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0)
EP.60 호로관(10)
연합군은 이제 대놓고 몸을 사린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나서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내도 화살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보여주기식으로 몇 번 활질 좀 하고 끝.
높은 성벽에 있는 우리의 화살도 닿지 않을 거리였으니 저들이 쏜 화살도 당연히 우리에게 닿지 않았다.
그 행동을 본 나는 이제 정말 저들이 무슨 명분으로 물러나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연합군이 물러나기 전에 작별 선물이나 하나 해줄까 생각했으나 저들도 전에 한번 호되게 당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아주 이를 갈고 만든 게 느껴지는 견고한 말뚝들. 경계를 매우 철저히 하는 연합군 병사.
그 광경을 본 나는 그냥 얌전히 있기로 결정했다.
그래. 이제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돌아갈 텐데 괜히 벌집을 쑤실 필요는 없지.
생각보다 병사들의 피해가 심했던지라 무리했다가는 큰일 나는 수가 있었다.
“이제 안 오네.”
여포가 졸린 듯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연합군이 호로관 공격을 시작한 이후 잠잘 시간도 부족했으니 저 여포가 피곤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 인간 흉기인 여포마저 저러는데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어어….”
“으어….”
병사들은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성벽을 돌아다녔다.
지켜보는 내가 다 섬뜩하네.
성벽에 걸터앉아 쪽잠을 자는 인원도 있었고, 그냥 아예 대자로 드러누워 코를 고는 인원도 있었다.
장료와 서황도 피로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없었으면 훨씬 더 어려운 전투가 됐을 테니 휴식 시간은 충분히 보장해줬지만 그래도 힘든 모양이었다.
나는…. 열심히 서여 뒤에 숨어있었다.
내가 말했지만 참 볼품없네. 그래도 세력의 지도자가 있다는 것 자체로 사기 증진에 힘이 됐으니 내 역할을 다했다고 하자.
난 뭐 일종의 토템 같은 거라 생각했다.
서여는 내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결코 내 곁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솔직히 전장에서 조금만 앞으로 나가도 화살이 날아오는데 위험한 건 맞지.
…그래도 그게 좀 과하게 날아오는 것 같던데.
내가 아마 전장에서 죽는다면 화살에 맞고 죽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안다면 깜짝 놀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서여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
“…왜 그래?”
뭔가 불만스러운 듯 나를 계속 바라보던 서여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히 저를 두고 죽는다든가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깜짝이야.
무슨 독심술이라도 쓰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부 꿰뚫어 본 서여는 여전히 날 퉁명스럽게 보고 있었다.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대체 무슨 표정이어야 저 사람은 자신이 죽는 생각을 하는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거지.
역시 서여는 무협 세계에서 살아가는 게 분명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그냥 한 번 해본 생각이야. 내가 설마 진짜로 죽겠어?”
“…….”
“진짜라니까?”
근데 창작물에서 설마 하다가 꼭 죽어버리는 게 전통이기는 하지.
“…정릉 님.”
내가 또 속으로 헛소리를 하는 걸 눈치챘는지 서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정말 한 번 얻어걸린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내 생각을 읽어내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누가 죽고 싶어 하겠어.”
“…….”
“걱정 마. 난 진짜로 안 죽어.”
그렇게 말한 나는 피식 웃었다.
“애초에 서여가 있는데 내가 왜 죽어?”
늘 내 주변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누가 날 죽이겠나.
오히려 역으로 당해서 저승으로 사출 당하겠지.
“난 아주 오래오래 살면서 천수 다 누리고 갈 거야.”
“…그때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서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있을 곳은 정릉 님 근처니까요.”
“…….”
애정이 무겁다….
“그 잠깐 한눈판 사이에 점수 따고 있네!”
“여포?”
어느샌가 내게 다가온 여포가 고개를 막 끄덕이면서 말했다.
“쟤가 무슨 소리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나도 그래!”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면서?”
“아무튼 그렇다고!”
절대 뒤처질 수 없다면서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참 여포다웠다.
“내가 나중에 늙어 죽으면 바로 뒤따라오겠다더라.”
“으잉? 그건….”
여포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렇지. 이게 바로 평범한 사람의 반응….
“낭만적이라서 좋은데?”
“?”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얘도 좀 회까닥 돌아있구나.
이게 바로 후대에서 창작된 삼국지 대표 로맨티스트…?
