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05)
EP.605 역병(5)
내가 역병이 발생한 강동 지방에 머무르기 시작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비록 돈과 인력을 쏟아붓기는 했지만 역병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이를 막아냈고 피해에 대한 수습도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인두법의 효과도 확인했겠다, 이제 남은 일은 우두에 걸린 짐승을 찾아내 종두법을 시행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 천연두 때문에 고생할 일은 줄어들겠지.
하지만 천연두가 완전히 없어지는 때는 위생 시설이 성공적으로 완비된 이후일 것이다.
왜, 그런 것들 있잖아.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을 끌어오는 상수도 시설이라든가.
아니면 온갖 폐수가 흘러 들어가는 하수도 시설이라든가….
상수도가 없으면 목욕은 고사하고 마실 물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겠지.
그리고 하수도가 없으면….
으음, 제대로 된 설명이 필요하나?
아마 TV에 나왔으면 조금 인적이 드물다 싶은 곳은 곳곳이 모자이크 처리될 정도로 개판이 났을걸.
…지금도 그렇다는 게 슬플 따름이지만.
하여튼 ‘깨끗한 물’이라는 것은 인류의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였으나 지금 시대에선 기술력의 문제로 원활한 공급이 힘든 편이었다.
내가 건축학 지식에 해박한 것도 아닌데 뭘 어떻게 하겠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이디어 툭 던져주고 휘하 기술자들을 위이잉 갈아버리는 것뿐이지.
괜히 강이 흐르는 지역에서만 대도시가 발달한 게 아니라니까.
한나라의 수도인 낙양만 하더라도 흙탕물투성이인 황하(黃河)뿐만 아니라 근처에 낙수(洛水)라는 강이 존재해 깨끗한 물을 공급받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저기 서쪽에 있는 장안도 위수(渭水)라는 강을 끼고 있으니 사정은 비슷하지.
그 외에도 익주의 성도라거나, 형주의 남양, 기주의 거록 등 꽤 유명한 대도시들은 죄다 강을 끼고 있었다.
지도를 쭉 훑어봤는데 강이 진짜 많더라.
이것도 자연의 신비라 불러야 하나.
“좌현(左舷)으로 틀어─!”
“예──!!”
이번에도 어김없이 손책과 주유가 직접 이끄는 배 위에 올라탄 다음 낙양으로 재빠르게 복귀하는 상황.
“…….”
본래 역사에서 오나라를 세운 창업 인재들을 총알 배송 택시 기사로만 이용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소열제 유비도 부곡(部曲)으로 부리는 마당에 부담감을 느낄 순 없었다.
궤에에엑──
크와아악──
그나저나 저 병사들은 여전하구만.
혹여나 있을 사태에 대비해 몇몇 부대를 남겨두고 복귀하는 도중 병사들은 어김없이 뱃멀미를 호소했다.
이러니까 육군과 수군을 분리해서 훈련하는 거지.
저들도 배에 익숙하게 만들고자 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훈련 강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가는지라 어지간한 강골(強骨)이 아니면 버티는 게 불가능했다.
현재 수군이 아니었음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병사들은 특수 부대밖에 없었다.
“…….”
가령 내 근처에 있는 호위병이라든가.
원래는 호위 부대 이름이 일백군(一百軍)이었나 일천군(一千軍)이었나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나라 통일 이후 군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이 부대도 이름이 바뀌었다.
───앞으로 주군의 호위 부대는 성위군(聖衛軍)이라 불릴 것입니다.
───…성위(聖衛)?
성스러울 성(聖)에 지킬 위(衛).
이건 누가 봐도 어떤 의도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왜, 성인(聖人)이다 성군(聖君)이다 할 때 쓰는 한자가 바로 저 때 쓰는 거거든.
이걸 돌려 말하면 성스러운(聖) 누군가를 지키는(衛) 부대란 뜻이다.
…일백군(一百軍)이란 이름이 상당히 촌스러운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또 다른 의미로 너무 나간 것 같은데.
내가 이 제안을 거절하려 한다는 걸 이미 눈치챘는지 제갈량은 백우선으로 입가를 가린 채 싱긋 눈웃음을 지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입니다.
───…….
───황명(皇命)을 거절하면 아니 되겠지요.
황제 폐하도 그렇고, 제갈량도 그렇고….
충성과 애정이 너무나 무겁다.
하여튼 부대 이름부터가 이러는데 여기서 복무하기 위한 조건이 어떻겠는가.
제갈량은 칭기즈 칸의 호위병인 케식(Хишиг)처럼 온갖 시험을 통과해야만 내 호위병으로 복무할 수 있게 만들었다.
군사 행동은 물론, 평시에는 행정 업무에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똑똑해야 하던데….
진짜 엄청나게 빡세네.
물론 내 신변과 관련된 일이니 여포가 직접 평범한 사람이면 죽겠다 싶은 수준으로 이들을 굴렸다.
