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00)
EP.600 내정(8)
나한테는 쉬는 날이 될 때마다 꼭 생기는 특이한 일과가 있었다.
그게 바로 무엇이냐.
콰앙─!
“정릉! 오늘 검진하는 날인 거 알지?!”
“…….”
“빨리 옷 입고 나갈 준비해!”
내 건강에 대해 극성인 아내들이 날 의원(醫院)으로 끌고 간다는 것.
내가 몽골 스나이퍼 제베(жебе)에게 저격을 맞아 배때지에 도넛이 생긴 이후, 난 걸핏하면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며 하루 종일 골골거렸다.
이렇게 좋지 않았던 상황은 훗날 지나가던 신선의 의뢰를 수행해 직접 치료를 받기 전까지 지속됐지.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후유증을 계속 안고 갔다면 오래 살아도 50세는 넘기지 못했을걸.
…아닌가?
내가 죽을 것 같으면 화타가 이 악물고 살려낼 것 같긴 하네.
후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은 나약한 모습을 지금까지 여러 번 보였으니 주변 사람들이 걸핏하면 날 감싸는 것도 이해가 됐다.
“…….”
웬만하면 내게 굽혀주는 서여와 여포조차 검진을 받는 것에 대해선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을 정도.
뭐, 나도 굳이 빨리 죽고 싶은 건 아니니까.
이 기회에 아이들 건강이나 겸사겸사 체크해야지.
“서희야. 이리 온.”
“…….”
내가 자리에 쭈그려 앉으면서 이름을 부르자 서희는 쫄래쫄래 다가와 내게 폭 안겼다.
제 어머니인 서여를 닮아 표정 변화는 거의 없는데 하는 행동은 강아지가 따로 없네.
서희에게 있는 문제점이라면 딱 하나.
어리광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걸까.
울지도 않고 입도 잘 열지 않는 어린아이에게 어리광이 심하다 말하니 이상하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서희가 어리광을 부리는 수단은 참으로 단순명료했다.
꼬오옥.
“…….”
팔에 힘주는 거 봐라.
잘못하면 옷 또 늘어나겠네.
전생에서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의 행동이라는 말이 있었나.
서희가 딱 그런 유형에 해당했다.
내가 딸을 안아주기 싫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하루 종일 이렇게 지낼 순 없는 노릇.
“…또 사라졌어!”
여포는 자기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도망친 여화의 모습을 확인하고 경악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긴, 원래 병원이란 곳은 모든 어린아이의 악몽 아닌가.
어디를 가든 내 품에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듯 얌전히 있는 서희가 이상한 거지.
서희도 서희지만 걸핏하면 어딘가로 사라지는 여화도 만만치 않군.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제 어머니의 반골 기질을 닮은 건가.
“…….”
이런 와중에 벌써 서여와 눈싸움을 벌이는 서희까지.
예전부터 생각하던 건데 너희 묘하게 사이 안 좋지 않냐.
모녀지간끼리 이러는 거 맞아?
“찾았다!”
“으햐아앗!”
잠시 당황했던 여포는 이제 가면 갈수록 경험이 쌓이는지 여화를 너무나도 손쉽게 찾아내서 포획했다.
이번에는 이불 속에 숨어있었구만.
…사실 티가 많이 나서 금방 들킬 거라 생각하긴 했어.
여포에게 붙잡힌 여화는 곧장 난동을 부리면서 빼액 외치기 시작했다.
“싫어! 거기 이상한 냄새 난단 말이야!”
“어허! 얌전히 있어!”
이상한 냄새라니.
누군가가 들으면 상처받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나.
…뭐, 약재를 달여서 보약을 만들 때 나는 냄새가 여간 지독한 게 아니긴 해.
나조차도 어린 시절 한약방 앞을 지나갈 땐 코를 막고 지나갔었다.
아니면 아예 다른 길로 빙 돌아가든가.
누군가는 이 냄새가 오히려 좋다고 말하던데 적어도 여화는 아닌 모양.
내가 출발하기도 전부터 묘하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얼떨떨한 기색을 드러낼 무렵 초선이 슬며시 다가오며 말했다.
“주인님, 모두 준비했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내게 딸린 식구가 많아서 그런가?
분명 천하 통일이란 과업을 완수했음에도 조용하게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
“오셨습니까.”
내가 의원에 도달하자 화타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제갈량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흰색 머리카락.
아무리 바라봐도 감정 변화를 도통 알 수 없는 차분한 청색 눈동자.
화타는 청결을 중요시하는 의사답게 제 머리카락을 비녀로 가지런히 정리한 상태였다.
난 처음 만났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화타의 아름다운 외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예전부터 궁금하던 건데 눈앞의 여인은 도대체 몇 살일까.
