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11)
EP.611 신선(3)
여포와 남화노선.
마음 먹고 날뛰면 흡사 자연재해와 비슷한 무언가가 되는 두 인물이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하자 주변에 광풍이 휘몰아쳤다.
“촐랑촐랑 잘 피해 다니네!”
“흥, 누가 할 소리를?”
부우웅──!
콰앙──!
막 눈앞이 번쩍번쩍 거리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 수가 없구만.
오랫동안 수많은 실력자들의 대련을 구경한 경험이 있으니 눈으로 어찌어찌 쫓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것조차도 잔상을 겨우 흐릿하게 쫓는 정도였다.
별이 그려진 주황색 공을 찾는 원숭이 인간 만화에서 주인공끼리 다투는 광경을 목도한 지구인이 이런 심정이겠군.
초록색 외계인에게 자폭 맞고 웃긴 포즈로 사망한 지구인 격투가 말이야.
“…!”
여포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매우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남화노선을 공격했다.
압도적인 힘과 속도.
단 한 방이라도 허용하면 말 그대로 뼈도 못 추릴 공격이 순식간에 여러 개가 들이닥쳤다.
지금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눈 한 번 깜빡이는 짧은 시간 동안 무기를 두세 번씩 휘두르고 있다는 건데….
…허구한 날 서여와 맞붙더니 진짜로 인간을 초월했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여포는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 동안 수련에 매진했으니 이상할 건 없지.
이미 요술을 부리는 신선도 있는 마당에 파워 밸런스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진짜 여기에 무협까지 끼얹으면 어쩔 뻔했냐.
농담이 아니라 근처 산천초목(山川草木)이 싹 다 휩쓸려 초토화되는 수가 있었다.
보통 무협지에서 신선의 경지가 어느 정도로 표현되더라?
아, 생(生)과 사(死)를 초월했다는 뜻에서 생사경(生死境)으로 불렀지.
화경(化境), 현경(玄境)보다 더 높은 경지 말하는 거 맞다.
온갖 기연을 다 차지한 무협지 주인공들조차 엔딩 직전에야 다다른다는 신화 속 단계.
이쯤 되면 심검(心劍)이라고 해서 생각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어쩐다 하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 세상이었으면 얼마나 더 개판이었을지 상상도 안 간다.
후웅─!
하지만 비록 그와 비슷하진 못하더라도 남화노선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신묘한 기술을 선보였다.
콰앙!
“앗, 또 사라졌잖아!”
“…….”
공격이 맞는 것 같다 싶으면 바람으로 변해서 사라지더라.
아니,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무적 기술을 현실에서도 쓰고 있네.
더욱 악질인 것은 저 엄청난 무적기를 쉬는 틈도 없이 사용한다는 것.
캉─!
카앙─!
콰가각─!
“야 이 치사한 년아──!!”
갑작스럽게 뒤에서 나타나 주먹을 휘두른 다음 사라지고, 이번에는 위에서 나타나 발차기를 내려찍은 다음 사라지는 모습에 여포가 분통을 터트렸다.
“허, 참.”
하지만 남화노선도 여포의 철통 같은 방어에 헛웃음을 내뱉긴 마찬가지.
“그 육체와 직감은 정말 타고났구나.”
의복 하나만 달랑 걸친 맨몸으로 방천화극과 쾅쾅 부딪치던 소녀는 여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공중에서 번쩍 나타났다.
무덤덤한 표정을 보아하니 별다른 충격이 없는 모양.
하지만 그건 여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날이 저물어도 끝이 안 나겠어.”
“흐, 겨우 그 정도?”
잠시 침묵하던 남화노선이 툭 중얼거리자 여포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대답했다.
“난 며칠도 넘게 싸울 수 있는데.”
“…….”
그것이 빈말이 아님을 알아챈 소녀는 주먹을 말아 쥐면서 뚜둑 소리를 냈다.
“좋다. 그렇다면 이제 진심으로──”
“됐습니다. 거기까지만 하시지요.”
나는 수백 살은 먹은 소녀에게 자연스레 말을 걸면서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적어도 저를 여러 번 도와주셨다는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
“아주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친근하게 말하기.
정중한 태도로 웃어 보이기.
은근슬쩍 거리 좁히기….
“…그, 그그, 그러한가?!”
분위기 반전을 위한 내 갑작스러운 공격에 깡패 같은 모습만 보이던 숙맥 신선은 어버버거리면서 얼굴을 확 붉혔다.
그냥 말만 했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효과가 너무 좋군.
“…흥!”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여포는 내가 슬쩍 웃어 보이자 볼에 홍조를 띠면서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삐진 게 웃음 한 방으로 정리가 되네.
여포야, 얼마나 콩깍지가 씌었으면 그리 쉬운 여자가 되는 거니.
전부 진심으로 싸우면 어느 누군가는 크게 다칠 것 같아서 끼어든 건데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예민해진 분위기가 너무나 쉽게 가라앉았다.
여포가 더 강한지, 신선이 더 강한지 결판은 안 났지만 적당히 넘어가야지.
“…….”
솔직하게 말해서 서여를 투입하면 무슨 난장판이 일어날까 궁금하기도 해.
하지만 훈련장이 반쯤 박살이 난 상태에서 서여까지 끼어들었다간 병사들의 훈련은 뒤로 제쳐놓고 하루 종일 뒷수습만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근데 훈련 강도를 생각하면 병사들은 오히려 진지 공사를 더 좋아할 것 같네.
하긴, 나라도 여포나 장료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배우기와 얌전히 삽질하기 중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를 선택하겠군.
