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69)
EP.569 요동(7)
“아버님, 기주목의 군대가 조만간 요동 근처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빠르군.”
자신의 후계자인 공손강에게 정보를 전달받은 공손도는 제 턱을 한 차례 쓰다듬었다.
공손도의 의사가 어찌됐든 요동에 개입하겠단 뜻을 보인 대장군.
그는 마치 자기가 진심이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듯 곧장 군대를 움직이면서 공손도를 압박해왔다.
조만간 찾아올 겨울이 두렵지 않다는 뜻인가.
그들은 이미 북방 이민족을 규합한 우두머리와 겨울에 한 차례 맞붙은 전적이 있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북방의 혹독한 추위를 못 버티고 물러나기엔 그들이 겪어온 전장이 너무나 많다는 이야기.
“…쯧.”
역시 야만인들은 도움이 안 된다며 혀를 찬 공손도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적군이 강을 건너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만은 없지. 강 건너편에서 진을 치고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제 아버지가 한나라한테서 완전히 등을 돌린 걸 깨달은 공손강이 살짝 몸을 낮췄다.
“대장군에 대한 정보는 없느냐?”
“예. 유감스럽지만 저희가 파견한 첩자들이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무려 수천 리나 떨어진 도시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어지간한 인재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한 어려운 일.
허나 그렇다고 한들 정보 수집을 게을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공손강은 몇 번이나 첩자를 파견했다.
그 결과는 실패.
새로운 첩자들을 아무리 파견해도 머지않아 연락이 끊기자 요동 공손씨들은 유의미한 정보를 도저히 얻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공손도가 보냈던 전령이 낙양의 광경을 설명하는 게 전부일 정도.
현재 공손도 세력은 대장군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인데, 그런 의미에서 공손도의 세력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강(康)아.”
“예. 아버님.”
잠시 생각을 이어나가던 공손강은 아버지의 부름에 자세를 낮췄다.
공손도는 공손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는 내 뒤를 이어 요동의 왕이 될 인물이다.”
“…….”
“이 아비가 네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느냐?”
“예. 물론입니다.”
제 아버지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눈치챈 공손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비록 서자로 태어났지만 공손도에게 수많은 실권을 받아내며 후계자의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공손도에게 적자가 태어나지 않았기에 서자인 공손강이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던 것이지만, 그 원인이 어찌 됐든 결국 공손도가 아버지 역할에 충실하며 공손강을 가르친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
그렇다면 공손강 자신도 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부모를 보필하는 것이 당연할 터.
───우리는 언젠가 중원으로 진출해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할 것이다!
비록 제 아버지의 눈빛에 탐욕스러운 야망이 담겨있다고 한들 자식이 부모를 해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게 바로 공손강이 생각하는 효(孝)였으니까.
──────────
쓸데없이 구불구불한 황하를 이리저리 타면서 끝끝내 청주까지 도착한 우리는 잠시 숨을 추스릴 겸 항구에 정박한 상태였다.
육로를 통해 진군하는 원소와 합을 맞추기 위해선 일단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으어어….”
…며칠에 걸친 항해로 뱃멀미에 시달리던 몇몇 병사가 아주 죽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래가지고 상륙 작전은 어찌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선두로 나아가서 혹시나 있을 적을 처치하고 군영을 마련하는 것은 수군의 역할이니까.
지금 저기서 멀미에 시달리는 병사들은 뒤에서 잠시 몸을 추스리다가 후발대 개념으로 투입될 것이다.
물에서만 약하지, 일단 뭍으로 올라오기만 한다면 전투 병기가 되는 최정예 병사들이니까.
사실 육로로도 빨리 가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재빠르게 갈 수 있었다.
본래 역사에서 사마의가 제갈량과 서신을 주고받은 맹달을 치러갈 때 행군한 거리는 1,200리(약 470km).
사마의는 그 엄청난 거리를 군대와 함께 단 8일만에 행군했고, 16일만에 성을 함락해서 배신자를 처치했으니 정말 진짜 작정하고 몰아치면 요동에 도달하는데 100일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낙양에서 요동까지 3,500리쯤(약 1,400km) 되니 한 달 정도 고생하면 되겠네.
낮에 1,000리, 밤에 800리를 달린다는 적토마면 이틀 만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게 웃길 따름이지만.
…진짜 왜 이렇게 빠르냐?
