의 나이가 10살도 되지 않았을 때라 난 나중을 기약하며 자리를 떴었지.
하지만 그랬던 육손도 지금 이 시기면 슬슬 성인식을 치렀을 때인가.
제갈량이 사마의보다 2살이 어린 것처럼, 육손도 제갈량보다 2살이 어렸다.
이 말은 즉 육손이 관직에 뜻을 가질 때라는 거지.
…근데 그 육손이 내게 충언을 던지니까 기분이 좀 묘하네.
본래 역사의 육손도 주군에게 열심히 충언하다가 결국 ‘쥐’한테 찍혀서 비참하게 죽은 인물이 아닌가.
능력 자체는 미주랑(美周郞) 주유와 비견될 만큼 뛰어나니 중책을 맡겨도 걱정은 없다만….
나는 환관과 외척에 대한 견제 방법을 쭉 적어놓은 육손의 시험지를 훑어본 다음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이 응시자는 합격이다.”
“…네?”
답안지를 이리저리 훑어보기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합격자를 결정하자 사마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내용을 적었길래 그래요?”
“안 보여줄 건데.”
“…….”
눈빛이 살짝 무서워졌군.
사마의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눈가를 슬며시 좁혔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한나라 내부에서 내가 어떠한 위상을 가졌는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사마의와 방통, 그리고 심지어 제갈량까지 내가 권력을 내려놓으려 하면 반대하는 상황인데 이 상황에서 나를 저격하는 듯한 답안지를 내놓은 인물을 어찌 생각하겠는가.
그리고 황제 폐하는 자세히 언급할 필요도 없지.
모르긴 몰라도 육손에게 은근히 압박을 주지 않으실까.
내가 육손을 보호해주면 된다지만, 그래도 살짝 귀찮아지는 미래가 보이는데 굳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서여.”
“…네.”
“이 답안지는 네가 보관하고 있어.”
아예 불태워서 증거를 인멸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그건 또 너무 나가는 행동 같아.
육손을 언젠가 직접 마주하는 날이 오면 다시 돌려줘야겠다 생각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인물에게 답안지를 맡겼다.
나를 제외한 그 어떠한 인물에게도 따르지 않는 서여라면 이 시험지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겠지.
그런 내 행동을 보고 뭔가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아하.”
사마의는 살짝 입가를 끌어올리면서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갑자기 왜 그러는지 대충 예상이 가네요.”
“…이유가 뭔데?”
“안 알려 줄 건데요?”
이럴 수가.
내가 조금 전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다니.
“…….”
제갈량과 방통도 사마의처럼 내가 어째서 이러는지 눈치챈 듯한 모습.
나는 이러한 꼬꼬마 군사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 예측하기 쉬운 놈인가?
──────────
문과 과거 시험이 끝나고 채점조차 전부 끝마친 다음 날.
오늘은 무과 시험을 치르는 날이었다.
무과 시험은 참 당연하게도 머리를 쓰는 문제보다 몸을 쓰는 문제의 비율이 높았다.
머리를 쓰는 문제들도 병사들을 어떻게 지휘해야 하느냐, 진형을 어떻게 형성해야 하느냐 같은 전쟁 위주의 문제들뿐이지.
하지만 머리만 좋은 인물은 코앞에서 창칼이 오가는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터.
그렇기에 무과 과목은 조금…. 무서울 정도로 응시자들의 신체 능력을 시험했다.
그 이순신 장군님도 무과 시험을 보다가 말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고 했으니 말 다했지.
비록 다리에 부목을 감고 재차 시험에 응시하는 끈기를 보이셨지만 시험관은 얄짤없이 장군님을 낙방시켰다.
하여간 자비도 없어.
“…정말 이렇게 보겠다고?”
“그렇습니다!”
오늘의 시험 목록을 확인한 나는 시험관을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머지는 다 이해할 만하나 기승 실력을 채점하는 기준이 살짝 이상한데….
뭐, 이미 결정된 걸 뒤엎을 순 없는 노릇이니 이번엔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무과 시험이 시작되는 순간을 눈앞에 둔 나는 어제처럼 상석에 앉은 채 응시자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문과와 무과는 필요로 하는 능력이 아예 달랐으니 대부분 처음 보는 면면이었지만, 아주 극소수나마 어제 보았던 얼굴이 또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
예상은 했지만 저기 강유와 등애도 있네.
하긴 저 두 명은 본래 역사에서도 어마어마한 신체 능력을 보이는 인물이니까.
강유는 본래 역사에서 60대라는 나이에 자신을 잡으러 온 병사 열 명 정도를 홀로 죽인 전적이 있고, 등애도 똑같이 70세를 코앞에 둔 나이에 검각을 넘으면서 후대 사람에게 등산왕이란 별명을 얻은 인물이었다.
현대 기준으로도 노인 취급을 받는 늙은 나이에 이만한 저력을 보였는데 젊었을 때는 어땠겠는가.
당연히 나 같은 놈은 가뿐히 사람(이었던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지.
비록 겉모습은 아름다운 소녀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됐다.
“…….”
육손은 보이지 않는구만.
아마 문과와 이과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생각인 건가.
“무장이 되려고 하는 자는 당연히 신체가 뛰어나야 하는 법!”
내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시험관을 맡은 무장은 어마어마하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한나라 군부의 총책임자, 대장군께서 직접 지켜보시는 자리니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라──!!”
“…….”
진짜 부담 팍팍 주네.
누가 남녀 평등한 세계 아니랄까 봐 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겨대는 걸 보면 살짝 기가 죽을 정도였다.
대련을 한다 치면 난 아마 저기 있는 평범한 응시생 한 명한테도 쩔쩔맬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이딴 게 대장군이라니….
나도 모르는 사이 가슴이 다 옹졸해질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