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28)
EP.628 만남(6)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내 갑작스러운 기부 요청에 호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진 참으로 뻔했다.
“하, 하하! 물론이지요! 한나라의 위신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물건이든 바치겠습니다!”
“말씀만 해주신다면 집안의 기둥뿌리조차 전부 뽑아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요청하기 무섭게 아주 열정적인 모습으로 호응하는 호족들.
이럴 수가.
이렇게나 충심이 깊은 호족들이 존재하다니?
역시 한나라의 국운은 다하지 않았구나!
“…….”
“…….”
사실 뒤쪽에서 서여와 여포를 비롯한 만부부당의 장수들이 호족들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난 일부러 모른 체했다.
내가 사적인 욕망으로 재산을 사용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지.
현재 칭기즈 칸을 환대하기 위한 재물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만약 어느 호족이 ‘정말로 급히 채비를 갖추느라 금은보화를 안 가져왔느냐’ 물으면….
글쎄.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정도로 용기 있는 인물은 없는 모양.
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어떻게든 밝은 표정을 연기하는 지방 관리와 호족들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 반응을 지켜보던 한 인물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외쳤다.
“걱정 마십시오! 한낱 야만인들에게 폐하께서 얕보이지 않도록 저희가 정성껏 지원하겠…!”
“야만인?”
“…헙!”
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니?
야만인이라고?
“…흐음.”
이곳에 또 인종 차별자가 있었구나.
과한 긴장감 때문일까?
아니면 평소 태도 때문일까?
어쨌든 자신도 모르게 야만인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걸 보면 꽤 심각한 놈이라는 건데….
이런 놈이 용케도 서량에서 지냈구나.
나는 말을 잘못 했다는 걸 눈치채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관리에게 입을 열었다.
“내가 분명 조금 전 귀한 손님이 찾아오기에 그들을 환대해야 한다고 언급했는데 말이야.”
“그, 그건….”
내가 툭 중얼거리자 말을 내뱉은 호족의 안색이 아주 새파래졌다.
“혹시 그대는 귀한 손님과 환대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 물음을 받은 호족은 자리에 냅다 엎드리면서 머리를 쿵 소리가 나게 찍었다.
그러면서 몸을 쉴 틈 없이 떠는 것이 살짝 불쌍해 보였으나 이런 모습에 동요하기에는 난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아니, 그렇다면 알고 있는데도 야만족이란 단어를 내뱉었다는 뜻인가.”
“…….”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치명적인 말실수를 내뱉는 것.
인생을 살다 보면 꼭 한 번쯤은 있는 일이지.
그게 하필 지금이라는 게 호족 입장에선 운이 안 좋은 거겠지만.
“한나라의 귀한 손님을 야만족이라 부르는 태도를 보아하니…. 그대는 따로 섬기는 나라가 있나 보군.”
“…….”
“어디, 이 기회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겠나?”
이런 자리에서 말실수 한번 잘못하면 목숨이 슝 날아갈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니?
아마 모르니까 경솔한 태도로 야만인이란 단어를 내뱉었겠지.
“용서해주십시오, 대장군! 제가 너무나도 경솔했습니다!”
“…….”
나는 여전히 몸을 벌벌 떠는 이름 모를 호족을 바라보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됐다. 손대지 않을 테니 나가보거라.”
“…참말이십니까?”
“그러면 거짓 같아 보이나?”
끝까지 눈치 없는 모습을 보이는 호족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지자 호족은 화들짝 놀라더니 넙죽 인사를 올렸다.
“아, 아닙니다! 졸자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
난 자리를 급히 벗어난 호족을 확인하고 무릎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안 그래도 민족 융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마당에 저런 놈이 튀어나오다니….
본래 역사의 명나라처럼, 훗날 한(漢)족이 가장 위대하다는 이상한 사상에 나라가 물들게 둘 수는 없지.
저런 놈은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서라도 어떻게든 갱생해야 했다.
만약 갱생할 수 없으면 적어도 겉으로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못하게 막아야 할 터.
물론 다른 사람을 굳이 비교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니 인종 차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아무런 행동조차 하지 않는 것보단 낫겠지.
“잠시 이야기가 길어졌군.”
“…….”
“어디, 또 개인적인 신념으로 문제를 일으킬 놈은 없는 것 같구나.”
조금 전 다른 민족을 오랑캐라 일컬었던 그 호족은 내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이 다른 서량 호족들에게 처리될 것이다.
이곳은 강족과 저족이 한족과 뒤얽히면서 혼혈 가문을 형성한 지역이거든.
