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27)
EP.627 만남(5)
오호십육국.
중국의 수천 년 역사 중에서도 제일 답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암흑기.
십육국(十六國)이라는 단어만 봐도 알겠지만 이 시대는 그 춘추전국시대보다도 더한 혼란기였다.
그러니까 중국이 많아도 너무 많았던 시절이라 해야 할까.
그 춘추전국시대조차 나라가 7개쯤 됐던 걸 생각하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
사실 말이 16국이지, 잠시 반짝 등장했다 사라진 나라만 세어보면 30개 정도 될걸?
너도나도 왕이 되겠다고 설쳤으니 당연히 인구도 무척 줄었다고 하지.
백성이 누런 두건을 두르고 살고자 외쳤으니, 오랜 병폐에 시달리던 한나라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한나라가 무너지면서 도래한 군웅할거의 시대.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가 천하를 두고 다퉜던 난세의 승자는 조조도 유비도 손권도 아닌 사마의였다.
하지만 사마의가 열심히 떠먹여 준 것이 무색하게 후손이란 놈들은 온갖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팔왕의 난이라는 희대의 멍청한 짓을 저질렀으니….
만약 전생처럼 오호십육국이 정상적으로 도래했다면 중원 인구수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을걸.
그만큼 중국 역사에서 제대로 언급하기도 애매한 혼란의 시기였다.
…물론 너무 복잡하기도 해서 언급이 드문 것도 있겠지.
중국 역사학자들조차 골머리를 앓는 게 오호십육국이라던데….
이건 농담이 아니라 오호십육국이란 시대 자체가 얼마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지 드러내는 요소였다.
사실 한국사에서도 신라와 백제가 삼한(三韓)이라고 해서 70개도 넘는 국가로 쪼개진 시절이 있지 않나.
하지만 그 70개도 넘는 국가 이름을 기억하고 굳이 찾아보는 일반인이 없는 것처럼, 오호십육국도 이 경우와 상당히 비슷했다.
“…….”
그리고 나도 오호십육국은 잘 몰라.
난 전문가가 아니라고.
내가 장궤(張軌)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냥 척 봐도 멋들어진 무왕(武王)이란 칭호 덕분이었다.
무왕(武王).
내가 특이한 건지 모르겠으나 한자만 봐도 멋있지 않나.
실제로 그는 유명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 아는 사람이 적을 뿐이지 이민족 수만 명, 어쩌면 수십만 명까지 격파한 전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언급했었지?
오호십육국은 너도나도 왕이 되겠다며 설치던 시대라고.
그렇다면 그들 중에는 당연히 한(漢)의 후계자를 자칭하며 나라를 세운 한족도 있을 텐데, 그게 바로 장궤란 인물이었다.
사실 장궤는 진나라가 팔왕의 난을 일으키고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 때부터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거다.
그러니까 전량(前涼)이란 나라를 세워서 진나라한테 반쯤 독립한 거겠지.
하지만 진나라한테서 아예 등을 돌리진 않았는데, 장궤의 후손이 한 발짝 더 나아간 것뿐이야.
이걸 착한 독립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네.
근데 진나라가 벌인 짓 때문에 주변에서 온갖 이민족이 쳐들어온 걸 보면 착한 독립 맞을지도.
내가 팔왕의 난을 희대의 멍청이 짓이라고 칭한 이유가 있다.
싸울 거면 자기들끼리 싸울 것이지, 아예 주변 이민족까지 끌어와서 용병으로 써먹으며 판을 대책 없이 키웠거든.
강족, 저족, 선비족 등등 전부 말이야.
그러면 무사히 중원에 자리 잡고 진나라가 제대로 개판인 것까지 목격한 이민족이 어떤 행동을 보이겠나.
당연히 그들의 오랜 숙원을 해결하고자 뒤통수를 치고 독립하겠지.
저기 로마 제국도 땅 좀 달라면서 게르만족이 쳐들어오는 마당에 진나라라고 다르겠냐.
하여간 대책 없는 것들이야.
어쨌든 본래 역사에서 무왕(武王)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인 창업 군주가 수십 년 일찍 태어난 상황.
황제 폐하와 조조의 환상적인 플레이로 문무백관을 대규모로 갈아치운 상황에서 이렇게 능력 있는 인재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장온(張溫).”
“부, 부르셨습니까!”
내가 차분한 목소리로 부르자 눈앞의 남성은 아주 적극적인 태도로 외쳤다.
아마도 본인이 죽다 살아났다고 생각한 모양.
“…….”
아니, 근데 나는 딱히 널 해칠 생각이 없다니까?
그냥 혹시나 싶어서 호구 조사를 했을 뿐이야.
하지만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믿어줄 낌새가 아니었으니 난 그저 속으로 한숨만 내뱉을 따름이었다.
원래 호구 조사 자체가 그리 좋게 느껴지는 어감은 아니니까.
