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63)
EP.563 요동(1)
나는 육손과 한 차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능력을 파악한 다음 내 휘하에 배속된 강유와 등애가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았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이야아압──!!”
먼저 강유는 제갈량한테 이런저런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무력 방면으론 여포한테 열심히 교육받았다.
“빈틈 투성이네.”
콰앙─!
“꾸엑!”
“…….”
무기를 스무 번 정도 부딪치고 나가떨어져서 땅바닥을 구르는 게 교육이 맞나 싶지만.
그래도 여포의 공격을 스무 번도 넘게 버텨내는 걸 볼 때 강유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나였다면 스무 번이고 뭐고 일 합 만에 모가지가 날아갔을걸.
…여포가 날 후려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스무 번은 넘게 버티려나?
만약 나와 맞붙는다 쳤을 때 여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공격을 막기만 할 것이다.
손 한번 잘못 대면 순식간에 몸이 박살 나는 개복치 살리기 대작전….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우스운데.
뭐, 나와 여포의 대련 결과는 뻔하지.
나는 하루 종일 검만 휘두르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질 테고, 여포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어쩔 줄 모르는 반응을 보이면서 날 안아 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포의 상대는 내가 아니라 강유지.
“일어나. 아직 할 수 있는 거 다 알아.”
“드, 들켰나요?”
내 뒤를 이어 대장군이 되겠다 당당히 외친 강유는 잘못 걸렸다는 듯 식은땀을 흘렸다.
원래는 제갈량의 후계자였는데 이 세계에선 내 후계자가 된 건가.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의 계책을 파훼하고 늙은 조운을 일기토로 철퇴시킨 장수.
게임에서도 그를 반영해 통솔, 무력, 지력 전부 90을 넘어가는 밸런스 파괴범이 내 후계자라니….
나는 지금 뭐라 제대로 형용할 수 없는 애매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중의 일.
“끄에엑!”
“빨리 일어나─!”
지금 실전 경험 하나 없던 대장군 꿈나무는 여포의 방천화극에 하늘을 날아다니기 바빴다.
만인지적이라 불리는 관우와 장비마저 막기 버거워하는 공격인데 강유가 무슨 재주로 버티겠냐.
“하핫. 그때 그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
“그래도 우리보단 훨씬 낫네.”
우리가 아직 병주에서 머무르던 시절, 빨래처럼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시간이 대다수였던 위속과 송헌은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광경에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하여튼 미래의 대장군이 이리저리 구르면서 제 역량을 갈고닦는 동안 등애는 무얼 하고 있느냐.
“저, 저기요.”
“…옙?”
“둑…. 그렇게 쌓으면 무너져요….”
“그, 그렇습니까?”
등애는 제 선임인 방통에게 시달리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군영을 순찰하며 여러 가지 문제점을 찾아냈다.
특히 건물을 증축하거나 수로를 팔 때 제 능력을 톡톡히 드러냈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군대라는 건 그냥 전쟁터에 간 다음 쾅 붙어서 투닥거리는 것만 하지 않는 집단.
한 번이라도 군인이 되어본 이라면 모두가 알 터.
왜, 있잖아.
하루 종일 진지 공사랍시고 노가다 뛰는 거.
도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성을 증축하고, 원활한 보급을 위해 길을 닦고 치안을 유지하며 감시를 철저히 하는 것도 군대의 역할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공계 지식이 필요해진다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더욱 단단해질지, 어떻게 해야 물자를 더욱 편하고 빠르게 수송할 수 있을지 두뇌를 쥐어짜게 된다.
막말로 전쟁의 방향성을 완전히 뒤바꿔 버린 화기조차 군대와 연관된 지식 아닌가.
비록 윤리적인 관점에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지만, 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류의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이팅게일이 주장한 청결과 위생이란 개념도 전쟁터에서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총 맞아 죽는 사람보다 몇 배나 많아지니 나타난 거고….
즉 무(武)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이과의 영역도 넓어진다는 것.
본래 역사에서도 전 세계가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대격변이 일어날 때 유독 동아시아만 이상하게 뒤처지지 않았나.
그게 다 문(文)이라는 가치에 너무나 큰 비중을 뒀기 때문이지.
문(文)에 집중했기에 동아시아는 장애인이나 빈민 복지 등 사회 제도 방면에서 유럽보다 훨씬 앞서나갈 수 있었지만, 그것에만 너무 집중해서 다른 가치를 휙 내버려 둔 게 문제였다.
그러니까 내가 문(文)의 비중을 줄이고 무(武)의 비중을 늘려서 1:1 비율로 맞춘 거지.
