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67)
EP.567 요동(5)
황제 폐하와 대화를 나누면서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나는 곧장 낙양 일대에 있는 모든 군대를 소집했다.
늘 내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서여와 여포는 말할 필요도 없고, 장료와 고순 등 최고참 장수들도 부름에 응한 상황.
그 외에도 만인지적 복숭아 시스터즈와 수전에 익숙한 강동 출신들도 준비를 마쳤지만….
“흠, 이번에는 따라갈 수 없겠구나.”
둘째를 임신한 조조는 이번 원정에 따라올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참 유감스러운 일.
조조의 통솔 능력은 광무제와 버금갈 정도로 뛰어난 편이었는데 그 조조가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리타이어한 셈이다.
어째 멀리 원정을 떠날 때마다 꼭 한 명씩은 아이가 생겨 전투에서 빠지는군.
익주를 정벌할 때는 장비가 빠졌고, 테무진과 싸울 때는 유비가 빠졌으며, 이제 요동을 정벌할 때는 조조가 빠졌다.
이들이 전투에서 빠지는 걸 보고 뭐라 할 생각은 아니다.
임산부는 안정이 우선이니까.
아이를 뱄을 때도 아득바득 우겨서 날 기어코 따라온 서여와 여포가 이상한 경우지.
그런데도 지금 이런 묘한 감상이 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저 이 상황의 원인이 나한테 있다는 게 우스울 따름일 뿐.
누가 보면 힘 조절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실상은 단순하게 누군가가 못 참아서 일어난 일이지만 말이야.
내 떨떠름한 표정을 무슨 의미로 해석했는지 조조는 후후 웃으면서 말했다.
“뭐어….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정숙한 부인이니 사고를 치지 않고 기다리겠다.”
“…….”
정숙하다는 건 둘째 치고 그 조조가 아무런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게 가능할까.
넌 본래 역사에서도 모두가 알아주는 트러블 메이커였어.
그냥 무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또 조조가 뭘 했나?’하고 찍으면 어느 정도는 들어맞는 수준.
심지어 조조도 폐하처럼 내가 곁에 있어야만 성격이 억제되는 인물이지.
내가 없는 동안 황제 폐하와 난세의 간웅이 낙양에서 무슨 일을 벌일까 궁금할 지경.
둘 다 똑똑한 인물이니 내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 이를 돌려 말하면 나한테 해가 되지 않을 경우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단 뜻이다.
남편으로서 이 두 명을 곁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평가하자면….
으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물이라 해야 하나.
조조는 모두가 알다시피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인성을 말아먹으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걸 알려주는 인물이었다.
광무제한테서 인성을 빼앗으면 딱 조조가 되지 않을까.
근데 그 인성을 빼앗아도 너무 빼앗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또 변변찮은 상대밖에 없던 광무제와 달리 조조는 유비란 희대의 라이벌까지 있는 상황.
유방과 항적.
유비와 조조.
이 두 가지 경우는 워낙 상대의 능력이 극명한 경우라 어느 유씨가 더 뛰어나느냔 평을 할 수 없지만, 광무제의 적은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 없었다.
전한을 멸망시킨 왕망은 이미 광무제가 나타나기도 전에 자신이 건국한 신나라를 신나게 말아먹던 상태였거든.
사실 광무제의 진짜 적은 형을 죽이고 자신까지 숙청할 빌미를 찾던 경시제였지.
근데 그 양반도 온갖 유흥에 빠졌다가 제위에 오르고 2년 만에 사망했다.
심지어 광무제도 아닌 적미군이란 도적떼한테 말이야.
광무제는 자기 형을 죽인 경시제를 겉으론 섬기는 척하면서 밤이 되면 이불 안에서 숨죽이고 울었다는데, 정작 그 원수가 자신이 아닌 도적떼한테 죽었다고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황제 폐하는 제 어머니인 하태후의 잔혹한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며, 거기에 성장 과정까지 좋지 않았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엇나가 버릴 인물이었다.
어쩌면 이미 엇나갔는데 내가 있어서 티가 안 나는 것일 수도 있고.
“…….”
이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최대한 빨리 돌아오는 게 좋겠는데.
조조는 안 그래도 예민한 인물인데 둘째까지 임신했으니 더더욱 예민해졌을 터.
여기에 황제 폐하까지 둘째를 임신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안 가네.
───꺄르륵!
그 순간 나는 조금 전 어머니의 품에 안긴 유정이 기묘할 정도로 기뻐하던 모습을 떠올렸지만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설마.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두 명의 여인이 동시에 임신해서 평소보다 훨씬 예민해진다라….
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근처에 없다?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나겠어.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기에 나는 조조한테 입을 열었다.
“…문제는 일으키지 마.”
“걱정하지 말거라.”
“꼭이다.”
“어허,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조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난 도통 안심이 되질 않았다.
“…….”
이미 일은 벌어졌는데 어쩌겠어.
