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10)
EP.610 신선(2)
열자가 여러 번 언급하기를, 성격이 괴팍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꼬맹이 신선.
장각이 살짝 흘려 말하기를, 환자가 귀찮게 굴면 냅다 기절부터 시킨다는 과격파 의원.
이렇게만 정리하면 말 그대로 주변을 날려버리는 폭탄 같은 존재 아닌가.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천재지변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신선이 괴팍한 성격을 지녔다면 더더욱 두렵겠지.
“…….”
근데 지금 내게 손을 붙잡힌 꼬꼬마 신선은 기묘할 정도로 침묵만 지켰다.
워낙 조용해서 조만간 큰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야.
일단 바깥으로 나오긴 했는데 딱히 일정을 잡아두지 않았던 나는 이제부터 무얼 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열심히 생각해보자.
남화노선이라 하면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활동한 장자(莊子)의 별칭 아닌가.
그렇다 치면 지금 눈앞의 소녀는 족히 500살 가까이 먹은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라는 건데….
…정말 무시무시하군.
괴력난신(怪力亂神)이란 단어가 이렇게 어울리는 인물이 따로 있을까.
“…?”
내가 터벅터벅 걷다 말고 난데없이 우뚝 멈춰서자 남화노선은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고개를 돌린 나는 여전히 청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에게 말했다.
“때마침 배도 출출한데, 밥이나 먹도록 하죠.”
“어, 음….”
솔직하게 말해서 나이를 수백 살이나 먹은 신선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하거든.
그래도 이미 내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으니 이를 이용하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 터.
…그 신선이 내게 호감을 품은 이유를 하나도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어떠한 면모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르니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네.
“아, 알았다.”
내 갑작스러운 식사 요청에 남화노선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근처에서 나를 호위하던 여포는 내가 대놓고 여자를 유혹하는 것이 매우 불만스러운 모습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면 또 덮쳐지겠구만.
나를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지만 그런데도 끝까지 도전하는 모습은 참 여포다웠다.
──────────
게이머로서 게임을 하다 보면 회차 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을 상당히 자주 만난다.
그런 것들 있잖아.
가령 엔딩이 여러 개라든가, 난이도 자체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든가.
회차 플레이를 지원하는 종류에는 참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몇몇 캐릭터와 장비가 해금 된다는 것이었다.
기본으로 지원하는 캐릭터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난 것들도 있고….
무엇보다 그냥 고통받는 걸 즐기는 마조히스트들을 위해 온갖 제약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하드코어 캐릭터도 존재하지.
“…….”
그리고 나는 지금 마치 회차 플레이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콰악─!
“…생각보다 훨씬 강하네?”
그야 작달막한 소녀가 여포와의 힘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광경을 마주했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나.
“…….”
훈련장에서 여포가 내지른 나무 막대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맨손으로 붙잡은 소녀.
말해 뭣하겠나.
그 소녀는 바로 남화노선이었다.
“진짜 비실비실하게 생겼는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 몇몇 쓰레기들을 치워버렸다는 건 사실인가 봐?”
“흥.”
여포가 자신을 도발하자 남화노선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내가 뭣 하러 거짓말을 하겠느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아.”
“나이 많아서 좋겠네! 그래도 우리 정릉은 젊은 여자를 더 좋아할 텐데!”
“…….”
대화 나누는 거 봐라.
내용이 너무 정겹다 못해 무서울 지경이네.
저 두 명이 난데없이 한 판 붙게 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크흠, 어디 생명의 은인에게 할 말 같은 건 없느냐?
───예?
───이 몸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연놈들을 정리해주지 않았다면 네놈은 훨씬 피곤해졌을 것이니라.
남화노선이 나를 바라보면서 조금 갑작스러운 말을 내뱉더라고.
주제도 모르는 연놈들이라는 건 아마 날 역천자라 부르면서 달려들던 몇몇 도사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단적으로 말해서 저번 메뚜기떼를 조종해 널 공격하는 년을 처리한 것도 바로 이 몸이다.
───그렇습니까.
저번 자연재해를 처리할 때 메뚜기떼가 나를 먹을 것으로 착각하던 사건의 전말이 드디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내가 아무리 비실거려도 그렇지 벌레가 날 먹을 것으로 본다는 게 이상하긴 했어.
하지만 어디 만화에나 나올 법한 능력으로 벌레들을 조종하는 충술사가 있었다고 치면 나름대로 이해가 가지.
역시 괴력난신이 실존하는 세계는 그리 만만치 않구나.
내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속으로 수긍할 무렵 남화노선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 괘씸한 년이 다시는 허튼짓하지 못하도록 오장육부를 전부 뭉개놓았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
확실히 오장육부를 뭉개놓았다면 다시는 이상한 짓을 벌이지 못할 터.
물론 이상한 짓뿐만 아니라 다른 행동들도 못하게 된다는 게 문제인 것 같지만….
사람을 직접 곤죽으로 만들어버린 당사자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듯했다.
뭐, 벌레로 나를 해치려 했던 도사가 어떻게 되든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냥 단칼에 고통 없이 보내주면 모르겠는데 벌레로 사람을 뜯어먹게 하다니?