활동 시기로 판단했을 땐 적어도 나보단 나이가 많을 텐데 말이야.
지금 내 나이가 30대 중반인 걸 생각하면 그녀는 적어도 지천명(知天命, 50세)을 코앞에 두거나 진작 넘긴 상태….
“…….”
“…….”
뭐지.
순간 어마어마한 기세를 느낀 것 같아.
나는 화타의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눈빛을 마주하고 얌전히 생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예쁘기만 하면 상관없는 것을.
지금 화타는 겉모습으로만 따지면 사실상 20대라 봐도 손색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 세계도 천국이라니까.
능력이 뛰어나다면 모든 사람이 겪어야만 하는 노화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니….
사실 나이 운운하기엔 지금 불혹(不惑, 40세)을 코앞에 둔 부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본래 역사보다 몇 년 더 늦게 태어났다지만 그래도 손견과 비슷한 연배인 조조가 대표적이지.
애초에 화타는 내가 저번에 만났던 신선처럼 속세를 살짝 벗어난 인물로 판단되는 상황.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무색무취(無色無臭)의 독을 아무렇지도 않게 간파하는 능력을 지녔다.
오죽하면 진짜 신선인 열자(列子)보다 화타가 더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겠냐.
열자는 시를 지으면서 흥을 돋구는 모습이라도 보였지, 화타는 진짜 로봇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런 이상 없습니다.”
내 눈동자를 뚫어지라 살펴보고, 진맥을 잠시 짚어보는 등 오늘도 평소와 똑같이 내 건강을 살펴본 화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맥을 짚어보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눈동자를 뚫어지라 바라보는 건 무슨 검사지.
…설마 동공 반응까지 지켜보면서 진찰하는 거야?
진짜로?
전생에서 의사들이 동공 반응을 살펴보며 뇌에 종양이나 출혈이 있는지, 아니면 백내장이나 녹내장으로 인한 시력 이상이 있는지 검진하던 걸 떠올린 나는 속으로 살짝 경악했다.
이건 근대 의학도 아니라 현대 의학 수준인데.
본래 역사의 화타는 조조에게 ‘조조’를 당하고 감옥에서 서서히 죽어갈 무렵 옥졸한테 책 한 권을 주면서 ‘이 책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옥졸은 법을 어기는 것이 두려워 이를 받지 않았다 하고 화타는 강요하지 않은 채 책을 불태웠다고 하지.
이는 삼국지 정사에 실제로 적혀있는 내용이었다.
즉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냐.
지금 이 세계의 화타도 의서(醫書)를 집필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단 뜻이다.
다른 의원들이 침을 꽂거나 보약을 먹이는 선에서 끝날 때 혼자 외과 수술을 행하는 신의(神醫)의 의술.
만약 그 의술이 후대에 무사히 전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정확히는 몰라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살 것 같은데.
“…원화(元化, 화타의 자).”
“부르셨습니까.”
과거 화타의 요청으로 그녀를 자(字)로 부르기 시작한 나는 질문을 던졌다.
“제자는 있나?”
“…….”
“아무리 생각해도 그대의 의술은 널리 전해져야 할 것 같다만.”
내가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묻자 잠시 침묵을 지키던 화타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예. 최근 과거 시험에 합격한 의원 몇 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과거 과목에 의과(醫科)를 따로 분리해서 넣어놨었지.
아무래도 화타는 그 시험에서 합격한 의원들을 가르치는 모양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이런 내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단 반응을 보였지만 누가 옳았는지는 시간이 증명해 줄 테니 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 시대는 사이비 의원이 너무 많다 보니 의학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존재하는 건 어쩔 수 없었으니까.
결국 나라가 직접 주관해서 괘씸한 놈들을 때려잡아야 의학 발전이 있지 않겠나.
“특히 오보(吳普)는 의술을 제외하고도 사람의 육체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번아(樊阿)는 침술과 약 제조에 특출난 모습을 보여 그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째 한 번씩 들어본 듯한 이름이네.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둘 다 화타의 제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을 구했다던 의원이던가.
그들은 권력자에게 잘못 걸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제 스승과 다르게 각자 아흔 살, 백 살까지 살면서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참 놀라운 일이지.
아흔 살, 백 살이면 현대에서도 오래 살았다 일컬어지는 나이인데 말이야.
“흠….”
나도 그 정도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
사람의 몸은 결국 소모품이다.
그런 소모품을 10대, 20대 시절에 전쟁터를 진전하며 워낙 험하게 굴렸으니 수명도 상당히 짧아졌을 터.
…화타와 장각이 날 이 악물고 보살피는 이상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뭐, 그건 아마도 하늘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