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06)
EP.606 역병(6)
나는 낙양으로 돌아오자마자 기분이 영 안 좋아 보이는 황제 폐하와 조조의 기분을 풀어주고 곧장 다음 행동에 나섰다.
그 행동이 바로 무엇이냐.
…뭐겠어.
───피부에 농포(膿疱)나 수포(水疱)가 생기는 질병에 걸린 짐승을 찾는다.
길거리 곳곳에 문서를 붙여서 우두(牛痘)에 걸린 짐승을 찾는 것.
우두가 비록 유럽과 서아시아에서만 보이는 풍토병이라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전국적으로 포고문을 붙인 것이다.
인간끼리만 전염되는 천연두도 동아시아까지 퍼진 마당에 고양이나 소, 인간 등등 온갖 생물체를 가리지 않는 우두가 동아시아에 퍼지지 않을 리 없지.
누군가는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냐 말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나는 현실을 얕보지 않는다.
가끔 보면 픽션보다도 더한 일이 터져서 두 눈을 의심케 만드는 것이 현실 아닌가.
하물며 이곳은 괴력난신(怪力亂神)까지 실존하는 어마어마한 세상.
이런 세상에서 전염병 하나가 동아시아로 퍼지는 것 하나 불가능하겠어?
그렇게 나는 알 수 없는 자신감에 휩싸인 채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할 만한 내용을 기재했다.
───만약 이에 해당하는 짐승을 관청으로 데려온다면 막대한 사례를 지급하겠다.
말 그대로 너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선언하는 것.
지금 우리 집 창고 어딘가에 짱박혀 있을 수많은 재화들이 드디어 제 존재감을 드러낼 순간이었다.
내 주변 인물들….
특히 황제 폐하를 비롯한 여러 여인들에게서 선물이 자주 오거든.
하지만 이러한 선물 중에는 솔직하게 말해서 이걸 어디다 써먹어야 하나 싶은 물건이 많았다.
예로부터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사치품이라 일컬어지는 비단.
근데 비단은 딱히 옷을 지어 입는 용도로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그게 조금 과하게 많아.
…사실 조금 과한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과한 수준이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내 키보다 높이 쌓인 비단들을 어디다 쓰라는 걸까.
여차할 경우 금처럼 가치 있는 현물로 사용하란 의도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살짝 이해가 가긴 하는데….
뭐, 이렇게 선물을 팔아서 정책에 보태쓸 수 있으니 딱히 별다른 생각은 안 들었다.
애초에 황제 폐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황실의 재산이 곧 그대의 재산이거늘, 무얼 그리 고민하느냐?
───…….
이게 그 부부 공유 재산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만.
황제 폐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한테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만약 내가 사치와 향락에 빠져 황실의 재산을 대놓고 탕진해도 흐뭇한 표정으로 감싸주실 터.
원래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된 길로 빠지면 이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 옳은 행동이겠지만, 황제 폐하는 그러실 분이 아니지.
사람마다 제각각인 사랑의 형태를 바로잡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뭐? 창고에 있는 재산들을 가져가겠다고?!”
“예.”
“절대 안 돼! 이것들은 내가 제일 아끼는 거란 말이야!”
“…….”
어쨌든 내가 창고를 일부 비우려 하자 구두쇠 어머니께서 비단을 꼭 껴안은 채 버티는 상황도 있었으나….
“얘들아, 저기 있는 예쁜 언니가 놀아준다는데?”
“정말요?”
“…응?!”
난 근처에 있던 내 아이들을 데려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어머니를 무력화했다.
서여나 여포처럼 나와 사이가 가까운 여인들은 아무래도 어머니께 약하더라고.
분명 힘으로 끌어내고자 하면 끌어낼 수 있겠지.
근데 자기 남편을 낳은 시어머니를 그리 과격하게 대할 며느리는 드물 것이다.
한나라의 국서이자 대장군을 낳은 어머니.
그리고 비록 명예직에 불과하나 천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태부(太傅)의 관직까지 차지한 어마어마한 인물.
평범한 사람은 말 그대로 눈조차 똑바로 못 마주칠 엄청난 권위를 지녔는데, 막상 자리에 벌러덩 드러눕거나 자택 기둥을 붙잡으며 버티는 등 나이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추하게 버텨대니 늘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그 서여와 여포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면서 어머니한테 손을 못 대는 광경은 상당히 진귀했지.
주변 사람한테 신경 안 쓰기로 유명한 이 두 명조차 이러는데 다른 여인들은 자세히 언급할 필요도 없을 터.
…그래도 어머니께서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단 뜻이니 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몸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활동적인 분이고 건강에 좋은 약도 많이 드시니 아주 오랫동안 정정하지 않을까.