내가 잠시 잡생각을 하는 동안 얼굴을 확 붉힌 채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가던 소녀는 목소리를 벌벌 떨며 말했다.
“그, 그러면 이제 다시 한번 오붓한 시간을 보내겠느냐?”
“기꺼이.”
“히끅.”
자신의 손이 내게 붙잡히자 남화노선은 다시 한번 귀엽게 딸꾹질 소리를 냈다.
진짜 엄청나게 숙맥이네.
나한테 데이트를 권유하는 모습만 보면 마치 수백 년 동안 이성 경험 한 번 없었던 것 같은데….
에이, 설마.
이 세계의 신선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초월자가 아니라는 걸 어느 노인 덕분에 알아챈 상황.
그 호색한조차 늘 제자랍시고 여자를 끼고 다니는 마당에 다른 신선이라고 다르겠는가.
비록 내가 수백 년 동안 살아본 적이 없다지만 그 정도 세월이면 적어도 해볼 만한 건 전부 다 해보겠다.
그렇게 남화노선의 작달막한 손을 붙잡고 자리를 옮기려는 그 순간, 근처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기의 흐름이 흐트러졌군.”
난데없이 하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
신선이라는 칭호에 어울리지 않게 엉덩이가 가벼운 노인은 평소와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쯧쯧, 아무것도 모르는 도사 나부랭이들은 그렇다 쳐도 신선이란 자가 새파랗게 어린놈을 해하려 할 줄은 몰랐거늘.”
혼잣말을 들어보면 내가 본인과 같은 경지에 오른 신선한테 습격받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 모양.
뭐지, 생각보다 훨씬 의리가 있는 노인이었구나.
나 살짝 감동했다.
“이놈아. 어디 한번 얼굴이나 보자꾸….”
늘 타고 다니는 구름 위에서 훌쩍 뛰어내린 열자(列子)는 열심히 말을 잇다가 소녀를 확인하고 우뚝 굳어버렸다.
“…….”
“…….”
잠시 눈을 끔뻑이면서 남화노선과 시선을 마주하기를 한 번.
“…….”
스르륵 시선을 내려 날 꼭 붙잡은 자그마한 손을 확인하기를 한 번.
“흐으음….”
열자는 자신의 멋들어진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잠시 생각에 빠져있다가….
“…푸흑!”
“……!”
“흐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어느 때보다도 호탕한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컥, 커허억! 허흑! 허흐하하하하하학!”
어찌나 즐겁게 웃는지 저러다 숨넘어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난데없이 웃음을 터트린 노인은 제 배를 붙잡은 채 어찌어찌 입을 열었다.
“하하하! 나잇값도 못하고 얼굴 붉힌 꼬락서니 좀 보라지!”
“다, 닥쳐….”
“적어도 죽기 전에 연애는 해봐서 다행이구나! 응?!”
“닥치라고──!!”
정말 수백 년 동안 이성 경험 한 번 없었던 거야?
아니, 얼마나 눈이 높고 성격이 괴팍했으면 그렇게 되는 거냐.
그렇다 치면 나는 그 엄청나게 높은 기준에 들어섰다는 건가.
…대체 왜?
내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았을 무렵 열자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봐라! 이렇게 도발했으면 진작 달려들었을 난폭한 년이 손 하나 붙잡혔다고 움직이지도 못하네!”
“…….”
지금 열자가 말한 것처럼 남화노선은 수치심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차마 내 손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얌전히 있었다.
억제기 성능 확실하네.
남화노선도 서여나 여포처럼 나와 접촉하는 동안에는 뛰어난 신체 능력이 무색하게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그대로 꼭 붙잡고 있어라! 그래야 내가 계속 저 꼬맹이를 놀릴 수 있으니까!”
누가 친구 사이 아니랄까 봐 놀리는 것에 대해 진심이구만.
하지만 열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게 하나 있다면, 남화노선은 서여나 여포처럼 신체 능력에만 모든 걸 투자한 인물이 아니었다.
애초에 장각한테 요술을 가르쳐 준 인물이 바로 이 소녀 아닌가.
몸을 움직이는 게 주된 전략일 뿐, 마음만 먹으면 다른 공격 수단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스으으….”
“…으음?!”
쾅──!!
그리고 마치 그를 증명하는 것처럼 열자가 서 있던 자리에 난데없이 폭음이 울려 퍼졌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벼락이라도 떨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내 의문은 주변의 흙먼지가 걷히자마자 풀릴 수 있었다.
“…환영(幻影)?”
이게 웬걸, 어디선가 또 다른 남화노선이 나타나 열자를 공격한 것이 아닌가.
“…….”
내가 손을 붙잡은 소녀의 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오는 걸 확인한 나는 속으로 살짝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실체가 없어야 환영이잖아.
근데 지금 눈앞에 있는 또 다른 남화노선은 땅을 박살 냈는데?
어느샌가 뒤로 훌쩍 물러난 열자도 이 상황은 처음 보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체가 둘이라니?! 언제 그런 재주까지 익힌…. 으허억?!”
“주먹이 두 개인 것보다 네 개인 것이 더 낫지!”
마치 손오공처럼 분신술(分身術)을 행한 신선은 눈빛에서 살기를 드러냈다.
“그러니까 이제 뒤져라─!”
“…이봐! 이 미친년 좀 빨리 말려보게!”
남화노선이 진짜 화가 났다는 걸 눈치챈 열자는 내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나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그야 본체가 분신한테 합류하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걸.
열자도 뭔가 믿는 게 있으니 같은 신선의 속을 박박 긁었겠지.
“허억!”
쾅─!
나는 또다시 신선의 발길질에 초토화되는 훈련장을 바라보면서 뒷수습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