내 딸인 조앙이 자기 어머니를 억제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믿는다 내 딸!
이상한 방향으로 자주 급발진하는 네 어머니가 브레이크를 밟게 해주렴!
──────────
자신을 주제넘게 요동의 왕이라 자칭한 반역도를 처리하기 위해 대장군은 평소 그러했던 것처럼 군사를 이끌었다.
기동성과 보급의 용이함을 확보하기 위해서 고르고 고른 최정예 군사 수만 명.
수십만을 넘어가는 한나라 병사들 중에서 불과 수만 명만 뽑힌 수준이었으니 병사의 정예도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명약관화했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북방 이민족을 규합한 우두머리와 맞설 때와 큰 차이가 있는 건 사실.
누군가는 이에 대해서 걱정스러운 의견을 냈지만, 또 누군가는 인물을 꿰뚫어 보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장군이 잘못된 판단을 할 리 없다며 그를 옹호했다.
“사랑스러운 남편도 배웅했으니 이제 내가 할 일에 충실해야겠군.”
“…….”
“원양(元讓). 저번에 부탁했던 정보는 전부 가져왔나?”
“어…. 응.”
하후돈은 조조의 물음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리 반응한 이유는 간단했다.
대장군이 곁에 있을 때 늘 미소를 보이던 조조는 그가 낙양을 떠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종일관 무표정만 짓고 있었다.
“…….”
어찌나 표정 변화가 없는지 늘 조조를 보좌하던 하후돈조차 당혹스러울 지경.
하후돈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품속에서 죽간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맹덕이 부탁한 정보는 전부 모아왔는데….”
조조는 현재 한나라 내부에서 보급관 역할에 충실한 하후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바로 군부(軍部)에서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자의 명단을 수집해 오라는 것.
평소 머리를 쓰는 활동에 약하지만, 군대를 지원하는 행정 보급관 업무에 관해선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가열차게 돌아가던 하후돈에게 이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군대를 적절하게 보급한다는 건 군사 편제가 어떻게 되어있고 어느 인물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니까.
심지어 하후돈은 병사들이 할 법한 잡다한 노역에도 몸소 나서면서 장수와 병졸 사이에 있는 괴리감을 극복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군부의 여론을 파악하는 건 조금 수고가 들어가긴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뜻.
근데 그 수상한 행동의 범위가 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조조는 하후돈에게 군부에서 활동하는 인원 중 ‘대장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인물 명단을 전부 수집해 오라 명했다.
쓸데없이 권력 다툼을 벌이며 파벌을 형성하려 하는 정치군인도 찾아내란 내용이 있었지만, 하후돈은 조조가 전자에 더 비중을 뒀다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눈동자를 이상할 정도로 유심히 바라보던 남성.
───…제 얼굴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왜 자기 눈을 쳐다보는 거냐 물어도 대장군은 슬쩍 얼버무릴 뿐이었다.
솔직히 잘생긴 남성이 눈을 자꾸 지그시 맞춰오니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하지만 자신은 맹덕처럼 이유도 없이 홀라당 넘어갈 마음은 없었다.
…아마도?
대장군을 떠올린 하후돈은 조조에게 정보를 건네기 전 툭 말을 걸었다.
“그, 뭐냐.”
“…….”
“네 낭군님이 한 말은 기억하고 있지?”
“아….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것 말이더냐?”
하후돈의 질문을 받은 조조는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내가 그이의 부탁을 안 들어줄 리 있겠나.”
“그렇다면 다행인데….”
그 대답에 하후돈이 살짝 머쓱한 표정을 지을 무렵 조조는 곧장 말을 이었다.
“나는 그저 남편을 내조하는 부인의 역할에 집중할 따름이다.”
“…….”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좌천당하거나 심지어 사라지는 일도 있겠지만….”
조조는 예나 지금이나 내부에서 갈등을 빚는 인물들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 잘나고 고귀하신 신념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단순히 제 권리를 잃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는 것이든 관계없이.
“그것도 전부 다 본인들이 자처한 일 아니겠나?”
“어…. 으음….”
조조의 모습을 본 하후돈은 그녀가 연주를 다스릴 때 호족들을 어찌 처우했는지를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분명 기존 기득권 세력이었던 연주 호족들이 조조의 손에 얼마나 죽어 나갔더라.
손속이 조금 잔혹할지언정 그 결과 지방 호족의 힘이 줄어들고 중앙 정부의 힘이 강해진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을 애매하게 처리했으면 오히려 벌집을 쑤신 꼴이 됐겠지만, 조조처럼 능력 있는 인물이 그런 멍청한 실수를 할 턱이 있나.
안 그래도 최근 나라의 행정을 관할하는 황궁이 이리저리 들썩이던데, 이제는 조용히 있던 군부까지 시끌벅적해질 상황.
‘…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얌전히 있어야지.’
하후돈은 조조가 군부의 2인자인 표기장군임을 떠올리고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