이과(理科)까지 표현하면 1:1:1인가?
내가 비록 그 시대를 직접 겪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내 후손들을 위해서 문무 양면으로 밸런스를 맞춰주는 거다.
훗날 서양 열강들이 배를 타고 넘어와서 인성질을 부린다면 똑같이 되갚아 주도록 말이야.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한다면 너무 억울하잖아.
부디 내 조상님들도 자기 옆나라한테 영향을 많이 받으면 좋겠군.
“주군.”
“음?”
내가 강유와 등애를 바라보면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무렵, 왠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유비가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그…. 상당히 신경 쓰이는 정보가 있습니다.”
“신경 쓰이는 정보?”
웬만한 일은 자기 선에서 처리할 인물이 이렇게 말하니 뭔가 불안한데.
뭐 어디서 대규모 반란이라도 터졌나?
내가 한 차례 의아한 반응을 보이자 유비는 곧장 입을 열었다.
“최근 요동(遼東) 지역이 상당히 혼란스럽다는군요.”
“…….”
“공손숙제(公孫叔濟, 공손도)는 본인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 전령을 보냈습니다만….”
유비는 현재 요동 방면을 다스리는 군벌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나를 검은빛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저희가 어찌하는 게 좋겠습니까?”
“…으음.”
요동(遼東).
요동(遼東)이라.
그러고 보니 슬슬 그쪽을 신경 쓸 때가 되긴 했지.
알 사람은 알겠지만, 현재 이 시기의 요동은 조상님 국가….
그러니까 부여(扶餘)와 고구려(高句麗)가 한나라와 서로 맞닿은 국경 지대였다.
고구려.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모르는 게 이상하겠지.
훗날 공손도의 후손이 주제넘게 연왕을 자칭하다가 사마의한테 뚝배기가 깨지는 건 별로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요동 공손씨가 처리된 이후 본격적으로 맞부딪히기 시작하는 다른 국가가 문제지.
어차피 이 시기의 고구려는 그리 강하지 않으니 공손도에게 맡기고 모른 체하는 것도 방법.
하지만 그건 결국 언젠가 생길 화근을 미래에 떠넘기는 짓이었다.
고대부터 중원을 통일한 국가는 언제나 주변을 굴복시키길 원했고, 그 주변 국가는 언제나 중원에게 대항하며 수많은 핏물을 흘리게 만들었으니까.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도 주변 국가들한테 기세등등하게 굴복하라고 외치다가 머리가 오목해지지 않았나.
차라리 내가 살아있을 때 이와 관련된 문제를 후딱 처리하는 게 나을 터.
생각을 끝마친 나는 어려울 것 없다는 태도로 대답했다.
“당연히 끼어들어야지.”
“…….”
“겸사겸사 공손씨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결정하자고.”
솔직히 공손도 그놈 너무 오랫동안 요동에 있었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한나라 조정의 영향력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슬슬 기강을 잡으면서 요동 공손 세력이 갑작스럽게 독립하는 걸 막을 때가 됐다.
제 딴에는 야망을 열심히 숨기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다 보인단다.
너 형주자사(였던 것)인 유표나 익주목(이었던 것)인 유언처럼 기회가 생기면 독립할 녀석이잖아.
내가 그런 꼴을 얌전히 보고만 있겠냐?
나는 유비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손숙제(公孫叔濟), 그대의 의사가 어떻든 난 요동에 개입할 테니 알아서 행동하라고 전해라.”
“…….”
“자네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 거란 말도 전하고.”
물론 고개를 끄덕인다고만 했지 다른 짓을 안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가 바다로 추락한 이카로스처럼 쥐포가 될 것이냐, 아니면 적당한 권력에 만족하면서 풍족한 여생을 보낼 것이냐.
공손도 이놈이 ‘유표’를 당할지 말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뜻.
…근데 어떻게 자(字)가 숙제(叔濟)지?
물론 과제를 뜻하는 숙제(宿題)와 뜻이 다르긴 하다만 발음도 비슷해서 살짝 웃기네.
내 결정을 들은 유비는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예. 주군의 뜻을 전령에게 전하겠습니다.”
“…너무 그대로 전하지는 말고.”
내 말투가 상당히 저렴하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거든.
그야 주변 인물들이 조금만 더 위엄을 챙기라며 계속 잔소리를 하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지.
하지만 난 태생이 이런 놈이라 근본이 넘치는 위엄 있는 말투가 영 입에 안 붙었다.
“…후후.”
유비는 이런 내가 유쾌하다는 듯 자리에서 차분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