초한지 대표 로맨티스트와 삼국지 대표 로맨티스트 사이에 끼어있으니 기분이 어질어질했다.
──────────
연합군 본진.
맹주의 거처에서 한 남성이 공손한 자세를 취하면서 입을 열었다.
“원술 님. 이제 슬슬 저희 세력이 병량 고갈을 버티지 못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디 하해와 같은 아량을 베푸셔서 저희에게 조금만 지원을….”
“흥. 간만에 기분이 좋아 중요한 얘기가 있다길래 들어줬더니 또 그 얘기로군.”
자리에 앉아 꿀물을 마시던 원술이 남성의 말을 끊고 삐뚜름하게 웃었다.
“내게 비협조적인 세력을 도울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이냐?”
“그건 다른 세력의 이야기지 저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건가? 이거 기본자세부터가 안 되어있구만.”
억울한 듯 항변하는 남성의 태도를 원술이 비꼬았다.
결국 지금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원술이란 걸 떠올린 남성이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래. 이번만 특별히 용서해주지. 이게 방금 자네가 말한 하해와 같은 아량이 아니겠는가?”
“…….”
원술 근처에 있던 인물들이 그런 원술의 말에 호응했다.
“그렇사옵니다! 오늘도 원술 님의 배포에 감명받았습니다!”
“천하의 운이 이런 원술 님께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원술이 유쾌한 듯 웃었다.
“흐하하! 옳은 말만 골라서 하는구나!”
끼리끼리 논다고 서로가 서로를 핥아주는 추한 광경을 보며 남성은 고개를 숙였다.
암군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런 인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리라.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내가 병량을 내어주면 너희는 뭘 줄 수 있겠느냐?”
“그게 무슨…!”
남성은 원술의 말에 경악하며 눈을 크게 떴다.
자신들이 정릉군과 얼마나 열심히 맞서 싸웠는지 알고 있을 텐데 이런 행동이라니?
그런 남성의 반응을 신경 쓰지도 않는 무심한 표정으로 원술이 말을 이었다.
“그래. 병사 만 명을 넘겨주면 생각해보마.”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생각은 해보겠다는 태도.
다른 연합군이 서서히 몸을 사리는 와중에도 끝까지 도리를 다했거늘, 지금 원술이 보이는 태도는 자신을 완전히 얕보는 행동이었다.
“됐습니다! 그냥 저희끼리 해결하도록 하지요!”
처음부터 원술이 병량을 지원할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챈 남성은 분노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등을 홱 돌렸다.
“쯧쯧. 내가 일생일대의 기회를 줘도 걷어차 버리는군.”
저열한 만족감에 사로잡혀 남성을 골리던 원술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물러나는 남성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주군! 급보입니다!”
남성이 원술이 있는 곳을 빠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령이 급한 몸짓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엇이 그리 마음에 안 들었는지 원술의 곁에 있던 문관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리 추레한 몰골을…!”
“됐다.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자신을 대신해 화를 내는 문관을 제지한 원술은 마치 큰일이라도 한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원술이 무엇을 바라는지 눈치챈 문관은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여, 역시! 원술 님의 그 관대한 마음씨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하하하! 입에 발린 말은 되었다!”
그러면서 입가가 쭉 찢어진 것이 아주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문관은 일일이 호응해주는 것도 일이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래서 뭐냐? 원술 님께서 기껏 기회를 주셨으니 별거 아닌 내용이면 못마땅히 여기실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전령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신은 그냥 급한 내용을 전하러 왔을 뿐인데….
전령은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냅다 질렀다.
“황건군이 다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
의외의 소식에 원술이 눈을 크게 떴다.
황건군은 장각이 행방불명 된 이후 대부분 해산하거나 소규모로 떠돌아다니면서 숨죽이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천하 곳곳에 흩어져있는 황건군 잔당들이 백성인 척 침입하여 관청과 창고를 불태우는 등 온갖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설마 내 도시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
전령은 면목 없다는 듯 고개 숙였다.
“예!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런 대응도….”
“이런 무능한 놈들이!!”
원술이 말을 끊고 고함을 질렀다.
“그렇다면 그 빌어먹을 놈들은 구속했느냐!”
“황건군이 불만 지르고 바로 도망갔기에 단 한 명도 잡지 못했습니다!”
“크아아악!”
원술로서는 복장이 뒤집어지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