이건 아무리 나라도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는 잔혹함이었다.
이제 와서 느낀 거지만 이 세계의 도사들은 도를 닦으며 선업을 쌓는 경우보다 약간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린 유형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모든 도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불로장생을 비롯한 제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도 거리낌 없이 해칠 수 있는 놈들이란 걸 기억해라.
과거 나와 같이 바둑을 두던 열자가 언급했던 말이 제대로 이해되는 순간.
하긴 도사들이 어째서 생기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속세를 초월한 존재가 되어 불로장생을 이루고자 하는 꿈.
장각이나 우길처럼 지나가던 신선이 서적을 툭 던져줘서 도사가 된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욕망(欲望)이란 참 인간다운 이유로 도사가 됐을걸.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 정말 선하게만 살 것으로 생각하면 그게 이상한 경우겠지.
장각은 부패한 한나라에 실망하여 관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산에서 약초를 캐며 소소하게 살아가다 신선을 만나 태평요술서를 건네받았다.
자신의 옷을 깃털로 장식한 것이 인상적인 우길도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연못 근처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신선을 만났다고 이야기했다.
좌자는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장각처럼 산을 타며 세월아 네월아 여유롭게 살다가 어느 동굴에서 둔갑천서를 발견해 도사가 된 경우로 기억한다.
즉, 내 기준으로 정상적인 도사들은 전부 불로장생에 대한 욕심 없이 소탈한 삶을 살아가다가 기연을 만난 경우라는 것.
…이게 바로 나를 적대하는 도사들과 그렇지 않은 도사들의 차이인 걸까.
하지만 열자가 언급한 바로는 어느 정도 욕망은 있어야 신선이 될 수 있는 것 같던데….
《 무위(無爲, 억지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음)로 행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태상노군(太上老君)….
그러니까 노자(老子)가 지었다는 도덕경 같은 걸 살펴보면 이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나 싶을 정도로 복잡한 내용이 있긴 했으니까.
아마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하겠지.
…근데 무위를 행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게 없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래.
역시 옛날 사람들은 말을 빙빙 꼬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도사를 여럿 처리했다고?
하여튼 남화노선의 자랑거리가 여포의 관심을 끈 것일까.
───그것참 흥미로운데, 네 실력 잠깐만 볼 수 있겠지?
───…….
───겁쟁이처럼 도망치지 않을 거라 믿어.
아니면 단순히 내 관심을 일방적으로 끌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질투한 걸지도 모르겠네.
───천치(天癡, 어리석고 못난 사람)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끼어드는구나.
여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남화노선도 곧장 목을 좌우로 까딱이며 우드득 소리를 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지.
사실 그때만큼은 신선이 아니라 동네 깡패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그 어떤 신선이 신경 좀 긁혔다고 몸에서 우드득 소리를 내.
“…….”
나는 이를 말릴까 싶었지만 신선의 능력이 궁금했던 건 사실이라 잠자코 침묵만 지켰다.
온갖 초자연적 능력을 다루는 도사들이 마지막 목표로 삼는 게 신선이잖아.
그런 신선이 직접 능력을 보여주겠다는데 안 보고 배길 수가 있나.
부르르….
그리고 자신은 여포가 지금까지 두들겨 팬 수많은 장수들과 다르다는 듯 대등하게 힘겨루기를 하던 소녀가 불현듯 손을 놓더니 제자리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뒤돌려차기?
힘을 흘려내는 것과 동시에 발차기를 날린다고?
“우왓?!”
빠각!
물론 여포도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던지라 어렵지 않게 공격을 막아냈으나 손에 들고 있던 훈련용 막대기가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저 막대기, 분명 여포가 병사들을 훈련시키겠답시고 두들겨 팰 때 사용하던 건데.
진짜 단단한 목재로 만들어진 막대기가 발차기 한 방에 부서졌다라….
저 자그마한 몸에서 어떻게 저런 파괴력이 나오는 거지.
이게 그 선술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애송아. 더 해볼 테냐?”
흰색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는 소매를 펄럭이면서 물었고,
“알면서 뭘 물어?”
여포는 담담하게 부숴진 막대기를 휙 던져버리고 자신의 애병인 방천화극을 꺼내 들었다.
맨주먹과 무기.
평범한 상황이라면 누가 봐도 전자가 불리한 상황이지만 남화노선이 말하기를 자신의 무기는 주먹이랜다.
“…….”
역시 이거 말려야 할 것 같은데.
삼국지 게임으로 예를 들자면, 지금 눈앞의 소녀는 게임 클리어 후에나 나올 법한 고대 무장급 능력치를 지녔단 걸 난 단번에 파악했다.
그런 것들 있잖아.
막 통솔 무력 지력 정치 죄다 90 언저리에서 넘나들며 사기 특성까지 보유한 밸런스 파괴 장수.
열자가 남화노선은 육체파라고 평했으니 지력과 정치를 빼고 무력에 조금 더 플러스하면 되겠네.
콰앙─!
나는 무어라 말릴 틈새도 없이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는 두 명을 바라보고 머리를 짚었다.
진짜 누가 이길지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