이는 오랑캐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그 호족을 향해 적대적인 눈빛을 보내던 수많은 인물만 봐도 알 수 있지.
“조만간 그대들의 가문에 사람을 보낼 터이니 준비하고 있도록.”
순간의 말실수로 제 가문을 파멸로 몰아넣은 어리석은 호족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나는 곧장 말을 이었다.
“이제 해산해라.”
──────────
지방 관리, 호족들의 부패 정황을 감시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뭐긴 뭐겠어.
이놈에게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점검하는 거지.
주머니 속의 송곳니가 결국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소득에 비해 재산 규모가 이상하리만치 거대한 놈들은 하나같이 수상한 무언가에 얽혀있었다.
대충 그런 것들 있잖아.
자세히 설명하기 뭐한 불법적인 일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지라 착한 놈이 있으면 나쁜 놈도 있고 그랬다.
“…이게 전부 뭐죠?”
“그, 그건….”
“어쩐지 재물이 이상하게 많다 했어요.”
어느 지방 호족의 창고를 살펴보던 사마의는 포대 안에 담긴 은색 알갱이들을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소금이라….”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이야기는 뭔 놈의 이야기예요.”
말 그대로 빼도 박도 못할 소금 밀수 현장에 꼬꼬마 군사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밀수꾼은 사형인 거 아시죠?”
“자, 잠시만…!”
“전부 없애버려요.”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참 가차 없단 말이지.
아무래도 서량의 행정 체계가 그리 조직적이지 않은 걸 이용해서 불법적인 사업을 벌인 모양인데, 결국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었다.
──커헉!
──으아악!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소금.
뭐래더라.
소금은 생명이 살아가는 데 있어 물과 엇비슷한 정도로 중요하다고 하던데….
이는 옛날 사람들도 알고 있었는지 서양과 동양 모두 소금은 고대 시대부터 국가가 전담하고 유통하면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과시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하지만 법으로 무언가를 규제하면 어떻게든 이를 피해 가면서 이득을 취하려는 놈들이 꼭 튀어나오지.
심지어 소금은 귀금속에 버금갈 정도로 값진 물건이었으니 더더욱 밀수가 횡행했다.
그리고 이러한 밀수꾼이 모여들어 일종의 조직을 형성하고, 나라를 내부에서 좀먹는 것.
사실 말이 소금이지 현대로 치면 마약 조직과 다를 바 없는 놈들이었다.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는 불법적인 사업체랄까.
즉 이것은 창과 방패의 싸움.
나라는 돈도 못 벌게 하고 치안까지 악화시키는 범죄자들을 끝없이 없애야 했고, 밀수 조직은 어떻게든 감시를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흐흠, 마침 잘됐네요.”
“끄으윽….”
“안 그래도 슬슬 밀수꾼들이 튀어나올 시기였는데….”
단검으로 다리를 관통당했으나 기묘할 정도로 중요한 혈관을 피해 간 지방 호족의 모습.
“알고 있는 정보, 전부 토해낼 때까지 못 죽을 거예요.”
“자비!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안 죽는다니까요?”
피가 튄 손을 아무렇지 않게 닦으면서 슬쩍 웃는 모습이 얼마나 살벌하던지….
또 사마의를 제외한 다른 꼬꼬마 책사들도 지방 호족과 관리를 어마어마하게 압박했지.
“장부에 적힌 숫자가 맞지 않는군요.”
“…예?”
“조세를 지불하기 위해서 낙양으로 운반되던 물품들이 몇 개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슥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복잡한 내용이 적힌 장부의 오류를 순식간에 집어내는 제갈량.
“이, 이상하네요…. 분명 중요한 물품들인데….”
“…….”
“누가 이렇게 많이 꿀꺽했는지…. 배라도 갈라서 확인해 볼까요…?”
분명 목소리는 소심한데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사마의보다도 더 살벌한 방통까지.
뛰어난 인재들이 작정하고 호족 가문을 조사하니 탈탈 털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솔직히 중원이 워낙 넓어야지.
나라를 아무리 잘 다스려도 결국 행정력의 한계로 지나치는 범죄가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지방을 직접 찾아와 한 차례 뒤엎어 놓으면 범죄 조직의 뿌리까지 싹 근절할 수 있으니 너무나 좋았다.
진시황, 당태종, 강희제….
괜히 황제들이 직접 지방을 순회한 게 아니라니까.
하여간 똑똑하긴 해.
“…….”
우리 세력에 편입되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서량조차 이 정도면 다른 지역은 어떨까.
앞으로도 폐하와 함께 자주 돌아다녀야겠다 생각한 나는 지방 호족과 그들에게 붙어먹은 관리가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