자신을 기른 부모가 건강하다는 데 이를 싫어할 자녀는 없었다.
하여튼 내 어머니가 수많은 며느리의 천적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렇다면 아직 나이가 어린 내 꼬꼬마 자녀들도 자기 할머니한테 꼼짝하지 못할까?
“재밌다!”
“재미따!”
“…….”
난 불과 일각(一刻, 15분) 만에 혼이 나간 상태로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래 자연이란 물고 물리는 것이 이치.
어머니가 며느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내 아이들도 자기 할머니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천적이었다.
조부모의 손주 사랑은 모두가 알아주지 않나.
아마 나였어도 저 천진무구한 아이들을 버텨내지 못한 채 그대로 뻗어버렸을 것이다.
“…아들.”
“예?”
아이들로 어머니를 쓰러트린 내가 하인들에게 명령해 창고를 비울 무렵, 근처에 있던 어머니가 말을 걸었다.
…여전히 자리에 쓰러져 있는 그 상태 그대로 말이야.
언제까지 저 상태로 계실 생각이지.
“지금 내게 보인 행동들 모두…. 업보가 돼서 너한테 돌아갈 거란다….”
“…….”
“모든 길은 결국 올바른 쪽으로 향하기 마련이니까….”
뭐지.
지금 저주라도 거시는 건가.
잠시 그 말을 되뇌던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훗날 제 손자 손녀들이 절 어찌 괴롭힐지 두렵긴 하죠.”
“그래! 내 아들이라도 언젠가 큰일을 치를 거라고!”
“근데 그게 지금은 아니잖아요?”
“으그극…!”
곧 40살을 코앞에 둔 아들(대장군)과 환갑이 가까워진 어머니(태부)의 기 싸움.
이게 바로 한나라 권력층의 최정상인가.
지금 관청에서 일하는 이들이 보면 다른 의미로 가슴이 웅장해질 광경이었다.
애초에 이것들 다 내 재산이잖아.
내 돈을 내가 쓰겠다는데 문제 있는 점은 하나도 없었다.
“주인님, 전부 정리했습니다.”
“그래.”
나는 초선의 보고를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약 본래 역사와 비슷하게 흘러갔다면 동탁과 여포의 사이를 이간질했을 경국지색의 여인.
그녀는 육아를 비롯한 집안의 모든 잡다한 일들을 책임지며 내가 마음 놓고 바깥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지금도 자신의 품 안에 장비의 딸을 꼭 껴안고 있지 않나.
장비는 현재 술을 몰래 숨겨두었다는 죄목으로 자신의 언니에게 끌려가 실종된(?) 상태였다.
“아빠! 안녕!”
“그래, 안녕.”
이제 막 4살이 된 장하(張荷)는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해맑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초선이 없었다면 도대체 집안일을 누구한테 맡겨야 했을지 상상만 해도 골치 아프네.
지금 아이들에게 녹아웃 당한 어머니께서 초선을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도 이런 가정적인 면모가 있기 때문이겠지.
“…….”
최근 나와 몸을 겹친 이후부터 무언가가 달라진 초선의 모습.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진 것이냐 물으면 대답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여인을 안아오며 단련된 내 직감이 계속해서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머릿속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속삭인다.
지금 내가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고.
모든 단서를 종합해 봤을 때 지금 내가 초선에게 해야만 하는 말.
…의외로 간단하네.
나는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빨려 들어갈 듯한 매혹적인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툭 내뱉었다.
“아이 이름은 민(暋)으로 하도록 하지.”
“!”
굳셀 민(暋).
이 한자에는 정말 많은 뜻이 있다.
굳세고, 강하며, 애쓰고, 노력하다.
삼국지연의에서 초선이란 여인이 보인 인물상에 딱 부합하는 글자가 아닌가.
나는 그러한 뜻을 담아 초선에게 지금까지 고생했다는 의미로 내뱉은 것이었다.
매우 갑작스러운 말이었으나 뛰어난 두뇌를 지닌 초선은 내 속뜻을 금방 알아챈 모습.
“…눈치채고 계셨습니까.”
“시기를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나.”
난 초선의 물음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와 몸을 겹친 이후 훨씬 조신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를 눈치채지 못하면 남편 실격이지.
“즉, 그 말씀은 평소에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다는 뜻이지요.”
“응?”
그게 그렇게 되나?
진짜로?
초선은 내 얼떨떨한 표정을 못 본 체하며 살짝 허리를 숙였다.
“이 보잘것없는 소비(小婢)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그러니까 이 진지한 분위기는 너무 갑작스럽다고.
“…잘 부탁드립니다?”
초선에게 안겨있던 장하는 어리둥절한 기색을 드러내면서도 초선을 따라 내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참 예의 바르구나.
역시 내 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