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16)
EP.616 변화(2)
나는 최근부터 매일 아침이 될 때마다 꼭 하는 일이 있었다.
“정릉! 아침이야! 해 떴어!”
“…….”
“그만 자고 일어나!”
…정확히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 보는 게 맞으려나.
언제부턴가 호위라는 명목으로 나와 같은 방에서 잠들기 시작한 여포는 동틀 무렵에 정확하게 일어나 날 들들 볶았다.
이유는 역시 그것밖에 없지.
난 아직 꽃샘추위가 완전히 가지 않은 3월 초 기온을 느끼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가기 싫어.”
“어린애처럼 굴지 말고 일어나!”
진짜 엄마 다 됐네.
이게 바로 애를 낳은 여인의 품격인가.
참고로 내 아이들은 따로 방 하나를 마련해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 잠든 상태였다.
대충 5살부터는 잠이 들 때 부모와 떨어트려 놓아서 사회성과 독립성을 길러주는 게 좋다 하더라고.
…근데 솔직히 불안하긴 해.
그 귀여운 쪼꼬미들을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재워야 한다니.
비록 어머니께서 제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자기만 믿으라는 말씀을 하셨다만….
허구한 날 내 아이들의 등쌀에 휘말려 뻗어버리는 모습을 보니 딱히 믿음이 안 가더라.
물론 따로 재우는 아이들은 서희나 여화처럼 무럭무럭 자라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꼬꼬마들에게만 한정됐다.
다른 애들은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서 부모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으부붑….
───아앗! 왜 또 자기 혼자 엎드려 있어!!
특히 장비의 딸인 장하가 그런 경우더라.
분명 똑바로 눕혀 놓은 다음 낮잠을 재워뒀는데, 어느샌가 몸을 뒤집더니 숨도 못 쉬면서 끙끙거리는 광경은 나와 장비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꺄르륵!
───…….
자기가 죽을 뻔했다는 것도 모르고 활짝 웃는 아기를 보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걸.
유비와 관우의 딸은 안 이러던데, 이것도 자기 엄마를 닮았다고 해야 하나….
“일어나! 빨리!”
“…….”
나를 번쩍 일으켜 세운 여포는 내 겨드랑이 사이로 양팔을 끼운 채 날 질질 끌고 나왔다.
역시 천하무쌍답게 자기보다 덩치가 큰 남성도 전혀 힘들이지 않고 수습하는군.
“…….”
서여는 어느샌가 옷까지 갈아입은 채 근처에서 나를 호위하고 있었다.
네 주인님이 잡혀가고 있는데 뭐 하는 거야.
어서 날 구해.
하지만 서여가 그런 내 눈빛을 눈치챘음에도 나서지 않았으니, 그 이유는 참으로 간단했다.
“자! 체조(體操) 시작!”
“으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바로 내 건강과 관련 있는 일이기 때문이지.
몸 체(體)에 잡을 조(操).
그냥 단순히 운동한다는 뜻이긴 한데, 헬스나 다이어트 등 온갖 외래어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겐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
왜, 내가 저번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 않나.
화타는 오금희(五禽戱)란 건강 체조를 만들어서 제자가 90세까지 장수하게 만들었다고.
───…오금희를 알려달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분명 저번에 알려 드렸던 기억이…. …아닙니다.
…그랬었나?
근데 왜 내 기억에 안 남아있지.
화타는 잠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다가 내게 담담히 오금희를 알려주었다.
───대장군께서는 오행(五行)이란 개념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대충은?
오행(五行).
알 사람은 알 법한 중국의 철학 교리.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여러 창작물에서도 워낙 단골 소재로 나오는 것들이라 아예 처음 들어보는 사람은 드물 테지.
하지만 저 단어가 각자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모를걸?
대충 뭉뚱그려 설명하자면 나무는 생명을 상징하고, 불은 기운을 상징하며, 흙은 조화를 상징한다.
또 금속은 질서를 상징하며, 물은 변화를 상징하는 등….
…사실 나도 제대로 아는 건 아니야.
내가 철학자도 아니고 그냥 이런 뜻이 있다는 것으로만 생각하면 되겠지.
───좋습니다. 그렇다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겠군요.
화타는 내 대답을 듣고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오금희(五禽戱)란 각자 오행을 상징하는 동물들을 따라 함으로써 신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화타가 알려 준 동물들은 이러했다.
곰(熊), 새(鳥), 원숭이(猿), 호랑이(虎), 사슴(鹿).
그 동물들이 어째서 오행을 상징하게 됐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나도 모르는 깊은 뜻이 있겠지.
───이제 자세를 보여 드릴 테니 그대로 따라 하시면 됩니다.
───그래.
그렇게 시작된 오금희 강의 시간은 내게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곰이 나무를 끌어안는 것처럼, 양팔을 앞으로 쭉─
───…….
