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04)
EP.604 역병(4)
인두법의 효능을 시험받는 죄수들이 처음 천연두 증상들을 드러내고 2주일가량이 흘렀다.
“오오….”
“살았다….”
열이 내리고, 종기가 나면서 살이 문드러지던 부위에 딱지가 내려앉는 등 질병이 호전됐지.
무엇보다 평범한 천연두와 비교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무엇이냐.
“…와, 정말 안 죽었네요?”
실험 대상 대부분이 천연두를 앓았음에도 살아남았다는 것.
하지만 딱 한 명, 불행하게도 병이 완치되지 못한 죄수도 존재했다.
“나이는 67세.”
“접종 방법은…. 네, 팔뚝에 상처를 내는 방식이었네요.”
사마의에게 끌려온 사형수 중 제일 나이가 많았던 노인이 죽어버린 것.
쯧쯧. 1% 확률을 뚫지 못했구나.
운도 지지리 없지.
아, 그래도 면역력이 약해진 노인이니 1%보단 높으려나?
심지어 팔뚝에 상처까지 내는 방식으로 접종했으니 안 그래도 약한 면역력이 더욱 약해졌을 터.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양반이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이곳까지 끌려온 건지 모르겠다만 굳이 알아낼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자연적인 역병이 일어났을 때와 확연히 차이 나는 사망률….”
하지만 이 늙은 죄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죽지 않았기에 화타는 상황을 조용히 정리했다.
수십 명쯤 되는 죄수 중에서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천연두에서 살아남았다.
이는 아주 단순하게 계산해도 3% 이하.
최근 일어난 역병 감염자 중 30% 정도가 죽었던 걸 떠올리면 매우 놀라운 일이지.
“이제 남은 실험은 하나뿐이군요.”
“그래.”
난 장각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약화된 천연두 바이러스를 통해 항체를 만들었으니 이제 ‘진짜’와 싸울 차례.
이 인체 실험에서 몇 명이 살아남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역사가 달라질 것이다.
나는 자신들의 미래를 짐작하지 못한 채 안도의 한숨만 내뱉는 죄수들을 바라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원래 몸 상태를 되찾을 때까지 내버려 둬.”
“알았어요.”
사마의는 내 명령을 받고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충 이틀 정도 내버려 두면 되겠지.
저들은 병사들의 통제하에 강제적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지내다 보니 금방 건강을 되찾고 쌩쌩해질 것이다.
이제 저들이 원래 컨디션을 되찾는 동안 ‘진짜’를 구해오면 되는데….
“준비는 끝났나?”
“네, 네에….”
방통은 청량한 분위기를 지닌 녹색 눈동자로 날 바라보면서 고개를 아주 살짝 끄덕였다.
“격리 구역으로 의원을 보냈으니 조만간 돌아올 거예요….”
“그래.”
지금 역병이 한 차례 잠잠해졌다지만, 여전히 격리 구역 내부에서 끙끙 앓는 백성들은 존재했다.
원래 질병이란 것은 변덕이 매우 심하지 않나.
천연두도 예외는 아니라서 사람마다 전부 다른 증상을 보였다.
분명 똑같은 바이러스일 텐데 누구는 평범하게 끙끙거리다가 완치되고, 누군가는 가장 심각한 유형인 악성 천연두나 출혈성 천연두에 시달리며 우수수 죽어 나갔다.
이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조금 전 설명한 두 가지 유형은 발병 비율이 낮지만 치사율은 무려 90%를 넘어가는 정신 나간 생물 병기라고.
“…후우.”
솔직히 천연두 표본을 채취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이미 사람들을 살린다는 의무감 하나로 움직이는 의원들을 가로막기엔 부족했다.
사람의 재물만 노리고 사기 행각을 벌이는 돌팔이 의원도 많았으나 존중할 만한 마음가짐을 지닌 의원도 많았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큰 뜻을 품은 인물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일 터.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도 모른 채 살만하단 표정을 짓는 죄수를 잠시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
그 이후 계속된 임상 시험의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여전히 역병이 유행 중인 지역에서 채취해 온 표본을 주입했음에도 사망자가 무척 적었다는 것.
대충 수십 명당 한 명꼴일까.
천연두의 치사율이 적어도 30%를 웃도는 걸 생각하면 이건 매우 유의미한 변화였다.
“…확실히 대단하네요.”
내 근처에서 직접 이 상황을 지켜보던 사마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쁜 기운 어쩌고 할 때는 또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건가 생각했는데 말이죠.”
“…….”
바보 같은 소리라니.
듣는 바보가 상처받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구나.
잠시 침묵하던 나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마의에게 물었다.
“표본에 문제는 없었지?”
“흥, 제가 그런 실수를 할 리 없잖아요.”
내 질문을 받은 사마의가 앙증맞게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이미 다른 평범한 죄수들에게 투입해서 표본이 멀쩡한 게 맞는지 확인했죠.”
“…….”