하물며 언제든지 자신의 가문을 없애버릴 수 있는 상관이 벌이는 거라면 더더욱.
“그대는 관직에 오른 적이 있나?”
“그, 그렇습니다.”
장온은 혹여나 트집이 잡히지 않을까 아주 조심하면서 내 질문에 대답했다.
“한때 상서(尙書)를 보좌하는 상서랑(尙書郞) 관직에 있었습니다.”
“흐음?”
상서랑이면 꽤 이름값 있는 관직인데.
무관으로 치면 대충 장군의 보좌관인 행군사마(行軍司馬)쯤 되나?
이것만 보면 뭐가 높냐 생각할 수 있는데, 상서성(尙書省)에서 일하는 인물은 전부 황제 직속 문관이다.
즉 나라의 일인자가 뒷배로 존재하는 셈이니 아무리 낮은 관직이라 해도 사람들이 깔보는 경우는 없지.
실제로 상서성의 장관인 상서령(尙書令)은 온갖 실무를 직접 처리하는 관직이다 보니 삼공(三公)과 비교했을 때도 권위가 꿇리지 않았다.
무관에 대장군(大將軍)이 있다면 문관에는 상서령(尙書令)이 있다고 해야 하나.
지금 내 기억에 의하면 왕좌지재 순욱이 그 자리를 맡고 있을걸.
내가 황궁에 도착할 때마다 순욱이 제일 먼저 반겨주는 이유가 있지.
하여튼 상서성(尙書省)에서 일할 정도면 꽤 엄청난 고생을 했을 텐데, 어째서 그 관직을 버리고 한낱 지방 호족이 된 걸까?
내 질문을 받은 장온은 과거를 떠올리며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때 이 나라를 위협했던 역적, 동탁이 저를 해하려 할 낌새를 보였기에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생각하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오네.
동탁 또 너야?
심지어 장온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장군께선 제 생명의 은인이시지요.”
“음?”
“만약 대장군께서 동탁의 눈길을 끌지 않았다면, 저는 낙양을 탈출하기도 전에 붙잡혀 저잣거리에 매달렸을 테니 말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사람 한 명을 살렸구나.
하긴, 내가 그때 동탁의 신경을 오죽 긁었어야지.
낙양 내부를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면서 동탁의 병사들을 잡아 족치고 온 이목을 끌었으니 사람 한 명 탈출하는 것쯤은 간단했을 거다.
이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역사에 이름은 남겼던 인물이 확실하구만.
동탁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말로 판단했을 때, 장온은 아마 삼국지연의에서 동탁이 정권을 잡고 칼춤을 출 때 쓸려나갔던 관리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았다.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유교 문화 특성상 동탁한테 욕 한번 시원하게 박았거나, 아니면 그를 암살하려 해서 목숨을 잃었겠지.
“…….”
뭐야.
그렇다면 이 사람도 안 쓸 이유가 없는데?
동탁한테 반발했다는 건 기본적으로 권력자한테 아첨만 떠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라는 뜻이잖아.
이야,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한(漢)나라의 충신이냐.
과거 기록을 살펴보고 장온이란 인물이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확실해지면 다시 일하게 만드는 것도 좋을 터.
“사마의.”
“…알았어요.”
내가 고개를 돌리면서 자신을 부르자 사마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하여튼 이런 건 꼭 나한테만 시킨다니까….”
“…….”
그랬나?
나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정 하기 싫으시다면 제게 맡기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하기 싫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요?”
사마의의 중얼거림을 들은 제갈량이 슬쩍 다가오면서 말하자 그녀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때다 싶어 공을 빼앗으려 드는 게 아주 괘씸하네요.”
“…….”
마치 정곡을 찔린 듯 잠시 입을 다문 흰색 머리카락의 꼬꼬마 책사.
하지만 여태껏 사마의를 쓰러트렸던 입담의 소유자는 곧장 반격에 나섰다.
“당신이야말로 늘 은근슬쩍 주군께 다가가는 모습이 엉큼하게 느껴진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뭐, 뭐라고요?”
“매일 자신이 앞서 간 것처럼 굴지만, 실상 저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시끄러워요!”
…저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갑작스럽게 벌어진 말싸움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무렵 방통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다.
“아기 말하는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내게 허구한 날 달려들던 것치고는 아직도 소식이 없구나.
확실히 내 명중률(?)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가 보네.
조조처럼 단번에 임신이 성공한 경우가 특이한 거였어.
본의 아니게 분위기를 한 차례 환기했지만 여전히 두려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지방 호족들.
…뭐, 장온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이쯤하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겠지.
칭기즈 칸이 여름에 찾아온다고 했지만 그것보다 더 일찍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조만간 이 지방에 다른 나라에서 찾아오는 귀한 손님이 올 예정이다.”
“…….”
“근데 내가 급히 찾아와서 그런지 그들을 환대할 만한 재물이 부족하구나.”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한나라의 위신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줄 인물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