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09)
EP.609 신선(1)
“…….”
“…….”
나는 내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눈동자를 뚫어지라 바라보기만 하는 남화노선의 모습에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거지.
이것도 신선의 시험인 건가?
왜, 지금은 날 하루 종일 귀찮게 할 뿐인 열자도 처음에는 수억 마리 메뚜기떼를 해결하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던져주지 않았나.
…그래도 열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하고 시험을 시작했는데 말이야.
지금 눈앞의 소녀는 아예 그런 것도 언급하지 않네?
열어구가 여러 번 설명했던 것처럼 성격이 좋지 않은 건 확실한 모양.
그렇지 않고서야 대뜸 사람의 말을 여러 번 무시할 리 없으니까.
“…….”
장각에게 어찌된 영문이냐는 눈빛을 보내봤지만 그녀도 모른다는 듯이 고개만 살짝 가로저을 뿐.
남화노선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었던 나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속언에 따라 그녀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서로한테 어색한 시간이 몇 초나 흘렀을까.
“…크흠!”
내 기다림이 헛되진 않았는지 남화노선은 살짝 멋쩍은 듯한 모습으로 헛기침을 내뱉었다.
드디어 입을 열려는 건가.
좋아, 이제 남화노선이 무슨 말을 하든 난 놀라지 않을 자신이….
“오, 오, 오늘 날씨가 좋구나!”
“?”
갑자기 이게 무슨 쌩뚱맞은 소리야.
목소리는 왜 저렇게 떨고 있고?
일단 신선이 말을 걸었으니 난 이에 대답하고자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지요.”
“그, 그래!”
대체 뭐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각에게 심상치 않은 눈빛을 보내던 신선이 이런 반응을 보이니까 여간 당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래서야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을 눈앞에 둔 팬클럽으로밖에 안 보이는….
…….
…팬클럽?
───네놈이 좋다고 졸졸 쫓아다니는 꼬맹이에게 물어봐라!
과거 열자가 내게 내뱉었던 말이 떠오른 나는 순식간에 어느 가정이 떠올랐다.
정말, 정말로 말이 안 되는 가정이긴 한데 만약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정말로 맞다면?
“…….”
나는 못 먹는 감 한 번 찔러보기라도 하는 느낌으로 남화노선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전 말씀하신 것처럼 날씨도 좋으니, 저와 함께 바깥 구경이라도 하시겠습니까?”
“!!”
가면 갈수록 느끼한 대사 내뱉는 솜씨만 늘어나는 기분이네.
근데 어째서 이런 느끼한 대사가 통하는 거지?
내가 너무 좋아서 무슨 말을 내뱉든 치명적 일격이 나오는 건가?
하여튼 내 머릿속에 떠오른 가정이 틀렸다면 남화노선은 열자가 언급했던 더러운 성질머리에 걸맞게 온갖 욕을 내뱉을 것이다.
비록 성격이 난폭하다고 한들 장각에게 힘없는 백성을 구제하라며 태평요술서를 건넨 인물이니 근본 자체가 사악한 신선은 아닐 터.
내가 여기서 속을 박박 긁어도 남화노선은 욕만 내뱉을 뿐, 나한테 직접적으로 손을 대진 않겠지.
“…….”
만약 손을 댄다고 한들 서여와 여포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또 근처에 장각까지 있으니 물리 딜러와 마법 딜러가 전부 모여있는 상황이네?
이 진형은 아무리 신선이라고 해도 쉽지 않을걸.
…서여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으려나?
신선과 싸워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네.
물론 호감도는 팍팍 깎이겠지만 어차피 신선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스르륵 사라지는 인물들 아닌가.
어쩌면 이게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는데 냅다 지르는 게 낫지.
“또 여자 유혹…! 읍읍!”
“…….”
내 근처에 있는 여포는 곧장 무어라 외치려 했지만 서여에게 금방 제압당하면서 아등바등하기 바쁜 상황.
이제 내가 할 일은 눈앞의 소녀가 어떤 반응을 드러내는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나, 날씨가 좋으니 뭐 어쩌자고?!”
남화노선은 처음 내 말을 듣자마자 어버버거리면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거 아무리 봐도 불쾌해하는 반응이 아닌데.
아니, 그렇다면 진짜로?
설마했던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 눈앞의 소녀는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대답했다.
“…원래대로였다면 주제를 알라면서 훈계나 좀 했겠지만….”
“……. “
“오,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넘어가도록 하지!”
남화노선은 누가 봐도 방금 지어낸 것이 분명한 변명을 내뱉고 소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
소녀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을 장각은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살짝 벌렸다.
“설마….”
장각도 지금 무슨 상황이 일어나는지 어느 정도 짐작한 모습.