화타 본인이 일컫기를, 관절을 쉬지 않고 움직임으로서 몸의 활력을 되찾는 양생법(養生法).
───다음은 새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한쪽 팔과 다리가 수평이 되도록 쭉─
───…….
솔직하게 말하자.
이거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
───자세가 흐트러지셨군요.
화타는 마치 전생의 어떤 직업이 떠오를 정도로 자세를 직접 교정해주며 나를 열심히 굴렸다.
역시 90세까지 살아남는 비법은 그리 녹록지 않은 건가?
───나 생각이 바뀔 것 같아.
───안 됩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정말 단호박 같은 여자구나.
당장 대장군 학대를 멈춰라!
“자세 기억하지? 자, 정자세로 뻗는 거야! 쭈욱──!”
“으으윽….”
그렇게 나는 매일 아침마다 고금무쌍과 천하무쌍을 양옆에 낀 채 동물을 따라 하게 됐다.
“…….”
그 항적과 여포가 나란히 서서 동물 체조를 한다니.
진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군.
──────────
───광희(光熹) 12년(201년) 진월(辰月) 기사(記事).
대장군(大將軍)께서 백성의 역병을 손수 보살피며 그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니, 이를 우두법(牛痘法)이라 일컬었다.
“어떠냐? 사관이 이번 사건에 대해 기록한 내용이다.”
“…….”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자택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불현듯 내게 찾아와 장난스럽게 말을 거는 소녀를 바라보면서 침묵했다.
“황제조차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것이 사관의 기록이니, 앞으로도 그대의 업적은 널리 퍼지리란 이야기지.”
“그렇습니까.”
자신이 지닌 능력을 단순히 기록을 훔쳐보는 데에 사용하다니….
신선이 직접 움직이기엔 너무나도 사소한 이유 아닌가.
하지만 본인이 좋다고 하니 어쩌겠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수밖에 없지.
“…이몸께서 직접 움직여 줬는데도 꽤 심심한 태도로구나.”
하지만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화노선은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흥, 됐다. 이래서야 도와주는 보람도 없겠….”
“또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눈앞의 소녀가 토라지려는 걸 감지한 나는 잽싸게 움직였다.
“흐그앗?!”
“그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반응이 늦은 것뿐입니다.”
내가 자신을 꼭 끌어안기 무섭게 석상처럼 굳어버린 소녀의 모습.
수백 년 동안 이성을 만나본 경험이 아예 없던 신선은 자그마한 자극에도 스위치가 내려가 잠시 작동을 멈췄다.
…솔직하게 말해서 진짜 쉽긴 하네.
그 여포와 대등하게 겨뤘던 인물이니만큼 허접의 척도도 비슷한 건가?
“제 이야기, 믿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미, 믿지! 믿다마다!”
고개 끄덕이는 속도 봐라.
정말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풋풋한 내음이 잔뜩 나는구나.
단순히 껴안은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훗날 몸을 겹친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잠시 궁금해졌다.
여포와 비슷한 허접 소녀가 한 명 더 늘어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미래는 아무도 모르니까 방심하면 안 되겠지.
“주군, 급보입니다.”
“음?”
내가 조그마한 신선을 품에 껴안은 채 그녀를 달래주는 동안 고순이 내게 찾아와 말했다.
“…급보라고?”
“예.”
단순한 전령도 아니고 나라의 장수가 직접 찾아와 보고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라….
…또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야.
칭기즈 칸이 북방 이민족을 통합하고 쳐들어온 걸로는 부족했니?
내가 두뇌를 필사적으로 굴리면서 또 무슨 큼지막한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는 동안 고순은 내게 무언가가 담긴 상자를 내밀었다.
곳곳이 가치를 알 수 없는 보석으로 치장된 무척 값비싸 보이는 상자.
“장성 너머에서 찾아온 이민족이 칸(汗)의 선물이라며 바친 물품입니다.”
“…….”
이야. 칸(汗)이라고?
지금 그 칭호가 뜻하는 인물은 한 명밖에 없잖아.
머릿속에서 한 여인을 떠올린 나는 자연스레 긴장하면서 고순이 내민 상자를 천천히 열어보았다.
내 곁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여포가 상자 안에 담긴 물품을 확인하고 툭 중얼거렸다.
“으응? 이게 뭐야.”
“두봉(斗篷, 망토)입니다.”
“아니,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 줄 알아?”
여포는 융통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고순의 대답에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내 말은 어째서 이런 선물을 보냈냐는 거지.”
“…제 짧은 식견으로 주군께 혼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너 진짜 답답하다!”
누가 여포와 고순 아니랄까 봐 대화가 미묘한 곳에서 계속 어긋나네.
하여튼 난 주변이 소란스러운 걸 뒤로하고 상자 안에 담긴 물품을 바라보았다.
“…….”
척 봐도 고급스러운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게 느껴지는 보라색 망토.
…테무진.
도대체 서쪽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