평소엔 서여처럼 내 주변을 기웃거리기만 하는 여포가 드물게 의욕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내 호위병을 육성하는 것.
───얘들아, 내일이면 쉬는 날이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오늘 한번 죽어보자.
───…….
일주일에 한 번씩은 내가 직접 지켜보는 동안 어찌나 열심히 훈련시키던지….
───왜 이렇게 느려터졌어─!!
───커헉!
슈웅─!
───움직이는 게 다 보이잖아─!!
───으억!
쾅─!
…훈련 맞나?
병사들이 트럭에 치인 것처럼 이리저리 날아가고 있지만 아마 맞을 거다.
어쨌든 이런 개고생과 걸맞은 엄청난 사회적 위상을 누리고 그에 딸려 오는 온갖 혜택도 있다.
또 본인들도 이곳에서 복무하는 걸 무척 명예롭게 여기는 한나라 제일의 최정예 부대가 탄생한 것.
이런 부대에서 복무하는 이들이 배 위에서 시간 좀 보낸다고 멀미에 시달릴 일은 없었다.
“…….”
아니면 멀미가 있는데도 꾹 참고 있는 것이거나.
난 근처에서 병사들을 계속 흘겨보는 여포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직접 움직였다.
“무으으─?”
내가 난데없이 자신의 볼따구를 잡아당기자 여포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앙하히 애 흐해?(갑자기 왜 그래?)”
과거와 달리 볼따구를 잡아당겨지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모습.
많이 성장했구나.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왜 자꾸 다른 사람을 보고 있어?”
“……?”
“날 보고 있어야지.”
“…흐븝!”
듣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질 느끼한 말이었지만 여전히 콩깍지가 지워지지 않은 여포한테는 효과가 끝내줬다.
“아, 앙아써! 앙아으이하 으항 형앙하!(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쳐다봐!)”
“그렇다면야.”
내가 말랑말랑한 볼살을 놓아주자 여포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세게 잡아당긴 것도 아닌데 얼굴이 달아오른 걸 보면 매우 부끄러운 모양.
“흐으으…. 큰일 날 뻔했네.”
뭐가 큰일 날 뻔했다는 걸까.
혹시 스위치가 올라가서 닿기만 해도 뻗어버리는 허접 상태가 될 뻔한 건가.
나는 매우 궁금했지만 여포의 명예를 위해서 참아내기로 했다.
자신들을 계속 흘겨보던 여포의 눈빛이 사라지자 병사들도 한결 편해진 듯한 모습.
“…….”
“…….”
근데 서여야.
너 조금 전보다 거리가 훨씬 가까워진 것 같지 않니?
나는 어느샌가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나와 거리를 좁힌 서여의 모습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떻게 움직인 거지.
잠시 안 보는 사이 미끄러지듯 움직인 건가?
“…….”
내가 손을 뻗어 조금 전 여포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랑말랑한 볼을 어루만지자 서여는 매우 들뜬 모습이었다.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분위기가 달라졌으니 난 알 수 있다고.
──────────
대운하 건설 현장에 난데없이 역병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급히 황제 폐하께 표문을 올린 다음 강동 지방으로 잠시 떠났었다.
내가 비록 손책, 주유 콜택시를 이용하며 이동 기간을 단축했다지만 역병을 수습하고 인두법을 시험하며 보낸 시간은 결코 짧다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대충 한 달하고도 보름 남짓인가.
“…아, 오셨습니까.”
“…….”
나는 그동안 또 무슨 일을 겪었는지 피로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순욱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꽤 피곤해 보이는군.”
“후후, 많은 일이 있었죠….”
그게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내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황궁 내부에서 아찔한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건 알고 있다.
…근데 도통 적응이 안 되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물어봐도 대부분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할 뿐이니 원.
“그러고 보니 최근 군부도 소란스럽더군요.”
“아.”
순욱의 설명을 들은 나는 문득 황제 폐하 말고도 낙양에 남은 또 다른 여인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대라면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 테니 난 이곳에 남아있겠다.
───남겠다고?
조조 맹덕.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은발이 인상적인 여인은 나를 바라보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비(丕)가 아직 젖도 못 뗐으니 어미로서 보살펴야 하지 않겠나.
───으음….
딱히 흠잡을 만한 구석이 없는 이야기라서 낙양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는데 말이야.
“들려오는 바에 따르면 대장군께서 안 계시는 동안에는 모든 제장들이 표기장군의 눈치만 살핀다고….”
“…….”
나는 순욱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잠자코 침묵만 지켰다.
너 집에서 아이만 보살피겠다고 말했잖아.
어째 조조도 황제 폐하처럼 내가 없는 사이 내부 정리에 힘을 쓰는 모습.
하지만 말이 내부 정리지 자기 기준에 안 맞는 인원들을 ‘개인적으로’ 판단해서 치워버리는 게 분명했기에 난 머리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