문제는 30일에 걸친 강행군을 버틸 수 있는 병사가 그리 많겠냐는 것.
현대에서 특전사와 같은 최정예 부대가 시행하는 천리행군도 일주일에 걸쳐서 시행하는데, 거기서 3배를 더 하라고?
천리행군 뒤에 무릎, 발목, 허리가 아프다며 부상을 호소하는 정예군도 많은 판국에 무려 한 달 강행군….
만약 내가 보병이었다면 뚜벅뚜벅 걷다 돌연사했을걸.
농담이 아니야.
오히려 이 강행군을 버틸 수 있는 병사가 있다는 것에 놀라워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또 그렇게 겨우겨우 도착했다고 한들 곧장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겠지.
적어도 한 달가량은 몸을 추스르며 보급 문제도 해결해야 할 텐데 거기서 전투까지 일어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물론 천천히 움직인다 한들 3,500리가 저절로 줄어드는 것도 아닐 테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공손도가 거리를 믿고 괜히 자신만만하게 뻗대는 것이 아니라니까.
보병들은 빠르고 편한 행군을 위해 자동차가 필요해요….
그들은 앉아만 있어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편한 이동 수단을 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대가 아니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니 보병들은 눈물을 머금고 열심히 걷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현대까지 오면서 전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바로 트럭이라 하니까.
총알도 없이 총만 쥐여주고 냅다 돌격시킬 순 없는 노릇.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그를 굴릴 수 있는 보급품이 없다면 의미가 없지 않겠나.
군영 내부에서 전쟁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때우던 나는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서여와 여포는 평소처럼 내 호위에 집중하는 상태고, 꼬꼬마 군사들은 한 자리에 모여 앞으로의 계획을 고심하는 상황.
그때 사마의가 난데없이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흥, 아주 꼴값을 떨고 있네요.”
“…응?”
앙증맞은 입술 사이에서 갑자기 엄청난 말이 튀어 나왔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별거 아니에요.”
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묻자 죽간을 살펴보던 사마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기들끼리 요동의 왕이다 뭐다 하면서 전의를 다지는 꼴이 같잖아서 말이죠.”
“…….”
“반역자들이 무슨 숭고한 이상을 품은 것마냥 행동하는데 당연히 우습지 않겠어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묵직하네.
이게 바로 팩트 폭력인가.
“그녀의 말이 맞습니다.”
그때 근처에 있던 제갈량이 천천히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그들은 결국 욕망에 눈이 멀어서 반역을 일으킨 역적들.”
“…….”
“정말 숭고한 이상을 품으신 분은 주군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또 비행기를 태워준다고?
제갈량은 무슨 이야기를 하든 결국 주군이 대단하단 방향으로 흘러가니 나는 얼떨떨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다른 평범한 관리가 날 찬양했다면 단순히 아첨이라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겠지만, 본래 역사에서 황제가 된 유선한테도 따박따박 잔소리하던 제갈량이 이러니 당혹스러울 따름.
삼국지에서 눈치 없는 인물로 한손에 꼽을 만한 이막(李邈)이란 놈도 제갈량이 죽은 이후 유선한테 이상한 말을 했다가 죽지 않았나.
───솔직히 폐하도 제갈량 눈치 많이 봤잖아요.
───뭐라?
───이제 제갈량이 죽었으니 잔소리도 안 듣고 좋지 않나요?
───…이런 개─
…조금 각색이 들어가긴 했는데 뜻 자체는 비슷해.
비유를 하자면 부모님이 죽었는데 이제 잔소리 안 들으니까 오히려 좋은 게 아니냐 말하는 상황.
이에 제대로 분노한 유선이 이막을 베어버리는 일도 있을 정도로 제갈량은 평소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제갈량에게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띄워주면 부담스럽다만.”
“하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습니까?”
“…….”
제갈량이 제작한 대장군 칭찬 로켓은 어디까지 날아가는 걸까.
이러다가 태양계를 벗어나서 외우주까지 도달하겠군.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았기에 더더욱 두려울 따름.
“또한 지금처럼 듣기 좋은 말들을 멀리하시고 직언을 원하시는 모습도 성인(聖人)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으엑.”
그 이후로도 제갈량의 말이 이어지자 사마의는 아주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거리를 살짝 벌렸다.
왜 너만 도망쳐.
지금 남편을 버리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