“닷새 동안 절반 넘게 죽는 거 확인하고 전부 깔끔하게 처리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어쩐지 최근 근처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더라니 네가 한 일이었냐.
난 불 피우면서 평범하게 밥이라도 짓는 줄 알았는데….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인체 실험으로 써먹는 모습.
어차피 죽을 놈들이라 어떻게 처우하든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인가.
이걸 효율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냉혹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딱히 별 생각이 안 드는 거 보면 나도 별 다를 바 없겠지만.
“…대장군.”
내가 눈앞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의원들을 멀뚱히 바라볼 무렵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 내리던 화타가 근처로 다가왔다.
“모든 의원을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응?”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난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장군께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수백, 수천만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겁니다.”
“…….”
“어쩌면 그보다 더욱 많은 생명을 구하셨겠지요.”
화타는 신의(神醫)란 칭호에 어울리게 천연두가 훗날 인류에게 어느 정도 규모의 피해를 입힐지 대략적으로 짐작한 모습이었다.
수백만, 수천만.
그조차도 넘어선 수억 명.
“사람을 치료하는 의원으로서 어찌 감사 인사를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으음….”
난 그 감사 인사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것도 후대의 치료법을 베껴온 것뿐인데 말이야.
과거 제도와 대운하 건설이란 업적을 뺏긴 수문제처럼 인두법을 최초로 개발한 이름 없는 누군가도 피눈물을 흘리겠군.
“이제 이 방법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기만 한다면….”
“아, 그건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겠나.”
“……?”
내 말을 들은 화타는 의문스러운 반응을 드러냈다.
내가 이런 말을 내뱉은 이유는 간단했다.
“어쩌면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으니까.”
“더 좋은 방법….”
“그래.”
인두법(人痘法).
천연두 환자에게서 바이러스를 채취하여 인위적으로 면역 항체를 만드는 방법.
이 방법은 확실히 천연두의 사망자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사망률이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지.
인두법을 접종할 때 1% 확률로 사망.
만약 여기서 살아남더라도 훗날 ‘진짜’에 감염됐을 때 죽을 확률은 2% 남짓.
말이 1%, 2%지 이걸 한나라의 인구로 치환하면 족히 수십만 명은 죽어 나간단 소리였다.
그래도 수백만, 수천만 명씩 죽어 나가는 것보단 훨씬 낫다지만….
인두법보다 훨씬 효과가 적고 부작용도 덜한 방법이 있잖아.
이 세계에서도 인두법이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채취한 표본은 아직 남아있나?”
“예.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넉넉하게 채취했습니다.”
아주 열심히 일하네.
이러니까 사람들을 많이 살렸구만.
화타의 보고를 들은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일단 그것들은 내버려 두고, 소와 사슴 같은 짐승들을 살펴보면서 저 역병과 비슷한 증상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하도록.”
“……??”
매우 갑작스럽지?
사실 나도 그래.
하지만 어쩌겠나.
인두법(人痘法)보다는 종두법(種痘法)이 효과가 더 좋은 것을.
종두법(種痘法).
천연두와 비슷한 성질을 지닌 우두(牛痘)를 사람에게 일부러 감염시켜서 면역 항체를 만드는 방법.
글자만 봐도 알겠지만 이 질병은 소에게서 처음 발견된 질병이다.
왜 뜬금없이 다른 질병을 언급하냐 말할 수 있는데, 이 우두 바이러스를 극복하면 천연두에도 면역이 되는 상상도 못할 효과가 있었다.
이유가 구체적으로 뭐더라.
천연두가 발진을 일으키는 성분하고 우두가 발진을 일으키는 성분이 서로 똑같아서 면역 체계가 형성된다고 하던데….
무엇보다 종두법은 인두법에 비해 위험 부담이 훨씬 낫다.
우두(牛痘) 자체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기도 하고, 인두법에 비해 사망할 확률이 무척 낮거든.
구체적인 확률은 기억 안 나지만 0%에 한없이 가깝다는 건 기억나.
마치 내가 구입한 복권의 당첨 확률처럼 말이야.
백신 부작용 확률도 낮고, 천연두는 아예 면역시켜 버린다.
괜히 천연두가 현대 시대에 근절된 전염병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우두(牛痘)가 유럽과 서아시아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풍토병이라는 것.
그러니까 저기 지구 반대편까지 건너가 아주 개고생하면서 우두에 걸린 짐승이나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고.
천연두는 인간에게만 발생하는 전염병이니 채취한 표본을 소한테 인위적으로 접종시켜봤자 소용없었다.
애초에 천연두와 우두는 다른 질병이야.
“…….”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한나라를 오가는 외국 상인에게 따로 의뢰해서 데려와야 하나?
한나라가 워낙 넓으니까 잘 찾아보면 우두에 걸린 짐승이 한 마리쯤은 튀어나올지도….
난 포상금이라도 걸어야 할까 생각했고, 화타도 여전히 의문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