하긴, 얼굴을 붉히고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을 팍팍 드러내면서 나한테 투덜거리는데 이거 평소에도 자주 보는 상황 아닌가.
───네? 일 그만하고 같이 놀자고요?
늘 내 곁을 빙빙 맴도는 보라색 머리카락의 꼬꼬마 군사.
사마의는 걸핏하면 자신과 같이 놀자며 꼬드기는 나를 바라보면서 미간을 귀엽게 찌푸렸다.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도 않았는데 웬 이상한 소리를….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싫다고는 안 했는데요!
내가 무슨 제안을 건네면 늘 투덜거리면서도 결코 거절한 적이 없는 솔직하지 못한 소녀.
“뭐, 뭐 하고 있나? 어서 숙녀를 이끌어야지!”
“…….”
나한테 슬그머니 손을 내민 남화노선은 사마의의 그런 면모를 똑같이 닮아있었다.
“히극!”
난 망설임 없이 손을 붙잡자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소녀를 뒤로하고 장각에게 말했다.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할 수 있지?”
“…예.”
뭐, 살짝 우스운 질문이긴 했다.
의학에 관해서라면 나보다 훨씬 다양한 지식을 지닌 여인에게 알아서 잘할 수 있느냔 질문을 던지다니….
자의식 과잉이라 말해도 반박할 수가 없네.
원래 높으신 분은 앞으로 나아갈 길만 잘 알려주고 나머지는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맞다.
물론 예외는 존재하지만 그건 본인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그런 거니 제외하고.
무언가 날로 먹는 게 아니냔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나아갈 길이 잘못될 경우 일어나는 참사를 생각해보면 마냥 쉬운 일은 아니거든.
한 세력의 군주라는 건 늘 막중한 부담감에 시달리는 자리.
원래 높은 사람이 사사건건 간섭하며 깐깐하게 굴수록 아랫사람은 피곤한 법이야.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아는 것도 없는 놈이 그러면 결과물은 안 좋아지기만 하겠지.
절대 앞으로 있을 귀찮은 일을 전부 떠넘기는 게 아니다.
진짜로.
“갑시다.”
“으, 으응….”
나는 손을 붙잡은 이후 기묘할 정도로 조용해진 남화노선을 이끌면서 바깥으로 향했다.
화타는 아무래도 의원 일이 바쁜 모양인지 지금도 관청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장각이 알아서 잘 설명해주리라 믿는다.
절대 신선의 기분을 풀어준다는 명분으로 흥청망청 놀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모두 알아줄 거야.
──────────
“…….”
한 차례 크나큰 폭풍이 지나간 관청 안.
오늘도 평소와 똑같이 대장군을 보필하기 위해서 그의 부름에 응했던 장각은 여전히 입을 살짝 벌린 채 자리에 굳어있었다.
“의원님?”
“…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장각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근처에서 대기하는 의원들에게 말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시술을 시작할 테니 서둘러 움직이세요.”
“알겠습니다.”
무려 황실 구성원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태의령(太醫令)이란 관직까지 올라간 장각은 능숙하게 의원들을 지휘하면서 생각했다.
‘…설마 그런 모습을 보이실 줄이야.’
자신이 파악한 남화노선의 성격이었다면 이미 온갖 욕이 날아들면서 한바탕 큰일을 치러야 했을 텐데….
태평요술서를 전달받은 이후 남화노선과 별다른 만남을 가지지 않았던 장각이었지만 그녀가 직접 집필한 저서를 통해 남화노선의 성격이 어떤지는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어느날 갑작스럽게 나타나 기연을 툭 안겨다 주고 사라져버린 신선은….
뭐라고 해야 할까.
무척 다혈질적인 인물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었다.
태평요술서에는 괴이한 요술을 부리는 방법뿐만 아니라, 본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의술에 관한 내용도 자세히 적혀있었다.
───아픈 놈이 이리저리 날뛰면서 치료를 방해할 때에는 고민할 필요 없이 기절시키면 된다.
───병을 치료해주겠다는 데도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사람을 귀찮게 구는 놈은….
하지만 이런 내용이 버젓이 적혀있는데 어찌 다혈질적인 인물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자신의 스승을 이리 평하는 것이 언짢을 수도 있겠으나, 장각은 옳은 건 옳고 틀린 건 틀렸다고 확실하게 언급하는 여인이었다.
‘그렇지만 어째서?’
제 스승은 도대체 왜, 언제부터 대장군께 호감을 품기 시작한 걸까.
───쓰잘데기 없는 짓은 그만하고 이걸로 공부나 해봐라.
───……?
───네가 이 책을 얻었으니 마땅히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교화하고 구제하여야 한다. 알겠느냐?
자신이 남화노선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린 장각은 어느 정도 정답에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